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 메이커’ 삼화제분 소문과 진실 추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1.14 1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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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기업 때문에 서청원 머리 싸맸다

[일요시사=경제1팀]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사돈기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법 부동산 매입 의혹부터 피 튀기는 가족간 소송전까지. 사위가 운영하는 삼화제분이 새해 벽두부터 잇단 구설에 휘말리고 있어서다. 더구나 삼화제분은 <한국일보> 인수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 ‘서청원 입김 작용설’로 시작한 잡음은 언론사 사주 자격 논란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난데없는 난리통에 뒷목을 잡은 건 서 의원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과 제분업체인 삼화제분의 관계가 정가의 핫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 의원은 ‘친박 핵심 실세’로 지난해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인물. 삼화제분 오너로 있는 박원석 대표는 서 의원의 사위다. 삼화제분은 최근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일보>를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를 놓고 각종 잡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삼화제분 일가의 법정 다툼과 비위 의혹이 잇따라 새어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병상 회장님
집안싸움 치열

시작은 삼화제분 2대 회장이자 박 대표의 부친인 박만송 전 회장이 병상에 눕고, 박 대표가 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불거졌다. 삼화제분은 자본금 87억여원에 직원 수도 20여 명에 불과한 제분업체지만, 박 전 회장의 추정자산은 수천억원대로 그는 업계에서 유명한 ‘부동산 부자’로 알려져 있다.

올해 88세로 고령인 박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강남 모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다. 같은 해 10월 23일, 박 전 회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아들인 박 대표를 상대로 주주권 확인 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주권 확인 소송이란 주식에 관해 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소장에는 박 전 회장이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박 대표가 주식을 불법적으로 양도 받았다는 주장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회장이 제기한 소송가액은 약 78억원이다. 다만 의사소통이 불가능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부인인 정모씨가 특별대리인으로서 그를 대신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12월 말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조정회부 결정을 받았고, 현재 협의 절차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 인수 앞두고 각종 뒷말로 곤혹
막후 입김?…언론사 사주자격 논란도 일어

조정회부 결정은 법원이 판결보다 원·피고 간 타협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될 때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양측의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기관이 강제조정을 하거나 재판부가 다시 사건을 맡게 된다.
거대한 재산을 둘러싼 삼화제분 일가의 법정다툼은 이 뿐만이 아니다. 부인 정씨는 지난해 7월1일 서울가정법원에 박 전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했다가 법원의 심문이 모두 종결된 직후 돌연 소를 취하했다. 심판청구인은 정씨, 관계인은 아들 박 대표를 포함한 박모씨 등 3명이다. 

재산 관리 놓고
피튀기는 공방

성년후견제도는 기존의 금치산, 한정치산자 제도를 폐지하고 개정된 민법에 도입돼 지난해 7월1일부터 새로 시행된 제도다. 노령, 질병, 장애 등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 처리능력이 부족한 성년자에게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지정,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법률행위의 대리권, 동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그 재산에 관해 대리하는 법정대리인이 되는 것으로 만약 정씨가 박 전 회장의 후견인이 되면 박 전 회장의 재산관리에 사실상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대리권의 범위나 후견인은 법원이 직권으로 정한다.

박 전 회장의 재산권을 놓고 어머니와 아들은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정씨가 심판을 청구하면서 변호사 1명을 선임하자 박 대표는 법무법인 율촌의 변호사 5명, 김앤장의 변호사 3명 등 모두 8명의 변호사를 고용하면서 어머니가 성년후견대상이 되는데 적극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지난해 8월14일 이 사건에 대해 일반가사조사명령을 내리고 가사조사관을 임명, 정씨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를 면접하는 등 정밀조사를 벌여왔다.

9월23일 정씨에 대한 면접조사를 시작으로, 10월16일 박 전 회장이 입원중인 병원을 방문해 출장조사를 벌였다. 그 다음날에는 박 대표에 대한 일방조사를 진행했고, 관계인에 대한 일방조사를 차례로 완료하면서 심문기일인 12월24일, 법정에서 심문을 한 뒤 심문을 종결했다.

그러나 정씨는 심문이 종결된 지 6일 만인 12월30일 법원의 최종결정을 앞두고 돌연 청구를 취하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사건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보 후퇴 했다는 설과 아들과 극적으로 합의를 봤다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삼화제분 일가와 관련된 사건은 이 외에도 3건의 신청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빌딩 이어
콘도도 불법매입

