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먹히는 ‘청와대 관계자’ 사기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6.04 10:21:57
  • 호수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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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에나 쓰던 수법이 지금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기망’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해서 진실을 숨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로,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속일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권력을 사칭한 사기꾼은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속았다고 인지하기 어렵다는 함정이 발생한다.

사기죄는 수법이 날로 고도화·지능화하면서 전체 범죄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는 반면, 검거율은 매년 줄고 있다. 지난 3월18일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과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사기 사건 발생 건수는 2017년 4만343건, 2018년 4만7352건, 2019년 5만5799건, 2020년 6만5637건, 2021년 5만5860건, 2022년 5만8302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고도화
지능화

이 기간 전체 범죄 중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2.8%(2017년)서 21.2%(2022년)로 급증했다. 경찰이 처리하는 사건 5건 중 1건이 사기인 셈이다. 그러나 사기 범죄 검거율은 하락세다. 사기 범죄 검거 건수는 2017년 3만2721건, 2018년 3만5470건, 2019년 4만1093건, 2020년 4만2596건, 2021년 3만1371건, 2022년 3만1837건으로 매년 3~4만건 수준이다.

발생은 증가하는데, 검거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보니 같은 기간 사기 범죄 검거율은 81.1%(2017년)서 54.6%(2022년)까지 떨어졌다. 신종 사기 수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고도화·지능화되는 가운데 경찰 단속이나 수사가 이를 뒤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 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것이 ‘권력 사칭형 사기’다. 누구나 겪어봤을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이스피싱이 가족 등 지인 사칭은 크게 감소한 데 반해 검찰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생한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은 2만550건으로 피해액만 4143억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만 2506건(343억원)에 달하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발생했다. 2021년 912건(171억원), 2022년 1310건(213억원)과 비교해 증가세가 뚜렷하다. 반면 지인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1년 991억원, 2022년 927억원서 지난해 상반기 32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대출 빙자형은 2021년 521억원, 2022년 311억원, 지난해 상반기 241억원으로 집계됐다.

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서는 검찰, 경찰, 법원을 사칭한 건수가 1만6008건(34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10건 중 8건 이상이 사법기관 행세를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사칭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 직원인 것처럼 연락해 돈을 요구한 경우는 1781건(5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시중은행(146건, 22억원), 우체국·택배회사(254건, 145억원) 등을 사칭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 법원, 검찰, 경찰, 금감원…
사칭 범죄 늘지만 처리 건수 떨어져

보이스피싱이 대면하지 않고 당하는 사기라면, 직접 만나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이럴 때 대통령 친인척, 대통령실 관계자, 유명 연예인 등을 사칭한다.


“나는 고졸이며 언니는 의대 근처도 안 갔고, 결국은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지난달 10일, 징역 9년과 징역 3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의사 사칭 재미교포 사기범 일명 ‘제니퍼 정’ A씨(51)와 여동생 B씨(45)의 판결문에는 거짓말로 점철된 자매의 삶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A씨는 자녀 유학이나 미국 영주권 취득 명목으로 피해자 4명에게 41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 모 대학병원에 교환교수로 온 미국 의사이자 해외 의료기기 회사 한국 총판 대표로 자신을 거짓 소개하며 사기 행각을 벌였으나,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 해당 병원은 A씨가 교환교수로 재직한 이력이 없다고 밝혔고, 그가 제시했던 미국 의사면허도 가짜로 판명됐다. 

A씨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컬럼비아대학 졸업증에는 ‘생물학 석사’라는 전공이 기재돼있을 뿐, 의대 졸업증명서도 없었다.

만 23세였던 1997년, 미국서 입국한 그는 2009년까지 전남 순천서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2010년부터는 광주 영어학원 본부장으로 일한 것으로 드러나 어린 나이에 미국서 의대 졸업 후 입국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가 ‘제니퍼 정’이라는 이름을 광주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7~2018년 외국 의료기기 회사의 한국 측 파트너를 자임하며 광주시에 3200억원 규모 투자를 제안하면서다. 해당 기업의 한국 공장을 세우겠다며 광주시와 ‘비전 선포식’까지 열었으나, 본사에서 “한국 내 공장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결국 촌극으로 끝났다.

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의료기기 회사 한국지사 대표인 것처럼 행세한 A씨는 의료기기 회사 측에 투자를 요청하기는 했으나 투자 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었고, 회사 제품을 주문하고 위조 수표로 결제대금을 보내 거래도 전혀 없었다.

