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버려진 북파공작원, HID 요원들 비스토리

내란 동원된 대북 살인 병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오혁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해 HID(북파공작원,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가 언급되고 있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인 HID가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관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일각에선 그림자처럼 살아온 HID 요원들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토로했다.

앞서 노상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 ‘정보사령부 수사2단’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시키면 다 하고, 힘 좀 쓰는 애들”이라는 기준 아래에 HID 요원도 합류시켰다. ‘살인 병기’로 훈련된 HID의 전술적 판단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반면, 정부는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고, 보상조차 까다롭게 했다. 오죽하면 스스로 “(정부가) 키워서 잡아먹는 돼지 같다”고 평가했을까?

체포된 윤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령부 고위 간부 출신 제보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이 원스타다.

또, 비밀 조직 특성상 역할이 도드라진 적이 없다. 1980년 12·12 사태 때도 정보사는 주요 가담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 정보사가 계엄에 관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HID는 북한에 침투해 고위층을 암살하고 파괴 공작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다. 국내 민간인을 상대로 HID를 투입했다는 것은 반대 세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적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지금까지 예우와 보상 문제 해소되지 않아
“다쳐도 병원 못 가”···상이 등급 ‘별 따기’

일각에선 투입 목적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나 거짓 민란 기획 등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체를 통해 “(작전에)깊숙이 관여돼있던 인원의 양심 고백을 들었다”며 “선관위 과장 등 핵심 실무자 30명을 무력 제압해 케이블타이로 손·발목을 묶고 복면을 씌워 B-1 벙커로 데려오라는 임무였다”고 말했다.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용현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 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용현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상원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상원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권력의
그림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는 HID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휴전 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 지역에 파견돼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후방을 교란할 목적으로 양성됐으며 적 생포 및 사살, 적군 진지 주요시설물 파괴, 적지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 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이 주요 임무였다.

HID는 북파공작원의 대명사로 통한다. 과거 북파 작전을 수행했던 부대는 여럿 존재했다. HID의 전신은 1948년 1월 미 군정청 국방총사령부 정보과다. 이후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 안에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공작과가 신설됐는데, 이 부서가 영문자 HID로 표기됐다.

육군첩보부대가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한 기간은 1950년 7월부터 1961년 7월까지다.

이후 HID라는 명칭이 육군정보부대(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변경됐다. HID는 현재 정보사령부 산하서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육상특임대인 ‘설악개발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과거 정부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응징보복부대로 설악개발단을 비롯한 해군의 UDU 등 특수부대를 여럿 창설했다.

1972년 AIU는 육군정보사령부(AIC: Army Intelligence Command)로 확대됐고, 1990년 11월 육군과 해군 등의 정보부대가 합쳐져 오늘날의 국군정보사령부(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등 화해 분위기를 타고 폐쇄와 통폐합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독한
후유증

HID 요원들은 조선인민군 복장을 위장 착용하고 보급 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서 생식, 칡뿌리 등을 먹어가며 버티기도 했다.


어떤 요원은 “훈련 당시 헬기서 속옷만 입은 채 숲에 던져진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지만, 그때는 살기 위해 죽어라 (훈련)했다”며 “HID 출신들은 대부분 강제 징집된 사람들이다. 나도 1970년대 후반에 특전사에 지원했지만, ‘제대하면 집도 주고 억대 연봉을 주고 특별 대우해주는 부대가 있다’는 말에 따라간 곳이 설악개발단이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HID 훈련 기간은 60개월 이상이었고, 속초에 갇혀 생활했다. 보안상 휴가도, 병원도 보내주지 않았다”며 “임무에는 3인 1조로 투입됐지만, 각각 임무 내용이 다른 적도 있어 사실상 개인적으로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무 수행 중 다치면 자결이나 자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작전에 투입돼 살아온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북파공작원 보상을 위해 정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51년 HID가 창설된 뒤 1994년까지 양성한 HID는 1만3000명이며, 임무 수행 중 7987명이 사망·실종됐다.

HID에 30년 이상 몸담았던 고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서야 요원을 관리하는 공작팀장을 잘 만나면 훈련 중 다쳐도 조용히 병원에 보내줬지만, 예전엔 신분 노출 우려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보자 본인도 훈련 중 발목과 허리를 다쳤지만, 국군병원에 갈 수 없어 2010년까지 약으로 버텼다고 주장했다. 수술을 받고 제대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참아야 했다.

처참히 짓밟히고 무시당한 흑역사
사령관 진급 때문에···불명예 투입

이후 그는 목과 허리디스크에 철심 10여개를 박아 넣는 수술을 받고 2015년경 제대했으나, 상이 등급을 인정받지 못했다. 부상 당시 병원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보훈처에 “북파공작원 특성상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주장했음에도 상이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로 전역했다.


통상 척추부상과 관련해 추상적인 용어인 경미한 기능장애 기준을 구체화해 ‘엑스레이 검사 등에서 명백한 기형’이 있거나, ‘추체 높이 10% 이상 30% 미만의 압박골절’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 7급을 인정하게 된다.

HID 부대원들의 역사와 훈련 과정은 듣기만 해도 일반인이 견디기 힘든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가치와 명예를 믿기 때문이다. 실제 군인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 <강철부대3>서 압도적인 기량과 팀워크를 선보이며 우승한 HID 출신 강민호 팀장도 ‘진짜 영광은 현역분들께’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한 HID 요원은 인터뷰서 계엄 동원 및 임무 지시에 대한 수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자기 군번도 모르고 그냥 훈련만 받다가 나중에 기간이 끝나면 (급여)통장 받고서 집에 가는 시스템”이라며 “계엄 동원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다. 거기(HID) 인원들은 사회와 아예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뉴스나 신문을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은 어떤 정치 이념도 갖지 않고, 하달받은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계급도
명예도

만약 국내 정치인 사살 명령이 있었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지 묻는 질문에는 “그냥 저 사람 죽이라면 안 죽이겠죠. 그런데 ‘저 사람이 지금 우리나라서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어떤 간첩 활동을 하고 있어’라고 잘 포장했으면 죽였을 수도 있겠지만, 북파공작원들은 그런 거에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선택(명령)을 내린 분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HID는 존재 그 자체로도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 전력으로서 의미가 있는 부대다. 취재진이 만난 HID 출신들은 하나같이 “12·3 내란 사태로 반란과 테러에 동원되는 부대라는 오해는 불명예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짜 간첩과 싸운 ‘김신조 사건’ 재조명

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군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다.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 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침투한 31명 중 사살 29명, 미확인 1명, 투항 1명(김신조 소위)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때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비군과 5분대기조, 그리고 육군 3사관학교가 창설됐다.

을지 연습과 유격훈련이 이 사건을 계기로 생겨났고, 육군 방첩대가 국군보안사령부로 개칭하고 조직을 개편했다.

이 사건의 보복을 위해 창설된 4개 부대가 바로 선갑도부대(육군), 장봉도부대(해군), 684부대(공군, 실미도) 마니산 까치부대(해병대)였다.

첩보조직들도 김신조 일당의 침투 이후 이에 대응하고자 보강했으며 이때부터 특수공작부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전략 목표·전술 목표·훈련 계획 등을 정하고 조직도 개편했는데 설악개발단 창설기획자인 이춘국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선갑도부대가 803대로 변경됐고, HID 기능을 이어받은 설악개발단이 909대로 확대 편성됐다.

북한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공작원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비밀스러운 공작의 세계만큼이나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0년 하반기부터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말로만 듣던 북파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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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