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의 파란만장 일대기

두산재벌의 황태자 ‘비운의 삶’을 마감하다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지난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2세. 두산그룹 창업주 고 박두병씨의 둘째 아들인 박 회장은 한때 두산그룹의 총수를 맡으며 재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05년 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형제의 난’이 검찰의 전면수사로 확대되자 박 회장은 형제들의 외면을 받으며 두산가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기업가로서의 화려한 재기를 꿈꿨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는 이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으로 재계는 박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두산가족과의 불화와 성지건설의 경영난으로 인한 심적 압박감에서 비롯된 비운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 인수합병 등 공격 경영으로 9년간 두산가 진두지휘
2년간 피 튀는 ‘골육상쟁’…회장 박탈 및 가문 제명 수모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전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성북동 자택에서 숨졌다. 박 회장은 이날 오전 8시께 자택 안방 드레스룸 옷장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가정부 김모(63)씨에 의해 발견됐다.

수장 잃은 성지건설
망연자실 ‘어떡해’

박 회장은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숨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분간 심폐소생을 시도한 의료진은 결국 오전 8시32분께 박 회장에 대해 사망판정 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수장을 잃은 성지건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성지건설 측은 박 회장의 사망 소식이 처음 알려질 당시 사망 원인이 생전 그의 지병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당일 오후 경찰이 성북동 자택에서 박 회장의 유서를 발견하면서 성지건설 수장의 사인은 자살로 공식 확인됐다.  A4용지 7장 분량의 유서에는 가족과 회사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당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사망 소식에 1996년 이후 10여 년간 그를 총수로 모셨던 두산그룹 역시 침통한 분위기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믿겨지지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장례 절차를 책임지고 사흘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비운의 경영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된 박 회장은 두산이라는 재벌기업의 자녀로 태어나 황태자로 자란 전형적인 재계 로열패밀리다.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의 둘째 아들로 경기고를 거쳐 뉴욕대를 졸업했다. 그는 지난 1965년 두산산업에 첫 입성한 이후 두산산업 사장과 동양맥주 사장, OB베어스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마침내 지난 1996년 두산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2004년까지 8년 8개월 동안 두산을 이끌었다.

기업가로서의 박 회장은 재계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왔던 인물이다. 박 회장은 회장 취임 전인 1995년 당시 두산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전격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기치를 올린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두산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성장했다.

그룹 인사 반발
‘형제의 난’ 발발

그룹경영과 함께 박 회장은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는 한-이집트 경협위원장과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회 부회장을 지냈고 1998년 이후 만 7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금탑산업훈장, 스페인 민간공로훈장, 벨기에 왕실훈장, 한국능률협회 ‘2003년 한국의 경영자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도 그의 경영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대내외에서 기업가로서의 역량을 펼쳤던 박 회장은 2005년 재계에서 쌓아온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 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시작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진 것. 두산일가는 2005년 7월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차남 박용오 회장에서 3남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박 회장을 철저히 배제했다.

큰형인 박용곤 회장과 5남인 박용만 당시 그룹 부회장이 서로 짜고 자신을 그룹에서 밀어내려 한다고 생각한 박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계열에서 분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 회장은 두산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 ‘두산그룹의 경영상 편법활동’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박 회장이 제출한 진정서에는 당시 박용만씨가 형 박용성씨의 장남인 박진원씨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팍’이라는 위장계열사를 차려 870억원을 밀반출했고 박용성씨와 박용만씨가 ‘태맥’ ‘동현엔지니어링’ ‘넵스’ 등의 회사를 통해 20년간 총 17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행동은 곧바로 양측의 걷잡을 수 없는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3남 박용성씨가 박용오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던 두산산업개발의 27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을 폭로하며 맞불작전에 나선 것.

이에 박용오 회장은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박용성씨 등 일가 28명이 대출금으로 주식을 인수했고 대출금 293억원의 5년간 이자 138억원을 회사가 대납했다고 추가로 밝혔다.

결국 서로가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 전체로 확대됐고 검찰은 이들 박씨 일가가 수년 동안 297억3000만여 원의 비자금과 29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다. 오너들은 이 돈을 생활비, 세금 대납 등 개인용도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사 장부에 2838억6000만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2006년 7월 박용오·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씩을 각각 선고받았다. 5남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1년 6개월간 지속됐던 법정다툼은 박 회장에게 개인적인 아픔도 남겼다. 그룹의 회장직 박탈은 물론 형제간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던 것.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발판 마련해
금융위기·아들 주가조작 혐의 ‘발목’    


박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 일각에서 형제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업계는 현재 박 회장이 이끌고 있는 성지건설의 자금난도 그를 압박한 요인이라고 덧붙인다. 성지건설은 ‘형제의 난’으로 두산그룹과 인연을 끊은 박 회장이 지난해 3월 기업가로서의 재기를 노리며 전격 인수한 건설사다.

당시 박 회장은 건설업계 50위권의 성지건설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진입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 2월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 CI를 발표하면서 내부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화려한 비상을 원했던 박 회장의 꿈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금융위기가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건설경기마저 악화시키면서 성지건설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업계에는 그동안 성지건설이 영업실적 악화와 차입금 증가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져 왔던 터다. 실제 올 상반기에는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 줄어든 1086억원, 영업이익은 63% 감소한 18억7000억원이었고 당기 순손실 43억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부진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지난 2007년 55위에서 지난해엔 65위로 10단계나 하락했다. 박 회장이 친필로 작성했다는 유서에도 성지건설의 부채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으로 확인돼 결국 그의 자살이 경영난으로 인한 자금 압박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노렸지만…

여기에 최근 차남인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41)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박 회장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중원씨는 ‘뉴월코프’라는 코스닥 업체를 인수하며 오일 슬러지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올해 초 기업 인수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나 수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 7월,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결국 재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 상당한 심적 스트레스를 겪어오던 박 회장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용오 회장 프로필

1937년 3월 서울 태생
195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64년 뉴욕대학교 상대 졸업
1965년 두산산업 입사
1974년 두산산업, 동양맥주 전무이사
1977년 두산산업 부사장
1983년 OB베어스 사장
1993년 두산상사 회장
1996~1998년 두산그룹 회장
1998~200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2005년 두산그룹 명예회장
2008~2009년 성지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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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br>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