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먹히는 ‘청와대 관계자’ 사기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6.04 10:21:57
  • 호수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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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에나 쓰던 수법이 지금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기망’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해서 진실을 숨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로,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속일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권력을 사칭한 사기꾼은 피해자를 기망했다는 것은 명확하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속았다고 인지하기 어렵다는 함정이 발생한다.

사기죄는 수법이 날로 고도화·지능화하면서 전체 범죄서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는 반면, 검거율은 매년 줄고 있다. 지난 3월18일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과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사기 사건 발생 건수는 2017년 4만343건, 2018년 4만7352건, 2019년 5만5799건, 2020년 6만5637건, 2021년 5만5860건, 2022년 5만8302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고도화
지능화

이 기간 전체 범죄 중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2.8%(2017년)서 21.2%(2022년)로 급증했다. 경찰이 처리하는 사건 5건 중 1건이 사기인 셈이다. 그러나 사기 범죄 검거율은 하락세다. 사기 범죄 검거 건수는 2017년 3만2721건, 2018년 3만5470건, 2019년 4만1093건, 2020년 4만2596건, 2021년 3만1371건, 2022년 3만1837건으로 매년 3~4만건 수준이다.

발생은 증가하는데, 검거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보니 같은 기간 사기 범죄 검거율은 81.1%(2017년)서 54.6%(2022년)까지 떨어졌다. 신종 사기 수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고도화·지능화되는 가운데 경찰 단속이나 수사가 이를 뒤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기 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것이 ‘권력 사칭형 사기’다. 누구나 겪어봤을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도 여기에 해당한다. 보이스피싱이 가족 등 지인 사칭은 크게 감소한 데 반해 검찰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발생한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은 2만550건으로 피해액만 4143억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만 2506건(343억원)에 달하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발생했다. 2021년 912건(171억원), 2022년 1310건(213억원)과 비교해 증가세가 뚜렷하다. 반면 지인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1년 991억원, 2022년 927억원서 지난해 상반기 32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대출 빙자형은 2021년 521억원, 2022년 311억원, 지난해 상반기 241억원으로 집계됐다.

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서는 검찰, 경찰, 법원을 사칭한 건수가 1만6008건(34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10건 중 8건 이상이 사법기관 행세를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사칭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 직원인 것처럼 연락해 돈을 요구한 경우는 1781건(5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시중은행(146건, 22억원), 우체국·택배회사(254건, 145억원) 등을 사칭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 법원, 검찰, 경찰, 금감원…
사칭 범죄 늘지만 처리 건수 떨어져

보이스피싱이 대면하지 않고 당하는 사기라면, 직접 만나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이럴 때 대통령 친인척, 대통령실 관계자, 유명 연예인 등을 사칭한다.


“나는 고졸이며 언니는 의대 근처도 안 갔고, 결국은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지난달 10일, 징역 9년과 징역 3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의사 사칭 재미교포 사기범 일명 ‘제니퍼 정’ A씨(51)와 여동생 B씨(45)의 판결문에는 거짓말로 점철된 자매의 삶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A씨는 자녀 유학이나 미국 영주권 취득 명목으로 피해자 4명에게 41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 모 대학병원에 교환교수로 온 미국 의사이자 해외 의료기기 회사 한국 총판 대표로 자신을 거짓 소개하며 사기 행각을 벌였으나,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 해당 병원은 A씨가 교환교수로 재직한 이력이 없다고 밝혔고, 그가 제시했던 미국 의사면허도 가짜로 판명됐다. 

A씨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컬럼비아대학 졸업증에는 ‘생물학 석사’라는 전공이 기재돼있을 뿐, 의대 졸업증명서도 없었다.

만 23세였던 1997년, 미국서 입국한 그는 2009년까지 전남 순천서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2010년부터는 광주 영어학원 본부장으로 일한 것으로 드러나 어린 나이에 미국서 의대 졸업 후 입국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가 ‘제니퍼 정’이라는 이름을 광주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7~2018년 외국 의료기기 회사의 한국 측 파트너를 자임하며 광주시에 3200억원 규모 투자를 제안하면서다. 해당 기업의 한국 공장을 세우겠다며 광주시와 ‘비전 선포식’까지 열었으나, 본사에서 “한국 내 공장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결국 촌극으로 끝났다.

