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사건> 용인 토막살인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7.15 11: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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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점 하나하나 도려낸 잔인한 칼질

[일요시사=사회팀] '제2의 오원춘'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이제 갓 만으로 18살을 넘긴 심모군(19)이었다. 심군은 자신이 살해한 시신을 수십 조각으로 훼손해 욕조에 버리는 등 범행 수법에서 오원춘과 맞먹는 잔혹함을 드러냈다.



지난 10일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1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심군을 긴급체포했다.

조각 난 시체
변기에 버렸다

경찰에 따르면 심군은 지난 8일 오후 9시께 경기 용인 기흥구에 위치한 한 모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A(17)양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군은 같은 날 오전 5시30분께 친구 B(19)군과 같이 모텔에 투숙했다. 전날 이들은 DVD방에서 영화를 본 뒤 당구를 치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잠에서 깬 심군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A양을 모텔로 불러냈다. 시간은 오후 3시30분께였다. "놀러오라"는 심군의 말에 A양은 의심 없이 모텔로 찾아왔다.


과거 A양은 부모님을 따라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났었다. 하지만 현지 적응에 실패해 3년 전 한국으로 귀국했다. 경기 분당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A양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자퇴했다. 이후 A양은 경기 용인의 한 오피스텔을 얻어 혼자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동생 성폭행 후 살해
모텔서 커터칼로 시신 수십 조각으로 훼손

이런 A양을 심군에게 소개시켜 준 인물은 바로 B군이었다. A양은 한 달여 전 B군의 소개로 심군을 만났다. '고등학교 자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던 이들은 최근 두 차례 정도 만남을 가졌으며,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이 모텔에 도착한 뒤 심군은 A양을 남겨두고 오후 4시께 외출했다. B군의 안과 치료에 동행한 것이다. B군이 치료를 받는 사이 심군은 인근 편의점에서 문구용 커터칼 1개와 공업용 커터칼 1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모텔로 돌아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애니메이션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B군은 이날 오후 7시40분께 "선약이 있다"며 먼저 모텔 밖으로 나갔다. 자연스레 심군과 A양, 단 둘만 남은 상황에서 심군은 악마로 돌변했다. A양에게 돌연 성관계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A양이 거세게 반항하자 심군은 완력을 이용해 성폭행을 시도했다. 앞서 구입한 커터칼은 A양을 협박하는데 이용됐다.

성폭행 시도 후 A양의 신고가 두려워진 심군은 함께 있던 A양을 목 졸라 살해했다. 시간은 오후 9시께. 이때부터 심군의 엽기적인 행각이 시작됐다.

"작업 중이야
피 뽑고 있어"


심군은 죽은 A양의 시신을 욕조로 옮겼다. 그리고 공업용 커터칼로 시신의 살점을 하나하나 도려냈다. 커터칼이 부러지자 인근 편의점에서 새로운 커터칼을 구입, 훼손을 계속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9일 오전 0시께 심군은 자신의 친구 B군에게 "작업 중이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B군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심군은 "지금 피 뽑고 있어"라며 훼손된 A양의 시체 사진을 보냈다. 사진 속 시체는 말로 담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모습이었다.

처음 B군은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사진 정도로 알고 "장난치지 마라"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심군은 시신의 위치를 바꿔가며 거듭 B군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A양이 살해됐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B군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시각 심군은 여전히 A양의 시체를 앞에 두고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잔인한 칼질에 A양의 시신은 점차 본래의 모습을 잃고, 처참히 찢겨졌다. 사건으로부터 16시간이 지난 9일 오후 1시15분이 돼서야 심군은 시신 훼손 작업을 마무리했다.

시신을 모두 조각낸 심군은 인근 마트에 들러 김장용 검은 비닐봉투를 구입해 모텔로 돌아왔다. 이때 시각이 오후 1시35분이었다. 심군은 남아있는 뼈를 모두 부러뜨려 비닐봉투에 담았다. 마지막 살점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유기했다. 심군이 검은 봉투를 들고 모텔 밖으로 나온 시간은 오후 2시였다.

