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의 파란만장 일대기

두산재벌의 황태자 ‘비운의 삶’을 마감하다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지난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2세. 두산그룹 창업주 고 박두병씨의 둘째 아들인 박 회장은 한때 두산그룹의 총수를 맡으며 재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05년 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형제의 난’이 검찰의 전면수사로 확대되자 박 회장은 형제들의 외면을 받으며 두산가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기업가로서의 화려한 재기를 꿈꿨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는 이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으로 재계는 박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두산가족과의 불화와 성지건설의 경영난으로 인한 심적 압박감에서 비롯된 비운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 인수합병 등 공격 경영으로 9년간 두산가 진두지휘
2년간 피 튀는 ‘골육상쟁’…회장 박탈 및 가문 제명 수모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전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성북동 자택에서 숨졌다. 박 회장은 이날 오전 8시께 자택 안방 드레스룸 옷장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가정부 김모(63)씨에 의해 발견됐다.

수장 잃은 성지건설
망연자실 ‘어떡해’

박 회장은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숨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분간 심폐소생을 시도한 의료진은 결국 오전 8시32분께 박 회장에 대해 사망판정 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수장을 잃은 성지건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성지건설 측은 박 회장의 사망 소식이 처음 알려질 당시 사망 원인이 생전 그의 지병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당일 오후 경찰이 성북동 자택에서 박 회장의 유서를 발견하면서 성지건설 수장의 사인은 자살로 공식 확인됐다.  A4용지 7장 분량의 유서에는 가족과 회사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당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사망 소식에 1996년 이후 10여 년간 그를 총수로 모셨던 두산그룹 역시 침통한 분위기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믿겨지지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장례 절차를 책임지고 사흘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비운의 경영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된 박 회장은 두산이라는 재벌기업의 자녀로 태어나 황태자로 자란 전형적인 재계 로열패밀리다.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의 둘째 아들로 경기고를 거쳐 뉴욕대를 졸업했다. 그는 지난 1965년 두산산업에 첫 입성한 이후 두산산업 사장과 동양맥주 사장, OB베어스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마침내 지난 1996년 두산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2004년까지 8년 8개월 동안 두산을 이끌었다.

기업가로서의 박 회장은 재계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왔던 인물이다. 박 회장은 회장 취임 전인 1995년 당시 두산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전격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기치를 올린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두산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성장했다.

그룹 인사 반발
‘형제의 난’ 발발

그룹경영과 함께 박 회장은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는 한-이집트 경협위원장과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회 부회장을 지냈고 1998년 이후 만 7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금탑산업훈장, 스페인 민간공로훈장, 벨기에 왕실훈장, 한국능률협회 ‘2003년 한국의 경영자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도 그의 경영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대내외에서 기업가로서의 역량을 펼쳤던 박 회장은 2005년 재계에서 쌓아온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 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시작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진 것. 두산일가는 2005년 7월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차남 박용오 회장에서 3남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박 회장을 철저히 배제했다.

큰형인 박용곤 회장과 5남인 박용만 당시 그룹 부회장이 서로 짜고 자신을 그룹에서 밀어내려 한다고 생각한 박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계열에서 분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 회장은 두산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 ‘두산그룹의 경영상 편법활동’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박 회장이 제출한 진정서에는 당시 박용만씨가 형 박용성씨의 장남인 박진원씨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팍’이라는 위장계열사를 차려 870억원을 밀반출했고 박용성씨와 박용만씨가 ‘태맥’ ‘동현엔지니어링’ ‘넵스’ 등의 회사를 통해 20년간 총 17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행동은 곧바로 양측의 걷잡을 수 없는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3남 박용성씨가 박용오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던 두산산업개발의 27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을 폭로하며 맞불작전에 나선 것.

이에 박용오 회장은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박용성씨 등 일가 28명이 대출금으로 주식을 인수했고 대출금 293억원의 5년간 이자 138억원을 회사가 대납했다고 추가로 밝혔다.

결국 서로가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 전체로 확대됐고 검찰은 이들 박씨 일가가 수년 동안 297억3000만여 원의 비자금과 29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다. 오너들은 이 돈을 생활비, 세금 대납 등 개인용도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사 장부에 2838억6000만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2006년 7월 박용오·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씩을 각각 선고받았다. 5남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1년 6개월간 지속됐던 법정다툼은 박 회장에게 개인적인 아픔도 남겼다. 그룹의 회장직 박탈은 물론 형제간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던 것.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발판 마련해
금융위기·아들 주가조작 혐의 ‘발목’    


박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 일각에서 형제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업계는 현재 박 회장이 이끌고 있는 성지건설의 자금난도 그를 압박한 요인이라고 덧붙인다. 성지건설은 ‘형제의 난’으로 두산그룹과 인연을 끊은 박 회장이 지난해 3월 기업가로서의 재기를 노리며 전격 인수한 건설사다.

당시 박 회장은 건설업계 50위권의 성지건설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진입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 2월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 CI를 발표하면서 내부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화려한 비상을 원했던 박 회장의 꿈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금융위기가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건설경기마저 악화시키면서 성지건설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업계에는 그동안 성지건설이 영업실적 악화와 차입금 증가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져 왔던 터다. 실제 올 상반기에는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 줄어든 1086억원, 영업이익은 63% 감소한 18억7000억원이었고 당기 순손실 43억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부진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지난 2007년 55위에서 지난해엔 65위로 10단계나 하락했다. 박 회장이 친필로 작성했다는 유서에도 성지건설의 부채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으로 확인돼 결국 그의 자살이 경영난으로 인한 자금 압박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노렸지만…

여기에 최근 차남인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41)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박 회장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중원씨는 ‘뉴월코프’라는 코스닥 업체를 인수하며 오일 슬러지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올해 초 기업 인수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나 수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 7월,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결국 재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 상당한 심적 스트레스를 겪어오던 박 회장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용오 회장 프로필

1937년 3월 서울 태생
195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64년 뉴욕대학교 상대 졸업
1965년 두산산업 입사
1974년 두산산업, 동양맥주 전무이사
1977년 두산산업 부사장
1983년 OB베어스 사장
1993년 두산상사 회장
1996~1998년 두산그룹 회장
1998~200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2005년 두산그룹 명예회장
2008~2009년 성지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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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