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비극' 성수역 참사 공방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1.28 15: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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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공이 죽었다, 누가 사지로 내몰았나

[일요시사=사회팀]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심모(38)씨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서울메트로는 "심씨가 규정을 어겼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은성PSD 역시 "수리를 지시한 적 없다"며 심씨의 과실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고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은성PSD는 지난 2011년 12월 서울메트로로부터 분사된 지하철 스크린도어 점검·수리 업체다. 은성PSD의 기술·교육팀장 심모(38)씨는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열차에 치여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무렵 심씨는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성수역 10-4번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의 옆에는 같은 회사 기술조 직원 A씨가 있었다. 전날 있었던 월간 점검에서 스크린도어 이상을 보고받은 심씨는 이날 스크린도어 제어 센서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아무도 모른다

스크린도어 제어 센서는 플랫폼을 기준으로 스크린도어 바깥에 설치돼있다. 센서 고장 시 은성PSD 직원들은 스크린도어 밖에서 선로를 등진 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작업자들은 늘 열차와 부딪힐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협의한 내용 중에는 스크린도어 고장 시 1시간 내에 신고 내용을 처리하지 않으면 서울메트로가 은성PSD 측에 금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정비가 필요한 경우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열차 운행시간 이후로 규정했다"고 말했지만, 이 하청업체는 운행시간 도중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수시로 진행했다. 특히 성수역처럼 역사가 지상에 있는 경우는 스크린도어가 고장으로 열려있을 시 승객들의 불편이 크기 때문에 서울메트로도 은성PSD에 종종 빠른 처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당일 10-4번 센서 점검 도중 10-3번 스크린도어의 이상을 발견한 심씨는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 폭 30cm도 되지 않는 난간에 서서 작업을 진행했다. 심씨에게 딸린 보호 장구는 안전모 밖에 없었다. 은성PSD의 한 관계자는 "안전모 외에 별도의 안전 장비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스크린도어 전문 업체가 생긴 지 2년도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안전 수칙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은성PSD의 업무 구분상 교육팀장으로서 작업조에 대한 업무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은성PSD 소속 100여 명의 기술 요원 중 스크린도어 제어 센서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갖춘 사람은 심씨가 유일했다.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50명의 점검요원 교육을 도맡았던 심씨는 서울 시내 거의 모든 지하철 현장에 투입돼 사실상의 작업조로 근무했다.

심씨의 한 지인은 "심씨가 성실하고 팀장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등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높았다"고 증언했다. 전문 인력이나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심씨가 모든 수리를 챙기다 보니 "일이 과중됐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날에도 심씨는 자신이 손수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가 점검을 시도했다. 함께 현장에 나갔던 A씨는 입사 경력이 짧아 제어 센서를 조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플랫폼에 남았다.

기술자 스크린도어 점검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
서울메트로 관리부실 도마…유가족과 책임공방

수리 전 심씨는 성수역 상황실에 작업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심씨는 서울메트로 관제센터에는 작업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서울메트로 측은 "심씨가 안전규정을 어겼다"고 말했지만, 유족들은 "관할 역사에 신고까지 했는데 작업자가 선로 위에 있는 것을 뻔히 알고도 열차를 통과시킨 성수역 상황실이나 서울메트로 측에 주의의무 위반이 있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은성PSD 고위 관계자는 "심씨가 지선(열차가 입·출고 되는 선로)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지선에는 사령기지로 출입하는 4량(운행열차는 10량) 열차가 많다"면서 "심씨가 작업을 하면서도 A씨에게 '형, 여기는 안전해'라고 말하는 등 열차가 10-3번까지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 직전 심씨를 등진 선로에는 10량짜리 열차가 시속 40km의 속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심씨를 발견하지 못한 기관사, 관제센터 모두 스크린도어에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 되자 심씨는 스크린도어에 몸을 밀착해 충돌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열차는 심씨의 머리를 쳤고, 이 같은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이정훈 의원은 "서울메트로의 관리·감독 부실이 인명사고를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서울메트로가 자체 안전규정을 어기고 하청업체 직원을 열차 운행시간 도중 작업하도록 놔뒀으며, 그에 따른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메트로는 조직 효율성 강화를 명목으로 스크린도어 관리, 지하철 경정비 등 안전과 직결된 업무를 모두 외주에 맡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이 제시한 '2011년 서울메트로 행정사무감사 자료' 및 '2012년 은성PSD 분사 관련 문건'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업무는 전임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화지H산업이 맡고 있었는데 이 업체는 용역을 수주한 직후 50대 이상의 비정규직 요원 25명을 고용했다. 이들 모두는 전기·전자 분야 지식이 없는 비전문 요원이었다. 이에 서울메트로는 지난 2011년 12월 은성PSD를 자사 분사 형태로 설립해 스크린도어 유지 업무를 3년간 위탁했다. 위탁 당시 협약 금액은 231억4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은성PSD 직원들 역시 스크린도어 정비 경력이 없었다. 서울메트로에서 넘어온 사무직, 역무원 출신 간부가 그 면면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기준 125명의 직원 가운데 90명은 정년보장을 위해 분사 재취업 형태로 은성PSD에 입사했다. 직원 중 57세가 52명이나 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했다.

심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유족들은 "사람이 사고로 죽었는데 책임지는 곳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로가 미룬다

은성PSD 노동조합에서 보낸 화환이 있을 뿐 서울메트로 측에서 보낸 화환은 없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심씨의 한 지인은 "(심씨가 기여한 게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고개를 떨궜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사고 과실 여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으로 이첩했다"고 밝혔다.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은 "현재 사건을 조사 중"이라면서 "산업안전법에 따라 사업자(은성PSD)의 과실이 있는지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법상 서울메트로 측의 과실 여부는 산업재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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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