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밝히는’ 민자 기숙사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0 11: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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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이 코앞인데…잘 곳 없는 학생들

[일요시사=사회팀] 대학교 기숙사비가 날로 치솟고 있다. 한 학기에 200만원은 이제 기본. 특히 외부 시설투자로 직접 운영되고 있는 민자 기숙사는 더 비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기숙사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돈 없는 학생들은 골목 고시원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학생 주거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청년들이 주거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의 경우 주거문제는 해결 1순위의 과제다. 그러나 이들이 주거할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과 당국이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화려한 기숙사 건물은 그저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화려한 건물
누구 기숙사?


대학생 A(24·남)씨는 한 번의 고배를 마신 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했다. 가까스로 상아탑에 입성한 그는 새내기 시절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군에 입대했다. 당당하게 군 생활을 마친 그는 복학신청을 하고 복학생 신분으로 캠퍼스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 화려한 건물은 ‘신축 기숙사’였다. A씨는 새 건물에서 남은 3년을 지낼 생각에 부푼 기대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됐다. 높은 기숙사비 때문이었다. 그의 형편에 월 50만원이 넘는 기숙사 생활은 불가능했다. 그는 당장의 복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은 과 동기의 원룸에서 얹혀 지냈다. 그리고 얼마 후 월 20만원대 인근 고시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한 방이었지만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지금도 방 때문에 고민 중이다.

A씨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천안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B(23·여)씨도 주거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4학년인 그녀는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기숙사 입사 순위에서 밀려나 주변 원룸을 찾는 중이다. 기숙사 발표는 이미 났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방이라고 해도 원룸비는 수도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보증금의 차이는 있지만 비싼 월세는 마찬가지다. 하숙 등도 고려해봤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B씨는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학생과 협의 끝에 동거를 시작하기로 했다. 숙식 해결이 가능한 기숙사에 비해 원룸 생활은 피곤한 편이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달이 내는 월세와 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해 알바도 구하는 중이다. 통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숙소 비상’대학생 주거난
돈 없으면 골목 고시원행


A씨와 B씨의 사례는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다. 주거문제로 고통 받는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싼 ‘민자 기숙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즉 A씨와 B씨는 각각 ‘민자 기숙사’와 ‘기숙사 수용률’ 문제로 신음하는 것이다.


학생들 속이는
대학들의 꼼수


대한교육연구소가 대학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를 통해 최근 3년간 4년제 국·공·사립대 기숙사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민자 기숙사의 높은 비용을 실감할 수 있다. 대체로 수도권 사립대학들이 기숙사비가 비쌌고 정원 대비 기숙사 수용률도 낮았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민자로 운영되는 기숙사들이 높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민자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는 ▲연세대(신촌) ▲고려대(서울) ▲성균관대 ▲한양대(서울) ▲경희대 ▲한국외대(용인) ▲건국대(서울, 충주) ▲동국대(서울) ▲단국대(죽전, 천안) ▲숭실대 ▲상명대(천안) ▲경기대(경기) ▲가천대 ▲전주대 등이다.

이중 기숙사비가 가장 비싼 대학은 가천대였다. 가천대는 1인실의 경우 매달 72만8000원(1인실 1위)의 기숙사비를 부담해야한다. 2인실은 35만1000원(2인실 5위), 3인실 24만9000원(3인실 5위), 4인실 33만6000원(4인실 5위) 등이었다.


가천대 외에도 1인실의 경우 ▲연세대 55만2000원 ▲건국대 54만1000원 ▲단국대(죽전, 천안) 51만5000원 ▲고려대 50만5000원 ▲숭실대 49만8000원 ▲상명대(천안) 48만원 ▲성균관대 44만6000원 등이었다. 이 같은 비용은 대학가 인근 하숙집보다도 비싼 비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인실도 마찬가지다. 소규모 종교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숙사들은 전부 민자 기숙사였다. ▲고려대 38만7000원 ▲건국대 35만3000원 ▲가천대 35만1000원 ▲한국외대(용인) 35만원 ▲동국대 34만6000원 ▲서강대 34만6000원 등이었다.

