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푸릇하게 ④하동송림

한 목민관의 애민 정신이 깃든 숲

오래전부터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한민족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선의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자태를 뽐내는 것은 물론, 단단한 철갑을 두른 듯한 줄기의 껍질, 올곧게 솟아난 형태, 궂은 날씨마저 견디는 모습이 강인한 생명력과 올곧은 기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나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전국 어디서도 소나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큰 규모로 숲을 이루는 것은 주로 강원도의 산간 지역이지만, 남도서도 울창한 소나무 숲을 찾아볼 수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의 소나무 숲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 유역, 봄꽃으로 이름난 이곳에 큰 규모의 소나무 숲이 자리한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인 ‘하동송림’이다.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만든 인공 숲이다. 하동 주민들이 섬진강서 날아오는 모래바람에 고초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가 관리들에게 강변에 소나무 숲을 조성하라는 명을 내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소나무 숲을 만들어 섬진강과 마을 사이를 가로막아 모래나 바닷바람이 날아드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하동도호부사 전천상의 조치에 감복했고, 대를 이어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됐다.

이 소나무 숲은 단순히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섬진강과 모래사장,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도 선물했다. 아름다운 이 풍경 덕분에 하동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의 모습은 일부만 남아 있다. 지금은 900여그루의 소나무만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하동송림에는 초창기에 심었던 것들을 비롯해 후계목(천연기념물과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개체), 군민이 기증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이 범람해 마을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송림 한가운데 제방을 쌓았고, 제방 안쪽에 자리한 소나무 숲은 시간이 흘러 마을이 커짐에 따라 하동송림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현재 하동중학교와 하동고등학교, 광평마을 일부까지도 전천상이 조림한 소나무 숲이었다고 하니, 어림짐작으로나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섬진강을 곁에 두고 각양각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 꾸준히 후계목을 심어 하동송림을 유지하려는 하동군과 주민의 노력 덕분이다. 남은 소나무 숲을 중심으로 송림공원이 조성돼있다.

전천상의 공로를 기리는 기적비(사적을 적은 비)가 그 시작점이다. 2016년, 하동군수 명의로 세운 이 기적비에는 그의 출신부터 하동도호부사 부임 후 업적에 관해 상세히 쓰여 있다.

관리번호 1번목인 ‘맞이나무’가 기념비 뒤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듯이 줄기를 겸손하게 숙이고 있다. 그 건너편으로는 관리번호 2번목 ‘원앙나무’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바로 옆에서 씨앗을 틔운 뒤, 자라나며 하나가 된 연리목이다.

사람의 인체를 빼닮았다는 관리번호 45번목 ‘고운매나무’, 나뭇가지를 펼친 형태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못난이나무’가 된 관리번호 552번 등은 입구서 사진으로 먼저 만날 수 있다. 보물찾기하듯이 하나씩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숲 한가운데로 오솔길이, 가장자리로는 자전거도로를 겸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어느 길이든 천천히 거닐어 보자. 반드시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소나무 숲을 즐기면 된다. 소나무마다 각기 다른 모양새로 줄기를 뻗은 모습이 서로 다르면서도 사뭇 조화를 이룬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볕이 더해지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하동읍의 북적이는 거리와는 상반되는 분위기가 마치 속세를 벗어난 순간을 느끼게끔 해주는 것만 같다.

하동송림공원의 독특한 풍경과 경험

소나무는 잎에서 천연 제초제라 불리는 갈로타닌을 생성한다. 갈로타닌은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타감작용을 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숲에서 다른 식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동송림공원에 솔잎이 켜켜이 쌓인 것도 이 같은 특성 때문이다.

두툼하게 쌓인 솔잎은 오가는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한 감촉을 준다. 그러니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걷지 않아도 된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 솔잎이 쌓인 숲을 자유롭게 거닐어 보자.

하동송림공원의 서쪽 끝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바다와 가까워지며 느리게 흐르는 강은 곳곳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남겨뒀다. 먼 옛날에는 이 모래사장이 소나무 숲을 조성하게 된 원인이었겠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주민과 여행자들에게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사시사철 초록빛을 유지하는 하동송림공원과 함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섬진강 모래사장은 방문객들 사이서 맨발 걷기 명소로 손꼽힌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바지를 살짝 걷은 뒤 강가를 따라 걸어 보자. 부드러운 모래와 시원한 강물은 발끝으로부터 온몸으로 활기를 공급한다. 탁 트인 하늘이 하동송림공원의 빼곡한 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하동송림공원과 섬진강, 그리고 소백산맥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눈에 담는 방법이 있다. 하동송림공원의 남쪽 끄트머리서 찾아볼 수 있는 ‘알프스 하모니 철교’에 올라가 보자. 알프스 하모니 철교는 옛 경전선 철도가 지났던 곳으로, 2016년 이설되며 폐선된 경전철교를 보행교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알프스 하모니 철교부터 옛 하동역이 있는 자리까지 약 2.3㎞ 구간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이어지기도 한다. 선로의 흔적이 남아 있어 경전선이 지났던 구간이라는 사실을 느끼기에도 좋다. 철교 위에는 전망 시설이 설치돼있으니 꼭 들러보자.

