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평택 기획부동산 박 사장 조직 정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8.05 10:40:43
  • 호수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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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폰지·코인 3종 사기 세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기도 평택시 소재에 200평대 부동산을 쪼개 팔아 약 7억원의 수익을 올린 기획부동산 조직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 2019년 박모씨는 “3년 안에 개발이 진행돼 2~3배까지 오를 땅”이라며 친인척까지 동원해 투자금을 모았다. 뒤늦게 알고 보니 10년 뒤에나 오를 땅이었다. 현재 박씨 일당은 비상장 코인을 발행해 전국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폰지 사기단’으로 변모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사기꾼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딴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을 ‘폰지 사기’(Ponzi scheme)라고 부른다. 이는 사실상 실익이 없는 사업에 투자금을 모아 배당(수익금)을 주는 수법이다. 다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는 지인들에게 “요즘 폰지 사업을 한다”고 자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단계 사업을 비하하는 폰지 사업을 한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다닌 것이다. 

평택항 호재
10년 뒤 얘기

사건을 수사한 경기 파주경찰서는 부동산 투자수익을 보장한 박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폰지 사기단의 확장을 부추긴 형국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의 사기 행각은 지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의 피해자 이모씨는 지인 홍모씨로부터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일대에 토지 매입을 추천받았다. 홍씨와 함께 일하는 박씨를 만난 것도 이때부터다. 박씨는 이씨를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평택도시기본계획서 등을 참고 자료로 보여주며 투자를 권유했다. 

당시 박씨는 “동평택에 위치한 해당 부동산은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험프리서 안중역으로 들어가는 도로 인근 ‘계획관리지역’이면서 ‘주거개발진흥지구’에 위치해 있다”며 “이곳은 안중역으로부터 약 2.7km, 캠프험프리로부터 약 5km, 평택호로부터 6km, 국제무역항인 평택항으로 10km, 평택역으로부터 약 10km 반경 안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부동산 전문가들도 안중역 개발, 평택호 개발 등 산업단지 개발과 이에 따른 택지 개발이 완료되면 이 부동산의 현저한 시가 상승이 이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한 끝에 박씨 일당은 이씨 등에게 3~5년 안에 고수익을 약속했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박씨의 추천으로 덕목리 일대 200평대 부동산을 여러 조각으로 쪼갠 지분 중 5평을 약 1700만원대(1평당 약 340만원)에 구매했다.

무차별 카톡으로 “3~4년 3배” 약속
“사촌 동생도 속였다” 쏟아지는 제보

올해로 약 6년이 지났음에도 2018년 기준 평당 340만원대에 판매한 박씨 일당은 최근에서야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며 말을 바꿨다.

특히, 해당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은 340만원이 아닌 평당 65만원 선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런 수법으로 박씨 일당은 200평 규모의 부동산 지분을 쪼개 20명에게 총 7억원에 판매했다. 애초에 감정평가액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팔고, 단기 수익성 부동산 투자라고 속인 것이 드러나면서 박씨와 투자자 간의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최근 박씨는 투자손실의 책임을 묻는 투자자들에게 “코로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땅값이 폭락한 것”이라며 “누가 사라고 종용했냐? 투자는 본인 책임”이라며 반박했다. 결국 이씨는 스스로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난 3월경 이씨를 찾아온 홍씨는 “부동산 수익을 챙기지 못한 것을 만회할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며 한 사업 설명회에 초대했다. 설명회 연단에 선 인물은 박씨였고, 이미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의 내용은 단순했다. ‘100만원을 투자하면 매일 일정 금액을 입금해주고 투자금을 많이 입금할 경우, 그만큼 돌려주는 금액도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투자금을 넣으니 일부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이씨는 대출까지 실행해 돈을 마련했고 박씨가 운영하는 Y사에 입금했다.

“누가 시켰냐?
다 본인 책임”

그러다 Y사는 돌연 사업을 중단했고, 투자금의 10분의 1도 받지 못한 상태서 이씨는 뒤늦게 ‘사기’였음을 깨닫게 됐다. 일부 투자자와 이씨가 오픈채팅방서 사기라고 주장하자, Y사 호남 사무실의 책임자이자 대표인 박씨는 이들을 퇴장시켰다. 

이후 박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경영상 문제로 현재 사무실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박씨의 피해자들은 “평택 부동산을 쪼개 팔다가 법인을 이전하던 수법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입은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경 박씨가 필리핀서 발행한 코인의 상장을 약속하면서 약 1500만원가량을 팔았기 때문이다. ‘눈 뜨고 코 베인’ 이씨는 박씨에게 항의할 수조차 없었다. 

박씨가 이씨에게 소개한 코인은 현재 시세도 확인되지 않는 앱조차 없는 상태였다. 실질적 가치가 없는 ‘스캠 코인’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박씨가 투자자들에게 해당 코인의 판매금을 자신의 개인계좌로 입금하라고 지시한 부분도 사기 행위라는 의혹을 가중케 했다.

이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없는 해당 코인 앱을 박씨가 직접 설치해줬고, 입금한 금액에 맞는 시세를 적용한 코인 수량을 받은 것인지 의심이 된다”며 “왜 코인 발행처가 아닌 박씨의 계좌로 입금하라고 했는지 의문이었지만, 손실금을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고 토로했다.

