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키스방 제휴카페 실태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23 14: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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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율 좋은 F컵 매니저 없나요?"

[일요시사=사회팀] 키스방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낯 뜨거운 문구에 반라의 여성사진이 눈길을 끌던 전단지도 자취를 감췄다. 다 어디로 갔을까. 실상을 살펴보니 경찰의 단속을 피해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다 못해 '위장전술'을 쓰고 있었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업소수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이는 온라인 제휴카페가 있어 가능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은 제휴카페를 통해 키스방, 립카페 등 유사성행위 업소를 찾고 있다.

'이수역 키ㅇㅇㅇ 다예 (D컵) 출근율 좋음' '역삼동 쪽ㅇㅇ 유이 (D∼D+컵) 출근율 드문드문' '안양 키ㅇㅇ 혜미 (D+∼E컵) 출근율 좋음' '건대 키ㅇㅇㅇ 연지 (D컵) 출근율 무난' 

한 회원이 키스방 제휴카페에 '요즘 출근율 좋은 F컵 매니저 없나요?'란 질문을 올렸더니 장문의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엔 업소명, 매니저(여종업원)의 예명은 물론이고 가슴사이즈까지 정리돼 있었다. 언급된 여성만 37명. 질문자의 기대엔 못 미쳤을지 모르지만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엔 충분해 보였다.

육감적인 몸매에
귀여운 페이스

질문을 한 회원은 이후 매일 업데이트 되는 업소 출근부 게시물을 찾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매니저의 스타일, 닮은 연예인, 가슴사이즈, 매력 포인트, 서비스마인드, 업계 경력에 당일 출근 여부까지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육감적인 몸매에 귀여운 페이스' '우월한 기럭지에 우아한 페이스' '늑대님들 기 쭈∼욱 빨릴 준비 하세요' 등 낯간지러운 설명도 함께 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다. 고려대상 1순위는 역시 비주얼, 대다수 매니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팬티까지 보이는 아찔한 사진을 찍어 제휴카페에 전시하고 있었다.

키스방 제휴카페는 생각보다 가입절차가 간단했다. 그 흔한 관리자 확인단계조차 없었다. 물론 회원이 되기 위해선 성인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했고 카페 상단에는 '청소년보호법의 규정에 의해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었지만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키스방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지난 13일 오후 4시께 기자는 제휴카페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키스방 몇 곳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카페에 소개된 업소 중 하나인 키ㅇㅇㅇ에 손님을 가장해 예약전화를 해봤다. 거의 모든 제휴업소들은 제휴카페를 통해서 예약하면 5000원에서 1만원이 할인됐다.


팬티까지 보이는 아찔한 사진 찍어 전시
아침부터 예약 전쟁…키스방은 성업 중

기자가 한 매니저를 지목해 예약할 수 있는지 묻자 해당 업소 주인은 "예약이 다 차서 곤란하다"며 "비슷한 스타일로 NF(New Face:새로 영입된 매니저)가 있는데 어떻겠냐. NF 검증할인이벤트 중이라 5000원이 더 할인돼 4만원인데 3만원에 된다"며 추천했다. 이에 기자가 "1시간엔 얼마냐"고 물으니 "1시간은 곤란하고 30분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키스방이 성업 중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위치까지 듣고 나서 업소를 직접 찾아갔다. 그런데 업소 간판을 찾을 수 없어 잠시 헤매야 했다. 알고 보니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이 업소는 외부엔 가짜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하고 있었다. 3층에 부착된 간판에는 제휴카페에서 본 것과 다른 이름인 'ㅇㅇ카페'라고 적혀있었고, 흰색으로 코팅된 유리창에도 해당 카페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커피를 파는 일반카페인양 위장하고 있었던 셈. 외부 모습만으로는 키스방일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3층에 다다르자 철제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카페 입구라기보다는 가정집 현관문에 가까웠다. 현관문 바로 위쪽에 달린 CCTV는 기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하며 벨을 눌렀다. 잠시 기다리자 안쪽에서 "어디서 오셨습니까"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기자가 "카페에서 보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업소 주인이 기자를 반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카운터 뒤편으로 여러 개의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언뜻 소형 고시텔을 연상시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에 깔린 카펫과 조명 모두 붉은색이어서 음침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 

상의탈의·오럴서비스
"그때그때 달라요"

주인이 "아까 예약하고 오신 분 맞죠"라고 물었다. 기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통로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안내했다. 카운터 바로 옆쪽으로 통로를 발견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매니저들이 대기하는 장소인 것 같았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2평 남짓했고 온통 붉은색이었다. 와인색 침대 소파가 눈앞에 펼쳐졌다. 침대소파 위에는 분홍색 티슈가 놓여 있었고 벽지 역시 분홍빛을 내고 있었다.


