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큰 등불’고 김수환 추기경

부디 하늘에서도 ‘큰 사랑’ 펼치소서


일제하 유년시절 ‘난 황국신민이 아님’ 쓰기도
군홧발엔 서릿발로…소외된 이들의 영원한 ‘벗’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향년 87세로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 했다. 선종 전까지 ‘화해’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 추기경은 한국 사회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때론 용기 있는 발언으로, 때론 중용의 침묵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왔다.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는 데 몸과 마음을 바쳤던 그이기에 종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그동안 과분하게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십시오.”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16일 오후 6시12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서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으로 선종했다.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입원한 뒤 7개월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김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위사람들에게 “고맙다”라며 ‘화해’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연소 추기경 임명

이날 임종을 지켜본 정진석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을 향해 외치셨던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와 화해였다”며 “평소에 김 추기경이 바라던 대로 이 땅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도록 기도해 달라”고 전했다.

고인이 된 김 추기경은 민주와 정의의 기치를 지켜온 수호자로 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 편에 섰다. 또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였던 1970~80년대에는 민주화를 위해 군홧발에 맞서 서릿발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 가톨릭계는 물론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 추기경은 1922년 대구 남산동 기독교 집안에서 아버지 김영석(요셉)씨와 어머니 서중하(마르티나)씨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추기경은 옹기장이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당시 그의 꿈은 장사꾼이었다고 한다. 8살에 부친을 여윈 소년 김수환은 행상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온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사제의 길을 권유받았다.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동성종합학교에 진학해 성직자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꾀병도 부려보고 ‘그만 두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제가 신학교 들어올 때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오지 않았고 신부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없었다. ‘나가야겠다’ 그러니까 그 신부님이 저보고 ‘신부라는 것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되기 싫다고 되지 않는 게 아니야. 나가’ 그래서 내가 ‘어디로 나갑니까’라고 물으니 ‘내방에서 나가’라고 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서울의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한 김 추기경은 졸업반 수신 과목 시험 때 ‘조선반도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 천황의 칙유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라는 문제가 나오자 시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릴 무렵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고 한다.

일제치하로 조국이 암울하던 1941년에는 일본 동경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학교를 다니던 학생 김수환은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1944년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서야 조국 해방을 맞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상지대학에 복학해 학업을 계속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곧바로 다음해 초 서울의 성신대학에 편입했다. 그로부터 5년 후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던 1951년 대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29살에 사제품을 받은 김 추기경은 안동 목성동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의 첫발을 내디뎠다.

김 추기경은 “고해하러 온 주민들에게 몰래 돈을 나누어 줄 정도로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2년 반 정도의 짧은 본당 사제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며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 대목구장 비서신부와 김천 성의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뒤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시절 그는 뮌스터대 요제프 회프너 교수신부에게서 그리스도 사회학을 배웠다. 마침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있었던 독일에서는 시대에 걸맞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변화와 쇄신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귀국 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을 지내며 교회 언론의 초석을 다졌다. 이어 1966년 신설된 마산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이와 동시에 주교품을 받았다. 2년 뒤엔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항상 약자 편에서
민주·정의 가치 지킨 수호자

서울대교구장에 오른 김수환 추기경은 취임미사 강론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정신에 따라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의 교회를 만들겠다”며 교회쇄신과 현실 참여 의지를 나타냈다. 이듬해인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러나 추기경이 되었다는 영광도 잠시, 독재와 억압으로 점철된 1970년대 한국교회는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김 추기경은 1971년 성탄미사 때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이라며 3선 개헌을 통해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강력히 비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내가 보기에도 자꾸만 독재 쪽으로 기울어진단 말이야. 그게 정말 안타까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말을 비출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됐으나 강론 말미에 정권의 지시로 중단됐다.

1972년 8월9일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자격으로 7·4남북공동성명발표와 8·3긴급조치,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정국 혼란 중 박정희 정권의 장기독재체제를 비판하는 ‘현 시국에 부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성모병원이 세무사찰을 받는 등 정부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 메시지 발표와 관련해 김 추기경은 “내가 강조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결코 유일사상이라든지 독재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고 밝혔다.

유신 이후에도 불법단체로 지목된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조종한 배후로 1974년 당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1993년 별세)가 구속되는 등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 전주교구 7·18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정부의 교회 탄압이 자행되자 김 추기경은 각종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자유언론과 인권, 민주회복을 강조했다. 그럴수록 김 추기경에 대한 정권의 감시와 도청은 그 강도를 더해갔다.

