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LA가 찍은 메이저리거 류현진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9 12: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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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평정했다, 이제 미국이다!

[일요시사=사회팀]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LA다저스가 제시한 포스팅 금액은 메이저리그 사상 역대 네 번째로 알려져 세간의 기대도 한껏 받고 있다. 이제 관심사는 연봉이 얼마냐다. 미국 땅을 밟은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리, 2점대 평균자책점"라는 데뷔 첫해 목표를 밝혔다. 자존심과 패기가 묻어나는 포부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다저스 스타디움 마운드에서 미국 강타자를 요리할 류현진의 모습이 기대된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뚱' 류현진(25)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확정했다.

지난 10일 한화구단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류현진을 영입하겠다고 써낸 최고 응찰액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대 구단은 메이저리그 명문구단 LA다저스로 확인됐다. 이로써 다저스는 류현진에 대한 독점 계약권을 가지게 됐다. 280억원이라는 응찰액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이는 역대 포스팅시스템에 참가한 한국선수 중 최고액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선수 중에서도 역대 네 번째에 해당한다.

기회의 땅
미국으로!

지난 14일 '기회의 땅'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짤막한 소감을 전했던 류현진은 현지에 도착해서도 "날씨가 따뜻해서 좋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당시 류현진은 취재진을 피해 다른 게이트로 출국하려 했다. 그러나 취재진의 악착같은 요구에 잠시 얼굴을 비추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 평소 활발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던 류현진이 갑자기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 같은 류현진의 태도 변화는 말 한마디가 향후 다저스와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에이전트의 충고 때문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은 15일 오전(한국시간) LA 국제공항에 도착해 한국 특파원을 비롯한 취재진과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연봉 협상을 이끌어줄 스콧 보라스 코퍼레이션으로 향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다음 날 오전 현지 취재진을 상대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류현진은 "다저스는 명문구단이다. 그런 팀이 나를 원하고 있으니 명성에 걸맞게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연봉 희망 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명문 구단임을 내세우며 다저스를 압박한 것. 기는 LA에 머무는 동안 보라스 사무실 근처에 묵으면서 개인훈련과 함께 실시간으로 보라스에게 협상 진행 상황을 전달받을 예정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ESPN은 12월3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윈터미팅이 연봉협상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SPN은 "다저스에게는 운 좋게도 윈터미팅이 6일까지 열린다. 다저스는 류현진과 마지막 협상에 나서기 전에 다른 좋은 투수들을 둘러볼 기회를 잡게 됐다. 보라스 역시 데드라인 직전에 협상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윈터미팅은 매년 겨울 메이저리그 30개 팀 구단주와 단장 등이 모여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이적과 FA(자유계약)가 논의되고 성사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뚱' 다저스행 확정
아시아선수 중 역대 네 번째 높은 몸값

앞서 스탠 카스텐 LA다저스 사장은 미국 일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윈터미팅이 끝날 때까지 류현진과 계약하지 않겠다는 것이 구단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보라스가 "류현진은 2년 뒤에 FA 자격을 얻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협상의 귀재'로 통하는 보라스는 다저스의 이러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류현진의 몸값 불리기 작업에 들어갔다. 보라스는 연봉협상에서 천문학적인 계약을 다수 성사시키며 메이저리거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지난 2002년에는 박찬호가 텍사스로 이적할 당시 거금을 안겨주기도 했다. 반면 구단주 측은 그의 말을 '악마의 농간'이라고 표현한다.

보라스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팀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팀 환경 및 선수와 팀의 조화는 2순위다. 보라스는 협상에 돌입하기 전 자신의 고객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을 수집해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부각시킨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자료 수집능력은 여타 에이전트들과 비교를 불허한다는 평이다. 보라스는 거액을 지불할 수 있거나 해당 선수가 반드시 필요한 복수의 구단들에 제안서를 내민다. 루머를 흘리거나 특유의 배짱을 부려 몸값을 최대한 부풀려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류현진 몸값
잭팟 터질까?


