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양용은<풀스토리>

“가난해 어깨 너머 배운 골프로 세계제패!”

제주 섬마을 출신 한 소년이 37년 뒤 세계를 제패했다. 승전보는 멀리 미국에서 들려왔다. 상대인 타이거 우즈에 비하면 무명이나 다름없던 양용은 골프선수가 호랑이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것이다. 볼보이로 골프에 입문해 물에 찬밥을 말아먹으면서도 훈련과 대회 출전에만 전념했던 그이기에 우승의 감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메이저대회 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양용은 선수의 뚝심 있는 도전의 기록을 쫓아봤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꺾고 PGA 챔피언십 우승컵 차지   
아시아 첫 메이저 제패…세계랭킹 34위-상금랭킹 9위 기록

‘바람의 아들’ 양용은 선수(37·테일러메이드)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트로피를 차지해 3연승에 도전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콧대를 누른 것이다. 양용은은 지난 17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해즐타인내셔널GC에서 치러진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US PGA챔피언십의 최종 라운드에서 타이거 우즈와 맞붙었다. 전문가들도 양용은은 우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3라운드까지만 해도 우즈의 압승이 예상됐다.

랭킹 110위→34위로 껑충
놀란 외신 일제히 ‘떠들썩’

그러나 4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변했다. 양용은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페이스를 유지해 간 반면 우즈의 샷은 번번이 실수를 낳았다. 전반 2타를 잃은 우즈는 양 선수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중간 합계 6언더파로 팽팽하게 맞서던 양용은과 우즈의 승부는 14번 홀에서 갈렸다. 우즈가 먼저 버디 기회를 만들어 놓았지만 곧이어 양용은이 결정적 순간의 파4홀 이글을 이끌면서 전세는 역전했다.

남은 것은 네 홀. 그러나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우즈는 계속해서 실수를 연발하며 양용은에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양용은은 차분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결국 우즈의 세 번째 샷이 홀을 크게 지나치자 양용은의 우승은 현실이 됐다. 세계 골프 역사를 다시 쓸 기록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번 우승으로 양용은은 135만 달러의 상금을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올 시즌 수상한 상금이 총 322만 달러를 돌파해 상금랭킹 9위로 뛰어 올랐다. ‘호랑이 사냥’에 성공한 덕분에 110위였던 세계 랭킹도 34위까지 수직 상승했다.

더불어 PGA챔피언십은 물론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오픈까지 4대 메이저대회에 5년간 출전권을 확보했다. 또한 세계골프연맹이 주최하는 특급대회 초청장에도 1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미국 대표팀과 인터내셔널팀이 맞붙는 프레지던츠컵 출전도 확정됐다. 금전적인 혜택도 무수하다. 정규시즌이 끝나면 정상급 선수들은 초청료를 받고 이벤트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데 일반대회 우승자의 경우 10만 달러가량의 초청료를 받는 반면 메이저대회 우승자는 최소 30만 달러의 초청료를 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용은이 시즌 후 이벤트 대회 초청료만 최소 150만 달러 이상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 최초로 PGA챔피언십 타이틀을 거머쥔 양용은에게 향후 3년간 국제선 전 노선 항공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양용은 선수 부부는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하는 국제선 1등석을, 세 아들은 비즈니스석을 3년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수치적인 변화에서 드러나듯 양용은의 이번 대회 우승은 가히 역사적인 수준이다. 언론은 일제히 역대 골프대회 사상 최대의 이변이라고 전했다. 주요 외신들도 앙용은의 우승을 ‘긴급뉴스’로 타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AP통신은 “올해도 의외의 선수는 많았지만 그중 최고는 양용은”이라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우즈에게 기대했던 샷들을 날렸다”고 전했다. 폭스스포츠 역시 ‘영원하라, 양(Forever Yang)’이란 극찬과 함께 “22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언더파를 기록한 그의 우승은 마이클 조던이 결승 7차전에서 종료 버저와 함께 덩크슛을 내리꽂은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전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양용은은 입이 벌어질 만한 마무리를 보였다. 승자는 인기나 이름값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 역시 “랭킹 110위가 1위를 꺾었다”며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기절시키고 골프 세계를 전율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양용은은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골프장 인근 한국식당에서 부인 박영주씨, 매니저 등 관계자들과 함께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온 양용은은 “TV를 보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밝았다. 평소 같으면 피곤할 텐데 역시 메이저 우승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뜬눈으로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다는 양용은 선수. 당연한 말이다. ‘눈뜨고 나니 스타더라’라는 말처럼 하룻밤 사이 세계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됐기에 피곤을 느낄 새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골프를 향한 그의 무수한 노력과 역경들을 살펴본다면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성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주 섬마을 농부의 아들
끝없는 도전 ‘인간 승리’