김 추기경은 “거기에 드나드는 경찰간부도 있고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된 사람이 자주 주교관에 드나들고 어떨 때는 죽치고 앉아있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의 사회 참여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와중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 기도를 요청한 것으로 시작됐다.

김 추기경은 당시의 일을 회고록에서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무력진압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며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광주의 5월’이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이후 1997년 김영삼 정부 들어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에도 김수환 추기경은 광주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 큰 어른으로서
희망메시지 전달 잊지 않아

1987년 1월14일 발생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당시 경찰은 심문도중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 추기경은 ‘박종철 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에서 정권의 야만성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이라면서 잡아떼고 있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가 못다 이룬 일을 뒤에 남은 우리가 이룬다면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강변했다.

이를 계기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학생·시민들의 분노가 정점에 이르러 6월 민주항쟁으로 타올랐다. 김 추기경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시위대가 명동성당에 진입하자 이들을 강제연행하려는 정부에 단호히 맞서 시위대의 안전을 지켰다. 또 6·29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김 추기경은 “여기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맨 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내 뒤에 신부들이 있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밟고 우리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을 만난다”며 시위대를 뒤로 물렸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외국인 노동자와 철거민, 조선족 사기 피해자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의 곁에 항상 함께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들을 착취한다든지 비인도적으로 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도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는데 인도주의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그는 IMF 경제 위기와 북한 식량난 등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시대의 가장 앞자리에 있었다.
김 추기경은 “교회는 힘을 다해서 사랑의 손길을 펴야 된다. 그렇게 볼 때 북한동포가 제외될 수 없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 동포이기 때문에 그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고 뭔가를 해야 된다”고 역설했다.


1998년 그는 76세의 나이로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표한 지 6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김 추기경은 교구장 은퇴 후에도 낙태와 자살 등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를 개탄하며 그야말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형제도 폐지와 낙태 반대 등 생명 운동에 적극 헌신했다.

또한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북한 선교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사회 곳곳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 서울강남성모병원에서 안구기증 서약을 한 데 이어 2006년 7월에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면서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망 시 장기기증’을 약속했다. 지난 16일 선종 당시 각막은 적출돼 기증됐다.

