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야구인생 50년' 김응룡의 새로운 도전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15 1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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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갔다고?…코끼리 카리스마 죽지 않았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프로선수가 못하면 죽어야지."
김응룡 한화이글스 신임 감독이 선수들에게 던진 첫 마디다. 과연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위업을 달성한 '우승청부사'답다. 김 감독은 제자 이종범을 불러들이는 등 코치진을 새로 꾸리며 한화의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김 감독은 오랜 공백과 고령이라는 핸디캡을 뚫고 최약체 한화를 강팀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 내년 시즌 '만년 최약체' 한화의 반란이 기대된다.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명장'이 돌아왔다. '코끼리' 김응룡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독수리 군단의 제9대 사령탑으로 낙점된 것이다.

지난 8일 한화이글스 구단은 언론 발표를 통해 김 감독과 계약기간 2년, 계약금 3억원에 연봉 3억원(총액 9억원)에 계약했음을 알렸다. 이로써 김 감독은 2004년 말 삼성 라이온즈 감독직을 내려놓은 지 8년 만에 구장으로 복귀했다.

김응룡 한화이글스 신임 감독은 지난 10일 대전을 방문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첫걸음을 뗐다. 대전구장에 도착한 김 감독은 한화프런트의 안내를 받아 구장을 천천히 둘러본 뒤 노재덕 단장과 한용덕 수석코치, 송진우 코치 등 구단 관계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다시 감독으로 부임하게 돼 설레고 기분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고의 지도자'
메가톤급 복귀

이어 구단 운영에 대해서 그는 "그동안 한화가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보여줬다"며 "선수들을 돈 주고 영입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는 만큼 신인선수들을 잘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데려오기보다는 신인발굴을 통해 내실을 다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앞으로 함께할 선수들에게 특별히 주문할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프로선수라면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본인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프로가 못하면 죽어야지"라고 말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김 감독은 이날 코치진들과 오찬을 가진 후 서산 2군 구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김 감독은 평생 야구 하나만을 붙들고 살아왔다. 반세기 세월 동안 선수에서 감독, 또 구단사장으로 오로지 한우물을 파 온 외길 인생이다. 그 결과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해 '우승청부사'로 불릴 만큼 최고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김응룡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1963년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였다. 김 감독은 부산상고를 나와 남전(현 한국전력), 미창(현 대한통운)에서 투수와 1루수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 그는 실업야구 최고의 강타자로써 한국 대표로 발탁됐고 1루수와 4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당시 열린 일본과의 경기 결승에서 8회 초 2점짜리 홈런을 날리는 등 한국팀의 3타점을 올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노하우 전수
오랜 공백과 고령 핸디캡 극복할까

이후 김 감독은 새로 창단된 크라운맥주로 이적했고 크라운맥주가 한일은행에 합병되며 한일은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60∼70년대 각종 대회 홈런왕은 모두 그의 차지 였을 정도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김 감독은 1972년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한일은행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감독이 된 첫해에 전국 선수권 대회와 실업 여름철 리그에서 우승했다. 1980년 대통령배 실업 리그도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으로서 능력을 입증받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 김 감독은 기아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 김 감독은 프로야구 첫 우승을 맛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이후 총 9차례나 해태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키며 사령탑으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 감독은 2001년 해태의 라이벌이자 한국시리즈 무관에 허덕이고 있던 삼성라이온즈로 거취를 옮겼다. 이듬해 김 감독은 삼성을 우승으로 이끌며 사자군단의 한을 해소했다.

반세기 야구인생
한우물만 팠다

사실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김 감독이 이끌던 해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 번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호랑이만 아니었다면 사자의 한국시리즈 무관행진은 좀 더 일찍 끝났을지도 모르는 것. 그 중심에 있던 김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자 해태를 제치고 우승한 것이다.  

김 감독은 개인 통산 12회 한국시리즈 진출에 10회 우승 기록, 단일팀 18년 집권에 9회 우승 기록이라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메달의 기쁨을 안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4년 선동열 감독에게 삼성 지휘봉을 넘긴 뒤 삼성 구단의 CEO로 승격했다. 야구 현역 출신으로 구단 CEO 자리까지 오른 것은 지금까지 김 감독이 유일하다.

김 감독은 2010년 삼성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야구계 원로로서의 삶을 즐겼다. 하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관심은 꺼질 줄 몰랐다.

그 결과 올해 김 감독은 현역 감독 복귀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검증된 감독을 찾고 있던 한화와 뜻이 맞아 한화의 사령탑으로 전격 복귀한 것이다.

'명장'만난 독수리 비상 준비 "반란 기대"
이종범 불러들여 '만년 최약체' 체질개선

앞서 지난달 20일 김 전 감독은 KBS2TV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 21년에 걸친 긴 감독 생활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화들을 털어놓으며 복귀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 전 감독은 자신을 "11세의 야구 소년 김응룡입니다"라고 소개해 아직도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날 김 감독 양옆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나란히 눈에 띄었다. 1990년대 프로야구를 주름 잡았던 야구스타 이종범, 양준혁이었다.

