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중대재해처벌법 본보기’ 1호 박순관 아리셀 대표

아무 말 없이…첫 번째 철창행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공장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사망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중처법 혐의로 구속되는 1호 사건 이후, 같은 날 박영민 영풍 대표도 잇따라 구속되면서 하루 새 1·2호가 나왔다.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배터리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처법 시행 이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첫 사례다. 그동안 노동당국이 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적은 있지만, 발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반 혐의
영장 발부

박 대표는 이날 오전 8시40분께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에 앞서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파견 혐의를 인정하느냐’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유족들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박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법원 지하 통로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법원에 출석하며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은 박 대표를 중대재해처벌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경영책임자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가 아들인 박 본부장으로부터 꾸준히 업무보고를 받은 데다 안전보건 분야서도 최종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처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규정한다.

검찰은 박 대표가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 절차 마련, 재해예방 예산 편성·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작업 중지·노동자 대피 등 대응조치 매뉴얼 마련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수원지법 손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박 대표와 박 본부장,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대표 등에 대한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고, 같은 날 오후 11시40분쯤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한 영장을 각각 발부했다. 

손 부장판사는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해 “혐의 사실이 중대하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아리셀의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 한신다이아의 대표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23명 사망자 발생 화재 사고
2022년 시행 이후 구속 처음

이와 관련해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오전 성명을 통해 “오늘 법원의 결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구속 결정 소식에 많은 유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밝혔다. 


이어 “유가족이 마주할 현실 앞에 이번 수원지법의 결정이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길 바란다”며 “이번 결정은 참사가 발생한 지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수사기관은 강도 높은 보강 수사와 조사를 통해 박순관과 그 일당의 범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해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밝혀진 진상과 그에 부합하는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 마련까지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 역시 요원하다”며 “이를 위해 가족협의회·대책위는 오늘의 기쁨과 자신감으로 다시 힘차게 내일을 맞이할 것이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다시 단결과 연대를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지난달 26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살인자 에스코넥·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구속 촉구 및 유가족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수원지법 앞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은 박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들의 구속을 촉구했다.

박 대표는 구속과 함께 에스코넥 대표이사직서 사임했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며, 박 대표의 에스코넥 지분율은 13.81%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사임서를 제출했고 변경 후 신임 대표이사는 이사회서 선임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에스코넥 외에도 아리셀의 대표를 맡고 있다.

검찰은 화재 사고 직후 형사 3부(이동현 부장검사)와 공공수사부(허훈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경기남부경찰청, 고용노동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실시간으로 수사 상황을 공유하며 화재 원인과 위법 사항 규명, 관련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아리셀 등 3개 업체 관련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4차례에 걸쳐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또 피의자 및 참고인 103명을 131회에 걸쳐 조사해 이 중 18명을 입건한 바 있다. 

총체적 부실
드러난 혐의

경기남부경찰청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지난달 23일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지난 2021년 최초 군에 납품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수법 등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였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아리셀은 지난 2021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던 아리셀은 지난 4월분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 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탄로난 것이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지난 2월 말 8만3000여개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8만3000개의 전지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격 미달 판정으로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6월분(6만9000여개) 납기일도 다가오자 아리셀은 지난 5월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5000개는 아리셀 공장의 일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이어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파견법에 규정된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불법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치솟았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리셀은 문제 해결 없이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갔다. 

아리셀은 이 과정서 전지에 발열이 생기는 것을 인지해 정상 전지와 분리했지만, 6월분 납기 일정에 쫓기자 위험성을 무시한 채 발열 전지도 납품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재 이틀 전인 같은 달 22일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아리셀은 생산라인을 중단하지 않은 채 가동했다. 

연이은 2호
나란히 구속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설치돼있어 아이디 카드를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 요령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배터리 폭발 시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 지침을 알지 못한 탓에 최초 폭발이 발생한 오전 10시30분 3초부터 출입문을 통해 근로자가 마지막으로 대피한 30분40초까지의 골든타임 ‘37초’를 놓쳤다.

결국, 23명이 출입문을 불과 20여m를 남겨둔 지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검찰이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에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달 28일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대표의 파견법 위반 혐의를 진술하던 중 에스코넥도 불법파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무허가 파견업체 메이셀의 실질적 경영자인 정용환씨에 대해선 파견법 위반 여죄 수사가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정씨가 메이셀 전신인 한신다이아를 운영하면서 에스코넥 안산사업장(삼영피엔텍)에 인력을 공급한 것도 불법파견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대책위는 그간 아리셀뿐 아니라 에스코넥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아리셀과 메이셀 관계, 한신다이아와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관계가 닮았기 때문이다. 메이셀은 법인 등기상 직업소개 업체 혹은 파견업체가 아닌 일차전지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아리셀 공장 2층이다.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피하고자 형식적으로 메이셀을 사내하도급업체처럼 꾸민 것이다. 한신다이아는 휴대전화 부품을 가공하는 에스코넥 안산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법인 등기상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에스코넥 안산공장 2층이다.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역시 파견업체인 한신다이아와 위장도급계약을 체결했을 개연성이 크다.

유가족, 기쁨의 눈물 흘려
“강도 높은 보강수사해야”

중처법 시행 이후 두 번째 구속 사례도 연이어 나왔다.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도 중대재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박 대표에 이어 몇 시간 차이로 구속된 것이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재판장 박영수 부장판사)은 지난달 29일 박 대표이사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전날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최근 9개월간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며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을 지우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범죄 혐의를 소명했다. 

이날 구속된 박 대표이사는 중처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고, 배 소장은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영장실질심사 후 취재진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으나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지난해 12월6일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비소 중독으로 숨졌으며, 근로자 3명이 상해를 입었다. 지난 3월에는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했으며, 지난달 2일에는 하청 노동자 1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영풍 석포제련소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5명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박 대표이사를 중처법 위반 혐의로, 배 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석포제련소 내 유해 물질 밀폐설비 등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증거인멸의 우려 등도 있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한편,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1분께 경기 화성시 소재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CCTV 확인 결과 불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 작업 등을 하고 있던 공장 3동 2층서 1개의 리튬 배터리 폭발로 시작됐다. 

이어 다른 배터리가 연속해 폭발하면서 급속히 연소가 확대됐다. 화재는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했으며,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폭발도 연달아 발생한 탓에, 안에 있던 다수의 작업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죽음의 공장
영풍 제련소

해당 공장은 리튬 배터리인 일차전지를 제조하는 곳이다. 불이 난 공장 3동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돼있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근로자를 제조 공정에 불법으로 투입했고, 이 과정서 발생한 불량 전지가 폭발 및 화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yuncastl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올해 상반기 일터서 쓰러진 ‘296명’

지난해에 비해 사고 건수는 줄었지만, 아리셀 참사의 영향으로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2분기(누적)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고사망자 수는 296명으로 지난해 동기(289명) 대비 7명(2.4%) 증가했다.

사고 건수는 284건서 266건으로 18건(6.3%) 감소했다.

정부는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를 분석한 것이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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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