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아킬레스건

2%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 ‘약 일까 독 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계의 조연에서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한 지 오래. 검찰발 사정바람과 금융발 불황폭풍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치고 나가는 ‘공격력’이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스피드를 내고 있는 강 회장에게도 건드리면 아픈 ‘아킬레스건’이 있다.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강한 강 회장의 2%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제다.
우선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이 눈부시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순위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밑으론 신세계그룹, CJ그룹, 동부그룹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즐비하다. 2000년 그룹 출범 당시 매출은 2605억원. 지난해 STX그룹 총매출 28조원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목표는 30조원이다.

사정바람·불황폭풍 속 거침없는 질주 화제
지연 학연 등 큰인맥 부재 “너무 평범했나”
‘월급쟁이서 총수로’자수성가 성공스토리
‘스페셜 코스’ 밟은 재벌 사이서 ‘왕따?’

STX그룹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수·합병(M&A)이다. STX그룹은 출범 이후 활발한 M&A를 통해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 STX중공업(옛 쌍용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STX조선(옛 대동조선), 2002년 STX에너지(옛 산단에너지), 2004년 STX팬오션(옛 범양상선) 등을 차례로 먹어치웠다. 매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2000년 그룹 출범 
총매출 100배 증가

지난해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노르웨이 크루즈선 업체 STX유럽(옛 아커야즈)을 인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M&A시장에선 STX그룹이 ‘단골손님’일 정도로 매물 후보군에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실탄’이 넉넉하다는 얘기고, 강 회장이 ‘M&A 귀재’로 불리는 이유다.
STX그룹은 먹잇감들을 바탕으로 지주사격인 ㈜STX를 포함해 STX엔진, STX중공업, STX엔파코, STX건설 등을 일궈냈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계열사가 모두 17개다. STX그룹은 주력인 ‘조선기자재-엔진제조-선박건조-해상운송’으로 이어지는 사업 구성을 통해 경영전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룹의 경영 성과를 기반으로 강 회장은 최근 재계에서도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올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이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재계를 대표하는 3대 단체 부회장단에 선임된 것. 강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 부자 순위에서 20위권에 안착하기도 했다.
그룹 측은 “STX의 초고속 성장의 배경엔 강 회장의 탁월한 경영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강 회장은 안주하지 않고 시선을 해외로 돌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엔 강 회장이 그저 재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재벌 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맨손으로 지금의 STX를 일군 자수성가한 오너다. 이 과정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에 오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성공 스토리가 그것이다.
문제는 강 회장의 너무 평범한 과거가 지금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초라한 인맥이다. 강 회장이 “인재가 재산”이란 ‘인재론’을 강조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영자에게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대인관계는 곧 기업 자산과 다름없기 때문에 강 회장으로선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강 회장이 여느 재벌그룹 오너와 다른 길을 걸어온 결과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명문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다가 미국 유학 등 ‘스페셜 코스’밟으면서 탄탄한 인맥을 갖게 된다. 반면 강 회장은 그동안 재벌가와 동떨어진 탓에 재계에서 ‘왕따’를 당한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과 기업을 일군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유명한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대외활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재벌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순수 국내파다. 1950년 경북 선산 출생인 그는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Global Leadership Program·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쳐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이후 쌍용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강 회장은 부도에 직면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사재를 털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뱃고동’을 울렸다.
여기까지 강 회장이 쌓은 인맥을 살펴보면 이렇다.

강 회장이 나온 명지대 출신의 정·관·재계 인사는 이강래 의원(민주당), 최욱철 의원(무소속), 김휘동 안동시장, 홍성은 미국 레이니어그룹 회장, 양재열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 회장 등이 전부다. 또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을 밟은 유명인사는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재산인데…”
‘이희범 카드’통할까

강 회장은 ‘쌍용맨’시절 기획금융·경영관리 등 핵심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미래의 ‘동지’를 만났다. 최근 강 회장이 영입한 이희범 에너지부문 총괄 회장이다.
그룹의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정·관·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재계에서 이 회장이 강 회장의 2% 부족한 인맥 네트워크를 채워줄 적임자란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강 회장도 대외활동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회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공대 출신으론 최초로 행시(12회)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후 상공부 수출과장, 주미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산자부 차관·장관에 이어 2006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무엇보다 이 회장 영입 배경엔 강 회장과의 오랜 우정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수출 담당 공무원과 기업 임원으로 만나 인연을 놓지 않았다. 각각 59세와 60세로 한 살 터울인 강 회장과 이 회장은 고향이 경북 안동과 선산으로 사실상 동향이다.

강 회장이 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된 것도 이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강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했던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맨’출신인 김선동 전 에쓰오일(S-oil) 회장도 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성공스토리는 강 회장과 판박이다. 김 전 회장이 쌍용정유를 인수한 시기나 배경, 과정 등이 강 회장의 쌍용중공업 인수와 거의 유사하다. 채권단의 신임을 얻어 수장에 오른 점 또한 닮은꼴이다.
김 전 회장은 1974년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에 부장으로 입사한 뒤 1991년 사장에 올랐다. 1998년 모그룹인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쌍용그룹 지분을 매입, 에쓰오일을 독립경영체제로 전환시켰다.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00년 3월이다.

두 사람의 친분은 2006년 김 전 회장이 강 회장에게 에쓰오일 지분 인수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5월 에쓰오일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현재 지난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장학재단인 미래국제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강 회장이 STX그룹의 사세를 확장하면서 친분을 쌓은 인사도 있다. 공교롭게도 김 전 회장과 정유업계 맞수였던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강 회장과 허 회장은 무역협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허 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당시 GS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강 회장에게 ‘SOS’를 보내기도 했다.

김 전 회장과 허 회장은 1942년생 동갑내기로 정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 강덕수-김선동-허동수 ‘3각 라인’이 엮어지는(?) 셈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평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면서 교감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김선동·허동수 친분
본격 인맥쌓기 스타트

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재계에서 주목받은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큰 단체의 부회장직을 맡는 등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만큼 강 회장의 인맥 쌓기는 이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STX그룹 내부 관계자는 강 회장의 인맥 부재에 대해 사뭇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 같은 시끄러운 정국에 여기저기 발을 걸친 문어발 인맥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며 “특별히 줄을 댈 만한 아는 사람 없이 기업을 크게 일궜다면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강덕수 회장 약력
▲1950년 경북 선산 출생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국제대학원(GLP) 수료 ▲창원대 명예경영학 박사 ▲1973년 쌍용양회 입사 ▲1995년 쌍용중공업 이사 ▲2000년 쌍용중공업 대표이사 ▲2001년 ㈜STX 대표이사 ▲2003년∼현재 STX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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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