그래서일까. 보라스는 "빅리그 3선발급 대형투수"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당장 3∼4선발로 뛸 수 있고 일본에서 뛰었다면 더 많은 포스팅금액을 받았을 것" "이번에 다저스 구단이 연봉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포스팅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다저스를 압박하고 있다.
최종 협상이 타개될 때까지 보라스 에이전트와 다저스 구단 간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마감 시한은 내달 12일이다. 이에 다저스와 류현진의 계약이 내달 7일에서 12일 사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다.

다저스 구단 스카우트 총 책임자는 류현진을 메이저리그 239승에 빛나는 '왼손의 전설' 데이비드 웰스와 견주었다. 다저스의 국제담당 스카우트 업무를 총괄하는 밥 잉글도 ESPN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체구가 크고 둥글둥글하다"며 "웰스의 기량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 구단에 합류해 공헌할 수 있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웰스는 1987년부터 2007년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무려 21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왼손 투수로 191㎝에 100㎏ 가까이 나가는 거구였다. 뱃살이 두둑하게 나왔고, 몸 전체가 둥글둥글했다. 류현진과 비슷한 체격인 셈. 또 웰스는 유연한 투구 동작을 바탕으로 다양한 구질을 구사했다.

그는 토론토, 디트로이트, 뉴욕 양키스, 보스턴, LA 다저스 등 주요 구단들을 두루 거쳤고 토론토에 몸담았던 2000년에는 20승으로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웰스는 통산 239승158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다저스 측이 류현진을 웰스에 비견될만하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다저스의 류현진에 대한 기대 수준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저스 콜레티 단장은 "류현진이 다저스의 2∼3선발을 맡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어 스탠 캐스틴 사장은 "우리가 한마디라도 류현진에 대해 평가하면 보라스는 그 말을 계속 이용할 것"이라며 경계했다.

데뷔 첫해 '괴물'등극
신인왕·MVP 휩쓸어

역대 메이저리그 입성 선수 중 가장 높은 포스팅 금액을 기록한 선수는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다. 그는 지난해 5170만3411달러(약 562억원)를 받고 텍사스에 입성했다. 그 뒤로 일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가 2006년 5111만1111달러11센트(약 556억원)를 받고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역대 3위는 2006년 뉴욕 양키스가 이가와 게이에게 제시한 2600만194달러(약 283억원). 그 뒤를 류현진이 잇고 있는 셈이다.

포스팅에서 거액을 받고 미국에 건너간 좌완 일본 투수를 분석해보면 류현진의 몸값을 대략 예측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각각 6년간 5200만달러(약 565억원), 6년간 6000만달러(652억원)라는 유례가 없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중 마쓰자카는 보라스의 고객이었다. 마쓰자카는 첫해인 2007년 연봉 600만달러(약 65억원)에서 시작해 2008∼2010년 동안 800만달러(약 87억원), 2011∼2012년 동안 1000만달러(약 108억원)로 높아졌다.

올해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한 대만 투수 천웨이인(27)의 전례도 류현진의 몸값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그는 볼티모어와 3년간 1138만8000달러(약 123억원)에 계약했다. 그는 첫해인 올해 연봉은 307만달러(약 33억원), 내년과 내후년에는 각각 357만달러(약 39억원)와 407만달러(약 44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류현진이 천웨이인보다 다양한 구종을 던지고 국제 경험도 풍부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계약 총액에서 그를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러 조건을 종합할 때 류현진이 첫해 연봉 600만달러(약 65억원)에서 시작하는 다년 계약을 추진한다면 연봉 총액은 1500만∼2000만달러(약 215억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일각에선 연간 1000만달러(약 108억원)의 연봉계약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라스의 협상력을 등에 업은 류현진은 '잭팟'을 터뜨릴 수 있을까.

