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푸릇하게 ④하동송림

한 목민관의 애민 정신이 깃든 숲

오래전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한민족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자태를 뽐내는 것은 물론, 단단한 철갑을 두른 듯한 줄기의 껍질, 올곧게 솟아난 형태, 궂은 날씨마저 견디는 모습이 강인한 생명력과 올곧은 기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나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전국 어디서도 소나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큰 규모로 숲을 이루는 것은 주로 강원도의 산간 지역이지만, 남도서도 울창한 소나무 숲을 찾아볼 수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의 소나무 숲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 유역, 봄꽃으로 이름난 이곳에 큰 규모의 소나무 숲이 자리한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인 ‘하동송림’이다.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만든 인공 숲이다. 하동 주민들이 섬진강서 날아오는 모래바람에 고초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가 관리들에게 강변에 소나무 숲을 조성하라는 명을 내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소나무 숲을 만들어 섬진강과 마을 사이를 가로막아 모래나 바닷바람이 날아드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하동도호부사 전천상의 조치에 감복했고, 대를 이어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됐다.

이 소나무 숲은 단순히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섬진강과 모래사장,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도 선물했다. 아름다운 이 풍경 덕분에 하동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의 모습은 일부만 남아 있다. 지금은 900여그루의 소나무만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하동송림에는 초창기에 심었던 것들을 비롯해 후계목(천연기념물과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개체), 군민이 기증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이 범람해 마을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송림 한가운데 제방을 쌓았고, 제방 안쪽에 자리한 소나무 숲은 시간이 흘러 마을이 커짐에 따라 하동송림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현재 하동중학교와 하동고등학교, 광평마을 일부까지도 전천상이 조림한 소나무 숲이었다고 하니, 어림짐작으로나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섬진강을 곁에 두고 각양각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 꾸준히 후계목을 심어 하동송림을 유지하려는 하동군과 주민의 노력 덕분이다. 남은 소나무 숲을 중심으로 송림공원이 조성돼있다.

전천상의 공로를 기리는 기적비(사적을 적은 비)가 그 시작점이다. 2016년, 하동군수 명의로 세운 이 기적비에는 그의 출신부터 하동도호부사 부임 후 업적에 관해 상세히 쓰여 있다.

관리번호 1번목인 ‘맞이나무’가 기념비 뒤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듯이 줄기를 겸손하게 숙이고 있다. 그 건너편으로는 관리번호 2번목 ‘원앙나무’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바로 옆에서 씨앗을 틔운 뒤, 자라나며 하나가 된 연리목이다.

사람의 인체를 빼닮았다는 관리번호 45번목 ‘고운매나무’, 나뭇가지를 펼친 형태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못난이나무’가 된 관리번호 552번 등은 입구서 사진으로 먼저 만날 수 있다. 보물찾기하듯이 하나씩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숲 한가운데로 오솔길이, 가장자리로는 자전거도로를 겸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어느 길이든 천천히 거닐어 보자. 반드시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소나무 숲을 즐기면 된다. 소나무마다 각기 다른 모양새로 줄기를 뻗은 모습이 서로 다르면서도 사뭇 조화를 이룬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볕이 더해지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동읍의 북적이는 거리와는 상반되는 분위기가 마치 속세를 벗어난 순간을 느끼게끔 해주는 것만 같다.

하동송림공원의 독특한 풍경과 경험

소나무는 잎에서 천연 제초제라 불리는 갈로타닌을 생성한다. 갈로타닌은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타감작용을 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숲에서 다른 식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동송림공원에 솔잎이 켜켜이 쌓인 것도 이 같은 특성 때문이다.

두툼하게 쌓인 솔잎은 오가는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한 감촉을 준다. 그러니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걷지 않아도 된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 솔잎이 쌓인 숲을 자유롭게 거닐어 보자.

하동송림공원의 서쪽 끝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바다와 가까워지며 느리게 흐르는 강은 곳곳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남겨뒀다. 먼 옛날에는 이 모래사장이 소나무 숲을 조성하게 된 원인이었겠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주민과 여행자들에게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사시사철 초록빛을 유지하는 하동송림공원과 함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섬진강 모래사장은 방문객들 사이서 맨발 걷기 명소로 손꼽힌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바지를 살짝 걷은 뒤 강가를 따라 걸어 보자. 부드러운 모래와 시원한 강물은 발끝으로부터 온몸으로 활기를 공급한다. 탁 트인 하늘이 하동송림공원의 빼곡한 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하동송림공원과 섬진강, 그리고 소백산맥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눈에 담는 방법이 있다. 하동송림공원의 남쪽 끄트머리서 찾아볼 수 있는 ‘알프스 하모니 철교’에 올라가 보자. 알프스 하모니 철교는 옛 경전선 철도가 지났던 곳으로, 2016년 이설되며 폐선된 경전철교를 보행교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알프스 하모니 철교부터 옛 하동역이 있는 자리까지 약 2.3㎞ 구간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이어지기도 한다. 선로의 흔적이 남아 있어 경전선이 지났던 구간이라는 사실을 느끼기에도 좋다. 철교 위에는 전망 시설이 설치돼있으니 꼭 들러보자.

