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추적 '200억 건물' 미스터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6.26 1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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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만 빌딩' 털면 '검은 돈' 나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이나 된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된다. 그중 가장 구린내 나는 한곳을 털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흘러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은 이른바 '전재만 빌딩'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소유의 '신원프라자'가 바로 그곳이다. 890㎡(약 270평) 대지면적에 지하 4층~지상 8층짜리 건물인 신원프라자의 공시지가는 80억원. 실거래가는 이를 훨씬 웃도는 100억∼200억원을 호가할 것이란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회수 문제가 만료 시효(10월)를 앞두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신원프라자가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1]
건축자금 출처는?

우선 재만씨의 건물 취득 과정이 의문이다. 신원프라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상엔 1997년 1월 이후 상황만 기재돼 있다. 때문에 2002년 5월 재만씨의 매입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내용도 이 시점부터다.

그러나 재만씨는 빌딩의 건축주였다. 건축물대장 확인 결과 재만씨가 직접 신원프라자를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 6월. 재만씨의 명의로다. 1995년 7월 공사를 시작한 건물은 1996년 11월 완공됐다.

재만씨는 올해 42세(1971년생). 이를 감안하면 건축허가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란 계산이다. 재만씨는 1990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1992년 재수 끝에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가 신원프라자를 짓겠다고 나선 게 대학교 2학년 때인 셈이다.


건물 취득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초반 무슨 돈으로 건물을 지었냐는 것이다.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당시 신원프라자 부지의 공시지가(㎡당)는 161만원. 현재는 858만원으로 올랐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수십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재만씨는 부지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3남 소유 한남동 신원프라자 의문투성이 
'구린내가 풀풀…'은닉재산 의혹 급부상

한 중개업자는 "신원프라자는 대한민국 부촌인 한남동, 그중에서도 노른자라 할 수 있는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며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위치를 감안하면 빌딩값은 얼추 100억∼200억원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003년 5월 한 언론을 통해 재만씨가 신원프라자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남동 건물은 전 전 대통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 재만씨의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미리 상속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다. 재만씨가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결혼 1년 전이다. 그는 1995년 4월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했다. 재만씨는 25세 때인 연세대 3학년 재학 중이었고, 윤혜씨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해였다.

재만씨의 한 측근은 "재만씨와 윤혜씨는 결혼 2년 전인 1993년 친지 소개로 처음 만나 1994년 가을 약혼식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처갓집의 상속이 있었다면 시기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약혼자에게 건물을 통째로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한남동 신원프라자 빌딩은 지금까지 재만씨가 30대에 매입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만약 재만씨가 20대 초반에 건물을 지은 것이 사실이라면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스터리2]
재매입 이유는?

신원프라자를 둘러싼 수상한 거래도 포착됐다. 재만씨의 수중으로 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건축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문은 이 과정에서 더욱 커진다.

1996년 11월 신원프라자를 완공한 재만씨는 1998년 1월 김모씨에게 매각했다. 이후 2002년 5월 재만씨가 다시 건물을 매입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을 1년 만에 팔았다가 4년 뒤 다시 산 것이다. 수상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거래가 이뤄졌다. 당초 신원프라자 부지의 소유주는 또 다른 김모씨였다. 건축허가 두달 뒤인 1994년 8월 이모씨에게 넘어갔다가 건물이 다 지어진 직후인 1997년 1월 대지권(대지사용권)으로 전환됐다.

대지권은 건물의 각층 또는 각호 소유자가 건물 부지를 나눠 갖는 권리다. 신원프라자의 경우 중소기업 등이 입주해 있는 집합건물로 지하 4개층과 지상 8개층 등 11개층이 각각 부동산으로 나눠져 모두 재만씨 소유로 등기돼 있다. 결국 건물뿐만 아니라 땅 주인도 재만씨란 얘기다.

그렇다면 재만씨는 왜 건물을 매각했다가 재매입한 것일까. 의문의 열쇠는 그의 부친 전 전 대통령에 꽂힌다.

1988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 비리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군사반란 혐의 등으로 1995년 12월 구속,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이 비밀리에 신원프라자가 지어졌다.

23세때 뭔 돈으로…건축비용 어디서?
검찰 나서자 '팔고' 사면 이후 '재매입'
차명보유…명의신탁?

