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혐한에 맞선 일본인 이야기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0.21 16:26:50
  • 호수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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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신 싸우는 ‘현대판 준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한일 갈등 원인에 관해 일본의 책임론을 주장한 이시바 시게루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혐한 문제 해소 등의 기대감이 형성되는 추세다. 그동안 혐한에 맞서던 일본인들의 목소리도 동시에 높아졌다. 거꾸로 일본 내 혐한 기조가 최근까지도 존재했다는 의미다. <일요시사>는 대표적인 친한파로 거론되는 두 일본인을 만났다.

일본 현지서 탈북자의 인권 피해 실상과 혐한 문제를 고발한 고다 하지메와 윤석열정부의 친일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흔들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마치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항왜 장수 ‘김충선(일본명 사야가)’이나 ‘준사’를 연상케 했다. 

든든한
열도인

앞서 취재진은 일본 오사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간부 출신 홍경의 Free 2 Move(이하 F2M) 공동대표를 지난 9월 중순에 만났던 바 있다. 과거 조총련 실세인 허종만 의장을 법적으로 보좌하며 10년 가까이 ‘브레인’ 역할을 담당한 홍 대표는 북한을 30여차례 방문하면서 인권 탄압 등을 목도했다.

그러다 2000년 초, 조총련 내부서 민주화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제명당해 인권단체인 F2M을 설립했다.

홍 대표는 ‘든든한 일본인 파트너’라며 고다 하지메 F2M 부대표를 소개했다. 고다 대표는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의 대표로도 활동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고다 대표는 아버지의 뜻을 계승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의 아버지인 고다 사토루 목사는 1970~1990년대에 걸쳐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이자 통일운동가인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일본인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고다 사토루 목사는 1989년 7월 말 한국 방문 후 일본으로 귀국하던 중 한국민주화운동 지원 문제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제주교도소에 일주일간 구류 끝에 일본 정부의 항의로 석방됐다.

재일한국인·조선인의 인권운동에도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고다 목사는 1977년 ‘일본과 한국 문제를 생각하는 동오사카 시민회’ 대표로 활동했다. 그의 업적을 아들인 고다 대표가 이어받은 셈이다.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 대표로 활동하게 된 이유를 묻자 고다 대표는 “북송재일교포 문제는 조선인들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일본인에게 내재된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문화와 연관된 문제”라고 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취재진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일본 대중 입장서 북송 재일교포와 조총련 문제는 과거사 등 문제와 같은 맥락서 볼 수 있다”며 “조총련이 북한 정권과 한 몸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조총련은 북한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라는 독재국가의 탄생 배경이 일본의 식민지 역사가 낳은 잔재라는 것을 일본인들이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일본인으로서 속죄의 마음이 있기에 조총련 및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렇기에 북한의 인권 피해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 못잖은 열사들은 왜?
“일 혐오 대상, 한국만 아냐”

고다 대표는 한반도의 분단이 일본의 식민지배와 이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 및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일본 내에 만연하는 혐한과 탈북자 등을 향한 차별과 비판은 멈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일동포 청년들은 여전히 취업시장서 유리천장에 막혀, 학생들은 국·공립학교에 입학해 한반도 역사를 왜곡하는 교육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본 내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 혐오 발언) 대책법은 비교적 뒤늦게 발의됐다. 지난 2016년 5월에 일본 상원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같은 해 6월에 시행됐다.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률이다. 주요 입법 계기는 극우 단체 등이 주도하는 빈도 높은 혐한, 혐중 시위 등 재일 외국인 및 외국계 일본인에 대한 혐오 시위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처음으로 해당 법률의 처벌을 받게 된 인물 역시 혐한 발언으로 인해 체포됐다.

‘헤이트스피치 대책법’은 한국의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과 마찬가지로 편의상 부르는 명칭일 뿐이며, 정식 법률 명칭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이다. 문제는 당국의 혐한 시위 제재가 가해지자, 극우 세력이 쿠르드족, 중국, 베트남 등에 과녁을 돌렸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고다 대표는 “조총련이나 한국만이 차별 대상이 아니고, 일본 사회 자체에 뿌리 박힌 차별 구조가 있다”며 “일본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선 인권운동가들이 더욱 많이 나서줘야 하는데, 부끄럽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시민단체 활동이 왕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고다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그동안 일본서 북한 인권 문제, 혐한 문제 등에 관해 크게 관심을 가진 정부가 없었다. 애당초 지난 일본 정부의 정책서 인권 개념이 확립된 적이 없으며, ‘인권 문제’라는 국가 어젠다 역시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 내 헤이트스피치 세력은 재일교포보다 약한 존재를 향해 혐오 발언을 일삼을 뿐, 근본적인 개선이 없다.

약자 향해
독한 발언

고다 대표는 F2M이 북한 문제를 다루면서 일본 국민들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한반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권 보장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넘어 ‘한반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고다 대표가 속한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는 재일 북송 한인들 가운데 탈북해 한국과 일본에 정착한 500여명(한국 300여명, 일본 200여명) 중 약 5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과정서 재일 북송 한인들이 목도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파악했다. 