현역시절 김 감독은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재밌는 어록을 남겨 온라인상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야구 외적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 감독은 이날 예능 프로에서도 재치 있는 입담을 보여줬다.


선수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묻는 말에 김 감독은 특유의 뚝심을 발휘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절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며 "감독이 초조해하면 선수들이 불안해할까 싶어 항상 신경안정제를 몰래 복용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입원하게 될까봐 감독 시절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며 "은퇴 후 첫 건강 검진에서 혹이 7개가 발견돼 암 직전 상태였다"며 털어놓기도 했다.

김응룡-이종범
15년만의 결합

평상복을 입을 땐 부처지만 유니폼만 입으면 불같은 성격으로 변한다는 김 감독은 감독 시절 심판에게 항의하다 18번이나 퇴장을 당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팬들을 위한 쇼맨십이기도 하지만 10점 차로 져도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프로정신을 보여줬다.

김 감독은 함께 출연한 이종범이 "한국시리즈 3번이나 우승했는데 칭찬 한마디 없으셨다"고 하자 "네가 나보다 야구를 잘하는데 무슨 칭찬을 하겠느냐"고 센스 있게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김 감독과 이종범의 인연은 무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일고-건국대를 졸업하고 1993년 해태에 데뷔한 이종범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이가 다름 아닌 김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종범은 입단하자마자 한국시리즈 MVP와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고, 김 감독에게 7번째 우승컵을 선물했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김성한이 현역 은퇴하며 위기감이 고조된 1996∼1997년에도 이종범은 불방망이와 날쌘 발을 뽐내며 해태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었다. 즉 김 감독과 이종범이 함께 한 1993∼1997년 5년간 무려 3번의 우승을 일궈내며 환상의 조합을 보여준 것이다.


김 감독은 해태 부임 당시 이종범에 대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잘하는 선수"라며 "나보다 야구를 더 잘하는데 무슨 조언을 하겠나"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그는 또 "20승 투수와도 바꿀 수 없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며 이종범을 곁에 두고 싶은 가장 훌륭한 제자로 추켜세웠다. 이종범도 그런 김 감독에게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라며 무한한 존경심을 나타낸 바 있다.

"프로가 못하면 죽어야지"
한화구단 첫 방문서 으름장

김 감독은 이종범의 LG코치행이 와전된 소식으로 알려지자 그를 직접 만나 한화 코치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구단으로부터 코치진 선임 전권을 부여받은 김 감독이 가장 먼저 찾아 나선 사람이 바로 이종범인 셈이다. 이종범도 스승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종범은 지도자 데뷔를 정든 타이거즈가 아니라 연고가 없는 이글스에서 시작하게 됐다.

지난 10일 한화는 "이종범과 연봉 5000만원에 코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앞서 김 감독은 "이종범은 타격이든 주루든 수비든 뭐든 맡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 같으면 한 방 있는 선수가 중요했지만 요즘은 뛰는 야구로 추세가 바뀌어 발 빠른 선수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종범은 주루코치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이종범은 특히 현역 선수시절 주루플레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한 시즌 단일경기 최다도루 6개(1993년)를 비롯해 단일시즌 최다도루 84개(1994년), 한국시리즈 7연속 도루성공 (1993년 한국시리즈 삼성전) 등의 압도적 기량으로 '바람의 아들'이란 별칭을 얻었다.

한화는 최근 4시즌 간 3차례나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최약체 팀이다. 김태균, 류현진 등을 제외하면 정상급 선수는 거의 없고, 심지어 다른 팀에 가면 주전 자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선수들도 있다. 또 한화는 상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맛이 떨어지는 팀으로 불린다. 경기가 조금이라도 기울면 승부를 포기해버리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성적 부진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팀에 패배적인 분위기가 드리운 것이다.

정신 재무장 강조
"내년엔 일낸다"

하지만 김응룡·이종범 체제에서는 용납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의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이종범의 끈질긴 근성을 앞세워 한화 선수들의 정신 재무장이 기대되는 것이다. 야구는 정신력과 집중력의 스포츠라는 점에서 정신무장은 필수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금까지 김 감독의 스타일은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자율야구에 가까웠다. 김 감독이 이끈 해태(현 기아)와 삼성은 스타선수들이 적지 않게 포진된 만년 우승 후보팀이었고 김 감독은 지금까지 강렬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끌어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 냈다.

따라서 김 감독이 스타군단 지원 없이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는 한화를 새로운 팀으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승제조기'와 ‘만년 최약체’의 만남. 내년 시즌 '꼴찌의 반란'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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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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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