알려진 대로 그는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 아니다. 골프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제주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살 때 보디빌더를 꿈꾸며 몸을 만드는 데 열중했고 고3이 되어서는 남들처럼 대학진학이 꿈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젊은 나이에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공사판의 잡부로 전전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용인 골프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의 새로운 꿈이 시작된다. 양용은은 연습장에서 볼보이로 일하며 어깨 너머로 골프를 배웠다. 골프채 하나 마련하기 어려워 어렵게 중고 골프채를 얻어 연습했다. 고액의 레슨은 꿈도 꿀 수 없어 거의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양용은은 1997년 프로에 데뷔했다. 그해 8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랭킹 60위에 올랐는데 상금은 590만원에 불과했다.

1999년엔 상금랭킹 9위에 올랐다. 그가 그해 벌어들인 돈은 1800만원이었다. 세금을 떼고 나면 1000만원이 겨우 넘는 돈이었다. 양용은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일반 직장인 월급조차 되지 않는 상금 앞에 말없이 내조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듬해인 2000년부터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틈틈이 일본 투어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조차 만만치 않았다.

연습장 볼보이로 골프인생 시작
중고 골프채 얻어 독학으로 익혀


2002년 일본투어를 떠나기 전까지도 그는 용인에서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 아내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배고픈 인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양용은은 스폰서도 없이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결코 골프인생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2년 11월 열린 KPGA투어 SBS최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양용은은 성공을 향해 질주했다. 2004년부터는 국내 투어를 접고 일본 투어에 전념해 2승을 거뒀다.

2006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했던 대회였다. 이후 이번 대회에서도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하자 외신들은 “타이거 우즈에게 양용은은 아킬레스건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양용은의 세계 제패를 향한 발걸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메이저 챔피언의 기쁨을 뒤로한 채 강행군을 펼치게 된다.

양용은은 이번 주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후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 출전한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27일 열리는 더 바클레이스를 시작으로 도이체방크챔피언십(9월4~7일), BMW챔피언십(11~13일), 투어챔피언십(24~27일)까지 4주 연속 열린다. 10월8일부터는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된다. 프레지던츠컵은 미국 대표와 인터내셔널팀(유럽 제외)이 각각 12명씩 출전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제패 일정 빡빡


미국팀은 타이거 우즈, 스튜어트 싱크와 필 미켈슨, 앤서니 김 등이 나서고 인터내셔널팀은 양용은과 어니 엘스(남아공), 비제이 싱(피지) 등이 포진됐다. 양용은은 여기에서 우즈와 또 한 번의 맞수 경기를 펼치게 된다. 국내 팬들을 만날 기회도 잡혀있다. 양용은은 10월15일부터 용인레이크사이드CC에서 개막하는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할 예정이다. 대회가 끝난 후 20일부터는 올해 4대 메이저대회(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 우승자들만 출전하는 그랜드슬램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동한다.

11월에는 타이거 우즈를 꺾어 ‘타이거 헌터’라는 별명을 처음 얻게 된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챔피언십(11월5~8일·중국 상하이)에 참가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1월26일부터 중국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리는 오메가 미션힐스 월드컵에도 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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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