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엇갈린 판결’ 이임재·박희영

구청은 봐주고 경찰만 잘못?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158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주요 책임자 2명에 대한 판결이 엇갈렸다.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모두 참사 당시 안전 관리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됐지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의 혐의만 인정했다. 이에 유가족은 무책임으로 일관한 박 구청장의 무죄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한복판서 15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이 1심 재판서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참사가 발생한 지 약 2년 만에 핵심 책임자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 것이다. 

부실 대응
과실 인정

반면, 이날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구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 당시 책임을 다했는지를 놓고 법원이 경찰과 용산구청 관계자들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내놓은 셈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참사 2주기를 약 한 달 앞두고 나온 판결로, 당시 현장 경찰 대응을 지시한 책임자의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이 국회 청문회서 허위 증언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와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려 15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 2014년 세월호 이후 우리나라 발생 최대의 참사이자 삼풍백화점 이후 서울 도심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라며 “이태원 참사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각자 자리서 주의의무를 다하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 측은 그간 대규모 압사사고 발생을 예상할 수 없었으며, 핼러윈 축제 관련 사전 대책 마련이나 참사 발생 후 조처와 관련해서도 주어진 여건서 최선을 다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언론 보도와 경찰의 정보 보고 등을 종합하면 2022년 핼러윈데이를 맞은 이태원 경사진 골목에 수많은 군중이 밀집돼 보행자가 서로 밀치고 압박해 (보행자의)생명, 신체에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전 서장에게 상황을 통제·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참사 당일 오후부터 이태원에 유입되는 인파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오후 6시30분께부터 사고 부근 압사의 위험 및 인원 통제를 요청하는 112신고가 있었지만, 112 자서망(교신용 무전망)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거나 소홀히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서장은 지난 2022년 10월29일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고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고 경비 기동대 배치와 도로 통제 등 조치를 제때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구속 기소됐다.

또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을 허위로 기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와 국회 청문회서 참사를 더 늦게 인지한 것처럼 증언하고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지원 요청을 지시했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방어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이 전 서장의 보석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이 전 서장은 구속 기소 후 약 6개월 뒤인 지난해 7월6일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
용산경찰서장 안전 소홀 인정

이 전 서장의 위증 혐의 등에 대해서는 “오후 11시1분께 이전에 대량 인명 사상 사고 발생 및 피해 규모를 대체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용산서 직원들에게 경비기동대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는 것도 허위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이 끝난 뒤 이 전 서장은 기자들과 만나 선고 결과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항소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을 했다. 유가족을 향해서는 “죄송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이 전 서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결심공판서 “이 전 서장은 지역 내 인파 집중에 따른 사고를 예측해 대책을 마련하고, 인명피해를 막아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지역 경찰의 컨트롤타워”라며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사고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사고를 막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은 오히려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기에 바빴고 과실로 인한 결과가 너무 중대해 준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압사 위험 신고가 쇄도하는 가운데 한 식당서 느긋하게 식사하는 장면이 공개돼 많은 이들에게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당일 용산 일대서 열린 집회 대응을 지휘한 뒤 오후 9시24분쯤 식사를 하러 용산서 정보과장, 경비과장 및 직원 등과 함께 용산서 인근의 한 설렁탕집을 찾았다. 이들은 20여분간 식사했다. 

그사이 이 전 서장에게 이태원 현장이 ‘긴급 상황’이라는 보고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나, 이 전 서장 등은 다급한 기색 없이 태연히 식사를 마친 뒤 자리서 일어났다. 결제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급박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식당서 나온 이 전 서장은 관용차량에 탑승한 뒤 이태원 현장으로 향했다. 오후 10시쯤 사고 현장서 도보 10분 거리인 녹사평역에 도착했으나 길이 막히는 상황서도 차량 이동을 고집했다.

이에 50여분이 지난 오후 11시쯤 차량에 내려서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오후 11시5분경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음에도 48분 전인 오후 10시17분경 도착했다는 허위 보고를 하기도 했다.

이어진 재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 구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구청 쪽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결과로 앞서 재판부가 이 전 서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재난안전법령에 다중 운집에 의한 압사사고가 재난 유형에 분류되지 않았고 특히 재난안전법령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규정 역시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사전대비 대책 마련 과정서 피고인들에게 형사 책임 물어야 할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예견된 위험
소홀한 대처

이태원 참사의 직접 원인은 ‘다수 인파의 유입과 그로 인한 군중의 밀집’에 있다고 봤는데, 자치구는 대규모 인파를 분산·해산시킬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소방 등을 통해 사고 일대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용산구청의 재난 대응조직도 “특별히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 미흡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박 구청장이 참사 당일 오후 9시께 당직실 직원에게 삼각지역 인근 집회 현장서 시위 전단지를 수거하라고 지시하면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의 충분한 주장과 입증이 부족해 전단지 수거와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선고 후 법정을 나오면서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족이나 희생자에게 할 말은 없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묵묵부답으로 자리를 떠났다.


