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특집> ②사고 칠 기대주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4.02.03 11: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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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반란 '깜짝 메달' 노린다

[일요시사=경제1팀]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조용한 반란을 예고하고 있다. 대중들의 관심 유무와 관련 없이 64명의 선수 개개인은 굵은 땀방울을 흘려왔다. 제대로 사고를 칠 기세인 소치 동계올림픽 기대주를 꼽아봤다.





"내 이런 선수는 처음 봤습니다."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 경기연맹(FIDT) 부회장을 맡고 있는 강광배 한체대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기량이 급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한국 스켈레톤에 희망을 주고 있는 기대주 윤성빈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사고 한 번 제대로 칠 모양새다. 윤성빈은 올 초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륙간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꿈만이 아니다

윤성빈은 지난 2012년 여름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동안 무서운 성장을 이뤄냈다. 입문 3개월 만에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을 꺾고 국내 스타트 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아메리카컵에서 은메달 3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윤성빈은 "사람들은 '너무 조심스럽다'고 할 수 있으나 15위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의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깜짝 놀랄 만한 활약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여자 봅슬레이에서는 김선옥·신미화 2인조 대표팀이 메달 사냥에 나선다. 김선옥은 여섯 살 난 아들을 둔 엄마다. 학창시절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김선옥은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지만 2008년 출산과 함께 운동을 그만뒀다. 그러다 2011년 선배의 권유로 봅슬레이에 도전했고 2012년 말부터 신미화와 파트너를 이뤄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신미화 역시 육상선수 출신. 둘은 1년여 만인 지난 1월10일 아메리카컵 7차 대회에서 한국 여자 봅슬레이 사상 처음으로 국제 대회 메달을 따냈다. 호흡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눈빛만 봐도 호흡이 잘 맞는다고.

설상에서는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의 최재우와 스노우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의 김호준이 '깜짝 메달' 후보로 꼽힌다.


최재우는 지난해 3월 노르웨이 보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모굴에서 5위를 차지하며 역대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7세 때 알파인스키로 운동 선수 생활을 시작한 최재우는 10세 때 모굴로 종목을 바꾸고 중학교 1학년 때 캐나다 휘슬러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2007년 캐나다 청소년대회 모굴 부문 1위를 시작으로 2009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12년 2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에서는 대한민국 스키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내며 이목을 끌었고 FIS 월드컵 시리즈 모굴 부문 2013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장기는 공중에서 3바퀴를 도는 '백 더블 풀'과 공중 1080도 회전인 '콕 1080'이다.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1차 결선을 2위로 통과하고 2차 결선에서의 실수로 5위로 내려앉은 만큼 실수만 없다면 메달 획득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치 넘어 평창까지…차세대 스타들 총출동
무섭게 성장 '숨은 진주' 눈부신 활약 기대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스노우보드 최초로 올림픽에 나가 결선행을 노렸지만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하며 26위로 예선에서 탈락한 김호준은 4년 동안 처절하게 자신을 채찍질했다. 점프 높이 보완을 위해 하루 백 번 가까이 점프했고 어깨 부상이 있어도 다음날 훈련을 이어갔다.

2011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을 시작으로 같은해 2월 중국 야불리 월드컵에서 4위, 2012년 3월 미국 유타 FIS 레이스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핀란드 루카 월드컵에서는 9위에 랭크됐다.

소치 아이스큐브 컬링 센터에서는 2012년 3월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김지선·이슬비·신미성·김은지·엄민지로 이뤄진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 또 한번의 기적을 노리고 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김지선은 중국에서 컬링을 배우던 떠돌이 유학생이었고 이슬비는 선수 생활을 접고 유치원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은지는 성신여대생. 이들을 모은 것은 정영섭 감독이었다.

정 감독의 지휘 하에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은 지난해 4월 국내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소치행을 확정지었다. 9월과 11월에 열린 중국오픈과 아시아태평양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12월에는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계속되는 낭보에 지금은 강력한 우승 후보까지 올라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대회 때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에서는 남녀 대표팀 모두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먼저 장거리 간판 이승훈을 비롯해 주형준과 김철민으로 구성된 남자팀은 메달권 진입이 유력한 상황. 세 선수 모두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만큼 선두를 추격하고 코너를 도는 기술이 뛰어나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월드컵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낸 바 있다.

메달 향한 본능

김보름과 양신영, 노선영으로 짜여진 여자팀도 메달을 향한 질주본능을 이어가고 있다. 김보름은 "2013∼2014 월드컵 4차 대회에서 팀추월 3위를 선다"며 "예선만 넘기면 다음부터는 무난하게 경기를 치를 것 같다"고 말했다. 양신영과 노선영은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남은 기간 호흡을 맞추는데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한국 대표팀의 소치 동계올림픽 목표는 올림픽 3회 연속 종합 10위 안에 드는 것이다. 강점을 보이고 있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종목에서도 깜짝 메달의 기대감이 급상승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 본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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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