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방송국 남녀PD ‘성폭행 진실공방’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5.10 19: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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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례나…20살 어린 딸같은 여후배에 당했다?

[일요시사=사회팀]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하던 한 여성. 지구촌을 돌며 감동의 이야기를 담아 전해주던 그가 피켓을 들고 외로이 거리에 섰다. 피켓엔 지난 2년간 상사인 PD로부터 당한 억울한 사연이 담겼다. 그는 절박한 마음에 벌써 한 달 째 1인 시위 중이다.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달 27일 오후 4시 반.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한 여성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공중파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던 장모(38·여)씨다. 장씨가 입을 굳게 다문 채 들고 있는 피켓에는 “방송국 남자 PD가 20살 어린 여자 PD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고소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충격적인 문구에 장씨 주변으로 순식간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장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가 하면, “세상에, 저런 일이 다 있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일터였던 방송국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까닭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 때문이다. 방송국 정문 앞을 비롯해 강남역, 명동 등 번화가를 돌며 1인 시위를 감행한 지도 벌써 한 달 째. 거리로 나선 장씨가 기자와 만나 밝힌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PD 하려면
날라리가 되어라?”

지난 2010년 9월, 여러 방송국에서 AD(조연출)와 계약직 PD 경력이 있던 장씨는 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 ○○’라는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 AD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대부분 방송사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공개채용 PD를 많이 뽑지 않고 계약직, 파견직 형태의 PD나 AD를 동원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이런 구조를 띄고 있다 보니 이들의 ‘방송 목숨’은 해당 방송국의 정규 직원인 선임 PD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장씨 역시 당시 프로그램 연출자인 A씨와 면접을 본 뒤 채용됐고, 공중파 방송국의 PD가 되고 싶어 하는 장씨의 간절한 욕구를 읽었는지 A씨는 면접당시 “너를 PD로 특별히 신경써서 키워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의 말을 큰 동기부여로 삼은 장씨는 계약직 AD로 방송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2년간 상사 PD에 성폭행·폭행·협박 주장
오히려 고소당하자 1인 시위 억울함 호소

그러나 입사 후 A씨 밑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장씨는 “과도한 신체접촉 및 성희롱 발언 등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장씨는 “A씨는 어깨를 쓰다듬거나 손을 만지고 ‘따뜻하다’고 말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 내가 불쾌감을 표현하면, 되레 ‘왜 이렇게 오버하냐’는 식의 대응을 했다”며 “PD를 하려면 다 사기꾼이 되고, 날라리가 돼야한다.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여자 PD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면박을 줬다”고 주장했다.

지속적인 성희롱, 성추행에 시달리던 중 장씨는 2011년 3월 A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해외 출장을 갔다 돌아오던 A씨가 장씨에게 전화해 “직원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맡겨 놓겠다”며 장씨 혼자 사는 집에 들어와 강제적인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장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회사를 관두고 A씨를 신고하자니 늦은 나이에 시작한 방송 제작자로서의 꿈이 사라질 것 같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냈고, A씨 밑에서 계속 일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내 말 잘 들어”
수차례 몹쓸짓


첫 성폭행이 있고 약 두 달 후, A씨는 장씨에게 “제작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장씨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차라리 방송국을 그만 두고 나가 프리랜서로 일해라. 내가 일자리를 알아봐 줄 것이고, 내가 맡기는 일을 하면 된다”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방송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장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2011년 5월, 장씨는 방송국 계약직 PD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PD로 전향해 A씨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에 투입돼 계속 일을 해왔다.

이후 장씨는 “A씨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시켜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2011년에만 동일한 방식으로 6차례의 성폭행을 했고, 지난해에는 4차례의 성폭행을 더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말 장씨의 아파트에 찾아와 “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 방송이 잘 되면 PD로 데뷔할 수 있다”며 간음했고, 2달 뒤 “너를 방송에도 참여하게 해줬는데, 니가 나한테 해 주는게 뭐가 있어?” “부장님 말만 잘 들어, 내년에 제작부서로 옮기게 되면 너에게 촬영 일도 많이 주고 할거야”라며 위력을 이용해 간음했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장씨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A씨 밑에서 2년 가까이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 일을 해오면서 임금의 상당액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2년간 A씨로부터 받은 돈이 겨우 500만원이었다”라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약속한 임금을 달라고 말하면 A씨는 정당한 지급을 미루며 협박하거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는 “밀린 임금 액수가 커지자 A씨가 약속대로 다른 일을 연결 시켜 주는가 싶더니 그 일들은 곧 종영되는 방송이거나 문제가 있는 일 뿐이었다”며 “스스로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해도, 자신의 일에만 종속시키려 하면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세 차례의 폭행에 대해선 기소의견 송치중이며, 3500만원에 이르는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노동부 조사 중에 있다.

남자를 덮친
협박범이라고?

장씨와 A씨의 악연은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장씨는 “A씨의 부인으로부터 온갖 폭언의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자 내용인 즉, 장씨가 A씨를 성폭행한 후 그 사건을 빌미로 A씨를 협박해 왔다는 것이었다.

문자를 받은 지 얼마 후 A씨는 “남자를 성폭행하고 돈을 요구하는 협박범”이라며 장씨를 고소했다. 그동안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한 것과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요구한 것, 세 차례의 폭행을 당한 후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화를 냈던 것, 성폭행을 당하면서 이씨가 시키는 대로 했던 말 등을 A씨가 모두 녹음하고 편집해 증거로 제출했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지난 1월 열린 대질심문에서 A씨는 “남자도 여자에게 성폭행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밝히겠다”라며 진술조서를 작성했고, 장씨는 같은달 성폭행 혐의에 대해 맞고소를 신청했다.

“키워줄께…순순히 벗고 누워”
             [vs]
“정신병자…회사 잘리자 앙심”

장씨는 “A씨는 이 모든 일을 은폐하기 위해 20살이나 어린 나로부터 수 차례 성폭행을 당해왔다며 나를 ‘남자를 성폭행한 후 협박하고 있는 사람’으로 거짓고소 했다”며 “나만한 딸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꾸미다니 너무 놀라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이어 “A씨의 행동이 그동안 너무 힘들고 무서웠지만 법적으로 대항하는 것이 싫어서 고소하지 않고 있었던 내용들이었다”며 “전에는 방송 일을 계속 못한다는 말이 더 무서웠지만 이제는 방송제작을 위해 인권까지 무시당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장씨는 마지막 호소수단으로 1인 시위를 선택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아야 하고, 만약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을 제대로, 똑바로 알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년 일했는데…
임금도 못받아

그렇다면 A씨의 입장은 어떨까. A씨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에 함께 일한 적은 있지만 장씨는 현재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라며 “해당사건은 중앙지검에 고소했고, 수사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의) 고소 내용이 모두 사실이고, (장씨는) 회사에서 잘린 뒤 말도 안 되는 말로 협박하며 우리 딸들을 들먹이는 등 가정파괴범이나 다름없다”라며 “장씨에 대해서는 이번 고소건 뿐 아니라 주거침입,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도 고소 사건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장씨의 주장과 맞고소, 1인 시위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현재 휴직상태로 복직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A씨는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장씨 역시 마찬가지다. 장씨의 방송국 앞 1인 시위는 기자와 만난 다음 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됐다. 이런 장씨의 곁을 한 때 직장 동료였던 직원들은 무심코 왕래할 뿐이었다. 1인 시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장씨의 딱한 처지에 동정을 보내면서도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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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