알프스 하모니 철교는 섬진강 건너 전라남도 광양시와도 연결된다. 경전선 개통 당시, 대전을 거치지 않고도 영남과 호남을 연결한다는 상징성을 오롯이 지켜낸 셈이다. 섬진강 위를 걸어서 영남과 호남을 오가며 섬진철교(알프스 하모니 철교의 옛 이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은 하동군의 고즈넉한 정취는 다른 곳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악양면 평사리가 대표적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이곳에는 주요 무대 중 하나였던 최참판댁이 조성돼있다.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를 드라마화하는 과정서 세트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주요 인물이 살았던 집이 충실히 구현돼있다. 최참판댁 내에 자리한 박경리문학관도 함께 둘러보자.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소백산맥의 능선을 파노라마로 펼쳐 놓은 조망 명소가 최참판댁 근처에 하나 더 있다. 섬진강 수면을 기준으로 150m 높이에 설치된 스타웨이하동은 삼각형 형태의 공중 보행시설(스카이워크), 카페 등을 갖춘 전망대다. 툭 튀어나온 전망대 주변으로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와 구조물이 없어 악양평야와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토지

하동군의 초록빛 겨울은 하동송림 덕분만은 아니다. 화개면을 중심으로 산골짜기마다 자리한 차밭 또한 한겨울까지 싱싱한 초록빛을 자랑한다. 화개면 깊숙한 곳에 하동야생차문화센터가 있다. 하동의 녹차에 관한 역사, 차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박물관을 시작으로 체험장과 판매장, 치유관 등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최근 개장한 ‘티카페 하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하동송림공원→스타웨이하동→최참판댁→하동야생차문화센터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하동케이블카→하동코리아짚와이어→하동송림공원→최참판댁
-둘째 날 스타웨이하동→화개장터→쌍계사→하동야생차문화센터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하동군 문화관광 https://www.hadong.go.kr/tour.web
-박경리문학관 http://www.hdmunhak.com/park
-스타웨이하동 http://www.starwayhadong.com
-하동야생차박물관 http://www.hadongteamuseum.org

문의 전화
-하동군 관광안내 콜센터 1588-3186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055)880-2375
-최참판댁 055)880-2960
-박경리문학관 055)882 -2675
-스타웨이하동 055)884-7410
-하동야생차박물관 055)884-2955
-티카페하동 070)4171-8873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하루 33회(05:08~22:23) 운행(KTX, ITX-마음, 무궁화호), 1시간57분~4시간26분 소요. 광주송정역서 경전선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 환승(하루 1회, 10:33), 하동역 하차 후 도보 121m 이동, 하동버스터미널서 A1번 버스 탑승, 하동도서관 하차, 도보 236m 이동, 하동송림공원 도착

*문의: 한국철도공사 1544-7788 (레츠코레일 https://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남부터미널-하동버스터미널, 하루 8회(06:40, 09:00, 11:00, 13:00, 14:30, 16:20, 17:40, 19:30), 3시간50분 소요, 하동버스터미널서 A1번 버스 탑승, 하동도서관 하차, 도보 236m 이동, 하동송림공원 도착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02)520-6871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하동IC→계천사거리서 ‘구례, 쌍계사, 하동’ 방면으로 우회전→신월교차로서 ‘쌍계사, 구례, 하동’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11시 방향→신기교차로서 ‘남원, 구례’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11시 방향→송림회전교차로서 ‘송림공원’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7시 방향→하동송림공원

숙박 정보
-최참판댁 한옥호텔(https://www.hadong.go.kr/hdhanok.web), 악양면 평사리길, 055)883-2225
-하늘꼬마키즈풀빌라(https://skykids.modoo.at), 북천면 경서대로, 010-3889-7905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https://www.kensington.co.kr/rhd), 화개면 쌍계로, 055)880-8090

식당 정보
-황금재첩식당(재첩모둠정식): 화개면 섬진강대로, 010-8628-2677
-평사리토지장터주막(최참판댁 內)(소고기국밥): 악양면 평사리길, 055)880-2960
-여명가든(녹차오리구이): 악양면 성두길, 055)883-5292

주변 볼거리
하동화개장터, 금오산도립공원, 쌍계사(하동), 삼성궁, 지리산생태과학관, 하동케이블카, 하동 코리아 짚와이어, 매암차문화박물관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