눈 뜨고 
코 베여

박씨 일당은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도,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했다. 이들의 수법은 기획부동산, 다단계, 코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고소, 고발에도 형사적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이들은 새로운 사기 행위를 연구하고 활보하는 모양새다.

박씨의 사촌 동생 A씨도 ‘7000여만원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며 제보에 나섰다. 제보자 A씨는 사촌형 박씨의 사기 행각에 혀를 내둘렀다.

A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조직적으로 몰려다니며 분야만 바꿔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람”이라며 “법망을 피해 처벌을 피한 전세 사기꾼들의 피해자들이 죽고 나서야 여론에 휩쓸려 법적 처벌이 이뤄진 것처럼 박씨의 피해자들도 배신감에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고 토로했다. 

현재 A씨는 혈육인 박씨를 혐오하며 피해자들을 도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가 박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사진 및 통장 입금 내역 등에 따르면, 제보자들의 주장과 일치했다. 박씨의 다단계 사업에 참여한 이들은 약 20회가량 투자금을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는 “○○ 사업이 연기됐다. 계약이 합의되면 입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픈채팅방서 주고받던 대화의 답장은 점점 뜸해지더니, 투자금의 10분의 1도 회수가 되지 못한 상태에 이르자 박씨는 “본사가 돈을 집행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라며 본사와의 대화 녹취 파일과 투자 입금 내역을 보여주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본전 찾겠다고···3번씩 피해
불송치 결정 “증거 불충분” 

그러나 A씨는 박씨가 피해자라는 주장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폰지 사기 특성상 피라미드 구조인데, 제일 꼭대기서 리딩 및 총책은 이미 많은 수익을 올렸고 그 밑에 영업사원들은 따로 영업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박씨 등이 금전적 피해를 보는 일은 없다”며 “나도 사촌형(박씨) 때문에 5년째 고생하고 있지만, 이씨는 기획부동산, 폰지 사기, 스캠 코인까지 당한 것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A씨는 박씨 일당을 경찰에 신고했으나 법적으로 처벌이 불가하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A씨는 “오픈채팅방서 박씨가 분위기 끌어올리고, 수익 보장하면서 투자금을 모았다가 도망갔는데 왜 법적으로 처벌이 불가한지 모르겠다”며 “소액의 피해를 입었을 뿐이라고 참는 피해자들이 이런 사기꾼을 양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2021년 10월26일 A씨는 경기 파주경찰서에 박씨를 신고했다. 2022년 4월14일 수사를 종결한 파주경찰서는 사기 혐의를 받은 박씨 일당에 대해 불송치를 결정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고소인(A씨)이 피의자 박씨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박씨는)인근에 개발계획이 확정됐기 때문에 앞으로 개발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지, 확정적으로 이야기한 사실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고 불송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인해 허위로 설명해 토지를 판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투자 유의
검증 필요

경찰은 “박씨와 A씨가 대화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박씨가 A씨에게 ‘회수는 3∼5년 정도로 보고 있지’ ‘내 생각엔 세금 털고 2.5에서 3배’라고 말한 사실은 확인된다”면서도 “다만 개발을 확정해서 말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 특성상 손실 위험은 고소인이 감수해야 함에 따라 설사 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결과만으로 기망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발 가능성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설명해 부동산 매매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볼 수 없다.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 또한 없다”며 “따라서 피의자 측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케이삼흥 김현재 소환, 왜?

박씨 일당의 범죄 행각은 ‘기획부동산 창시자’인 케이삼흥 김현재 회장과 흡사하다.

경찰은 최근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김 회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고 수사망을 좁혀나가고 있다.

케이삼흥의 자금 추적에 나선 경찰은 케이삼흥의 계좌서 거액이 유명 부동산 전문가 신모씨의 계좌로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신씨는 부동산 경매를 앞세워 2000여명으로부터 6500억원을 가로챈 투자업체 DH 사건에도 연루돼있으며 DH 대표는 신씨에게 투자금 수천억원을 전달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신씨는 영장심사를 하루 앞두고 숨지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삼흥 피해자들은 투자금 추적과 투자자들의 피해 회복이 어려워질까 우려했다. 케이삼흥 사태의 피해자는 최소 1000여명으로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케이삼흥은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 업체다.

전국 7곳의 지사를 설립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할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최소 한 달에 2%, 연 24% 수준의 배당수익을 주겠다고도 약속했다.

지난 몇 년간 수익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다가 올해 3월부터 무더기 수익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했다.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을 받아 기존 투자자의 투자금을 돌려막는 등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의 수법임이 밝혀졌다. 

케이삼흥의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 중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현재 파악된 피해 원금은 1300억원 수준이다. 확인된 피해자만 최소 1000명이 넘고 피해액은 최대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김현재 회장은 비슷한 수법의 기획부동산 사기로 투자자들로부터 74억여원을 가로채고 계열사 돈 245억 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 등으로 200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과 벌금 81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을 내고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일부 피해자들은 김 회장이 20년 전 비슷한 사기를 벌였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법조계는 “투자자들도 투자 전에 충분한 검증과 조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며 “정부는 사기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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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