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채 상병 사건’ 수사 속도 높이는 내막

인력 늘리고 국방부 소환 재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에 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주 부서인 수사3부에 인력을 충원한 데 이어 핵심 관계자 소환을 재개했다. 채 상병 사건은 최근까지 특검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본회의 문턱에 가로막히면서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공수처 내부에서는 정치권의 도움만 기다릴 순 없다는 기류가 형성된 분위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지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채 상병 특검 현실화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만큼 공수처가 실적을 내야 한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실제 공수처는 최근 국방부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면서 수사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공수처 내부서도 유의미한 성과라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감지되고 있다.

수사 가속화
드라이브

공수처는 지난달 말 국방부 관계자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사건 관계인 조사가 재개된 건 약 4개월 만이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7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 의혹을 받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를 불러 조사한 이후 한동안 사건 관계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채 상병 사건 수사팀을 이끌었던 이대환 수사3부장, 차정현 수사4부장 등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연임 재가가 나오지 않아 수사가 중단됐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최근 공수처가 소환 조사한 이모 중령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통로로 지목된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을 보좌하는 이 중령은 김동혁 군 검찰단장과 같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공수처는 이 중령이 유 관리관과 김 단장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유 관리관과 김 단장은 지난해 8월2일 통화하면서 채 상병 사건을 경찰로부터 회수해오는 과정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하자 국방부가 회수한 것으로 알려진 날이다.

두 사람은 그 후 이어졌던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과정 등에서도 소통을 이어갔다고 한다. 공수처는 이 중령에게 당시 상황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에 조사를 받은 참고인들이 “한번도 조사 안 받은 분들”이라며 “당시 (이첩 보류)권한이 있던 분들의 핵심 참모들”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이번 참고인 조사를 바탕으로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과 이종섭 전 장관을 비롯한 윗선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군검찰단·법무관리관 연결고리 조사
포항지청 사건 개입? “진술 확보했다”

공수처가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밝혔던 만큼, 국방부 윗선을 향한 조사가 끝나면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관계자 조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을 비롯한 전·현직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채 상병 사망사건에 수사외압을 가한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랐다.


다만 핵심 피의자인 임 전 사단장에 대한 조사 일정은 아직 불투명하다. 공수처는 경찰청에 맡긴 임 전 사단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받아본 후 추가 포렌식 조사 일정 등을 진행할 방침이다.

공수처는 포렌식을 위해 지난 7월 경찰로 넘겼던 임 전 사단장의 휴대전화를 조만간 돌려받아 구명 로비 의혹 수사도 재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자체 포렌식을 통해 문자메시지 등 휴대전화 일부를 포렌식했지만, 전체를 풀지는 못했다.

법조계에선 로비 의혹 수사가 경찰의 포렌식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경찰 포렌식 결과에 따라 공수처의 수사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포항지청 소속 검사들이 채 상병 사건에 개입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채 상병 사건 당시 해병대 수사에 검찰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당시 조주연 대구지검 포항지청장에게 “포항지청 소속 검사들이 해군 검찰단 쪽으로 9차례 전화한 것으로 확인된다. 맞느냐?”고 질문했다. 조 지청장은 “맞다”고 인정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보장된 군사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고 개입을 시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왔다.

포렌식
결과 따라…

채 상병 사건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지난해 8월1일에 포항지청 소속 검사가 해군 군검사에게 전화해 ‘채 상병 사건을 포항지청으로 넘겨달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진술을 공수처가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수사관도 ‘군검사에게 자료를 요구했고 군검사가 ‘변사사건 자료를 달라는 건지, 사망 원인 범죄 자료까지 달라는 건지’ 묻자 ‘다 주면 검토해 보겠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고 전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내년 초까지 공수처가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동운 공수처장이 취임 후 첫 전보인사를 단행해 조직을 재정비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 처장은 지난달 4일 검사 및 수사관 전보인사를 발표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들에 대해 차질 없는 수사를 하기 위해 제한된 인력 여건서 효율적 인력 재배치를 했다”면서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의 자세로 수사에 임해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수처 부장검사 보직은 인권수사정책관, 수사기획관, 수사1~4부 부장검사 등 6개가 있지만 차정현 수사기획관, 송창진 수사2부 부장검사, 이대환 수사4부 부장검사의 자리를 제외하면 공석이다. 송 부장검사 역시 사의를 표명해, 공수처는 수사4부를 제외한 모든 수사 부서가 부장검사 없이 운영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인사로 이 부장검사는 수사3부 부장검사로, 차 부장검사는 수사4부 부장검사로 연쇄 이동해 빈자리를 채운다. 직접 수사 부서가 아닌 인권수사정책관실과 수사기획관실은 당분간 이재승 차장이 직접 지휘한다.

