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피겨 역사 새로 쓰는 ‘피겨여왕’ 김연아

황홀한 연기로 밴쿠버를 금빛으로 물들여라

<사진 제공: SBS>

김연아(19·고려대)가 피겨계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지난달 29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합계 207.71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김연아가 받은 점수는 동갑내기 일본선수인 아사다 마오가 세웠던 여자 싱글 총점 기존 최고점인 199.52점을 무려 8.19점이나 끌어올린 것으로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초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한 것이다. 이로써 내년 2월에 개최될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여자 싱글 사상 최초 200점대 돌파
ISU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세계랭킹·상금 1위 등극
올림픽서 금메달 획득하면 피겨역사 최초 그랜드슬램
숨은 4점 찾기 위해 플립 대신 러츠 콤비네이션에 포함

“올림픽도 다른 대회랑 별다를 건 없어요. 지금처럼 열심히 준비해서 금메달 따고 싶어요.”
2009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초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하며 우승한 김연아가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에서 가진 입국 기자회견에서 1년 뒤 열리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 목표
최초 그랜드슬램 눈앞

김연아는 지난달 28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54명의 선수 중 52번째로 빙판 위에 올라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뽐냈다. ‘죽음의 무도’에 맞춰 환상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멋지게 성공시킨 뒤 트리플 러츠에서도 무결점 연기를 선보였다.
한 번의 점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성공시킨 김연아는 플라잉 스핀, 레이백 스핀, 스핀 콤비네이션, 스파이럴 시퀀스, 스텝 시퀀스 등 다른 기본 동작에서도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2분50여 초의 공연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김연아의 연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김연아도 우승을 자신한 듯 연기가 끝나자 미소와 함께 주먹을 쥐어 보였고, 오서 코치도 껑충 뛰며 기뻐했다. 이날 심판진으로부터 받은 점수는 기술점수 43.4점, 프로그램 구성점수 37.72점으로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기록인 76.12점을 따내며 1위에 올랐다.
2위를 차지한 조애니 로세트(67.9점)와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66.06·3위)와는 각각 8.22점, 10.06점 차이. 더욱이 지난 2월 벌어진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72.24보다 3.88이나 높은 점수였다.

다음날 펼쳐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는 단연 돋보였다. 한 차례 점프 실수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프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 붉은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조 4번째 연기자로 나서 ‘세헤라자데’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처럼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9.50점)를 완벽하게 뛰어 0.4점의 가산점을 챙겼다. 연이어 이나바우어에 이은 더블 악셀까지 안전하게 착지했고,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8.8점)에서도 1.0점의 가산점을 얻었다.
김연아는 또 플라잉싯스핀을 레벨 4로 돌고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까지 완벽하게 뛰었다. 하지만 ‘점프의 교과서’ 김연아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트리플 살코우를 뛰려던 순간 도약이 좋지 않아 더블 살코우에 다운그레이드까지 되면서 0.24점밖에 얻지 못했고 플라잉 콤비네이션 스핀이 체인징 풋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처리되면서 마지막 과제로 실시한 체인징 풋 콤비네이션 점프와 중복돼 0점을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와 스파이럴, 스핀을 완벽하게 성공시켜 추가 실수 없이 연기를 마무리했다. 4분10초간의 연기가 끝나자 LA 스테이플스센터를 찾은 1만8000여 관중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수많은 장미꽃을 빙판 위로 던졌다. 김연아도 감격한 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이후 점수가 공개되자 김연아 자신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31.59점. 전날 쇼트프로그램(76.12점)을 포함해 합계 207.7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더욱이 207.71점이라는 점수는 지난 2006년 12월 그랑프리 6차 대회 ‘NHK 트로피’에서 아사다 마오(일본)가 세웠던 여자 싱글 총점 기존 최고점인 199.52점을 무려 8.19점이나 끌어올린 대기록이다.

이로써 자신의 생애 첫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이자, 역대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김연아는 이날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조애니 로세트(191.29점·캐나다)와 무려 16점 이상 차이를 벌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2002~2003년부터 기존 ‘6점 채점제’ 대신 도입된 신채점방식(뉴저지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선수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2006~2007년 시니어 무대 데뷔 이후 그랑프리 시리즈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함으로써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가능성도 한껏 높였다.

김연아가 시니어 데뷔 이래 세계 메이저 대회 3개(그랑프리·4대륙·세계선수권)를 모두 석권했기 때문에 내년 2월에 개최되는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 피겨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김연아는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은 오랜 꿈이었다”며 “꿈이 이뤄져 환상적이다”라고 우승소감을 밝혔다.
시상식 연단에 오른 김연아는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리는 순간 코끝이 발갛게 물들면서 이내 눈물을 훔쳤다. 김연아는 “시상대에 올라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곤 해서 그동안 꾹 참았지만 오늘은 너무나 기다렸던 순간이라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김연아는 세계랭킹(4652점)도 단숨에 2단계 끌어 올려 세계 1위에 올랐다. 또한 올 시즌 상금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종전 2008~2009시즌 총 상금 6만9000달러(약 9500만원)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상금 4만5000달러(약 6000만원)를 더해 11만4000달러(1억5500만원)로 올 시즌 상금 1위를 차지했다.