알프스 하모니 철교는 섬진강 건너 전라남도 광양시와도 연결된다. 경전선 개통 당시, 대전을 거치지 않고도 영남과 호남을 연결한다는 상징성을 오롯이 지켜낸 셈이다. 섬진강 위를 걸어서 영남과 호남을 오가며 섬진철교(알프스 하모니 철교의 옛 이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은 하동군의 고즈넉한 정취는 다른 곳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악양면 평사리가 대표적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이곳에는 주요 무대 중 하나였던 최참판댁이 조성돼있다.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를 드라마화하는 과정서 세트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주요 인물이 살았던 집이 충실히 구현돼있다. 최참판댁 내에 자리한 박경리문학관도 함께 둘러보자.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소백산맥의 능선을 파노라마로 펼쳐 놓은 조망 명소가 최참판댁 근처에 하나 더 있다. 섬진강 수면을 기준으로 150m 높이에 설치된 스타웨이하동은 삼각형 형태의 공중 보행시설(스카이워크), 카페 등을 갖춘 전망대다. 툭 튀어나온 전망대 주변으로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와 구조물이 없어 악양평야와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토지

하동군의 초록빛 겨울은 하동송림 덕분만은 아니다. 화개면을 중심으로 산골짜기마다 자리한 차밭 또한 한겨울까지 싱싱한 초록빛을 자랑한다. 화개면 깊숙한 곳에 하동야생차문화센터가 있다. 하동의 녹차에 관한 역사, 차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박물관을 시작으로 체험장과 판매장, 치유관 등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최근 개장한 ‘티카페 하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하동송림공원→스타웨이하동→최참판댁→하동야생차문화센터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하동케이블카→하동코리아짚와이어→하동송림공원→최참판댁
-둘째 날 스타웨이하동→화개장터→쌍계사→하동야생차문화센터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하동군 문화관광 https://www.hadong.go.kr/tour.web
-박경리문학관 http://www.hdmunhak.com/park
-스타웨이하동 http://www.starwayhadong.com
-하동야생차박물관 http://www.hadongteamuseum.org

문의 전화
-하동군 관광안내 콜센터 1588-3186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055)880-2375
-최참판댁 055)880-2960
-박경리문학관 055)882 -2675
-스타웨이하동 055)884-7410
-하동야생차박물관 055)884-2955
-티카페하동 070)4171-8873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하루 33회(05:08~22:23) 운행(KTX, ITX-마음, 무궁화호), 1시간57분~4시간26분 소요. 광주송정역서 경전선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 환승(하루 1회, 10:33), 하동역 하차 후 도보 121m 이동, 하동버스터미널서 A1번 버스 탑승, 하동도서관 하차, 도보 236m 이동, 하동송림공원 도착

*문의: 한국철도공사 1544-7788 (레츠코레일 https://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남부터미널-하동버스터미널, 하루 8회(06:40, 09:00, 11:00, 13:00, 14:30, 16:20, 17:40, 19:30), 3시간50분 소요, 하동버스터미널서 A1번 버스 탑승, 하동도서관 하차, 도보 236m 이동, 하동송림공원 도착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02)520-6871 (시외버스 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하동IC→계천사거리서 ‘구례, 쌍계사, 하동’ 방면으로 우회전→신월교차로서 ‘쌍계사, 구례, 하동’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11시 방향→신기교차로서 ‘남원, 구례’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11시 방향→송림회전교차로서 ‘송림공원’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7시 방향→하동송림공원

숙박 정보
-최참판댁 한옥호텔(https://www.hadong.go.kr/hdhanok.web), 악양면 평사리길, 055)883-2225
-하늘꼬마키즈풀빌라(https://skykids.modoo.at), 북천면 경서대로, 010-3889-7905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https://www.kensington.co.kr/rhd), 화개면 쌍계로, 055)880-8090

식당 정보
-황금재첩식당(재첩모둠정식): 화개면 섬진강대로, 010-8628-2677
-평사리토지장터주막(최참판댁 內)(소고기국밥): 악양면 평사리길, 055)880-2960
-여명가든(녹차오리구이): 악양면 성두길, 055)883-5292

주변 볼거리
하동화개장터, 금오산도립공원, 쌍계사(하동), 삼성궁, 지리산생태과학관, 하동케이블카, 하동 코리아 짚와이어, 매암차문화박물관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