평검사들도 함께 이동했다. 평검사 4명으로 구성된 수사3부를 제외하면 모든 수사 부서가 검사가 없거나 1명만 배치돼 인력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일단 주요 수사가 배당된 수사3부와 수사4부에 화력을 집중하는 응급처치를 했다.

수사3부 소속 송영선·최문정 검사와 수사기획관실 소속 김지윤 검사가 수사4부로 이동해 빈자리를 채우고, 수사4부 소속 박상현 검사는 이 부장검사와 함께 수사3부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수사 3부와 수사4부에 부장검사 1명, 평검사 3명이 분배됐다.

유의미한
진술 확보?

오 처장의 조치로 채 상병 사건 수사팀은 다소 부담을 덜게 됐다. 기존에 사건을 맡아 온 이 부장검사와 차 부장검사, 박 검사가 수사를 이어가지만, 차 부장검사가 수사기획관직을 내려놓게 됐고 박 검사 혼자 수사4부 사건을 모두 맡는 상황을 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 검사 외 수사3부 검사 2명도 추가로 수사에 참여 중이다.

한 공수처 출신 변호사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조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았으면 채 상병 사건 수사가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었을 거다. 우선 시급한 과제부터 해결하자는 오 처장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10일 채 상병 순직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를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순직 사건 처리 과정서 외압 유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규명 ▲대통령실·국방부·해군본부·해병대사령부·검찰 등 정부 관계자의 압력 행사 및 관여 사항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출국금지 해제 과정과 호주대사 임명 과정서 정부 관계자의 직권남용 및 범인 도피 의혹 등 3대 의혹 우선 규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다만 공수처 수사와 국정조사가 ‘투트랙’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간과 자원의 중복 문제 등 실효성을 놓고 여야 간 의견이 분분하다. 그간 여당은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공수처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관련 증인들 역시 특위에 나오더라도 공수처 수사를 핑계로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야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인원 구성부터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국정조사 계획서는 10일 처리할 예정”이라며 “이달 중순부터는 국정조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잇단 불발…사활 걸었나
“국정조사 별개로 수사 진행”

애초 민주당은 지난 4일 본회의서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를 처리할 방침이었으나, 국민의힘서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처리가 미뤄졌다.

다만 국정조사특위 위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이 특위 위원으로 국회의장실에 제출한 주진우 의원에 대해 민주당은 부적합하다는 목소리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주 의원은 과거 유재근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피의자)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수사를 받아야 할 분이 국정조사 특위 위원으로 (합류하는 것은)합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건 진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교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주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순직 해병 사건과 전혀 무관함이 명백하다”며 “대통령실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대통령실 관련 번호로 1년 전 44초 통화한 내역이 한 건 있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법사위만 보더라도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수사 의뢰되거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민주당 의원들은 버젓이 참여하고 있다”며 “이 대표의 변호인을 맡았던 민주당 의원들이 법사위서 법무부, 법원의 업무에 꼬투리를 잡아 질타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민주당의 일방적 국정조사 개최도 민생과 상관없는 ‘이재명 대표 방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특위 활동을 통해 입증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절차대로

공수처는 국정조사와 별개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국회는 국회의 시간표대로 가고 공수처는 공수처의 수사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반적인 수사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소환 계획이 있는 대상자를 선별하는 중이다. 참고인 조사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피의자 조사에 관해선 “현재는 참고인 조사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후 조사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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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