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동화마을 ④하이원추추파크

정읍인가? 유럽인가?

장쾌하고 다부진 오봉산 산줄기를 따라 눈꽃이 환하게 피었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스위치백트레인을 타고 바라본 설산은 가히 하얗다 못해 푸르다. 삼척 하이원추추파크는 철도 테마 리조트로,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트레인과 옛 영동선 철길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 산악형 레일바이크, 키즈카페와 체험형 실내동물원, 독채형 리조트 시설을 두루 갖춰 동화 같은 기차 마을 여행지로 꼽힌다.

하이원추추파크의 대표 체험 시설은 스위치백트레인이다. 스위치백트레인은 19 63년 첫 개통 이후 2012년 6월 솔안터널이 완공되면서 50년의 역사로 마감해야 했지만, 하이원추추파크에서 스위치백구간을 보존하려 다시 경적을 울렸다. 증기기관차와 같은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는 클래식하게 꾸며 볼거리를 더했고 오전 11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힘차게 달린다. 

스위치백트레인

그 옛날 기차는 어떻게 험준한 고갯길을 넘었을까. 옛날에는 고개 위 통리역과 고개 아래 심포리역에 기차가 도착하면 통리재의 경사가 너무 심해 더는 가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과거 승객들은 걸어서 고갯길을 오르내렸다. 화물열차는 쇠밧줄로 한 량씩 끌어서 올리거나 내려보냈다. 고개 아래가 스위치백 구간이었다. 스위치백은 경사가 가파른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고저차를 극복하기 위해 갈지자(之) 형태의 기찻길을 설치해 열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다니도록 만든 산악 철도다. 하이원추추파크의 스위치백트레인은 추추스테이션과 흥전삭도마을을 왕복(16.8㎞)하는 110분 코스다. 

3량으로 연결된 기차는 칸마다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앉으면 된다. 가운데 칸은 고풍스러운 조명으로 꾸며졌는데,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 배경이다. 스위치백트레인의 역사를 이어가는 이헌문 기관사는 국내 유일하게 남은 지그재그 기차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담아 직접 해설을 한다. 철로 변경을 위해 스위치백트레인의 앞뒤를 오가는 동안, 모든 승객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할 정도로 친절하다. 

기차는 흥전삭도마을에서 30여분 정차한다. 이 마을은 폐광 지역의 산업 유산을 활용한 관광자립형 마을로 기찻길 옆 벽화마을, 트릭아트 포토존 등 볼거리를 제법 갖췄다. 마을회관 부녀회에서 판매하는 추추찹쌀도넛과 잔치국수, 채소전, 전병 등 따끈한 주전부리는 겨울의 찬 공기를 녹인다. 기차 안에서 미리 주문해두면 정차시간에 맞춰 음식을 준비해주니, 드라이브스루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추추스테이션은 유럽 고성처럼 우뚝 솟아 멋스럽다. 내부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시설도 갖춰져 있다. 2층 체험형 실내 동물원 ‘장생족장과 함께하는 정글대탐험’에서는 황금 앵무새, 미어캣, 크레스티드 개코, 파란혀도마뱀, 사향고양이 등 전 세계에 분포해 있는 절지류, 양서류, 파충류 등 60여종의 동물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 동물해설사의 전문적인 설명과 함께 동물을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어 알차다. 1층 슈퍼윙스 키즈카페는 계절과 날씨와 상관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공간이다. 외부에는 미니트레인과 회전목마, 미니관람차, UFO스윙 등 놀이기구가 있고, 부대시설로 편의점과 특산물 판매점, 오락시설 등이 있어 온종일 머무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이원추추파크는 편안한 여행을 위한 네 가지 형태의 숙박시설을 골고루 갖췄다. 네이처빌은 프라이빗 빌라 형태의 단독형 숙박시설로 15동 규모다. 북유럽 작은 마을에 온 듯한 전경이 이국적인 분위기의 객실이다. 큐브빌은 현대식 옥상 정원으로 꾸미고 경사 지형을 반영하여 만든 객실이다. 아이들은 실제 기차를 개조해서 만든 트레인빌을 선호한다. 총 7개 객실 가운데 다자녀를 위한 가족형 다인실룸인 트레인패밀리는 최대 6명까지 머물 수 있다. 총 35동의 글램핑장도 마련되어 겨울철 낭만의 야외 바비큐도 즐기기 좋다. 