문제는 그 이후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자금을 찾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재만씨가 건물을 조용히 처리한 시점(1998년 1월)과 맞물린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은 물론 친인척 등 차명 재산을 뒤졌으나 신원프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추징금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4년5개월 뒤인 2002년 5월 재만씨는 신원프라자를 다시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는 "자신의 건물을 팔았다가 다시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돈이 오간 거래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일부의 경우 일시적으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보유하다 되돌려 받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재만씨와 거래한 김씨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빌딩을 매입할 당시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는 그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아파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이지만, 김씨가 지금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는 전용면적 84㎡(약 25평)로 소형에 속하는 편이다. 게다가 ○○아파트 명의도 다른 사람이다.

한남동 8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재력가가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김씨가 재만씨에게 건물을 판 뒤에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이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는 점도 재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의심케 한다.


재만씨가 재매입한 시점에 대해선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왜 하필 2002년 5월이냐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그해 5월14일.

우연일까. 당시는 한·일 월드컵(2002년 5월31일∼6월30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 함성 속에 묻혔다.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4강 신화'로 한동안 붉은 물결이 계속됐다. 2002년 말엔 대선까지 치러 정신없는 한 해였다.

[미스터리3]
장인 개입했나?

전 전 대통령 비자금과 그의 가족들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재만씨도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비자금 은닉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한다. 재만씨에겐 뒤를 받쳐주는 재력가 집안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의 장인인 이 회장은 한국제분, 동아원 등 20개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거느린 동아원그룹 오너. 이 회장은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딸과 결혼한 재만씨에게 축하금으로 건넨 160억원 상당의 채권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이 돈을 비자금으로 보고 압류했지만,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에 다시 돌려줬다.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증여세 54억원을 과세하는데 그쳤다.

당시 재만씨의 한남동 빌딩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전두환→이희상→전재만'으로 비자금이 흘러가 빌딩에 묻힌 것으로 확신했지만, "상속해준 것"이라고 반박한 이 회장은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남동 빌딩과 이 회장이 무관치 않아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등기부등본을 잘 살펴보면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재만씨와 돈거래를 한 이모씨다. 이씨는 2006년 12월 재만씨를 채무자로 신원프라자에 3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재만씨가 빌딩을 담보로 이씨에게 30억원을 빌린 것이다. 근저당은 2011년 9월 해지됐다.

문제는 이씨의 실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씨는 현재 동아원 플랜트사업본부 전무로 재직 중이다. 이씨는 '이희상 가신'으로 추정된다. 특히 근저당 시기와 이씨의 행보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장인 회사 임원과 돈거래 
환수 위기 처하자 대비용?

한국제분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이씨는 30억원 근저당을 설정한 직후 '점령군'자격으로 동아원에 입성했다. 동아원그룹은 2007년 1월 동아원(당시 에스씨에프)을 인수했고, 3월 이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이 2008년 3월 동아원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이씨는 2009년 3월 등기임원에 올랐다. 관리총괄, 감사위원장, 생산본부장 등을 지낸 이씨는 2011년 3월 임기가 만료됐고, 3개월 뒤 근저당이 해지됐다. 동아원 상무(해외법인)로 재직 중인 재만씨도 이 기간 줄곧 임원으로 재직해 이씨와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전무로 복귀한 이씨 또한 김씨와 마찬가지로 3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을 만한 여력이 의심된다. 이씨는 재만씨에게 돈을 빌려줄 당시 노원구 중계동 ○○○아파트에 거주했었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115㎡(약 35평)로, 현 시세는 5억∼6억원이다.

이씨는 30억원을 돌려받은 지금도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이씨가 그만한 재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씨는 은행에서 2400만원을 대출받는가 하면 구청에 세금이 밀려 집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상황을 보면 재만씨에게 밀려준 30억원의 출처와 돌려받은 30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용처가 확실하지 않다"며 "한남동 건물이 비자금으로 지목돼 환수될 위기에 처하자 재만씨와 이 회장이 짜고 회사 임원을 내세워 돈 거래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 재만씨의 재산만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에 이른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되는 만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주문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전재만 처가' 동아원그룹은?>

화려한 혼맥 '대통령 사돈기업'

동아원그룹은 고 이용구 창업주가 1952년 군산에 설립한 한국산업이 모태로 현재 제분(한국제분·동아원)과 사료(대산물산·카페), 식품(동아푸드·해가온), 와인(나라셀라·단하지앤비·단하유통·PDP와인), 수입차(FMK), 수입의류(모다리슨)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립 56년 만에 이 창업주의 호를 딴 운산그룹에서 사명을 바꾼 동아원그룹의 2011년 계열사 전체 매출은 8137억원. 2015년까지 1조원이 목표다.

동아원그룹은 '대통령 사돈회사'로 유명하다. 1993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이희상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장녀 윤혜씨의 남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차녀 유경씨는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신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재헌씨는 지난해 이혼했다.

3녀 미경씨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도 이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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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