가족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화제분일가의 해외 부동산 불법 매입 의혹도 제기됐다. 개인 미디어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안치용 씨)에 따르면 삼화제분 일가는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켜 뉴욕 맨해튼 대형빌딩을 불법 매입, 소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크릿 오브 코리아>는 “박 전 회장 일가는 해당 빌딩의 실소유주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동산을 직접 매입하지 않고, 부동산 소유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지능적 수법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증빙자료로 제출된 2007년 12월3일 뉴욕주법원 결정문을 보면, 박 전 회장 부인 정씨는 지난 2001년 11월15일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의 9 WEST 32ND ST 건물의 소유주인 B주식회사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맨해튼 최고요지로 꼽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한 블록 떨어진 해당 건물은 현시가 1200만달러(약 127억9200만원)의 6층 건물로, 한국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큰집’ 식당을 비롯해 12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맨해튼등기소에는 이 건물이 지난 1993년 B주식회사에 매입된 뒤 지금까지 소유권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난 2004년 9월 건물 매매를 추진하다 소송이 발생, 정씨가 이 빌딩의 소유주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정씨는 재판부에 “2001년 11월15일 자신이 B주식회사 지분 100%인 전체주식 200주를 조카 임모씨로부터 매입했다”고 털어놨다.

<시크릿오브 코리아>는 이에 “정씨가 이 건물을 매입한 지난 2001년은 해외 부동산 투자가 전면 금지된 시기로 정씨는 실정법을 어기고 해외부동산을 불법으로 매입한 것”이라며 “조카와 변호사 등 빌딩관리인들을 통해 빌딩 임대수익을 꼬박 꼬박 송금 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 등 탈세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 “특히 정씨는 B주식회사 지분을 2001년 임씨로 부터 매입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2001년이 아닌 1996년 임씨를 내세워 B사에 대한 지분을 인수, 사실상 차명으로 소유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는 박 대표가 어머니 정씨로부터 법률적 권한을 위임받아 뉴욕을 방문해 소송상황을 점검하는 등 해당 빌딩 관리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추측했다.


수천억 재산 놓고 가족간 법정다툼
미국 부동산 불법매입 의혹 불거져

최근 삼화제분 일가는 해당 건물을 “1200만 달러에 팔아달라”고 부동산중개인들에게 의뢰했으며, 일부 입주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임대재계약 협상 등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빌딩 매입과 비슷한 시기에 콘도도 불법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5년 박 대표 명의로 콘도 소유주인 사촌 임씨에게 2만 달러를 빌려준 뒤 2004년 이 콘도를 정씨 명의로 이전했으며, 지난해 이를 매도한 것이다.

<시크릿 오브 코리아>는 “정씨가 콘도를 매도한 2004년 당시는 해외부동산 투자가 전면 금지돼 있었으므로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씨의 매입 가격인 29만달러는 당시 시세 75만달러의 3분의 1에 불과해 정씨가 그 이전부터 콘도 지분 3분의 2정도를 소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또 “정씨에게 콘도를 판 남모씨는 1995년 조카 임씨로부터 33만달러에 이 콘도를 매입한 것으로 남씨가 매입 9년 뒤에 자신이 산 가격보다도 낮게 콘도를 매도했다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 거래”라며 “박 대표 역시 1995년 당시 소득이 전혀 없는 유학생 신분으로 사촌에게 2만달러를 빌려줬다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불법증여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그 돈을 해외로 유출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 대표의 주소지 확인결과 유학시절 한때 해당 콘도에 거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은돈 만진
장인과 사위

삼화제분은 현재 <한국일보> 인수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민감한 시점인 만큼 이 같은 잡음이 인수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삼화제분 일가가 최근 뉴욕 빌딩을 서둘러 내놓은 것도 향후 빚어질지 모르는 언론사 사주로서의 자격 논란 우려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대표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의 사위라는 점에서 각종 의혹과 설이 난무했던 상황이다.

<한국일보> 인수전에 실질적으로 배후에서 조직하고 지휘하고 한 사람이 서 의원이며, 삼화제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배경에도 ‘서청원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실제 서 의원과 박 대표의 관계는 단순한 사위-장인 관계를 넘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일명 ‘차떼기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모 그룹 회장에게 국민주택채권 1000만원 짜리 100장(10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 조사에서 해당 자금을 불법정치자금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추궁에 서 의원은 “자신의 사위가 우연히 사채시장에서 모 기업에서 나온 채권을 구입한 후 두 달 만에 되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 의원과 박 대표가 ‘검은 돈’까지 함께 만질 정도로 돈독하고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벌어진 상황에 난감해 진 것은 서 의원이다. 지난해 정치권 복귀를 앞두고도 ‘도덕성 논란’이 일었던 터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 의원 스스로 재보선 도전의 목적 중 하나로 명예회복을 꼽은 가운데, 그간 조용했던 사위 회사가 잇단 구설에 휘말리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됐다”며 “삼화제분 일가의 불법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함께 연루된 친인척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볼 때 사안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삼화제분 측은 “대표의 개인적인 일일 뿐더러, (홍보 팀도 따로 두고 있지 않아) 회사 차원에서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업무 외 적인 부분 외에는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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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