소규모 종교대학들의 기숙사비도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4인실 기숙사의 경우 ▲대전가톨릭대 51만3000원 ▲수원가톨릭대 43만7000원 ▲부산가톨릭대 33만9000원 ▲인천가톨릭대 33만9000원으로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13만4000원보다 2배 이상의 높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민자 기숙사의 형태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 동일한 대학이라고 해도 본교와 캠퍼스 간의 기숙사비 차이를 나타냈다.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 간 기숙사비는 4인 기준으로 한국외대의 경우 본교 30만원, 캠퍼스 14만1000원으로 15만9000원 차이가 났다. 중앙대는 본교 22만7000원, 캠퍼스 16만7000원으로 6만원 차이가 났다. 예외도 있었다. 명지대의 경우 캠퍼스 기숙사비가 본교 기숙사비를 넘었다. 본교가 13만2000원, 캠퍼스가 22만8000원으로 9만6000원 차이가 났다.

‘민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높은 기숙사비 문제를 지적했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학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용률이 15% 미만인 학교는 총 64개교로 전체 대학의 33.7%에 달한다. 즉 3개학교 중 1개 학교는 기준치 미달인 셈이다. 64개 학교 중 수도권 소재 대학은 39개로 비수도권 소재 대학보다 기숙사 수용률이 낮았다. 기숙사 수용률 15% 미만인 서울권 대학은 ▲서강대 ▲동국대 ▲홍익대 ▲국민대 ▲가톨릭대 ▲서울과학기술대 ▲세종대 ▲광운대 ▲성공회대 ▲삼육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등이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경우 총학생 대비 기숙사 수용률이 2011년 13%, 2012년 13.5%, 2013년 13.5%로 15%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기준은 없어진 상태지만 ‘대학설치기준령’에서는 총학생 대비 수용률 15%를 명시하고 있었다. 비수도권 소재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1년 20.7%, 2012년 20.6%, 2013년 21.0%로 15%를 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대학들이 기하급수적으로 학생수를 늘리는 데 반해 기숙사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못함을 뜻한다.

전문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립 전문대 기숙사 수용률은 11.1%에 불과해 재학생 10명 중 1명만이 겨우 기숙사 입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50만∼70만원…하숙집보다 비싸
3개 학교 중 1개 학교 수용률 미달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가장 큰 문제점은 기숙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저렴한 기숙사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재는 외부 시설 투자로 직접 운영되면서 학생에게 부담이 넘어간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숙이나 자취를 알아보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사립대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대학이 직접 나서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산과 소득을 가진 다른 계층에 비해 훨씬 비싼 임대료를 물고 있다. 청년들의 주거권 상실은 건강한 청년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민달팽이 유니온,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 청년유니온, 서울지역대학생연합 등이 모여서 대학들의 민자 기숙사비 책정 근거 공개와 기숙사비를 통한 건축비 충당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지만 투명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다달이 월세
등록금 뺨친다


이들은 당시 12개 대학에 민자 기숙사비 책정근거 공개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신청했지만 12개 대학 모두 민자 기숙사비에 대한 책정 근거와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민자 기숙사 설립은 학교와 민간운영업체가 협의해 진행하므로, 학교 당국은 민자 기숙사비에 대한 책정근거를 요구할 수 있지만 기숙사비 책정근거에 대해서는 ‘민간 업체의 영업상의 비밀’이라는 것.

국립대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공개한 자료에서 서울대 임차료 운영비 지급현황과 강릉원주대학교 생활관비 산출근거를 보면, 현재 민자 기숙사비 중 일부가 건축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앞으로도 민자 기숙사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세를 살고 있는 학생들까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주거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학가 원룸시장에서 전세의 월세전환율이 10%를 웃돌고 있다. 즉 보증금 1000만원을 월세 10만원으로 환산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목돈이 없는 청년층은 주거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리고 월세를 올리는 경우가 이제는 다반사다. 지나친 보증금을 받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통상 임대인은 한 달치 월세만 보증금으로 받는다. 신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세 달치 미만으로 받는 시스템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임차인이 받는 피해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월세 전환 바람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안녕하지 못한
‘청년 주거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거래량(확정일자 취득 세입자 기준)은 54만388건으로 전년(45만122건) 대비 20% 포인트 증가했다. 전세는 같은 기간 87만3705건에서 83만 2784건으로 4만921건 줄었다.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33%에서 지난해 39.4%로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주택 임대시장의 구조변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며 “월세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주거시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학생들의 건강한 주거권을 위해 지자체가 힘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남도학숙’이 대표적이다. 남도학숙은 광주·전남 인재육성을 목표로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했다.