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의료기기 회사 한국지사 대표인 것처럼 행세한 A씨는 의료기기 회사 측에 투자를 요청하기는 했으나 투자 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었고, 회사 제품을 주문하고 위조 수표로 결제대금을 보내 거래도 전혀 없었다.

A씨의 거짓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녀의 미국 유학을 원하는 의사 등을 대상으로 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다며 수십차례 거액을 받아 생활비나 쇼핑 등에 탕진했다.

이 과정서 주한 미대사관에 근무하는 국제교류 변호사 연락처로 비자 발급 서류 등을 보냈지만, 변호사는 가상의 인물이었고 서류를 보낸 연락처도 A씨가 개통한 휴대전화였다.

A·B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기 범행을 계속하면서 서로 다투거나 상의하며 범행을 모의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서 “우리 가족은 모두 거짓말로 살아왔다”고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광주지법 형사11부(고상영 부장판사)는 “피해자 자녀 중 일부는 미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거나 입학이 취소돼 머나먼 미국서 전전하는 등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 할 학창 시절을 허비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엔 윤석열 대통령의 인척이라며 세계 40개국에 첨단소재 등을 수출하는 국내 대기업의 공장 견학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기업이 진위 파악에 나섰지만, 끝내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관계자는 “이름이 ‘윤석○’이란 사람이 계열사 공장 견학을 요구했지만, 이틀째 확인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에 본사가 있는 그룹은 지방 계열사 공장 견학이라고 했는데, 일반인의 견학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두 사람을 거쳐 그룹 본사로 전달된 사람의 이름이 윤 대통령 이름의 앞에 두 자와 같아 마치 친인척인 것 같기도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단골 멘트
비자금 세탁

수소문 결과 특정 종교단체의 회장으로 동명이인이 있긴 하지만, 같은 인물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장 견학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실은 “가까운 친척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손해를 입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 사칭범들은 피해자에게 ‘기망-착오-인과관계-재물의 교부(재산상 이익의 취득)’로 이어지는 범죄구성요건을 성립시켜 돈을 착취한다. 


“나는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1280조원을 관리하는 청와대 국고국 직원이다. 비자금 관리 과정에 급히 필요한 1억원을 빌려주면 나중에 2억원으로 돌려주고 별도로 공로금 30억원을 지급하겠다.”

2014년 3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외모가 비슷한 C씨가 D씨에게 이같이 제안했다. C씨는 자신을 김 전 실장의 6촌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C씨 등 세 명은 이 같은 수법으로 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얼굴이 김 전 실장과 많이 닮아 깜짝 놀랐다. 통치자금의 존재 사실을 누설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보안각서도 쓰게 해 피해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왜 ‘허황된 말을 하는’ 사칭범의 말을 믿을까? 피해 사례를 보면 사칭범들은 연기력, 명품 세트, 권위, 당황 유도, 약점 활용, 시간 끌기, 민사 사건화 등으로 본인을 고소하거나 경찰 신고를 막는다.

사기 범죄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기범과 피해자 간 신뢰관계가 형성되거나, 특정 사실에 대해 피해자가 기망을 당해야 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설득을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이 과정서 피해자가 스스로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칭범은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현실 고통 잊어?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사칭범은 피해자 선정을 위해 충분히 조사를 벌인다. 단지 욕심이 많거나, 약자이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이 갖고 있는 강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후 친목을 형성하며 이익을 취한 뒤 신뢰를 배반하는데, 이 과정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또 다른 대상을 정하는 식이다. 

심지어 공범을 등장시켜 희생자인 것처럼 위장해 피해자가 사칭범을 고소하지 않게 하거나 결혼 사기처럼 피해자로 하여금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심리적 조작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상처받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는 귀신같은 재주를 갖고 있으며,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사람들이 믿을만한 미끼를 던져놓는다. 또 그것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전술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들도 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아예 상대방의 삶으로 들어가 심리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칭범들은 하나같이 병적일 정도의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과 자아를 만들어내면서 일생을 거짓으로 살아간다.

이 과정서 반사회적, 연극적, 경계적,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앓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상대를 고려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결국 자아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무관심하지만, 남을 속이는 행위를 통해 상대를 비하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피해자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칭범들 자체가 사칭을 위해서 현실의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 피해자도 사칭범이 하는 말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통하는
권력자

한 경찰 관계자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거나 번복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다. 사기 범죄 처벌을 좀 더 세분화해 권력층 사칭 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학 전문가는 “대중은 내세울만한 유력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을 쉽게 신뢰하고 그에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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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