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이 털어놓은 정치비화

“DJP연합, DJ보다 내가 먼저 사인했다”

바쁘게 지나온 질곡의 정치사를 뒤로하고 새롭게 정치권으로 돌아온 이가 있다.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다. 한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한 이른바 ‘DJP연합’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며,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청와대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며 두 번의 정권 창출 역사의 중간에 서 있었다. 6년간의 정치적 변혁기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지난 1월 친정인 민주당에 복당한 한 전 대표. 입 무겁기로 유명한 그를 만나 그간 말하지 못했던 정치비화를 들어봤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산  1년10개월 “뒤에 선 조정자 역할”
‘노무현 대통령’ 만든 국민경선제, 밝히지 못하는 속내


10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태풍의 눈’ 안에서 우리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함께한 한광옥 전 대표가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특별복권을 계기로 정치적 자유를 얻어 민주당에 복당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여의도로 돌아왔다고 끊어졌던 정치생명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선으로의 복귀를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그는 경선에서 졌다. 잡음이 많았던 경선이었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서면 승리가 확정적이라는 분석이 있었기에 그의 향후 행보를 앞서 짐작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그는 깨끗이 승복했다. 게다가 국회의원 재선거 지원유세에 나서기까지 했다.

정치적 고향 찾은 한광옥
‘민주대연합’서 DJP를 추억하다

한 전 대표는 최근 당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정동영 전 장관의 복당에 대해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는 말로 복당에 찬성표를 던졌다. 민심은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주라고 했는데 이를 무시한 당 공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탈당을 한 게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양쪽 다 문제가 있었다. 큰틀에서 생각했어야 했다”면서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당 정책을 대통령을 만들거나 집권당이 돼서 실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인은 당의 결정에 승복했음에도 당의 공천 배제 결정에 뛰쳐나가 무소속연대까지 꾸린 정 전 장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한 전 대표의 주장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가 ‘민주대연합’을 주장하는 건 그가 지나온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연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과거 DJP연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국민의 정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DJP연합이 이룬 성과가 컸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DJP 연합은 정권창출에 큰 역할을 했다. 경험 삼아 비춰보면 정권은 쉽게 창출되지 않는다. 조직·홍보·정책 등 야당이 집권당의 1.5배의 힘을 더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한다. 민주대연합은 집권을 위해 필요하다. 집권을 위해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이념과 정체성 등에 동조하고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모여야 한다. 사사로운 욕심이 앞서면 안 된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같이 할 수 있었던 사람 전체를 모아야 한다.”
한 전 대표는 그간 말하지 않았던 ‘DJP’연합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DJP연합이 이뤄진 건 1997년 11월3일이었다. 1996년 5월4일 DJ와 JP의 국회 회동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뒤 1년여가 넘어서야 간신히 성과를 이룬 것이다. 12월18일 치러질 선거를 50여 일 앞둔 아슬아슬한 타협이었다.

한 전 대표는 이 DJP연합을 통해 헌정사 최초로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부총재였던 한 전 대표와 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10월20일까지도 줄다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선거는 다가오고 있었고 결국 김용환씨에게 ‘선거 끝나면 합의할 거냐’고 말했다. 우리끼리 먼저 합의를 하고 DJ와 JP에게 합의문을 들이밀자고 했다.”
결국 모 호텔에서 만난 한 전 대표와 김 전 부총재는 10월25일 만들어진 합의문 초안을 마지막으로 검토한 후 사인했다. 이후 총재들에게 사후결재를 받았다.

팽팽한 줄다리기 끝 합의
타협 뒤 숨은 이야기

한 전 의원이 사무총장 시절 시작해 부총재가 됐을 때 마무리 지은 값진 성과였지만 발표는 미뤄졌다. 10월30일 MBC 후보연설에서 JP가 DJ를 밀겠다고 하고 발표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던 것. 그 외엔 비공개를 하자고 철썩같이 약속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자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밤 9시 반이나 10시쯤 나와 김용환씨, DJ와 JP 4명이 만나 차를 한잔 마셨다. 내가 김용환씨와 먼저 나오고 DJ와 JP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탑 기사로 ‘DJP연합’이 보도된 것.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 출입기자들이 다 바뀌는 소동이 일어났다. 뿔난 언론에 의해 DJP연합은 형편없는 것처럼 비하됐고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한 전 대표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그러나 결국 DJ는 당선됐고 그간의 노력은 빛을 봤다.    
“합의문을 만들 때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합의문이 자민련의 내각제를 수용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아무리 힘들었어도 내각제 시도는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약속이니까. 그 점이 아쉽다.”