그는 도로변의 택시를 타고 경기 용인 이동면 자신의 집으로 이동했다. 뼈가 담긴 비닐봉투는 자택 옆에 마련된 이동식 컨테이너 장롱 속에 감췄다. 그리고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3시29분, 그는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내겐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젠 메말라 없어졌다. 오늘 난 죄책감이란 감정 또한 느끼지 못했고 슬픔이란 감정 또한 느끼지 못했고. 분노를 느끼지도 못했고 아주 짧은 미소만이 날 반겼다. 오늘 이 피비린내에 묻혀 잠들어야겠다"는 글을 적었다.

이어 심군은 피해자를 향해 "활활 재가 되어 날아가세요. 당신에겐 어떤 감정도 없었다는 건 알아줄지 모르겠네요. 악감정 따위도 없었고, 좋은 감정 따위도 없었고, 날 미워하세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 당신 용기 높게 삽니다. 고맙네요. 그 눈빛이 두렵지가 않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해 줘서"라는 글도 남겼다. 이제 갓 천인공노할 범행을 저지른 살인범의 글치고는 너무나 평온했다.

죄책감 없어
오원춘 판박이

심군의 이 같은 행동은 지난해 4월 경기 수원에서 전무후무한 토막 살인을 한 범죄자 오원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성폭행을 시도한 점, 젊은 여성을 살해한 점, 엽기적인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한 점 등이 오원춘과 비교됐다.

체포 후 감정의 동요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도 오원춘과 판박이다. 심군이 시신을 유기한 9일, A양의 부모는 A양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한국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접수했다.

비슷한 시각, 잠에서 깬 B군은 어제 일이 꺼림칙해 심군에게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6시6분, 심군은 친구 B군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체리블라썸 언제 맡아도 그리운 냄새. 버스에서 은은하게 나니 좋다 편하다"고 글을 남겼다.

그리고 B군과 만난 자리에서 심군은 자신의 범행 사실을 B군에게 털어놨다. B군은 심군에게 자수를 권유했고, 심군은 오후 6시28분 "오늘따라 마음이 편하다. 미움도 받겠지만 편하게 가자"는 마지막 글을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경찰이 A양의 주변인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이던 시각, 심군은 좁혀오는 수사망에 자수를 결심했다. 10일 오전 0시30분께의 일이었다.

심군과 만난 담당 수사팀은 그의 잔혹한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범죄전력과 정신 병력이 없는 10대의 이 엽기적인 유기 행각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뜯어낸 살점들 변기에 유기
뼈는 부러뜨려 비닐봉투에
살인마 오원춘보다 더한 10대 소년

심군은 검거된 날 오후 3시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평소 잔인한 호러영화를 좋아했고 해부학 연구 등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냐"는 질문에는 "한번쯤"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범행 당시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신 훼손은 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그랬다. 나중에 집에 와서 죄책감이 들어 자수했다"고 경과를 밝혔다.

심군은 키 175cm가량의 평범한 체형이다. 기타 치는 걸 즐겼으며, 영어도 곧잘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다만 주변 사람들과 융화되는 성격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경찰은 심군이 지난해 10월 인천 월미도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했다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2주간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 기도였을 뿐 뚜렷한 정신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심군의 범행 사실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는 심군의 실명과 얼굴사진, 출신 학교가 공개됐다. 심군의 지인을 자처한 한 네티즌은 "이번 일로 심군의 학교 동창생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또 이 네티즌은 "학교에서의 심군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며 평범했던 그의 학교생활을 귀띔하기도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심군이 사이코패스인 오원춘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SNS에 글을 남기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이코패스가 아니다"라는 소견을 피력했다. 사이코패스보다는 사회적 정신장애인 소시오패스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

그는 "심군이 혼자 외톨이처럼 떨어져 살고,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그러면서 더더욱 인터넷이나 특정 동영상에 몰입하게 되고, 해부학이라는 것도 보게 되고, 폭력적인 것도 보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을 거기에 대비 시켜 살인범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하면서 결국 (생각했던 걸)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며 "심군이 남긴 글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합리화 하려는 태도가 보였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심군의 글에서 "한편으로는 세상이 나를 이렇게 내몰았다는 후회와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겨있다"며 "대부분의 사이코패스가 성인 범좌자인데 반해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오원춘과 같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 차이를 두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한편 경찰은 심군 진술에 따라 심군의 자택 장롱에서 훼손된 A양의 시신 일부를 수습했다. 그리고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A양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심군은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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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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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