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10·16 재보궐 후폭풍

여야 막론 꿈보다 해몽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0·16 재보궐선거가 여야 2대2 무승부로 마침표를 찍었다. 선거는 이변 없이 마무리됐지만 한 장의 성적표를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놨다. 계파 간 아전인수식 평가가 여의도를 뒤덮으면서 선거의 열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곡성군수 ▲전남 영광군수 ▲서울시교육감 등을 뽑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각자 강세 지역에 당선자를 배출하면서 두 당 대표 모두 리더십 타격은 피했다.

반전 없는
2:2 무승부

먼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서는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가 61.03%를 득표하면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야권 단일화에 성공한 민주당 김경지 후보(38.96%)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인천 강화군수 선거서도 국민의힘 박용철 후보가 50.97%를 득표해 당선됐다. 이어 ▲민주당 한연희 후보 42.1% ▲무소속 안상수 후보 6.25% ▲무소속 김병연 후보 0.64%로 집계됐다.

야당의 격전지였던 전남 영광군수 선거서는 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41.08%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막판에 활약을 보인 진보당 이석하 후보가 30.72%로 2위를, 혁신당 장현 후보는 26.56%로 3위에 올랐다. 무소속 오기원 후보의 득표율은 1.62%로 집계됐다.


전남 곡성군수 선거 역시 민주당 조상래 후보가 득표율 55.26%로 혁신당 박웅두 후보(35.85%)를 제치고 당선됐다. 이어 ▲무소속 이성로 후보 5.39% ▲국민의힘 최봉의 후보 3.48%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진보진영 정근식 후보가 50.24%를 득표해 45.93%를 얻은 보수진영 조전혁 후보를 뒤로하고 1위에 올랐다. ‘조희연 교육 계승’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이어진 정책이 유지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소규모 선거였으나 총선 이후 처음으로 드러난 민심의 잣대인 만큼 여야 대표 모두가 화력을 쏟아부었다. 선거 기간 동안 야당은 ‘2차 정권 심판’을, 여당은 ‘지역 일꾼’을 내세웠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선거 하루 전날인 지난 15일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채 민심을 거역하는 정권에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일깨울 절호의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이번 선거는 단지 전남 영광·곡성군수,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한 명을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단호한 주권의지가 담긴 투표야말로 주권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석열 김건희 공동 정권’을 겨냥했다.

특히 부산 금정구를 찾은 날에는 “지난 8번의 선거 중 7번을 국민의힘에 기회를 줬는데 그사이 침례병원이 문을 닫았고, 부산대 상권도 쇠락하고 있고, 노년층 인구가 가장 많고 생기와 활력이 사라진 곳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이러고도 다시 구청장 자리를 달라는 것인가”라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양심 좀 있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보수 텃밭 부산·인천 승기 꽂은 한
“그래도 야” 영광·곡성 사수한 이

야당은 지난 4·10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고 192석을 얻었다. 이번에도 같은 전략으로 정부여당을 밀어붙이자 국민의힘에서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와 심판이 무슨 상관이냐”며 지역을 발전시키고 삶을 바꿀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야당이 보수 텃밭인 부산 금정구서 심판론을 거듭 강조한 만큼 이곳에서 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양쪽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권 심판론은 보수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야당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인 강화와 금정에서는 상당한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냈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도 “윤석열정부에 분노한 민심이 민주당 지지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8회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번보다 상승한 반면 보수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투표함이 열리고 야당의 희비가 엇갈렸다. 호남을 놓고 민주당과 혁신당, 진보당이 마지막까지 전면전에 나섰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양 손을 들어줬다.

혁신당은 곡성과 영광서 한 달간 월세살이할 정도로 호남에 공을 들였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영광서는 진보당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지난 총선서 ‘조국 돌풍’을 일으켰던 혁신당 조 대표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들인 셈이다.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7일 혁신당은 논평을 내고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창당해 7개월 만에 지역 선거를 뛰게 된 만큼 “첫술에 배부르겠냐”며 모두 전국정당과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혁신당에 있어 이번 재보궐선거는 호남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비록 12석 비교섭단체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탄탄한 뿌리를 내린다면 민주당의 대항마로 우뚝 설 가능성도 점쳐졌다.

호남 사수에 실패한 혁신당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울다가
웃다가

한 혁신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준비된 경험’이 부족한 점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관우처럼 호남으로 떠난 조 대표는 차가 다 식어서 돌아왔다”며 “국정감사 기간에 의원과 의원실 인력까지 총동원했지만 조직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초 혁신당은 정권 심판을 위해 만들어진 정당인데 ‘심판론’은 호남에서는 크게 효과가 없는 전술”이라며 “오히려 조 대표가 자신의 고향인 부산을 집중적으로 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짚었다.