기자가 남도학숙을 방문해본 결과 깔끔한 내외관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출입은 작은 카드로 통했다. 1층에는 장학부와 관리부 등 학생들을 위한 관리부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도학숙·행복기숙·희망하우징…대안 부상
각종 편의시설에 비용도 한 달 10만원대 수준


남도학숙은 지역 기업인·농민·상공인·근로자·공직자·학생 등 17만여명이 기탁한 성금을 모체로 시·도비와 군비 등 278억원의 재원으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설립해 1994년 2월28일에 개관했다.

이러한 지자체의 후원으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남도학숙은 서울 1호선 대방역과 서울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사이에 위치해 인근 대학 접근성도 뛰어난 편이다. 대지는 2362평, 연면적 9871평으로 지상 11층과 지하3층으로 남부럽지 않은 시설을 자랑한다. 총 수용능력은 810명(남 444명, 여 366명)이다.

남도학숙에는 도서관, 체력단련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기숙사 내에서는 기본적인 생활훈련, 태도훈련과 더불어 교양강좌까지 열린다.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과 장학금 지원도 있다. 입사생은 시군별 정원이 정해져 있어 학업성적과 생활정도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시·도 및 남도학숙 장학부가 이러한 행정업무를 맡고 있다. 고향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다.

이밖에도 지방 유학생을 위한 학교 밖 기숙사인 지자체 학사는 경기도장학관(쌍문), 강원학사(난곡), 충북학사(당산), 서울장학숙(방배), 탐라영재관(가양) 등 서울에 위치해 있다.

입주 대상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수용인원은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각 학사의 기숙사비는 월 10만원에서 17만원까지 저렴한 편이다. 지자체 학사는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에 사는 학생만 신청할 수 있지만, 거주 기간을 따지는 곳도 있다.

모든 학사가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전문대생은 신청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대학의 4년제 학과는 예외가 되기도 한다.

민자 기숙사의 절반 가격인 ‘행복기숙사’(사립대공공기숙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행복기숙사는 국토해양부와 사학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사립대 공공기숙사다. 단국대(천안)가 처음으로 문을 연다. 기숙사비는 월 19만원 수준이다. 소외계층과 저소득층 학생에게 우선 배정하고 기숙사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대구한의대, 세종대, 경희대가 행복기숙사에 선정됐다.

또한 다가구주택 및 원룸을 임대할 수 있는 ‘희망하우징’도 눈에 띈다. 희망하우징은 서울시와 SH공사에서 저소득층 가정의 대학생들에게 다세대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 임대하는 주택을 말한다. 이를 통해 보증금 100만원에 월 8만∼10만원 선의 저렴한 월세 거주가 가능하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LH 대학생 임대주택은?

아무나 못 가는 ‘그림의 떡’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하고 있는 전세임대주택을 두고 ‘그림의 떡’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신청자에 비해 공급 물량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신청자격 조건도 까다롭다.

정부는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 공공기숙사 및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했다. 주거권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이라는 정책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부족한 공급이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높아 실효성이 희미해졌다.

공급량 턱없이 부족
까다로운 자격 조건

정부는 올해 30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1100가구, 경기 600가구, 인천 100가구 등 수도권에 1800가구가 배분됐다. 

부산 140가구, 대구 80가구, 광주 80가구, 대전 140가구, 울산 10가구 등이다. 강원 120가구, 충북 110가구, 충남 160가구, 전북 120가구, 전남 30가구, 경북 110가구, 경남 90가구, 제주 10가구다. 그러나 입주대상자 1순위인 기초생활수급자 대학생을 제외한 2, 3순위권은 사실상 신청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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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