기자가 방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자 주인은 문 앞에 서서 기자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돈을 달라는 신호임을 알아채고 "매니저를 먼저 보고 결정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키스방에 처음 왔나? 무조건 현금 결제를 먼저 해야 매니저를 만나볼 수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하느냐"고 물으니 "끝난 후에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환불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인의 격앙된 어조를 보니 환불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에 기자는 키스방은 처음이라고 밝히고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매니저와 얘기를 나누다 키스할 수 있고, 옷 위로 가슴과 엉덩이를 만질 수 있다. 상의 탈의와 자위행위 방법은 매니저와 상의해 결정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사성행위까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자는 핑계를 대고 업소를 빠져나왔다.     

이수역 근처 키스방 한 곳을 더 찾아갔다. 앞서 방문한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층에 위치한 이 업소 역시 간판은 커피숍인양 위장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서 방문한 곳은 쾌쾌한 분위기인 반면 이곳은 최근에 생겼는지 밝고 화사한 분위기에 인테리어도 깔끔한 새것들이었다. 거기다 제휴카페 회원임을 알리면 통 크게 30분에 1만원을 할인해 3만원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회원수 5만7000명
방문자수 443만명

키스방 제휴카페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키스방'이라는 단어를 치면 유사한 카페가 셀 수 없이 검색된다. 그 중 기자가 찾은 '키스ㅇㅇ'는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키스ㅇㅇ는 회원 수 5만7000여명, 총 방문자 수 443만8000여명을 자랑했다. 또 게시글과 댓글은 각각 3만5000개, 14만개가 넘었다. 이 카페는 현재 서울강남지역 45곳, 강북지역 21곳, 경기 34곳, 인천부천 14곳 등 모두 114개의 키스방과 제휴를 맺고 있었다. 제휴 키스방들은 매일 출근부에 글을 올려 매니저의 출근여부와 새로운 신규 매니저의 등장을 알리며 손님을 끌었다.

업소 주인들은 카페 방문자들의 모든 질문 및 경험담에 즉각 반응했고 최대 수위 등을 물어보는 짓궂은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답변했다. 특히 '마무리' 혹은 '마물'이 어떤 방식이냐는 질문엔 쪽지로 답하고 있었다. 자위행위를 혼자 해결하는지 아니면 매니저가 도와주는지 확인하는 질문임을 짐작케 했다.

카페에 출근도장을 찍고 상주하며 매일 키스방을 다니는 회원도 몇몇 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카페활동이 업소 측보다 더 활발했다. 기자는 업소방문 경험담을 올리는 게시판을 보고 경악했다. 경험담만 하루에 45건 이상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자신이 만난 매니저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이곳엔 '만족' 혹은 '실망'이라는 두 가지 반응을 표출했다. 만족한 사람들은 매니저 예명을 언급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반면 실망한 사람들은 돈이 아까웠다며 업소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키스방을 끊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경험담을 남기는 사람들은 적어도 5번 이상 키스방을 다닌 이력이 있었다. 한 회원은 남긴 후기만 100개가 넘었다. 이 회원은 인기 매니저와 그 매니저가 출근하는 업소, 그리고 출근여부까지 모두 꿰고 있었다.

간판·전단지 없어…온라인 카페 제휴만 하면 OK
'단속 사각지대' 성매매 증거 찾아야 처벌 가능

최근 들어 키스방보다 하드코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립카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립카페는 키스방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름의 간판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 이곳은 유사성행위 업소나 마찬가지다. 립카페의 립은 '입술'을 뜻하는 만큼 짧은 시간에 진한 애무를 동반한 키스는 물론 비장의 무기 '구강성교'까지 확실하기 때문이다.

립카페 역시 전용 온라인 홍보카페가 생겨나는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한 립카페 제휴카페는 개설 두 달 만에 회원 수가 5000명을 훌쩍 넘었다. 이에 발맞춰 립카페수도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성문화를 개혁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제정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은 오히려 신종·변종 유사성매매 업소가 늘어나게 만들었다. 안마방, 휴게텔, 오피스텔, 대딸방, 키스방, 립카페, 터치방, 풀살롱 등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업소들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단속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전단지를 뿌리는 대신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간판을 위장해 수익을 꾀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 온라인 유사성행위 업소들은 제휴카페와 연계해 손님을 끌고 있지만 단속하기 위한 법규는 오프라인상의 문제만 적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겉으론 위장 간판
안으론 철통 보안

지난 1990년대 후반 유사성행위업소들이 본격 등장한 이후, 업소들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해왔다. 업소는 법률적 근거가 미비해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쪽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행정당국과 경찰은 이 같은 업소의 확산을 막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법전을 뒤지길 반복했다. 이처럼 돈으로 성욕을 풀려는 성 서비스 수요자와 돈을 벌기 위해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존재하는 한 유사성행위 및 성매매업소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키스방 등 유사성행위 업소는 현장에서 성매매 증거를 찾아야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을 단속한다고 해도 증거확보가 어려워 처벌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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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