휴가 가려다 잡힌 발목
초대 노사정위원장의 탄생

DJ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한 전 대표의 짐은 덜어지지 않았다. DJ가 당선인 신분이 되고 대선을 거치며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지방으로 가려던 그에게 만나자는 DJ의 전화가 왔다.
삼청동 인수위원회로 간 한 전 대표는 “위기다”라는 말로 시작된 DJ의 부탁에 다시 짐을 떠안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외화잔고가 턱없이 모자랐다. DJ는 “IMF에 돈을 빌려오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사문제가 안정돼야 한다”고 했다. 비상경제대책위(김용환 위원장)는 꾸려졌지만 노사정위원회의 일이 우선이었다. 그에게 노사정위원회를 꾸려 노사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있지도 않은 노사정위원회를 꾸리기 위해 경제기획원장관과 노동부장관, 전경련, 경총, 한국노총, 민주노총, 각 당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차관급 실무위원들을 배치하고 실무위원들을 보좌할 전문위원을 구성, 3층집을 지었다.
노사정위원회의 조항을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양 노총을 설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큰일을 하고 있었지만 환경은 열악했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노동위원회에서 방을 빌려 일을 해야 했다.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사무실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회의를 가졌다. 한 달여 간 소주 한 박스를 마셔가며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까지도 타협이 안 됐다. 당시 합의가 될 때까지 거의 현장중계로 방송을 탔다. 7시 반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는데 8시 반이 돼서야 합의했다. 문제조항이 있었는데 합의를 해주는 사람의 ‘목’이 달아날 판이어서 쉽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가 부도나면 기업체도 부도가 나고 그럼 노동현장도 없어진다’고 직설화법으로 설득했다.”
정공법은 그만큼 위험한 선택이기도 했다. 감정적 동질감이 없으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이 도움이 됐고 결국 양측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한 전 대표는 사측과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한다. 상생한다고 생각하고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금도 노사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대화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인식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사업자는 솔직해야 한다. 재무재표를 보여주고라도 노동자를 납득시켜야 한다. 불신이 있으면 안 된다. 지금은 노동관이 많이 달라져서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자 입장을 알려는 이들이 많아졌다. 고용주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노동운동도 성숙해지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노사정위원장으로 대타협을 이뤄낸 데 대해 한 전 대표는 “국가에 대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서의 자부심도 적지 않다.
“사회협약기구 아니냐. 풀어나가면 안 될 것 없다.”
2000년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관료도 아니고 정치인이다 보니 당정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역할을 했다. 잘 했다고 자부한다. 1년 10개월여 동안 큰 트러블 없이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지 않았나.”

한 전 대표는 청와대에서 지낸 기간 동안 휴가 한 번을 못 갔다. 수석들은 보냈지만 그는 가지 못했다. “당신 없으면 나라 운영이 안 되는 듯 행동한다”는 집사람의 책망도 들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매사를 섭렵해야 했다. 부처 막후에서 갈등을 조절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한전 노사관계도 막후에서 조절해서 풀어냈다. 사장과 노사위원장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2001년 9월 당정개편으로 한 전 대표는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됐다. 대표시절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은 단연 ‘국민경선제’를 만든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후보가 나왔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중산층 이하까지 포함시켜 힘을 모아야 했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했다. 노무현을 띄우고 정권을 재창출해야 했다.”
그가 국민경선제를 만든 배경이다. 추진과정에 진통도 많았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에 진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뭣 하러 하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집권을 목표로 했을 때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국민경선제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당시 국민경선제의 진통을 겪은 이들이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라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자크’가 닫힌 것.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노 대통령’ 만든 국민경선제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 정치인들에게 ‘온고지신’을 새기라고 강조했다. “과거 정치엔 질서가 있었다.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선과 능력있는 이들, 당직이 존경받고 존경하려고 하는 풍토였다. 불만이 있어도 스스로 이해하고 질서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질서가 많이 약해졌다. 노장청의 조화를 이루고 균형감각을 가지라고 하고 싶다. 우리만 당 위하고, 우리만 능력이 있고, 우리만 개혁자라고 하면 다른 이들은 비개혁주의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정치도 인간이 하는 것”이라면서 “도덕과 윤리 같은 것도 강조하고 싶다. 불신에서 나오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진실해야 하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성을 주지 못하면 허구가 판치게 되고 이는 언젠간 노출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도를 걸으라고도 하고 싶다. 무소속 출마로 실리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30년 정치인생이 정도를 걸으라고 하더라. 정도를 걸음으로써 손해를 보는 선비정신도 보여주고 싶었다. 정치의 정도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몸소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외롭고 힘들어도 뚜벅뚜벅 걸어 후배의 귀감이 되겠다는 한 전 대표.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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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