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종북교육' 한창 예비군 훈련 가보니…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0 0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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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촛불시위가 북한 음모?

[일요시사=사회팀] '인혁당 사형수, 제주 4·3사건 희생자, 광우병 촛불시위자, 제주해군기지 반대시위자, 쌍용차 노동자, 진보정당 정치인 등이 종북세력?' 국가보훈처가 배포한 안보교육자료만 보면 그렇다. 이 자료에 따르면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은 '종북세력의 활동'이었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신화적 존재'였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DVD는 예비군 훈련장, 초·중학교, 시민단체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바로 군대와 예비군 훈련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오던 기자 역시 빨갛게 찍힌 '불참 시 고발'도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52사단 연병장. 훈련을 받기 위해 서초구 일대 예비군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날 고급외제차를 끌고 온 직장인부터 하릴없는 백수까지 350여 명이 동원미지정자 훈련에 참가했다.

대선 앞두고…

3일 동안 훈련을 받으며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해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훈련을 잘하면 집에 빨리 갈 수 있었다. 출퇴근 교육을 받는 동원미지정자 참가 훈련은 교육 태도와 목소리 크기, 사격 성적 등을 교관이 체크해 우수 분대를 선정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격을 잘하거나 우수 분대로 선정되면 한두 시간 조기퇴소를 할 수 있었다. 그 효과는 상당했다.

훈련의 질도 개선됐다. 서바이벌 훈련이 추가돼 페인트볼건을 쏴 봤다. 영점사격훈련도 제대로 시행됐다. 덕분에 기자도 오랜만에 사격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밖에 수색·정찰, 지뢰제거, 각개전투, 화생방 등 매 훈련 과정마다 교관이 평가했다. 예전의 예비군들이 아니었다. 집에 빨리 가고자 단합이 잘된 분대는 목소리가 이등병 못지않았다.


훈련 중 3시간은 정신교육에 할애됐다. 예비군들은 예외 없이 강당에 열을 맞추고 앉아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 도중 조는 것도 조기퇴소 여부에 반영됐다. 현역 장교의 자이툰 파병 경험담을 곁들인 안보교육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시청각 자료였다.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당의 불이 꺼지고 전면에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띄어졌다. 두 시간 동안 상영된 DVD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DVD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 '제주4·3사건' '86건대사건' 등 유신반대 투쟁과 민주화 운동은 모두 '종북세력'과 연결됐다. 유신체제 당시 민주화 투쟁세력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반유신·반독재 투쟁을 빙자해 세력 확산을 기도했던 종북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종북세력의 실체'편은 한술 더 떴다. 쌍용차 노조 파업 시위 사진 위에 '순수 시민운동을 가장한 종북세력의 폭력시위'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도 졸지에 종북세력이 됐다. DVD는 "촛불시위 당시 북한의 종북세력과 연계해 사회혼란을 조장했다"며 "종북세력은 촛불시위가 반정부, 반미 투쟁으로 확산되도록 면밀히 주도하고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학생단체의 시위 사진과 함께 "2000년대 종북세력이 제도권과 정부 내부에 침투하여 친북 사회주의 활동을 민주화·평화애호 운동으로 미화해 그 영향력을 국가 전반에 확산시켜 왔다"는 문구가 나왔다.

'위험한 반대'편은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해군기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 천선상 터널 등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를 두고 환경과 평화를 가장한 종북세력의 반정부 시위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정부 정책에 이견을 가지기만 해도 '종북주의자'가 됐다.

훈련 참가자들 억지로 종북DVD 시청해야 
정부에 반기 들면 '간첩'…박정희는 찬양

'북한의 대남전략은 무엇인가'편에선 "촛불시위 동안 주도적 역할을 한 단체들은 북한과 똑같이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는 종북세력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편에선 베트남 사례를 들며 국내 종북세력을 경계토록 했다. 이 DVD에 따르면 "베트남은 공산화되기 직전까지 자유민주주의 정부였지만 매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면서 "시위들은 '인권' '민족' '자주국방' '평화' 등을 외쳤지만 알고 보니 당시 시위를 주도한 재야세력과 야당 대표는 간첩이었다"라고 묘사했다. 특히 0.2%에 불과한 베트남 공산세력이 자유주의 정부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쟁 통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편집해 보여주고 슬픈 편지를 읽는 등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엔 우리나라의 안보불감증을 부각하며 우리나라 상황은 당시 남베트남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통성'편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화'라고 언급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정통세력으로 부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미래 녹색성장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DVD들은 점심시간에도 계속 상영됐다. 물론 기자처럼 열심히 시청하는 예비군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정된 교육시간에는 의외로 많은 예비군들이 졸지 않고 열심히 DVD를 시청했다. 조기 귀가 열망은 '종북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보훈처에서 배포한 문제의 이 DVD는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주제로 3편, '남북관계' 4편, '북한 실상' 4편 등 총 11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편당 5∼10분 분량의 동영상들이 3∼7개씩 묶여 편집돼 있다.

공식석상에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국회 정무위 정호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호국보훈자료'라는 이름의 이 DVD세트를 입수해 국감에 공개하고 출처를 밝혀줄 것을 보훈처에 요구했다. 그런데 담당과로 드러난 '나라사랑교육과' 관계자들은 영상 제작과 관련해 "외부에서 협찬 받은 자료로 실무선에서 밝히기 곤란하다"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정 의원은 국가보훈처의 의도적인 자료 은폐, 폐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제의 DVD는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무슨 돈으로 제작했는지 미스터리다. 이 DVD에는 '국가보훈처'라고 분명히 적혀 있지만 정작 국가보훈처는 "협찬을 받은 것"이라며 관련성 일부를 부인했다. 그런데 이 DVD는 부산·경남지역 일부 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됐고 몇몇 학교에서는 이미 학생들에게 상영되기도 했다. 특히 부산지방보훈청은 최근 부산지역 학교에 배포한 동영상을 상영해 달라고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앞에서 본 대로 이 DVD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미화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촛불시위 등을 종북세력과 연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치개입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개입 의혹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유리한 내용을 담은 DVD를 대량 배포했기 때문이다. 박 처장은 지난 2007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40세대(20∼40대)의 안보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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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