곡성과 영광서 승리를 거둔 민주당은 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민심을 경청하겠단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 재보선은 유독 의미가 큰 느낌”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막판에 진보당이 약진하면서 박빙 승부가 벌어졌다. (당에서도)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긴장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며 “오죽하면 호남 출신인 한준호 최고위원이 영광서 한 달 살기를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 진보당은 선거를 앞두고 영광서 민주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제는 ‘민주당 텃밭론’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호남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며 “진보당은 지역 현안을 밀착해서 살펴보고 또 직접 논밭서 일손을 도왔다. ‘돈 대신 땀을 뿌리겠다’는 슬로건을 부각한 게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유권자분들께서 30%가 넘는 결과를 만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최근 치러지는 모든 선거가 ‘미니 대선’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질수록 지역 일꾼을 뽑겠다는 선거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관련해 김 상임대표는 “현 정부의 상황이 도무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다 보니, 유권자분들께서도 정권 심판론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답하신 결과”라고 해석했다.

비록 당선인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혁신당과 진보당 모두 각각 거둔 득표율이 유의미하단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선거를 발판 삼아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서 다시 한번 ‘건강한 경쟁’을 치르겠다고 예고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호남서 승리를 견인했지만 마냥 기쁨에 젖을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호남서의 승리는 큰 감동이 없을뿐더러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대표가 적극 지지에 나선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는 평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한의 시간

문제는 생각보다 크게 벌어진 부산과의 격차다. 당내에서는 부산서 국민의힘과의 근소한 격차를 보이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했지만 22%p 차이로 벌어지면서 당내서도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된다.

부산서의 선거 결과를 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가 나서도 민주당이 부산 민심을 끌어오는 데 실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김영배 의원의 ‘혈세 낭비’ 발언이 원인이라고 지목했지만 이 대표에게 있어 두 자릿수 격차는 뼈아픈 실점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친한(친 한동훈)과 친윤(친 윤석열)계가 선거 결과를 다르게 해석하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만 점점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여야 당 대표 모두에게 부담이었지만 특히 한 대표에게 영향이 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각종 용산발 리스크가 터져 나오는 상황서 야당 대표들이 입 모아 정권 심판론을 외치던 탓에 국민의힘은 벼랑 끝에서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선거 전날까지 부산 금정구를 찾아 총력을 기울였다. 이날로 금정구만 6번 방문한 한 대표는 “여러분께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6번이고, 60번이고, 600번이고 얼마든지 오겠다”고 소리 높였다.

악조건서도 부산 금정에 이어 인천 강화까지 수성에 성공하자 친한계는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전당대회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 대표를 향한 당 내 견제가 끊이지 않던 만큼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당 대표로서의 입지를 넓힐 수 있지 않겠냐는 점에서다.

지난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패배하자 당시 대표였던 김기현 의원이 책임을 지고 자리서 내려왔다. 김 후보는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폭로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형 확정 3개월 만에 그를 특별사면하는 등 전적으로 힘을 실어줬음에도 국민의힘이 패배하면서 여권 내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예시로 친한계는 이번 선거 결과는 용산의 도움 없이 한 대표 혼자 일궈낸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친윤계에서는 “국민의힘이 부산서 패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겨야 본전” “체면은 살렸다” 등 반대 해석을 내놨다.

정권 심판론 한계? 민주당 또 다른 과제
영부인 저격 ‘한동훈표’ 선거 청구서

한 여권 관계자는 “금정구청장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깨질 듯이 싸웠지만 약속 대련이라는 해석이라도 나왔다”며 “그런데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도 용산과 충돌하는, 더 나아가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개인적으로 무척 걱정했다”고 토로했다.

안정 궤도에 오른 ‘한동훈호’가 이대로 순풍을 타고 본격적으로 용산과 차별화에 나설지 주목된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과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곧바로 용산 압박에 나섰다.

이날 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야당의 무리한 정치 공세가 있다”면서도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이 있었고 의혹의 단초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민심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여사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는 어떤 잘못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좋은 정치와 민심을 위해 필요한 때 과감하게 하는 것이고 지금이 그럴 때”라고 설명했다.

이날 가장 주목 받은 대목은 한 대표가 김 여사를 향해 대외활동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같이 주장한 뒤 “나아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 솔직히 설명드리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들께서 이번 선거를 통해서 저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식 석상서 김 여사의 활동 자제를 넘어 중단하라는 의견을 밝힌 만큼 앞으로 한 대표의 발언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한 대표의 리더십이 한층 견고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한동안 잠잠했던 친한계 스피커도 다시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야당의 단일화로 인해 박빙이 예상된 부산 금정과 여권 분열로 힘든 인천 강화서 유권자는 국민의힘에 마지막 기회를 줬다”며 “김대남·명태균 파동으로 상징되는 김 여사 논란과 지금도 진행 중인 의정 갈등을 국민의힘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용산이 가장 꺼려하는 김대남·명태균 두 사람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용산의 쇄신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심은
나의 편?

한 대표가 광폭 행보에 시동을 걸자 부산 금정의 승리는 한 대표가 아닌 보수 지지층의 성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크게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부산서 한 대표가 패배하면 국민의힘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고, 보수의 붕괴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지지층이 빠르게 결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 가려내기 위한 여야의 치열한 입담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부터는 주도권을 당기기 위한 세력 간의 힘겨루기 싸움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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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