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두 마리 토끼 잡은 정의선

골드보다 빛난 양궁 뒷바라지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이 파리올림픽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전 종목을 석권한 가운데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차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진정성 있는 양궁협회의 모습은 다른 스포츠 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이 이번 2024 파리올림픽서 전 종목을 석권하고 금메달 5개를 포함해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휩쓸며 대기록을 썼다. 3~4개를 예상했던 대한양궁협회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낸 것이다. 한국 양궁은 지난 2016 리우올림픽서도 전 종목을 석권했지만, 당시에는 혼성 단체전이 없어 획득한 금메달은 4개였다. 

금빛 신화
독식 비결

양국 국가대표팀이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꾸준한 지원이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단체 후원 중 최장기간인 40년간 한국 양궁을 지원해 왔다. 

양궁계는 선수들과 코치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열한 훈련에 나선 것을 한국 양궁의 강점으로 꼽고 있다. 또 이를 지원하는 대한양궁협회와 협회 회장을 맡은 현대차그룹 정 회장의 진정성도 높은 뒷바라지가 성적의 비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우진 선수가 지난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서 열린 양궁 남자 개인전서 금메달을 따면서 전 종목 석권의 대기록을 달성하자 언론의 눈은 정 회장에게 쏠렸다. 


정 회장은 한국 양궁의 전 종목 석권 비결을 묻는 질문에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등 잘하는 국가가 많아 전 종목 석권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도 “선수들이 노력한 것만큼, 그 이상으로 잘하도록 협회가 도와서 잘하려 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잘해줘서 메달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대 회장(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력을 통해 구축된 양궁협회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선수들, 스태프의 믿음”이라며 “서로 믿고 한마음으로 했기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 전부터 직접 준비 과정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길 당시 바쁜 일정에도 파리 현지 상황을 사전 점검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 현지에 도착한 정 회장은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과 휴게 공간, 식사, 컨디션 등 준비 상황을 꼼꼼히 점검했다. 양궁 경기 내내 현지에 체류하며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세심히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양궁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끝날 때까지 현지서 선수들을 지원하고 격려한 사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양궁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정 회장의 지극 정성에 입을 모아 “한국 양궁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분은 정의선 회장님”이라고 치켜세웠다. 

선수들 마지막까지 직접 챙겨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마음”


정 회장은 한국 여자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10연패를 달성한 시상식서 선수들 한 명마다 부상을 수여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정 회장은 평소에도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친근하게 스킨십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수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정신적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평도 들린다. 

남자 단체전 결승 상대가 개최국 프랑스로 정해지자 긴장한 선수들을 격려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결승전을 위해 이동 중인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과 마주친 정 회장은 “홈팀이 결승전 상대인데 상대 팀 응원이 많은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주눅 들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 “우리 선수들 실력이 더 뛰어나니 집중력만 유지하자”고 격려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양궁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했던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정 회장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며 “중요한 것은 모두가 어떤 상황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일인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 개인전서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한 전훈영 선수를 별도로 찾아 격려한 것도 정 회장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정 회장은 여자 개인전이 끝난 후 대회 기간 내내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자신의 경기서도 최선을 다한 전 선수에게 감사를 표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메달을 딴 후 정 회장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평소에도 격의 없이 대표팀 선수들과 소통하며 이들을 격려한 덕에, 대표팀 선수들이 정 회장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했다는 후문이다. 

도쿄올림픽 때도 3관왕 안산 선수가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이 끝나자 정 회장에게 직접 금메달을 걸어줬고, 리우올림픽 때는 모든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정 회장을 헹가래 하기도 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도 남자선수들이 단체전 금메달을 정 회장에게 걸어주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 

전폭적 지원
숨은 조력자

정 회장은 평소에도 선수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소통하고 블루투스 스피커, 태블릿 PC, 마사지건, 카메라, 책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항저우아시안게임서 선전한 선수들과 함께 현대차 제로원데이 행사를 둘러보기도 했다. 명소로 꼽히는 성수동서 미래 이동성, 증강현실, 가상현실, 자율주행 등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로 구현된 프로젝트 전시를 함께 체험했다. 

정 회장은 선수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챔피언의 마인드>라는 책을 선물했다. 자기 분야서 최고를 경험했던 선수들이 자신과의 싸움서 이기는 법을 알려주는 멘탈 트레이닝 서적으로 아시안게임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일상으로 돌아온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도쿄대회를 앞두고는 선수들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노력을 풀어낸 도서 <두려움 속으로>와 마사지건을 선물하며 긴장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최선의 경기를 펼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도쿄대회가 끝난 직후부터 대한양궁협회와 함께 이번 파리올림픽서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수 있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양궁협회와 협의하며 준비했다. 

우선 선수들의 체계적인 훈련을 지원했다. 파리올림픽 양궁경기장인 앵발리드 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진천 선수촌에 건설하도록 했으며, 이 경기장서 국가대표팀은 경기장의 특성을 몸에 익히며 체계적인 연습을 시행했다. 

