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㊾염전 집어삼킨 무서운 태풍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4.28 05:00:00
  • 호수 1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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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만일 자신을 믿고, 기다리면서도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꿈을 꾸되 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성취한 모든 것을 올바른 모험에 걸었다가 잃고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올바른 모험

그들은 마음속으로 시 구절을 외면서, 눈과 눈을 피해 다니며 대들보를 갉아먹는 생쥐처럼 기를 쓰고 경첩의 쇠못을 갈아댔다.

그런 어느 날 피에로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아, 그래도 엿장수 할 때가 좋았지. 흐흐…….”


“형, 뭔 소리야?”

“춘천의 어느 고아원에 있다가 갑갑해서 결국 탈출을 했지. 치사스런 밥 한 숟갈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그리웠어. 배를 곯다가 우연히 어느 엿방에 들어갔거든.”

“히히, 형이 엿장수를 했다구?”

“응. 방랑천하 아니것냐. 엿장수 맘대로란 말도 있지만…… 엿판 하나 둘러메고 발길 닿는 대로 떠돌면 세상천지에 부러울 게 뭐 있것어. 엿가위를 쟁강쟁강거리며 달달한 엿 사려! 고소한 깨엿 콩엿 호박엿도 있소! 외치고 다니느라먼 웃음도 울음도 나더군. 혹시 채플린이 조선의 배우였다면 아마 엿장수로 분장해서 방랑자로 떠돌지 않았을까 싶어. 히히…….”

“응.”

용운은 열심히 경첩을 갈아대면서 대꾸했다.

“새벽이면 생엿을 가지고 두 사람씩 마주 서서 짜장면발을 뽑듯이 반복적으로 늘이지. 그러면 거무스레하던 강엿은 갈색을 거쳐 차츰 하얗게 변해. 아, 인간도 신의 손으로 그렇게 하면 악인이 선인으로 환생할지 몰라. 흐흐…… 공기가 잘 배어들어 부풀어오른 엿가락은 아주 하얗고 양도 불어나서 최상품이 돼.”


“꼬마 엿장수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여름과 겨울이면 뺑이치는 거지 뭐. 삼복 더위엔 까딱하면 눅진하게 녹아 버리니까 볼장 다 봐. 한겨울엔 더 어렵단다. 아이놈들도 따스한 방구석에 박혀 만화책이나 보는지 좀체 코빼기를 보이질 않거든.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고갯길을 걸으며 허기진 배를 엿가락 한두 개로 달래느라면 때로 눈물도 나지.”

“청승맞군.”

“그래도 엿판 덮개 위에 애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색색가지 고무풍선이나 딱지, 껌 따윌 얹은 채 돌아다니다가…… 영화에 나오는 얘기를 들려 주면 코흘리개들이 무척 좋아했었지.”

피에로는 그때의 추억 속에 젖어들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계절에 맞지 않게 센 바람이 귓바퀴를 윙윙 소리내어 스친다 싶더니 정오를 넘으면서부터는 미친 듯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태풍의 시초 같았다.

굵은 소나기까지 동반한 태풍은 축사 지붕을 종잇장처럼 날려 버렸고 나무도 뿌리째 넘어뜨렸다.

비상소집을 당한 원생들은 각종 연장을 들고 논, 염전 등지로 떼지어 몰려갔지만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보리가 미친 듯 춤을 추며 쓰러졌고 고춧잎이 뜯겨 날렸다.

바다는 지옥 속의 혼돈 같았다. 산처럼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 너머로 밀어닥쳤다. 당산의 나무들이 바람과 싸우느라 필사적으로 뒤흔들렸고 부러져 나가는 나뭇가지의 비명이 처절하게 들렸다.

섬 전체가 이대로 물에 잠기고 세상엔 끝이 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축사 지붕 종잇장처럼 날려
비상소집 원생들 속수무책

그러나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난장판 위로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원생들은 연장을 있는 대로 챙겨 들고 염전으로 뛰었다. 여기저기 복구 작업에 나선 부락민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논밭도 문제였지만 염전의 피해는 참담할 지경이었다.

파도가 훑어가 버린 뒤의 모습이란 쑥대밭이었다. 염전이 있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황폐한 벌판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수용소 원생들이 집합하자 원장의 지휘로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다. 인근의 흙을 퍼다 둑부터 쌓아 나갔다.

평소 같으면 감독이나 하며 기세등등할 사장과 반장들까지도 삼태기를 들고 뛰었다.

누가 누군지 서로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곳에 뒤섞인 무리가 개미떼처럼 오고 갈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염전과 야산 기슭을 무수히 왕복했다.

삽질로 야산의 한모퉁이가 작은 집터만큼 다져졌을 때였다. 피에로가 다가오더니 흙을 퍼담는 용운의 옆구리를 툭 치고 빠르게 비껴갔다. 용운은 대번에 그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언제까지 서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삼태기를 둘러메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원생들 틈에 섞여 저만치 앞서가던 피에로가 슬그머니 자리를 이탈하여 마을 옆 골목으로 꺾어들고 있었다.

용운은 졸아드는 가슴으로 그를 따라갔다. 당장에라도 누군가가 뒷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었다.

외진 둔덕을 돌아들기 무섭게 피에로가 삼태기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빨리 공동묘지 위로 해서 저쪽 숲속으로 들어가! 곧 갈께.”

용운은 몸을 낮추고 수수밭 옆으로 해서 공동묘지 위로 내달렸다.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날렸다. 땀방울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진달래가 핀 산허리를 타고 숙사의 변소 앞에 도착했다.

열린 변소 문으로 파리만 윙윙거릴 뿐 사방은 고요했다.

용운이 책임졌던 아래쪽 경첩은 아직 덜됐지만 위쪽 쇠못은 완전히 갈린 상태였다.

금방 나타난 피에로가 위쪽 쇠못을 빼고 문짝을 잡아당겨 좌우로 비틀었다. 아래쪽 경첩이 이리저리 찌그러지면서도 끈질기게 버텼다.

초조해진 피에로가 몇 번을 힘있게 걷어차자 문짝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노루고개로 뛰어!”

선착장 상류

피에로가 문짝을 둘러메며 소리쳤다. 노루고개란 당산을 넘는 오솔길로 그곳만 넘으면 곧바로 나루오름 선착장의 상류와 만나게 되었다.

둘러멘 문짝이 바람을 받아 자꾸만 피에로의 몸을 뒤틀리게 했다. 바람과 싸워 가며 고개를 넘어 해변에 도착했지만 피에로는 계속 상류로 달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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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