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㊹당분간 보류한 엄마 찾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3.24 04:00:00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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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어, 없어요.”

“왜, 언제부터 없어?”

“어렸을 적에 서울역에서 엄마랑 헤어지고부터예요.”

“흠, 고아로구만. 그래, 어쩌다가 헤어졌냐?”

“엄마가 기다리라고 해놓고 어디로 가더니 안 왔어요. 아직도 안 와요.”


기다림

순경의 시선이 잠시 용운의 미간 위에 머물러 멀뚱거렸다.

“너 살던 곳이 어딘지는 기억하냐?”

용운은 생각을 해보려고 했다. 아슴푸레하기만 했다. 기억하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푸른 산의 진달래와 뻐꾸기 울음소리만 스칠 뿐이었다.

용운이 도리질을 하자 순경이 말했다.

“더 물으나마나겠군. 저리 들어가!”

용운은 손바닥만한 그 경찰서의 보호실에 갇히게 되었다. 용운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입술을 앙다물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맑은 눈물이 맺혀 더러운 볼 위로 흘러내렸다.


다음날 용운은 다시 경찰 앞으로 불려갔다.

“임마, 너 잘 들어. 생각 같아서는 소년원으로 보내고 싶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해서 이번만 봐주는 거야. 알았어?”

“예…….”

“임마, 넌 운이 좋은 편이야. 오늘부터 거지 노릇 안 해도 돼.”

“예?”

“널 불쌍히 생각해서 특별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데를 알아봐 주니까 그렇게 알란 말이야. 알았어?”

“예.”

용운은 그저 어리벙벙할 뿐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대답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래. 거기 가거든 말 잘 듣고 그래서 훌륭한 사람 돼야지. 언제까지 비럭질만 하고 살 거야?”

순경은 자못 위엄까지 부리며 충고를 했다.

그렇게 해서 용운이 가게 된 곳은 고아원이었다. 청량리에 자리잡은 그 고아원은 낡고 오래된 건물로 제법 큰 편이었다.

원장과 선생들을 비롯하여 백여 명의 원생들이 수용돼있었다.


보모의 지시대로 목욕을 하고 내주는 옷으로 갈아입으니 그나마 겨우 사람 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용운은 당분간 엄마 찾는 일을 보류하고 그곳에서 지친 몸을 좀 쉬기로 작정했다.

고아원은 위생시설이 엉망이라 해충이 들끓었다. 파리나 지네 따위를 잡으라고 정해진 날엔 그동안 잡은 해충을 들고 나가 검사를 받았다.

일정한 수를 채운 애는 상으로 사탕 따위를 탔고 못 채운 애는 매를 맞았다. 그래서 잡은 해충들을 무슨 보물이나 되는 양 종이에 싸서 누가 훔쳐가지 못하게 품속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운에게 고아원 생활은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다만 먹는 게 문제였다. 그곳에서 주는 식사는 날이면 날마다 옥수수죽이나 수제비 정도였고, 사흘에 한 번 꽁보리밥이나마 나올까 말까 했다.

그래서 원생들은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개중엔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이 외부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전갈을 받고 보면 십중팔구 남의 도시락을 뺏어 먹거나 상점에서 음식물을 훔쳐 먹었다는 얘기였다.

그런 원생들이다 보니 인근의 채소밭조차 온전할 리가 없었다. 고구마나 오이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배추뿌리까지 파먹는 바람에 농부들만 애꿎게 골치를 썩여야 했다.


낡고 오래된 청량리 고아원
자기 배 속 채우는 원조금

그 때문에 고아원 측과 농사꾼 간의 실랑이도 잦았다. 배고픈 자의 입장에서는 일단 무엇이든 훔쳐 먹고 입을 닦으면 그만이겠지만, 뼈빠지게 일해 결실을 바라보는 농부의 입장에서는 죽이든지 손모가지를 부러뜨리고 싶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사감이 몽둥이로 애들을 족쳤으나 그저 그때뿐이었다.

고아원에는 대개 외국서 구호품이 나왔다. 당시에는 고아원을 운영한답시고 여기저기서 원조금과 성금을 받아서는 아이들을 굶기고 누더기나 입히면서 자기 뱃속만 채우는 고아원이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그런 수작으로 떼부자가 된 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어쨌든 구호품을 더 타먹으려고 수작을 부렸다.

시찰단이 오면 각 고아원마다 머릿수를 맞추려고 이리저리 아이들을 꾸어 가고 꾸어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부터 살이 좀 오르라고 밥을 잘 먹이고 옷도 깨끗이 입혀 놓지만, 시찰단이 가고 나면 옷도 벗기고 옥수수죽이나 밀가루로 끼니를 때워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원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적에는 눈물을 철철 흘린다고 했다.

얼마 후에 용운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지도 선생들은 용운을 포함해서 얼굴이 제법 말끔한 다섯 명의 원생을 뽑아 ‘봉사대’란 이름의 임무를 부여했다.

그 고아원은 어느 미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인하여 봉사대는 매주 일요일마다 그 부대의 군인 교회로 가서 잔일을 해주어야 했다.

아침에 미군용 차가 오면 봉사대원들은 그걸 타고 가서 예배 전까지 강대상 위에 촛불을 켜고 꽃병의 물을 갈고 의자를 똑바로 놓는 등의 일을 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미군 목사는 공책이나 연필 따위의 학용품을 나눠 주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원생들에겐 그런 것이 필요할 리 없었기 때문에 받아오기 무섭게 주변 동네에 사는 아이들을 몰래 만나 떡이나 누룽지 혹은 감자 따위와 바꾸어 먹곤 했다.

시찰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날은 미군부대의 부녀회에서 고아원을 방문한다고 했다.

모두 고급장교의 부인들이라는 것이었다. 지도 선생들은 봉사대원뿐만 아니라 전원생을 모아놓고 사전 교육을 했다.

“그분들이 물으면 항상 쌀밥을 먹는다고 해라. 고기도 이틀에 한 번꼴로 먹는다고 해야 한다. 옷도 자주 갈아입는다고 해라. 알았지?”

“예!”

아침부터 정문 앞에는 전원생이 새 옷을 입고 줄지어 선 채 곧 들이닥칠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객들을 태운 군용버스가 정문 앞에 나타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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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