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없는 JMS는 지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8.19 14:34:03
  • 호수 1493호
  • 댓글 6개

‘간증 집회’ 무슨 말하나 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피해자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현재 JMS에 남아있는 교인이었다. “정명석이 구속 상태서 풀려 나오면 다시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다행히 구속기간이 연장됐지만, JMS 측에서 일어나는 일은 ‘희한할 지경’이다. 정명석과 함께 감옥에 다녀온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목숨을 잃은 제자’와도 같은 위치다.

지난 15일 항소심 구속기간 만료를 앞뒀던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최석진)는 준강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 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위한 심문을 마친 뒤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사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해외 도주 
전력 발목

정명석은 신도 성폭행 등 혐의로 1심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중인데, 구속기간 동안 항소심 재판을 마치지 못해 석방 가능성이 제기됐다.

검찰이 정씨의 항소심 구속기간을 모두 연장해 지난 15일 만료 예정이었는데, 항소심이 지난달 예정됐던 결심공판을 마치지 못한 채 속행하게 되면서 정씨가 구속기간 만료 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정씨의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 진행 중인 1심 재판부에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했고, 해당 사건을 맡은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위한 심문기일을 열었다. 


지난 1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씨는 이날 대전지법 형사11부 심리로 열린 구속 심문기일에 출석해 “1심서 징역 23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중형을 받았다. 재판장님이 국가를 대신해 범죄인들과 아닌 자들을 구분하고 지켜보는 분인 것처럼 나는 하나님의 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성실히 재판받고 순종할 것이니 사정을 깊이 들어봐 주시고 법대로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에 JMS 피해자들은 “이제야 발을 뻗고 잠을 자겠다. 상식적으로 40년 동안 성폭행한 성폭행범을 사회에 내놓는게 말이 안 된다. 이미 도주한 적도 있고 도주를 하면서도 성폭행을 이어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전지법이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한 것에 있어선 이미 도주한 이력 때문으로 추측된다. 정명석의 성범죄는 1990년대에 시작됐는데, 그때부터 다수의 성폭행 혐의로 수사기관의 내사를 받던 중 대만으로 도주한 뒤 홍콩·중국을 전전하며 도피 행각을 벌였다.

항소심 구속기간 만료 전 추가 발부
성폭행 등 혐의 1심서 징역 23년 선고

2001년 8월부터 2007년 4월에는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서 20대 여신도 4명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해 징역 10년을 복역하고 2018년 2월 출소한 뒤 곧바로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 과정서 정명석의 성범죄를 도운 여성 조력자의 처벌도 이어졌다. JMS서 2인자로 불리는 정조은씨와 민원국장 김모씨 등 여성 간부 4명은 1심서 각각 징역 7년~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른 여성 간부 2명은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JMS의 교세가 축소됐지만,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한 움직임도 있다. JMS 여성 간부 중 성범죄 방조죄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지만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된 여성 간부 A씨가 JMS 지도자들을 상대로 ‘간증 집회’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간증 집회서 여성 간부 A씨는 ‘짧지만 정명석과 함께 쓴잔을 마신 자로 JMS의 소중한 지도자’라고 소개하며, 정명석이 “A씨의 간증을 JMS 교역자라면 꼭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스스로 ‘2018년부터 정명석이 있는 기간 동안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기간을 축복받은 기간이라고 하면서, 처음 JMS를 접하게 된 계기를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역사해 준 사연’이라고 말했다.

A씨는 “부모님과 사람들이 나에게 ‘너가 정명석을 봤냐. 나는 가까이서 보고 같이 밥도 먹던 사이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너가 뭘 안다고 믿냐’고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선생님(정명석)을 말씀으로 확실히 봤다. 정말 뭘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부모님이 집 밖을 못 나가게 했고, 그때 나는 말씀을 계속 읽거나 아예 외워버렸다. 그때 말씀의 가치를 더 깨달았다”고 전했다.

법대로
해달라?

A씨는 월명동서 공사하기도 했고 이를 성지 사역이라고 불렀다. 정명석이 출소한 이후에는 혼자 고속버스, 택시를 타고 월명동에 갔다고 간증했다. 그러면서 A씨는 “정명석은 삶 자체가 말씀이다. 말씀을 쉽게 받는다 생각하냐. 정명석은 삶을 통해 말씀을 받으며 정말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고, 정명석이 직접 말씀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본인이 구속된 상황에 대해서는 “죄인이 감옥에 가서 겪는 고통은 당연하지만, 억울하게 감옥에 가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조사 과정서 죄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아니라 아예 죄인이라고 여겼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각종으로 부풀리고 각색해서 별별 말을 다 한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진실 하나뿐이다. 진실을 말하는데 안 믿어주니 억울했다”고 했다.