A씨의 거짓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녀의 미국 유학을 원하는 의사 등을 대상으로 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다며 수십차례 거액을 받아 생활비나 쇼핑 등에 탕진했다.

이 과정서 주한 미대사관에 근무하는 국제교류 변호사 연락처로 비자 발급 서류 등을 보냈지만, 변호사는 가상의 인물이었고 서류를 보낸 연락처도 A씨가 개통한 휴대전화였다.

A·B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기 범행을 계속하면서 서로 다투거나 상의하며 범행을 모의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서 “우리 가족은 모두 거짓말로 살아왔다”고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광주지법 형사11부(고상영 부장판사)는 “피해자 자녀 중 일부는 미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거나 입학이 취소돼 머나먼 미국서 전전하는 등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학창 시절을 허비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엔 윤석열 대통령의 인척이라며 세계 40개국에 첨단소재 등을 수출하는 국내 대기업의 공장 견학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기업이 진위 파악에 나섰지만, 끝내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관계자는 “이름이 ‘윤석○’이란 사람이 계열사 공장 견학을 요구했지만, 이틀째 확인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에 본사가 있는 그룹은 지방 계열사 공장 견학이라고 했는데, 일반인의 견학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두 사람을 거쳐 그룹 본사로 전달된 사람의 이름이 윤 대통령 이름의 앞에 두 자와 같아 마치 친인척인 것 같기도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단골 멘트
비자금 세탁

수소문 결과 특정 종교단체의 회장으로 동명이인이 있긴 하지만, 같은 인물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장 견학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실은 “가까운 친척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손해를 입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 사칭범들은 피해자에게 ‘기망-착오-인과관계-재물의 교부(재산상 이익의 취득)’로 이어지는 범죄구성요건을 성립시켜 돈을 착취한다. 


“나는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1280조원을 관리하는 청와대 국고국 직원이다. 비자금 관리 과정에 급히 필요한 1억원을 빌려주면 나중에 2억원으로 돌려주고 별도로 공로금 30억원을 지급하겠다.”

2014년 3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외모가 비슷한 C씨가 D씨에게 이같이 제안했다. C씨는 자신을 김 전 실장의 6촌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C씨 등 세 명은 이 같은 수법으로 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얼굴이 김 전 실장과 많이 닮아 깜짝 놀랐다. 통치자금의 존재 사실을 누설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보안각서도 쓰게 해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왜 ‘허황된 말을 하는’ 사칭범의 말을 믿을까? 피해 사례를 보면 사칭범들은 연기력, 명품 세트, 권위, 당황 유도, 약점 활용, 시간 끌기, 민사 사건화 등으로 본인을 고소하거나 경찰 신고를 막는다.

사기 범죄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기범과 피해자 간 신뢰관계가 형성되거나, 특정 사실에 대해 피해자가 기망을 당해야 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설득을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이 과정서 피해자가 스스로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칭범은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현실 고통 잊어?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사칭범은 피해자 선정을 위해 충분히 조사를 벌인다. 단지 욕심이 많거나, 약자이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이 갖고 있는 강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후 친목을 형성하며 이익을 취한 뒤 신뢰를 배반하는데, 이 과정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또 다른 대상을 정하는 식이다. 

심지어 공범을 등장시켜 희생자인 것처럼 위장해 피해자가 사칭범을 고소하지 않게 하거나 결혼 사기처럼 피해자로 하여금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심리적 조작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는 귀신같은 재주를 갖고 있으며,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사람들이 믿을만한 미끼를 던져놓는다. 또 그것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전술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들도 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아예 상대방의 삶으로 들어가 심리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칭범들은 하나같이 병적일 정도의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과 자아를 만들어내면서 일생을 거짓으로 살아간다.

이 과정서 반사회적, 연극적, 경계적,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앓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상대를 고려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결국 자아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무관심하지만, 남을 속이는 행위를 통해 상대를 비하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피해자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칭범들 자체가 사칭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 피해자도 사칭범이 하는 말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통하는
권력자

한 경찰 관계자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거나 번복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다. 사기 범죄 처벌을 좀 더 세분화해 권력층 사칭 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학 전문가는 “대중은 내세울만한 유력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을 쉽게 신뢰하고 그에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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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