북한 정권이 지난 1959년에서 1984년까지 벌인 재일 한인 북송사업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납치와 강제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로 분류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COI는 보고서에서 25년 동안 북한의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과 가족은 9만3340명에 달하며 여기에는 1831명의 일본인 아내도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독도영유권 문제를 여느 한국인보다 치밀하게 연구하고, 친일세력을 향해 거침없이 비판해온 호사카 유지 교수도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계 한국인이자 한일관계 전문가로 1956년 일본 도쿄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공학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한일관계 연구차 서울서 지내다가 2003년 귀화했다. 그해 부임한 세종대서 줄곧 강단에 서다 2021년 2월 정년 퇴임했다. 현재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사실상 한일 양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고증하고 분석해 합리적으로 설득해 온 한일 역사 분야의 권위자다. 


그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한 유튜버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서 일부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0-3부(이상아·송영환·김동현 부장판사)는 호사카 교수가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김모씨 등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서 “호사카 교수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 사랑한
독도 지킴이

김 대표 등은 2020년 11월~2021년 8월까지 집회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호사카 교수의 저서 <신친일파> 일부 내용이 허위라며 비난했다. 또 “호사카 교수가 근거 없이 위안부가 강제 동원됐다고 주장해 한일관계를 이간질했다”거나 “일본군이 위안부 대상서 일본인 여성을 제외했다고 썼다”고 주장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들이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했다면서 85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심 법원은 “피고들이 일부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모욕성 발언을 했다”면서 김 대표가 400만원, 정모씨와 고모씨가 각각 50만원씩 총 500만원을 호사카 교수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1심서 모욕으로 인정된 발언 중 일부에 대해선 법적으로 인정되는 모욕으로 볼 수 없다며 피고들이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손배소송서 승소한 것에 관해 그는 특별한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호사카 교수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뉴라이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나 그들과 일본 극우의 관계 등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석동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본 내 혐한을 부추긴다”는 취지로 비난한 것에 대해선 “어떤 근거도 없는 애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석 전 사무처장은 내가 한국 정부 내에 친일파 밀정이 있다고 하니 되려 나를 혐한 세력의 밀정이라고 반박했다. 내가 친일 정부라고 주장하는 내용에는 역사적 맥락서 근거가 있지만, 그가 나를 향해 비판하는 내용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석 전 사무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져 있다.

또, 윤 대통령이 일본과 외교 관계에 있어 저자세를 취하는 것에 관해 “한국의 ‘저자세 외교’는 국익을 해치고 일본의 국익을 챙겨줬다. 일본 측은 윤 대통령과 함께 어려운 사도광산 문제도 해결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현안을 일본 중심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 지적 나선 호사카 교수
이시바 총리 조기 몰락설도 제기

겉보기에 한층 개선된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이 국익, 남북 화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일 관계는 이를 위한 디딤돌인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을 적으로 돌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분쟁 상태로 향하게 하는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강국에 의해 한국을 유린당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최근 일본이 국방력을 끌어올리는 이유가 제2의 한국전쟁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이에 호사카 교수는 “일본은 남한을 활용해 미국과 함께 북한, 중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차 식민지배적 시나리오에 관해선 “한·미·일 삼각군 가동맹을 핑계로 주일미군의 심부름으로 자위대가 군사물자를 한국의 주한미군에 운반해준다는 활동이 그 첫 번째 시작”이라며 “일본에 입국하는 한국인의 입국 간소화를 위해 한국 공항에 일본이민국 직원들이 다수 파견된다고 보도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다음 단계는 한국 내에 많아질 일본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일본 경찰이 행정적 지배를 위해 한국으로 다수 입국할 것인데, 이것이 일제강점기 이전에 일제가 사용한 방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 문제라고도 짚었다. 일본의 속뜻을 우리 정부가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이시바 총리는 오는 27일 중의원을 조기에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때 크게 패배할 우려가 있어 이시바 내각은 단명할 수 있다는 예측이 많이 나왔다”며 “아마 여성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가 사실상 총리가 될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시바 총리가 성공한다는 것은 한국 내 뉴라이트의 몰락을 의미하지만, 위안부는 매춘부였고 강제 노동이 없었고, 독도는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뉴라이트 측의 주장은 일본 정부와 같다”며 “일본 측은 자민당이라도 한국 정부의 뉴라이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싫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친일 정부
밀정 논란

호사카 교수는 뒷배로 일본 극우세력을 지목하고 이들에게 포섭된 신친일파들이 국내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극우세력은 한국이나 중국서 ‘일본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아, 그런가’하고 세계가 믿을 거라고 본다”며 “그래서 여러 사람을 포섭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한국 극우와 일본 극우를 이어주는 일본 사이트인 ‘나데시코 액션’에서는 한일 극우세력 위안부 규탄 소식이 항상 뉴스화되고, 한국의 신친일파 모습이 전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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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