류현진은 인천 출신으로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의 가장 큰 강점은 무서우리만큼 빠른 적응력과 두둑한 배짱이다. 류현진은 2006년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믿기지 않는 성적으로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트리플크라운(18승·평균자책점 2.23·탈삼진 204개)을 달성하며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독식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지난 5시즌 동안 23차례 완투(8번 완봉)하며 78승(방어율 2.76)을 올렸다. 시즌 평균 15승씩 쓸어 담은 셈이다. 지난해에는 최하위인 팀을 이끌며 자신의 한시즌 최다 완봉승(3경기)을 포함해 16승4패, 방어율 1.82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에이스로서 무르익은 기량을 뽐냈다.

'왼손의 전설'에 비견되는 특급 투
280억 괴물 몸값, 박찬호 신화 잇나?

류현진은 국제 대회에서도 세계적인 강타자들을 상대로 당찬 투구를 펼쳤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쿠바와 결승전에서는 9회 1아웃까지 2점만 주는 특급 피칭을 뽐냈다. 누구와 맞붙더라도 위축되지 않는 강심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캐나다 전 완봉승을 포함, 17 1/3 이닝 동안 10피안타 13탈삼진 2실점 (평균 자책 1.04)의 뛰어난 성적으로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병역도 해결했다.

류현진은 2010년 아시안 게임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하였으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CJ 마구마구 일구상 최고투수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최고 투수상, 제16회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최다탈삼진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방어율 1위 투수상,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상 등을 수상했고 방어율 1.82 전적 16승 4패 탈삼진 187개 등을 기록했다.최고의 왼손투수에게 아낌없이 투자한 것은 류현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때문으로 보인다. 류현진의 좌우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활용하는 150㎞대 후반의 명품 강속구와 거의 같은 동작에서 뿌려지는 서클체인지업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 변화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올 시즌 프로 6년차에 접어들면서 낙차 큰 커브와 빠른 슬라이더를 실전 승부구로 다듬었다. 또한 188㎝·105㎏의 당당한 체구가 말해주듯 '마당쇠 체력'도 류현진의 자랑거리다. 류현진은 2006년 입단 후 올해까지 7년 동안 1269이닝을 던졌다. 1년에 180이닝 이상 소화해 온 셈이다.

메이저리그 입성을 눈앞에 둔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리, 2점대 평균자책점"라는 데뷔 첫해 목표를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중 역대 네 번째로 높은 포스팅 금액을 받은 만큼 한국 최고 투수의 자존심과 패기가 묻어난 발언을 한 것. 메이저리그 입성 첫 시즌부터 당당히 선발진의 한 축을 맡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과연 '대한민국 에이스'다운 포부다.


과거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39)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적은 없었다. 18승10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한 2000년이 그에겐 최고의 시즌이었다. 무려 17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지키며 '아시아 최다승 투수'라는 업적을 달성한 박찬호에게도 2점대 평균자책점은 넘어설 수 없었던 버거운 기록이었던 셈이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류현진은 박찬호를 넘어 아시아 최고 투수를 향해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잘 안착해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고, 타선의 화끈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한시즌 20승도 꿈이 아니다. 왕첸밍, 박찬호, 그리고 노모 히데오까지 모두 한 시즌 20승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국인 첫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 및 승리도 류현진이 욕심 낼만한 기록들이다. 박찬호는 2009년(필라델피아) 월드시리즈에서 4차례 구원 등판했으나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고, 김병현은 2001년(애리조나)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으나 역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두 자리 승수
2점 방어율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를 진출해 2010년까지 총 17시즌 동안 124승을 쌓아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알면서도 류현진은 "선배를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박찬호의 최다승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나이 만 26세, 쉽지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류현진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갈 류현진, 그의 활약 소식이 벌써 바다를 건너 들려오는 듯하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류현진은?>

생년월일 : 1987년 3월25일
신체조건 : 188㎝ 105㎏-좌투우타
출신학교 : 창영초등학교-동산중학교-동산고등학교-대전대

<주요경력>
2006년 한화 이글스 입단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2009년 WBC 국가대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수상경력>
2006년 신인왕, 정규시즌 MVP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주요기록>
2006년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3관왕
2009∼2010년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통산성적>
190경기 1269이닝 98승(8완봉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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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