감옥서 나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A씨는 “감옥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가는 거라 괜찮았다”며 “예전에 정명석이 차라리 예수님처럼 십자가 한 번 지는 게 낫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심정이 느껴졌다”고 정명석과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이 고통을 받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지 않고 나를 도우신다. 신약의 (예수님)제자는 험한 죽음까지도 당했는데, 나도 감옥에 오니 정말 당세를 사는 실감이 난다”며,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와 동일한 격으로 비유했다. 이렇게 되면 정명석은 예수님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당당해

A씨는 “감옥에 있으면 감옥이라는 환경도 힘들지만, 사람으로 오는 어려움과 고통도 있다. 그 안에서 직원이 불러 아픈 사람이 있다고 보살펴 달라고 한 적도 있다”며 “지금 정명석은 시간을 아끼며 각종 일을 하고 있다. 각 교회 순회, 캠퍼스 순회, 전도 이벤트 등이다. 주일 말씀서 하는 말은 정명석 삶의 전부”라며 정명석의 근황도 전했다.


아울러 본인이 감옥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을 두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간증했다. A씨는 “(감옥에 있을 때)꿈을 꿨는데 공소장을 받는 꿈이었다. 공소장을 받나 했는데 순간 하나님이 나타나서 공소장서 내 이름을 모두 지워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삼위와 주(정명석)와의 사연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다. 모두 주와 하나돼 증거의 일과 전도의 일을 하길 원한다”고 마무리했다.

해당 간증 글을 확인한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이 공범이라는 인지도 못하고 죄의식이 없을 정도로 세뇌가 심각하다. (정명석)옆에 있어도 정조은이나 정명석 형제처럼 바로 옆에 있는 거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눈치 못 챌 수도 있다”며 “정명석이 감옥서 변호인 접견을 수시로 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모르는 듯하다”고 개탄했다.

A씨의 간증은 정명석의 주장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명석은 “스스로를 재림 예수라고 한 적 없다”고 했지만, A씨는 본인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거나, 정명석을 ‘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JMS 교인들은 시위를 열기도 했다. JMS 교인 200여명이 참여한 시위서 한 교인은 “녹음 파일 조작 의혹 공정 재판 준수하라” “억울하게 당해 왔다. 증거조작 밝혀내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다른 교인은 “그동안 JMS 교회서의 신앙생활을 존중해주던 가족들조차 편파적 방송에 생각이 바뀌어 가정불화가 생겼다. 우리의 진실을 전하고자 끝까지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사 과정서 나는 죄인 됐다”
미국서 넷플릭스 소송했지만…

충남 금산군의 한 JMS 목사는 “JMS 교회에 대한 편파적, 조작 방송으로 인해 정명석 목사의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금산 내에 ‘JMS를 금산서 추방하라’ 등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가 걸리면서 금산 거주 교인들이 거주권 침해, 집단 따돌림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많은 교인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선데이 저널>에 따르면 정명석의 추종자로 구성된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인협의회’는 넷플릭스를 상대로 델라웨어 주연방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넷플릭스는 피소 후 약 5개월 만인 지난달 24일 한국법원의 정명석에 대한 판결문 5건을 첨부해 소송 기각을 요청했다.

델라웨어 주연방법원은 교인협의회 측의 손배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기각) 결정을 내렸고, 넷플릭스의 소송 비용까지 배상하도록 명령했다.

재판부는 ▲정명석, 피해자, 증인이 대부분 한국인인 만큼 재판은 한국서 진행돼야 하며 ▲넷플릭스는 한국에 지사가 있어 한국법원서 재판할 수 있고 ▲교인협의회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게 판단의 요지였다.

넷플릭스는 JMS 관련 다큐멘터리에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원고 측이 구체적인 명예훼손 내용을 특정하지 못했고, 일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넷플릭스 측은 무엇보다도 정명석은 2009년 여신도 3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지난해 홍콩 여성과 호주 여성 등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성추행 혐의로 한국법원서 이미 2건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엔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프로그램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기각됐으며, 2020년 명예훼손 소송도 기각된 바 있다.

다시 시작된
세뇌의 시간

당시 정명석이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다큐멘터리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입증됐고, 해당 다큐멘터리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이미 한국서 결론이 났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측은 “JMS 교인이 미국법원서 유리한 판결이 날 것이라는 기대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이는 재판부 쇼핑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정정보도] <정명석 없는 JMS는 지금…> 기사 관련

본 신문은 지난 8월19일자 사회 섹션에 <정명석 없는 JMS는 지금…>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복음선교회 A씨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 간증집회를 하고 있으며,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인협의회가 넷플릭스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이 원고 패소 결정됐고 넷플릭스의 소송비용까지 배상하도록 명령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간부 A씨는 2024년 4월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석방된 후 간증집회를 한 것이며, 넷플릭스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