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옥시 50억 거부하는 이유

손 놓은 환경부 머리만 굴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옥시레킷벤키저가 출연한 기부금 50억이 낮잠만 자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책임 인정이 아닌 ‘인도적 차원’의 기부금이다 보니 피해자들도 받길 거부하고 있다. 사용된 금액은 2700만원. 쌓인 이자만 8억이 넘는다. 환경부는 10년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배·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서 돈을 받을 수 없다. 피해구제법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 가습기살균제 참사 한 유가족의 말이다.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가 압박을 받아 토해낸 50억원은 1%도 사용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거부도 한몫하고 있지만 사실상 환경부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상 방치

옥시는 지난 2014년 3월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을 지원한다며 환경부 산하기관인 환경보전협회에 50억원을 기탁했다.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인도적 차원’의 기부금 형태로 출연한 것으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 2년 전이다.

피해자들은 옥시가 책임 인정과 피해에 대한 정식 배·보상 없이 기부금으로 면피하려 한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기부금을 받으면 책임 문제를 흐리게 할 수 있고 추후 배·보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반대로 환경부는 당시 옥시, 환경부, 환경보전협회가 체결한 협약에 따라 옥시의 기부금을 활용하기 위한 별도의 운영위원회를 꾸리려 했다. 운영위는 피해자들에게 기부금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었으나 구성 과정서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설립이 무산됐다.


이후 옥시의 출연금 50억원은 어느 곳에도 활용되지 못한 채 환경보전협회 계좌에 예치돼 10년째 방치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자만 8억4900만원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방치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옥시의 기부금 50억원을 활용할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고 10년 전 협약을 당장 이행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급속히 호흡곤란으로 진행되는 원인미상의 간질성 폐질환 환자들 및 가족들을 지원’한다는 게 협약서 내용인데 현재는 이에 해당하는 피해자 범위가 넓어져 협약을 이행할 실효성이 사실상 상실됐다”고 말했다.

옥시·애경, 법적 책임 여전히 나 몰라라
10년 넘게 피해자 늘어 협약 실효성 의문

‘원인미상’은 당시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질환 간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삽입된 문구다. 당시 신고된 피해자 규모는 100~200명 수준이다. 그러나 환자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만 5000명이 넘는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환경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이 나온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출신 한 관계자는 “협약 내용을 수정하거나 피해구제법을 손봐야 하는데 10년 동안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건 핑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살인 기업이라고 비판받는 옥시와 애경산업은 여전히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 4월 피해구제 조정안을 거부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피해자 유족에 2억~4억원, 최중증(초고도) 피해자들에게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조정안을 마련해 피해자 단체와 기업에 보냈다.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이마트·홈플러스 등 9개 기업이 이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재원은 최대 9240억원 수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판매율이 가장 높은 옥시는 절반 이상을, 애경도 수백억원을 부담할 것으로 추정됐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옥시가 폐 손상 1·2단계에 대해 배상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배상한 피해자는 405명에 불과하다”며 “3000명 넘는 피해자가 옥시 제품을 사용했는데 나머지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는 7000여명으로 수가 매우 많고, 피해자 단체도 30곳에 달한다. 2011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10년 이상 진상규명과 피해구제가 미뤄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피해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양해 조정안에 대한 입장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정안에 피해자 단체들도 절반은 반대했다고 한다.

피해 지원 안건도 거부 “돈 많이 든다”
정부 공식 인정 사망자만 약 1900명

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수용했더라도, 돈을 내야 하는 기업이 반대할 경우 애초 조정안은 성립될 수 없었다.

무산된 조정안은 가장 높은 피해등급인 ‘초고도’ 피해자의 경우 최소 8392만(84세 이상)~최대 5억3522만원(1세)을 받고, 사망자 유족들은 최소 2억(60세 이상)~4억원(0~19세)을 받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조정안에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미래 치료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관련 내용은 담기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는 1900여명에 육박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은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어온 임성호씨가 향년 58세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31일 기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7948명으로, 임씨의 사망 전까지 피해자 중 사망자는 1859명이었다.

임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와 롯데마트의 PB상품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그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때는 자녀 중 첫째가 3살이고, 둘째와 셋째가 태어난 시기다. 임씨의 자녀 셋은 모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고 있다.

2020년쯤 임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병원 측은 폐이식 이후 복용해 온 약물 부작용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초 상태가 악화된 임씨는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고 6개월간 투병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자녀 중 2006년생인 첫째는 폐손상 가능성이 크다는 판정을 받았고, 둘째와 셋째는 천식 피해자로서 피해구제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임씨가 사망한 날 대법원은 원고 측 피해자와 피고 측 국가가 각각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서 국가가 원고 5명 중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이 확정됐다.

모르쇠 일관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공론화된 뒤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 확정판결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라는 살균성분이 포함된 ‘세퓨’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가 아이가 사망하고, 상해를 입은 두 가족이 가해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한 것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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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