간판, 대형 전광판 등 구조물을 대회 상징색까지 반영해 세트 경기장을 구현해 냈다. 재현한 경기장서 대표팀 선수들은 하루 최고 600발씩 화살을 쏘면서 파리올림픽을 미리 경험했다. 파리올림픽서 예상되는 음향, 방송 환경 등을 적용해 모의대회를 치르고. 한계에 도전하는 연습도 했다. 

전북현대모터스와 협의해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서 소음 적응 훈련도 진행했다. 지난 6월29일 전북현대와 FC서울의 경기를 앞두고 대규모 관중 앞에서 약 40분가량 남자선수들과 여자선수들이 각각 팀을 이뤄 실전과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펼쳤다. 

앵발리드 경기장이 파리 센강에 인접해 바람이 강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서 환경 적응 훈련도 시행했다. 이와 더불어 앵발리드 경기장서 약 10km 떨어진 곳의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양궁 국가대표팀만을 위한 전용 연습장을 마련했다. 


휴식과 훈련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진 곳으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통상적인 출국 날짜보다 4일 정도 빠른 지난달 16일 출국해 전용 연습장서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이 덕분에 선수들이 시차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성 강조
철저한 경쟁

전용 훈련장과는 별도로 경기장서 약 300m 거리에 대표팀 휴게 공간을 마련해 틈틈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파리올림픽 대회 기간 선수들이 안정적인 심리상태와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심리 전문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도 동행하도록 했다. 선수들은 스트레스가 심할 때 호흡 및 명상으로 긴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훈련과 함께 심리적인 고충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여자 양궁 단체전 10연패를 달성한 후 임시현 선수는 “한국 양궁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분은 정 회장님”이라며 “정 회장님이 많은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더 좋은 환경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여자 대표팀은 단체전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세계 양궁 역사에 금자탑을 쌓았다. 이와 함께 남자 단체전은 3연패, 혼성 단체전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도쿄대회에 이어 2연패를 기록했다.

김우진 선수는 남자 양궁 사상 첫 3관왕에 등극했으며 리우대회부터 파리대회까지 금메달 5개로 한국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양궁 대표팀의 기량을 높이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첨단 기술도 화제였다. 지난 2012년부터 양궁협회와 기술 지원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 온 현대차그룹은 한국 양궁 훈련을 위한 ‘맞춤형 R&D’에 돌입했다. 

현대차그룹은 도쿄대회 직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해 양궁 선수들과 코치진을 심층 인터뷰하고, 훈련 과정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중 선수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현대차그룹 기술력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기존 제공 기술들도 선수들 훈련에 최적화되도록 업그레이드했다.

이를 통해 ▲선수와 1대1 대결을 펼치며 경기 감각을 향상하는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슈팅 자세를 정밀 분석해 완벽한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야외 훈련용 다중 카메라’ ▲어디서든 활 장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활 검증 장비’ ▲직사광선을 반사하고 복사에너지 방출을 극대화하는 신소재를 개발해 적용한 ‘복사냉각 모자’를 지원했다.

협회 운영 관여하지 않아
“세계 최강 비결은 시스템”

또 ▲3D 프린터로 선수의 손에 최적화해 제작한 ‘선수 맞춤형 그립’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 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파악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 장치’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고정밀 슈팅 머신’ 등을 파리대회 준비 과정과 실전 경기서 선수단과 코치진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지난 1985년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 정의선 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을 물려받으면서 한국 양궁은 재정 안정화,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우수선수 육성 시스템 체계화, 국제적 위상 강화 등을 달성했다. 

그러면서도 현대차그룹은 대표팀 선발이나 협회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투명성과 공정성만 당부하고 있다. 

그 결과 양궁협회에는 지연, 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이 없다. 국가대표는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서만 선발된다. 명성이나 이전 성적보다는 현재의 성적으로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고, 코치진도 공채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된다.

지난 도쿄대회와 항저우아시안게임의 경우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가 1년 연기되자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다시 열었다. 이미 지난해에 선발된 선수들이 있었지만, 확고한 원칙에 따라 경쟁을 통해 대회가 열리는 해에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들을 선발한 것이다.

이번 파리대회 국가대표도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 전 금메달리스트들을 제치고 전훈영, 남수현 선수가 선발됐다.

단체전부터 혼성, 개인전까지 제패하며 대회 3관왕에 오른 김우진은 “대한양궁협회는 어느 선수나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며 “공정하고 클린한 과정을 통해 과거 실적이나 이력 등의 계급장을 떼고 모두가 동등한 위치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중·고교를 넘어 대학교와 실업팀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준 것 자체가 한국 양궁이 최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40년간 후원
최장기 기록

현대차그룹은 지난 40년을 넘어 대한양궁협회의 회장사로서 대한양궁협회의 미래 혁신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양궁이 국민에게 사랑받고 글로벌 무대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후원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4년 뒤인 2028년에 열리는 하계 LA올림픽 준비에 나서고 있다. 정 회장은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곧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번 대회서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분석해서 잘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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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