여자 싱글 최초 200점 돌파
세계랭킹 상승 1위 등극

세계선수권대회 이전까지 김연아는 올 시즌 그랑프리 1차, 3차 우승을 차지, 각각 1만8000달러씩 총 3만6000달러를 챙겼고 이어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으로 상금 1만8000달러, 4대륙선수권 우승으로 상금 1만5000달러를 획득해 모두 6만9000달러를 손에 넣은 바 있다.
시니어 데뷔 이후 그랑프리시리즈와 4대륙선수권대회 등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세계선수권까지 석권하면서 ‘피겨여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재벌로 거듭났다.

김연아의 상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즌 종료 후, 세계랭킹 1위에 오를 경우 상금 4만5000달러가 추가로 지급된다. 이에 따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랭킹 1위를 확보한 김연아는 모두 15만9000달러(2억1400만원)를 받게 돼 상금랭킹도 1위에 오른다. 
김연아의 연기를 지켜본 외신과 은퇴한 피겨스타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AP통신은 김연아가 207.71점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직후 ‘김연아, 진정한 피겨퀸! 첫 세계선수권 우승’(Queen Yu-na, indeed! Kim wins first world title)이란 제목의 기사를 전송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이미 압도적인 점수차로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도 AP통신은 “전날 이미 거대한 리드로 이번 대회는 경쟁이라기보다는 (피겨여제) 즉위식이었다”고 표현했다.
은퇴한 미국의 피겨스타 티모시 게이블도 김연아에 대해 “김연아는 전율이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게이블은 최초로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경기에서 선보인 스케이터로 ‘쿼드 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이블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피겨스케이팅 전문웹사이트 ‘아이스네트워크’에 올린 글을 통해 주요 수상자들에 대한 평을 게재, 김연아에 대해 “김연아는 정말 특별했다. 김연아가 했던 모든 연기는 편안하고 수준도 높았다”면서 “김연아의 착지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 가벼웠다”고 했다. 이어 “김연아의 점프는 파워과 스피드가 있었다”며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김연아와 경이적인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SBS>그러나 김연아는 여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 207.71점이란 경이적인 점수로 우승하긴 했지만 이 점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산술적으로 210점대 진입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이 포함된 2009~2010시즌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으로 변경해 변화를 주기로 했다.

‘점프의 정석’으로 불릴 정도로 점프 연기에 강점을 보였던 김연아는 주니어 시절부터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를 모든 프로그램의 첫 번째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그랑프리 컵 오브 차이나부터 플립 점프에서 미세한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롱에지 판정을 받은 데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어텐션 지적을 받았다. 테이크오프 동작에서 에지가 바깥쪽으로 살짝 눌리면서 점프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무사히 넘어갔지만 지난 2월 4대륙선수권대회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연거푸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어텐션 지적을 받으며 기술평가점수에서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러츠로 변경해 성공하면
210점대도 돌파 가능

4대륙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으로 평균 0.5점의 기술평가점수를 받았다. 기술평가점수가 심판마다 최대 +3점에서 -3점까지 줄 수 있는 걸 감안하면 무척 저조한 점수다.
따라서 김연아는 굳이 어텐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플립 대신 다음 시즌부터 러츠를 콤비네이션에 포함시켜 점수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김연아에게 플립보다 러츠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도 작용했다. 김연아가 콤비네이션에서 플립을 러츠로 변경해 성공할 경우 총점 증가폭은 4.0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돼 210점대 돌파가 가능하게 된다.
트리플 플립의 기본점수가 5.5점인데 반해 트리플 러츠의 기본점수는 6.0점으로 0.5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리플 토루프의 기본점수가 4.0점이니 콤비네이션의 기본점수가 9.5점에서 10.0점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나온다.
여기에 어텐션 지적을 받지 않으며 기술평가점수에서 다른 점프 동작와 마찬가지로 2.0점까지 받을 경우 예전에 비해 2.0점이 증가한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모두 감안하면 총점에서 4.0점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김연아는 강렬하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공략할 전략이다. 김연아는 “다음 시즌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즌과 비슷한 분위기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 프로그램을 결정하면서 팬들의 귀에 익숙한 음악을 선택했고 더불어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나 숙녀로서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을 수 있는 안무를 짰다.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에 진출하고 나서 쇼트프로그램으로 ‘록산느의 탱고’(2006-2007), ‘박쥐서곡’(2007-2008)을 써왔고, 프리스케이팅에는 ‘종달새의 비상’(2006-2007), ‘미스 사이공’(2007-2008) 등을 써왔다.
그러나 이전까지 사용했던 배경 음악들은 크게 대중적이지 않았고, 안무도 발랄함과 아름다움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과 머리를 맞댄 끝에 ‘강렬함-대중성’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이렇게 선택한 프로그램이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와 프리스케이팅 ‘세헤라자데’였다.

김연아는 ‘죽음의 무도’를 준비하면서 짙어진 눈화장으로 연기력을 돋보이게 했고 피겨 배경음악으로 여러 차례 사용됐던 ‘세헤라자데’를 통해 대중성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김연아는 두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선수권대회 생애 첫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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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