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대쪽' 같은 영화인 정지영 감독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2 15: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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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대선판 뒤흔드나?

[일요시사=사회팀] 정지영 감독은 부조리한 권력과 맞선다. 절대 우회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칼날 같은 시선으로 사회문제와 역사의 아픔을 들춰내며 문제 제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단단히 벼르기라도 한 듯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1985>를 연속으로 내놓았다. 그는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며 기획의도를 숨기지도 않는다. 뜨겁게 달궈진 대선불판, 시대적 상처를 들춰내는 그의 영화가 과연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을까.

오는 22일 전격 개봉 예정인 정지영(66) 감독의 <남영동1985>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 모은 화제작이다. 공개 직후 영화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이슈몰이를 톡톡히 했다. 지난 2011년 고문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고 김근태 전 의원이 남긴 고문 수기 <남영동>을 극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선에 영향
끼쳤으면 좋겠다"

영화는 김 전 의원이 민청학련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간 뒤 22일간 고문을 당한 이야기를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다.

<남영동1985>는 김 전 의원을 모델로 한 주인공 김종태를 중심으로 고문이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영 시간 중 90% 이상이 고문 장면으로 구성돼 영화를 보는 관객은 마치 자신이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모델로 한 극중 이두한의 악랄함은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고춧가루 탄 물을 코와 입에 들이붓는가 하면, 회음부가 터지기 직전까지 전기고문을 가한다.


쉴 새 없이 고문을 당하는 김종태의 모습은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행해졌을 숱한 잔혹사를 상징한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 치하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19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투사들이 색깔론에 의해 고문의 피해자가 돼야 했던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현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대선후보이자 유신독재로 정권을 이어갔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 감독은 대놓고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치성을 설명한다.

'야만의 시대' 다뤄 분노보다 슬픔
부당한 권력에 맞선 비타협주의자

그는 "영화에는 감독의 정치적 의식이 담길 수밖에 없다"며 "정치란 말이 직접 나오지 않아서 알아차리지 못할지는 몰라도 작품 속 정치성은 관객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예술인의 작품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감독으로서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 출마한 대선후보 모두가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며 대선후보들을 시사회에 꼭 초대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정 감독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청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김수용 감독 연출팀에서 <내일은 진실> <황토> <가위바위보> 등의 조연출을 맡아 칼을 갈았다.

그는 1982년 신일룡, 오수미 주연의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 영화는 두 여주인공을 팜므파탈로 등장시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느와르풍 영화로 이후 정 감독은 대부분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1987년 한수산 원작 청춘남녀들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담을 그린 멜로영화 <거리의 악사>를 연출해 흥행과 동시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로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는 성에 대한 영화를 주로 찍어 이 시기에 유행하던 흐름에 동참했다.


6월항쟁 성공과 함께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조선인민유격대 출신인 이태의 실화소설 <남부군>이 출판되자,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을 1990년에 영화화했다. 최진실과 임창정의 데뷔 출연작으로 유명한 <남부군>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주제에 도전하여 빨치산의 인간적 면모를 그려내 평단의 호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인 빨치산의 활동상과 처지를 객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린 최초의 영화다. 또 제작기간 3년에 엑스트라 3만명, 항공기까지 지원받은 당시로써는 보기 드문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박근혜 후보
시사회 초대 할 것

정 감독은 1991년 시인 고은의 소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영화화해 서로 사랑하게 된 젊은 비구승과 비구니의 고뇌와 번민을 담은 종교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듬해 베트남전쟁의 상처를 다룬 <하얀 전쟁>은 당시로서는 국내 영화사상 최고액인 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최우수작품상·감독상·도쿄시장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 안정효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이후 내놓은 작품들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정 감독은 메가폰을 잠시 내려놓고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 결성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영화인들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정 감독은 또 한국영화인회의 이사장과 서울예술전문학교 학장도 지냈다.

정 감독은 <까> 이후 몇 편의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영화화는 무려 8년이나 매달렸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고,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은지화> 사극 <울밑에 선 봉선화>와 한국계 러시아 로커의 전기영화 <빅토르 최> 등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만난 <부러진 화살>은 정 감독의 구미를 확 끌어당겼다.

1998년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저예산영화 <부러진 화살>은 관객 350만명을 끌어 모으며 정 감독을 부활시켰다.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이른바 ㅋ'석궁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로 법조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영화 개봉 한 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대책회의가 열렸고, 영화 개봉 1주일을 앞두고 대법원은 석궁 재판 관련 판결문을 정리한 자료를 각급 법원 공보판사에게 발송하는가 하면, 당시 사법부에선 일선 판사들에게 '대응지침'까지 내릴 정도였다.

올해 말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판>은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들추는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 감독이 제기하는 문제를 두고 각 계층의 영화인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배우 윤진서가 정 감독과 함께 인터뷰어로 등장한다. 이 작품엔 제작자와 감독, 배우의 입장에서 한국 영화계의 뒷이야기를 담았고 여배우들 노출에 대한 의견 등 다양한 화제가 담겨있다.

<남영동1985>
캐스팅보트 될까

최근 정 감독은 칼 같은 시선으로 사회문제를 영화에 담아내며 재조명 받고 있다. 그는 권력의 부조리가 있으면 우회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또 시대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출로 관객들의 감정선도 건드린다. 이처럼 정 감독은 지난 30년 동안 젊은 감독들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용감하게 끌어내어 관객들에게 선보여 왔다.

그리고 정 감독은 뜨겁게 달궈진 대선 정국에 맞춰 지난 역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남영동1985>를 내놓았다. 화제의 전작 <부러진 화살>이 진실을 왜곡하는 권력의 부당함에 분노를 느끼게 했다면 <남영동1985>는 악랄한 시대상을 비춰 '분노'보다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 형언할 수 없는 시대적 슬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개봉하는 이 영화가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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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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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