공직선거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지방자치단체장은 피선거권을 잃고 퇴직 대상이 된다. 박 구청장은 이날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구청장직 상실은 면하게 됐다.

앞서 검찰은 박 구청장이 대규모 인파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도 적절히 운영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1월 기소했다. 이후 박 구청장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오다 지난해 6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구청장 직무를 이어왔다. 

검찰은 “피고인은 참사에 가장 큰 책임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용산구 안전을 총괄 책임지는 재난관리책임자로 (재난을)예측하고 예방할 책임이 있는데도,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이 사고 당일 현장 부근에 도착했음에도 (상황을)확인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구청장은 재판 내내 “이태원 곳곳이 다 특색이 있어 특정 어떤 지역으로 많이 몰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면서 “참사와 관련해 소방과 경찰의 지휘 감독 권한이 구청장에게 있지는 않다. 사고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대조적 선고
운명 갈림길

박 구청장은 참사 발생 직전 두 차례 현장 근처를 지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비판받은 바 있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8시20분과 9시를 조금 넘은 시각 두 차례 이태원 ‘퀴논길’을 지나갔다.

퀴논길은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도로 맞은편에 있는 상가 뒷길로, 사고 현장서 184m, 걸어서 4분 거리에 불과한 곳이다.

박 구청장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오자, 방청석에 자리하고 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사이에선 오열이 터져 나왔다. 판결 직후 유가족들은 서부지법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박 구청장 등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이 전 서장, 오후 3시30분 박 구청장 순으로 진행됐다. 이 전 서장 선고 땐 상대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의 무죄 사실을 듣고 오열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등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 중 일부는 주먹으로 박 구청장이 탄 차를 치거나 가만히 한 자리에 서서 오열하기도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기존 사회적 참사에 관한 사법부의 판단과 달리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참사 전날과 당일 저녁 내내 이태원 일대는 핼러윈데이 인파로 인해 극심한 혼잡과 다수의 민원이 제기됐으며, 피고인들은 이를 충분히 확인하고 알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면서 “피고인들이 인파 운집 가능성을 몰랐다는 것은 무지와 무관심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도저히 무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참사 예방·대응·수습에 모두 실패한 박 구청장은 이날 선고 전까지도 그 직을 유지했다”며 “참사 발생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참사 책임을 일반 시민에게 돌리는 행태를 보였고 참사 이후 유가족의 회복과 우리 사회의 회복을 방해했다”고 날을 세웠다. 

용산구청장은 무죄 선고
“무책임 일관”유가족 반발

유가족들은 “공판 내내 자신들의 책임을 끝까지 부정하고, 온갖 변명을 일삼고, 일선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비통한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정부와 사법에 대한 불신 속에서도 끝까지 법원을 믿고 엄중한 처벌을 하길 간곡히 바라던 유가족의 믿음과 한 가닥의 희망마저 저버렸다”고 한탄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한 검찰의 즉각적인 항소를 촉구하며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우리는 법정서, 그리고 법정 밖에서 이들의 죄책을 끝까지 밝혀나갈 것이며, 이날의 이 슬픔과 절망과 분노를 안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유가족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 위원회’(이하 특조위)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했다. 이정민 유가협 위원장은 법원 앞 기자회견서 “경찰 특수본과 검찰의 수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며 “그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수사 결과를 갖고 오늘의 재판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결과를 예견했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특별법을 통해서 특조위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이라며 “이제 우린 특조위 결과를 통해 이들의 잘못을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이날 선고에 앞서 피고인들의 엄벌을 촉구하며 서울시청부터 선고가 예정된 서울서부지법까지 행진을 열었다.

이날 이 전 서장과 함께 기소된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은 금고 2년형, 박인혁 전 서울경찰청 112치안총압상황실 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허위 보고서 작성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정현우 전 용산서 여성청소년과장, 최용원 전 용산서 생활안전과 경위에게는 각각 무죄가 선고됐다.

박 구청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현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해밀톤관광 등 법인 2곳을 포함해 총 23명이다. 이날 선고 후 남은 1심 재판은 김광호 전 서울청장 등 서울청 3인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사건 등 4건이다. 

납득 불가능
무너진 억장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은 앞서 용산서 정보관들에게 업무 컴퓨터에 보관 중인 다른 이태원 핼러윈 관련 자료 4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1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서울고법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호텔 관계자들의 2심은 서부지법서 진행 중이다. 1심에서는 호텔 대표 이씨와 호텔 법인 해밀톤관광에 각각 벌금 800만원이 선고됐다.

<yuncastl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