“한국 사회를 바꾸는 힘은 우리 자신, 아니 나부터 먼저 생각과 마음과 삶을 바꾸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던 김 추기경.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는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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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 국회가 열리면서 100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각종 입법과 개혁, 예산안 등을 두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회 첫날부터 기싸움이 만연한 가운데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고삐를 틀어쥐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9월에 접어듦과 동시에 빽빽한 일정이 여야를 기다리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오는 10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15~18일 나흘 동안 정부를 상대로 ▲정치▲외교 ▲통일·안보 ▲사회 ▲교육 ▲경제 등 대정부질문이 예정됐다. 벌써부터 국정감사 제보센터를 개설하는 의원실도 눈에 띄었다. 사면초가 국민의힘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과 성장, 개혁 안전 등 4대 핵심 과제를 골자로 한 22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금융위원회 등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함해 언론개혁, 대법원 개혁 등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안도 지체 없이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계획을 ‘입법 폭주’라고 비판하며 ‘경제·민생·신뢰 바로 세우기’를 기조로 하는 100대 입법 과제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및 민생경제 회복, 청년 희망 및 취약계층 돌봄 등을 통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번 정기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서 국민의힘은 최교진·주병기 후보를 정조준하면서 이정부의 ‘인사 실패’ 프레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 후보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과 천안함 폭침 관련 음모론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내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학생 체벌, 막말, 천안함 음모론 제기, 부산·대구 폄하 발언, 입시 비리 조국 사태 옹호 등 셀 수 없는 범죄와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며 “그 사과가 진심이라면 자진 사퇴하라. 이재명정부는 후보를 즉각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주 후보에 대해선 세금 ‘상습 체납’ 이력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주 후보와 배우자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는 압류 등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주 후보는 종합소득세 납부기한도 여러 차례 어겼으며 2023년(406만원)과 2024년(183만원) 종합소득세도 올해 6월에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대한 국회 표결을 벼르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국회의장은 요구서가 접수된 후 다음 본회의인 오는 9일에 국회 보고를 거쳐 72시간 이내에 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국민의힘 교섭단체 연설일인 10일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을 제외한 11일 또는 12일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정부 첫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 권성동 체포동의안 변수도 ‘주목’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주도하에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권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와는 관계없이 구속 적부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에 저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집어넣으려 한다”며 “이는 야당 대표 연설을 덮으려는, 국회를 정치 공작 무대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정치적 일정 거래에 저의 체포동의안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던 만큼 결국 개원 첫날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우 의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예로 들며 개회식에서 한복 착용을 권유했지만, 국민의힘은 “국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이재명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자는 심기일전의 취지”라며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 근조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정부와 여당에 항의하는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들었지만 정작 애도해야 할 대상은 국민의힘 자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 역시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희망과 미래지, 장례식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검찰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표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고, 초선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시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어”라고 반말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굽히지 않는 강대강 매치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는 나 의원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5선 의원이 가만히 있으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냐. 초선 의원이 가마니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대표는 “초선 의원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의원은 일단 예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검찰개혁 관련 공청회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및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인데, 국민의힘이 이를 두고 “검찰해체법을 통해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반발하면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추석 전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는 25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확대하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더 센 특검법(특검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상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 기간은 기존 한 차례 30일 연장에서 두 차례,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재판의 녹화 방송 중계도 가능해진다. 재판 내용이 공개돼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교훈을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도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보완 입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야의 입법 주도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형사처벌 규정 개선,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오는 12월까지인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기업 달래기에 나서면서 경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저항해도 질질∼ 국민의힘은 매일같이 보이콧과 논평을 쏟아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의석수로 민주당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특검의 대대적 압수수색 등 당 내부도 시끄러운 만큼 민주당이 휘두르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야당 탄압’ ‘야당 말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정치 특검이 연이틀 국민의힘 심장부에 쳐들어왔다”며 “법사위에서는 특검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판부도 설치하고, 재판까지 검열하겠다는 무도한 법들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소리 높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향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된다”며 “역사적 전례를 보면 폭주 기관차는 반드시 궤도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국민의힘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과도한 행태를 계속 보이면 국민의 냉엄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제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며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도한 정치 공세로 야당을 뒤흔드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에서 저는 정말 전복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번 특검은) 이재명정부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조은석 정치특검”이라며 “국회의 권위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재명정권과 특검의 야당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풍 기우제” 오히려 똘똘 뭉쳤다 윤석열·김건희 지지율 올리는 주역 오히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뭉치면서 “역풍 기우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당시 개혁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면 역풍 타령이 이어졌다”며 “이는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이 개혁 적기다. 순풍이 부는데 이를 자꾸 역풍이라 하는 건 민주당이 돛을 펼치는 걸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원 전체의 목소리로 인식돼 당분간은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치 효능감을 느낀 강성 지지층이 당 분위기는 물론 방향까지 주도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경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날이 갈수록 민주당 의원들의 혀가 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에게 있어 지금은 ‘이재명과 개혁의 시간’이다. 아직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범’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만큼 여야 협치에서 국민의힘은 논외 대상으로 여겨진다. 범여권 의석수를 합하면 180석이 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눈치를 보거나 숙일 필요가 없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다시 솟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수록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노리는 것이다. 그 예시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속옷만 입고 있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전 정권으로 쏠렸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셨던 분 아닌가, 옷을 입어달라”는 말에 “나 검사 27년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 어떻게 할 거냐” 등 극구 반발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의 밤에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에게 따르라고 거듭 재촉해 군 간부들의 신세를 망쳐 놨다”며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 회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첩첩산중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줄지어 있어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터지니 빠르게 수습해도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어 “걱정인 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돼도 속은 여전히 곪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텐데 여기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나 민주당의 실책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또 다른 솟아날 구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띄우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오는 22일부터 지급되는 정부의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언급하며 “지난번 1차 소비쿠폰이 마중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물이 콸콸 나오는, 경제계에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것만으로 재계엔 긍정의 시그널을 줬다”며 “주가도 3200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시총이 700조원 늘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이정부 출범 이후 실행한 민생소비쿠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2일부터 발급되는 2차 소비쿠폰은 내수와 소비 회복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평가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정기 국회에 돌입하면서 정쟁으로 치우친 국회를 벗어나 민생과 경제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지지율 견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