다양한 테마의 기차 운영
여행객을 위한 체험·숙박시설 마련

우리나라 탄맥을 품은 통리탄탄파크도 지척이다. 1982년 개광해 2008년 폐광까지 탄광도시 태백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한보광업소 통보탄광의 자리였는데,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장으로 유명해져, 유시진 대위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광장의 발칸이오니아 건물에서는 동물과 함께하는 AR포토존과 용궁 체험이 아이들에게 인기다. 미디어아트로 빛을 품게 된 갱도는 ‘기억을 품은 길’에서 시작해 ‘빛을 찾는 길’로 나오며 탄광의 역사와 미래를 되짚는다. 두 갱도 사이에는 백두대간의 풍광이 펼쳐지고, 산책로 곳곳에 공룡 알 언덕, 놀이터, 천산포구, 종이비행기 조형물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도계유리나라와 도계나무나라가 마주한다. 도계유리나라는 채탄 작업에서 나오는 석탄 폐석을 활용해 예술과 재생을 융합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폐교된 심포초등학교 자리로 8만 6719㎡ 드넓은 부지다. 유리갤러리, 지하 광물 박물관, 야외 전시장 등을 갖추고 블로잉(Blowing, 유리에 숨을 불어넣어 모양을 만드는 기법) 시연을 매일 5회 진행한다. 유리공예체험은 체험자와 체험지도사 1:1로 운영되며 램프워킹, 페인팅, 유리 목걸이 만들기 등의 체험이 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피노키오가 지붕 위에 걸터앉아 눈길을 끄는 도계나무나라도 함께 둘러보자. 삼척시는 대부분 고지대 산간 지형으로 형성되어 풍부한 산림자원을 보유한 도시다. 도계나무나라는 이러한 산림자원을 쉽게 이해하고 접하도록 전시실과 나무놀이터를 운영한다. 특히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약 4900년 된 ‘므두셀라’의 모형이 눈길을 끈다. 또 전문 목공예 체험실에서 필통, 도마, 우체통 만들기 등 체험도 가능하다. 

도계나무나라


도계읍에는 도계전두시장과 도계역, 도계급수탑 등 석탄과 기차산업의 발자취가 남은 여행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도 볼거리다. 둘레 9.3m, 높이 24.5m에 이르며 일반 느티나무보다 잎이 더 길고 좁은 모양으로 자란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마을 성황목으로 여겨져 음력 2월15일 도계 영등제를 개최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하이원추추파크→ 통리탄탄파크 → 도계유리나라 → 도계나무나라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통리탄탄파크 → 하이원추추파크 → 도계유리나라 → 도계나무나라
-둘째 날 도계전두시장(4·9일 5일장) → 도계급수탑 →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도계여자중학교 맞은편) → 환선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삼척문화관광 https://www.samcheok.go.kr/tour.web
-태백관광 https://tour.taebaek.go.kr/tour
-하이원추추파크 http://www.choochoopark.com/
-도계유리나라&나무나라 https://www.dogyeglassworld.kr/

운영 정보
-하이원추추파크 운영시간: 스위치백트레인(월~금요일 11:00, 14: 00 2회, 주말 및 연휴 10:30, 13:00, 15:30 3회), 주소: 강원 삼척시 심포남길 99, 요금: 스위치백트레인 1인 2만원(7월19일~12월1일), 1만원(1월1일~7월18일), 미니트레인 4000원, 어린이 놀이기구 3종 9900원, 레일바이크 4인승 3만5000원
-통리탄탄파크 운영시간: 09:00~18:00(※매표마감 17:00), 주소: 강원 태백시 통골길 116-44, 휴무: 매주 월요일, 요금: 어른 8000원, 어린이 4000원

문의 전화
-삼척문화관광 033)570-3075
-삼척관광안내소 033)575-1330
-태백시종합관광안내소 033)550-2828
-하이원추추파크 033)550-7788
-통리탄탄파크 033)806-5024
-도계유리나라 033)570-4208
-도계나무나라 033)570-4201

대중교통
-버스 서울-태백,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8회(06:00~22:3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태백종합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14분 소요.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https://txbus.t-money.co.kr
-기차 청량리역-태백, 무궁화호 하루 4회(07:34~19:10), itx 1회(17:08)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태백역에서 택시 이용 14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https://www.letskorail.com, 1544-7788

자가운전
신갈IC → 영동고속도로 → 만종IC 중앙고속도로(안동,제천방향) → 제천IC(제천, 영월방향) → 제천-태백간 38번 국도 → 영월 → 태백 → 하이원추추파크

숙박 정보
-하이원추추파크: 도계읍 심포남길 033-550-7788/ https://www.choochoopark.com/view/viewLink.do?page=homepage/KOR/accommodation/nature
-쏠비치호텔&리조트 삼척: 수로부인길 1588-4888/ https://www.sonohotelsresorts.com/solbea ch_sc
-태백고원자연휴양림: 태백시 머리골길 033)582-7440 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2030022

식당 정보
-하이원추추파크 추추상회(백반): 도계읍 심포남길 033)550-4573
-백두대간(청국장): 도계읍 강원남부로 033)553-3219
-텃밭에노는닭(물닭갈비):도계읍 도계로 033)541-9989

주변 볼거리
미인폭포, 이사부사자공원, 해신당공원, 몽토랑산양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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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