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삼성경영' 25주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26 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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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이끈 초일류 혁신과 도전

[일요시사=사회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삼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25년 전 이건희 회장의 약속과 만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그의 원대한 포부가 실현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늘날 삼성은 전 세계 9위 기업으로 우뚝 솟았다. 반도체·TV·휴대폰 부문은 명실상부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것을 일군 이 회장 경영은 혁신과 도전 그 자체였다. 이건희 회장의 취임 25주년을 맞아 한국경제 발전을 이끈 이 회장의 발자취를 집중 조명해봤다.

"책임경영과 공존공영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이념을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87년 11월19일 삼성은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향년 78세를 일기로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자 사장단들은 이건희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1987년 12월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신임 회장 취임식에서 이 회장은 삼성에 가장 먼저 입사한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으로부터 사기를 넘겨받아 힘차게 흔들었다.

브랜드 가치
전 세계 9위

이 회장은 취임한 지 3개월, 삼성 창립 50주년을 맞은 자리에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자율경영, 기술 중시, 인간존중 등을 창업정신으로 내세웠다. 그로부터 25년,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혁신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내수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삼성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브랜드 가치 전 세계 9위 기업으로 우뚝 솟았다. 매출 규모만 놓고 봐도 25년 전과 비교해 39배 성장했다. 2100억원 수준이었던 순이익도 20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또 해외 직수출 규모는 1987년 63억달러에서 25배나 성장한 1567억달러에 이른다. 이 모두 25년 만의 변화다. 이렇듯 수치만 봐도 이 회장을 '경영의 신'이라 일컬을 만하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도전'은 우리나라 정보기술 산업을 일으킨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은 전자·IT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이후 반도체 D램 부문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휴대폰 시장에서는 갤럭시 시리즈를 내세워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등을 따돌렸고 이젠 애플의 아성도 뛰어넘고 있다. TV와 LCD 산업 역시 삼성이 꽉 쥐고 있다. 명실상부 삼성은 한국의 대기업을 넘어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새로운 글로벌 환경이 도래하던 때였다.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개방으로 기업의 활동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됐고,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고 있었다. 과거의 방법과 시스템으로는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

삼성이 근본적인 수술에 나서게 된 사건은 삼성전자의 일본 현지법인 기술고문이 기술개발 수준부터 경영자의 자세, 직원들의 근무태도에 관한 것까지 삼성의 문제점을 뼈아프게 지적하면서부터다. 특히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하던 산업디자인 고문 후쿠다의 보고서를 사업본부장이 묵살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혁신은 시작됐다.

'세계 초일류기업' 25년 전 약속 지켜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 혁신의 리더십

이 회장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이 보고서를 읽고 격노했다. 여기에 1981년 이후 자신이 각사로 별도 지시한 284쪽 분량의 지시문이 대부분 실행되지 않은 것을 알고 통탄했다. 이 회장의 "이대로는 안 된다. 처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은 즉시 사장단과 핵심간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불러 호통 쳤다. 그는 "삼성전자는 진행성 암에 걸려 있고, 삼성중공업은 영양실조, 삼성건설은 당뇨병, 삼성종합화학은 애초부터 설립해서는 안 되는 회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종합화학의 중간쯤 되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계열사 사장단에게 충격을 줘 대대적 혁신을 일구기 위함이었다.


당시 LA에서 도쿄, 다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거치며 장시간 회의를 가진 이 회장은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대에는 무엇보다 신용과 이미지, 다시 말해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회장은 이미 그때 알아차린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단 한 개의 불량 제품을 만드는 것은 회사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자 경영의 범죄행위"라고 역설했다. 이것은 '품질은 곧 삼성의 얼굴'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는 '삼성 신경영' 체제의 밑바탕이 됐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잡았지만 초창기 개혁의 속도는 이 회장의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다. 이 회장은 1995년 <알게마이네 자이퉁지>에 기고한 '21세기를 향한 아젠더'라는 글에서 이 같은 위기의식을 한 번 더 전달했다.

이 회장은 "품질 위주의 경영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지만 경영관행은 여전히 양적 기조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대단히 위험한 타성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삼성 임직원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항상 한발 앞서가는 삼성의 혁신은 철저한 현실 인식과 절박한 위기의식으로부터 시작됐다.

개혁과 혁신으로
위기 정면돌파

이 회장의 위기론은 계속 이어졌다. 1993년 처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자', 1998년 IMF를 맞아 위기 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버리자', 그리고 2002년 5년 후 10년 후 무엇이 삼성을 먹여 살릴 것인지 '찾아라'까지 항상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2011년 1월 신년하례식에서도 이 회장은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새로운 위기론을 꺼냈다. 한마디로 안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낸 것이다. 위기 그리고 혁신은 이 회장이 항시 강조하는 단골 메뉴다.

