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옷 벗은 임채진 검찰총장

“원칙과 정도, 그것뿐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2번의 사직서 제출로 검찰과 ‘안녕’
참여정부 말 임명돼 BBK 정국, 촛불수사 등 풍운의 1년7개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결국 검찰 수장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명돼 인사청문회부터 BBK 정국과 정권교체, 촛불 수사까지 순탄치 않은 1년7개월 동안 굳건히 버텼던 임 총장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지목되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책임을 짊어졌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직서를 극구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끝내 두 번째 사직서를 내밀었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 원칙을 표방했던 임 총장.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얄궂은 인연이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말기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임 총장에게 수사를 받았고,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임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기가 만료된 정상명 총장의 후임으로 임 총장이 물망에 오른 것.

195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임 총장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무부 검찰국 검사와 검찰 1·2과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2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법무연수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홍조근정훈장 수상자이기도 하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행정 기획통으로 검찰국장 재직 시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굵직한 현안을 둘러싼 논란에 직언으로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중에는 ‘일심회’ 사건으로 청와대 386인사들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강함’ 탓에 임 총장은 취임부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정 총장의 후임으로 고려되던 인사에 부적격 요인이 나오면서 1순위로 떠올랐지만 참여정부 내에서도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임채진 질긴 인연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맺음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상황이어서 혼란스런 대선정국과 정권교체 후 ‘물갈이’까지 헤쳐 나가야 하는 악천후에 놓여 있었다.

한나라당도 4개월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반대했다. 새 정부의 출범을 고려, 정 총장의 퇴임을 늦추거나 직무대행으로 가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결국 ‘비판적 수용’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대통령이 임기가 다된 사람들에 대해 인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목숨 걸고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 편에서 판단하겠다”고 철저한 인사청문회 검증을 다짐하는 등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된 2007년 11월, 예기치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삼성으로부터 ‘관리’를 받아온 검사 명단에 임 총장이 포함됐던 것.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로 주목받고 있던 임 총장이 ‘휘청’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삼성떡값’ 수수 의혹을 집중 추궁 받으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결국 법사위는 ‘조건부 적합’ 취지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채택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라는 의혹에 연루된 후보자가 총장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후보자가 철저한 실체 규명을 다짐하고 있는 이상 제기된 의혹만으로 검찰총장 장애사유는 되기 어렵다”고 그의 임명에 동의한 것.
‘의혹은 있지만 적합’했던 임 총장이 참여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임 총장은 검찰총장직에 오르자마자 BBK 수사라는 시험대에 놓였다. 대선정국을 휩쓸었던 BBK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선이 뒤엎일 수 있어서 여야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BBK 정국 후 ‘공공의 적’
촛불집회 후 검찰 불신 최고조

그러나 결국 검찰은 양쪽 진영 모두에서 ‘공공의 적’으로 내몰렸다. BBK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지어지자 당시 여권은 ‘정치검찰’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임기 도중 정권이 바뀌면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눈길도 싸늘했다. 사정 당국의 수장이 전 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라는 사실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도 높아만 갔다. 지난해 여름밤을 수놓은 촛불집회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으며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전 정권 죽이기’라는 오명으로 얼룩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은 ‘검찰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간적인 고뇌 때문”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며 사표를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임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인해 많은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이번 사건을 총 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수사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한 단계 높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면서 “이번 사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내가 검찰을 계속 지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한-아세안 정상회담이라는 국제적 큰 행사가 무탈하게 잘 종료된 이 시점에서 물러나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각종 제언과 비판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개선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이미 밝힌 이번 수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존중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면서 여론의 공세에 몰린 검찰을 보듬어 안았다.

임 총장은 자신을 임명했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 임기 5개월여를 남기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날들에서 멀어진 것이다.

임 총장은 검찰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뒷말’은 무성하게 남아있다. 임 총장은 재임시절 정권이 바뀌며 4대 사정기관장이 교체되는 와중에 유일하게 유임됐지만 현 정부와 검찰 인사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에 놓이면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후임에게 수사를 맡기고 물러서는 방안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번번이 그의 결심을 굳게 한 것은 검찰이 외압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원칙과 수사에 대한 형평성 시비를 막는다는 책임감이었다.

실제 임 총장은 시시때때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대 검찰의 화두” “강한 검찰보다는 바른 검찰을 지향하고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지킬 것” “검찰의 합리적 결정에 외압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온몸을 던져 바람막이가 될 것”이라며 검찰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혀왔다.

때문에 그의 취임에 법조계 안팎에서 “임 총장이 ‘정치 중립’이라는 소신을 지키고 강직한 수사를 한다면 그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그가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뒷말 이는 사퇴
윗선 압력설 ‘솔솔’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BBK 수사와 정권 교체, 촛불집회 수사와 용산참사까지 수많은 사건을 진두지휘해 온 임 총장의 사퇴 배경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검찰 독립을 위해 악전고투해온 임 총장의 사퇴 결정이 “인간적인 고뇌”라는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

실제 검찰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임 총장이 임기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사표 제출을 거부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임 총장의 사표 제출에 적지 않은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임 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확보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검찰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데다 불길이 다른 곳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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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