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중대재해처벌법 본보기’ 1호 박순관 아리셀 대표

아무 말 없이…첫 번째 철창행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공장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사망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중처법 혐의로 구속되는 1호 사건 이후, 같은 날 박영민 영풍 대표도 잇따라 구속되면서 하루 새 1·2호가 나왔다.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배터리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지난 2022년 중처법 시행 이후 업체 대표가 구속된 첫 사례다. 그동안 노동당국이 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적은 있지만, 발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반 혐의
영장 발부

박 대표는 이날 오전 8시40분께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에 앞서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파견 혐의를 인정하느냐’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유족들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박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법원 지하 통로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법원에 출석하며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은 박 대표를 중대재해처벌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경영책임자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가 아들인 박 본부장으로부터 꾸준히 업무보고를 받은 데다 안전보건 분야서도 최종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처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경영책임자로 규정한다.

검찰은 박 대표가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 절차 마련, 재해예방 예산 편성·집행,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작업 중지·노동자 대피 등 대응조치 매뉴얼 마련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수원지법 손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박 대표와 박 본부장,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대표 등에 대한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고, 같은 날 오후 11시40분쯤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한 영장을 각각 발부했다. 

손 부장판사는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 대해 “혐의 사실이 중대하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아리셀의 안전보건관리 담당자와 인력 공급업체 한신다이아의 대표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23명 사망자 발생 화재 사고
2022년 시행 이후 구속 처음

이와 관련해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오전 성명을 통해 “오늘 법원의 결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구속 결정 소식에 많은 유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밝혔다. 


이어 “유가족이 마주할 현실 앞에 이번 수원지법의 결정이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길 바란다”며 “이번 결정은 참사가 발생한 지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수사기관은 강도 높은 보강 수사와 조사를 통해 박순관과 그 일당의 범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해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밝혀진 진상과 그에 부합하는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 마련까지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 역시 요원하다”며 “이를 위해 가족협의회·대책위는 오늘의 기쁨과 자신감으로 다시 힘차게 내일을 맞이할 것이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다시 단결과 연대를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지난달 26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살인자 에스코넥·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구속 촉구 및 유가족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한 뒤 수원지법 앞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은 박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들의 구속을 촉구했다.

박 대표는 구속과 함께 에스코넥 대표이사직서 사임했다. 에스코넥은 아리셀의 지분 96%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며, 박 대표의 에스코넥 지분율은 13.81%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사임서를 제출했고 변경 후 신임 대표이사는 이사회서 선임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에스코넥 외에도 아리셀의 대표를 맡고 있다.

검찰은 화재 사고 직후 형사 3부(이동현 부장검사)와 공공수사부(허훈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경기남부경찰청, 고용노동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실시간으로 수사 상황을 공유하며 화재 원인과 위법 사항 규명, 관련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아리셀 등 3개 업체 관련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4차례에 걸쳐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또 피의자 및 참고인 103명을 131회에 걸쳐 조사해 이 중 18명을 입건한 바 있다. 

총체적 부실
드러난 혐의

경기남부경찰청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지난달 23일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지난 2021년 최초 군에 납품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수법 등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였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아리셀은 지난 2021년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던 아리셀은 지난 4월분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 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탄로난 것이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지난 2월 말 8만3000여개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8만3000개의 전지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격 미달 판정으로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6월분(6만9000여개) 납기일도 다가오자 아리셀은 지난 5월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5000개는 아리셀 공장의 일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이어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파견법에 규정된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불법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치솟았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리셀은 문제 해결 없이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갔다. 

아리셀은 이 과정서 전지에 발열이 생기는 것을 인지해 정상 전지와 분리했지만, 6월분 납기 일정에 쫓기자 위험성을 무시한 채 발열 전지도 납품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재 이틀 전인 같은 달 22일 전해액 주입이 완료된 전지 1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지만, 아리셀은 생산라인을 중단하지 않은 채 가동했다. 

연이은 2호
나란히 구속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설치돼있어 아이디 카드를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다.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 요령에 관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배터리 폭발 시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 지침을 알지 못한 탓에 최초 폭발이 발생한 오전 10시30분 3초부터 출입문을 통해 근로자가 마지막으로 대피한 30분40초까지의 골든타임 ‘37초’를 놓쳤다.

결국, 23명이 출입문을 불과 20여m를 남겨둔 지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검찰이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에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달 28일 수원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대표의 파견법 위반 혐의를 진술하던 중 에스코넥도 불법파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한 무허가 파견업체 메이셀의 실질적 경영자인 정용환씨에 대해선 파견법 위반 여죄 수사가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정씨가 메이셀 전신인 한신다이아를 운영하면서 에스코넥 안산사업장(삼영피엔텍)에 인력을 공급한 것도 불법파견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대책위는 그간 아리셀뿐 아니라 에스코넥도 불법파견 혐의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아리셀과 메이셀 관계, 한신다이아와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관계가 닮았기 때문이다. 메이셀은 법인 등기상 직업소개 업체 혹은 파견업체가 아닌 일차전지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아리셀 공장 2층이다. 

아리셀이 불법파견을 피하고자 형식적으로 메이셀을 사내하도급업체처럼 꾸민 것이다. 한신다이아는 휴대전화 부품을 가공하는 에스코넥 안산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법인 등기상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로 등록돼있고, 주소지는 에스코넥 안산공장 2층이다.

에스코넥 안산사업장 역시 파견업체인 한신다이아와 위장도급계약을 체결했을 개연성이 크다.

유가족, 기쁨의 눈물 흘려
“강도 높은 보강수사해야”

중처법 시행 이후 두 번째 구속 사례도 연이어 나왔다. 박영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도 중대재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박 대표에 이어 몇 시간 차이로 구속된 것이다. 

대구지법 안동지원(재판장 박영수 부장판사)은 지난달 29일 박 대표이사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전날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최근 9개월간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며 “카카오톡 메신저 내용을 지우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범죄 혐의를 소명했다. 

이날 구속된 박 대표이사는 중처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고, 배 소장은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영장실질심사 후 취재진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으나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지난해 12월6일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비소 중독으로 숨졌으며, 근로자 3명이 상해를 입었다. 지난 3월에는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했으며, 지난달 2일에는 하청 노동자 1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영풍 석포제련소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5명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박 대표이사를 중처법 위반 혐의로, 배 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석포제련소 내 유해 물질 밀폐설비 등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증거인멸의 우려 등도 있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한편,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31분께 경기 화성시 소재 아리셀 공장 3동 2층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CCTV 확인 결과 불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 작업 등을 하고 있던 공장 3동 2층서 1개의 리튬 배터리 폭발로 시작됐다. 

이어 다른 배터리가 연속해 폭발하면서 급속히 연소가 확대됐다. 화재는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도로 확산했으며,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폭발도 연달아 발생한 탓에, 안에 있던 다수의 작업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죽음의 공장
영풍 제련소

해당 공장은 리튬 배터리인 일차전지를 제조하는 곳이다. 불이 난 공장 3동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돼있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 근로자를 제조 공정에 불법으로 투입했고, 이 과정서 발생한 불량 전지가 폭발 및 화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yuncastl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올해 상반기 일터서 쓰러진 ‘296명’

지난해에 비해 사고 건수는 줄었지만, 아리셀 참사의 영향으로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2분기(누적)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고사망자 수는 296명으로 지난해 동기(289명) 대비 7명(2.4%) 증가했다.

사고 건수는 284건서 266건으로 18건(6.3%) 감소했다.

정부는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를 분석한 것이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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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