신경영과 함께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저력은 품질경영으로부터 나왔다. 특히 반도체, TV, 휴대폰, 냉장고 등 삼성의 20여 개 주력제품은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 일본 등의 시장선도 업체들의 제품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앞섰고 세계인들로부터 신뢰를 쌓아갔다.

이제는 '삼성'이라는 한글 발음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보다 '쌤송'이라는 영어 발음으로 부르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 삼성은 그만큼 한국의 대기업을 넘어선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 IT 사업부문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내수산업과 경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로 성장해왔던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이 회장은 사운을 건 결단을 수차례나 내려야했다.

그 시작은 반도체다.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 전자사업을 하려면 반도체를 자체 개발해야 한다"며 한국반도체 인수를 통한 반도체 산업 진출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반도체 사업 진출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막대한 자금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반도체 기술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팔 수 있는 시장이 개척될지도 미지수였다. 당시 경공업에 머물러 있었던 우리나라 현실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은 실패가 불 보듯 뻔했다.

당시 주위에서도 이 회장의 한국반도체 인수를 부정적으로 봤다. 전 세계가 오일 파동 중인데다가, 삼성전기와 삼성전관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오히려 고전을 거듭하는 전자부문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반도체 자급에 달려있다"며 반도체 사업을 밀어붙였다.


이 회장의 이런 집념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81년 초였다. 삼성이 컬러TV용 색신호 집적회로(IC)를 개발했고 64K D램도 6개월 만에 개발했다. 이어 1984년 10월에는 256K 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기술과 노하우를 쌓아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삼성에서 쌤송으로

1987년은 반도체 역사에 전환점을 맞는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대용량이었던 4Mb D램 개발과 관련 '스택' 방식과 '트렌치' 방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시점이었다. 두 기술은 서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양산 단계 전 누구도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 알기 어려웠다. 이때 이 회장이 "단순하게 생각하자. 안으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느냐"고 단숨에 결정한 것은 유명하다. 

이 회장의 판단은 결국 옳았다. 트렌치 방식을 채택했던 당시 반도체 부문 세계 1위 도시바는 양산 저하 문제를 일으키며 D램 선두자리를 삼성에 내줬다. 반면 삼성은 과감한 투자로 64메가 D램 개발로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후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시장 점유율도 1위로 올라섰다.

1993년 이 회장의 8인치 웨이퍼의 채택은 삼성 반도체가 세계 1위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실패하면 당시 1조원의 손실이 예상됐지만 이 회장은 세계 1위 반도체 업체가 올라서기 위한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은 일본에 늘 한 단계 앞서가며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부상했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01년 당시 플래시메모리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도시바가 합작을 제안해 왔을 때도 흔들림 없이 독자적인 길을 고수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삼성의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거짓말처럼 세계 1위 도시바의 시장 점유율을 역전했다.


사운을 건 반도체·휴대폰 '역전드라마'
프랑크푸르트 선언 20돌…대변화 예고

이후 삼성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LSI) 사업도 진출했다. 삼성은 1996년 미국 디지털이큅먼트와 손잡고 64비트 알파칩 개발에 나서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현재 삼성은 스마트폰의 바람을 타고 모바일 분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텔과 동등한 지위로 올라서고 있다.

반도체에 이어 '애니콜 신화'가 뒤를 이었다. 현재의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 1위 역시 이 회장의 집념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갖는 시대가 온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94년 10월 애니콜 첫 모델인 SH-770을 출시했고, 1년도 안 돼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51.5%를 차지하며 국내 정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통화가 원활하지 않는 등 품질 문제가 지적되자 이 회장은 500억원 상당의 완제품을 태워버리는 결단을 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2000여 명의 직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수 만대의 휴대폰이 불태워진 것. 당시 이 회장은 "고객을 두려워하라. 돈을 받고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을 속이는 짓"이라고 질책했다. 삼성은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15년 후 갤럭시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2000년을 기점으로 삼성의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했다. 2006년 출시된 TV '파브'는 삼성TV를 글로벌 1위로 만들었고, 2007년 삼성중공업은 수주액 200억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최고의 조선소로 성장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2010년 1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를 완공했다.

글로벌 삼성은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소비자전문지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올해 10대 전자제품'에 갤럭시S3, 갤럭시노트10.1, HT-E6730W(홈시어터) 등 3개 제품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도 올해 인터브랜드 조사결과 벤츠와 토요타, 디즈니, HP, 시스코 등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 9위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사업 없이
미래도 없다

삼성의 혁신과 도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한 후 두 달 만에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다. 특히 내년 6월은 이 회장의 신경영 포부를 담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2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삼성 안팎에서는 내년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미래 전략과 비전이 동시에 담길 내년 이 회장의 '제2의 신경영' 선언이 기대된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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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