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5인의 고백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5.21 14:00:16
  • 호수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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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 가도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방 안에 틀어박힌 뒤 잠을 자고 나면 그런 느낌이었다. 여태까지 골치 아팠던 일이 끝난 느낌. 그래서 집 밖을 안 나갔고, 과하게 잠에 의존했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사람의 말이다. 이들은 부모에게 강압적인 양육을 받거나, 불합리한 직장생활을 했다. 이들은 모두 ‘집 밖을 안 나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청년들은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힘들었는데 경제적, 사회·제도적, 관계적 영역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입시경쟁이 극심해 청소년들에게 등교 거부, 은둔, 고립하는 경향이 드러나며 은둔형 외톨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4.5%가…
대부분 남성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2019년 처음 실시됐다. 광주광역시 내 아파트 거주 세대의 20%인 10만 가구를 대상으로 안내문을 발송해 수집된 1095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37명이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에는 서울특별시 내 19세부터 39세 사이의 청년이 포함된 5000가구를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자의 4.5%가 고립 혹은 은둔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즉, 서울에 거주 중인 청년 인구 중 약 12만9000명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평균연령이 29.55세였으며, 남성이 76.49%로 여성보다 많았다. 은둔 기간 평균은 80.66개월로 조사됐다.

은둔형 외톨이의 판단 기준은 ▲학교나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집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혼자 외출하는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날을 집에서 보내고 ▲집 밖을 전혀 나가지 않고 고립돼있거나 ▲은둔 기간이 6개월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를 말한다.


결국 국내서도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상당한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의 개인적 문제는 불규칙한 생활 습관 및 운동 부족, 고혈압과 비만을 포함한 만성질환 증가 시에도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은둔 생활은 학업 결손으로 이어져 실업과 빈곤 문제로도 이어진다. 은둔 중인 자녀나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원의 스트레스, 우울, 죄책감 수치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이 있다는 것으로 타인에게 낙인이 찍히거나 차별을 당해, 은둔형 외톨이와 가족이 외부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도 큰 문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보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을 먼저 겪었던 일본은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면서 ‘8050 문제’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80대 노부모가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연금 수입으로 먹여 살리다가 빈곤에 빠지고 노인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또 80대 노부모가 사망했는데도 50대 자녀가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집에서 시신과 함께 살거나, 부모 사망 뒤 50대 자녀가 집에서 고독사하는 경우도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바 있다. 심지어 부모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한국도 은둔형 외톨이가 늘면서 일본의 절차를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00년대 초반 시작, 일본은 ‘8050 문제’
부모 사망해도 사망신고 안 하는 이유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들이 왜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재진은 5명의 은둔형 외톨이를 분석한 책 <청년 은둔형 외톨이의 경험과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저자 노가빈·이소민·김제희) 사례를 참고했다.

이들은 20대 중반부터 가족 이외에 교류를 단절하고 한정된 공간서 최소 3개월 이상 칩거했다. 여성 1명, 남성 4명으로, 학력은 고교 중퇴부터 대학 재학까지 다양했다. 최초 은둔 시기는 주로 10대 후반서 20대 초반이었며, 총 은둔 기간은 6개월에서 4년까지였다.


5명 중 유일한 여성인 A(29)씨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살다가 아빠의 사업 실패로 다시 귀가하자, 엄마는 집을 나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환청·환각 증상이 발생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아빠, 여동생과 함께 반지하 방 한 칸에서 지냈던 B씨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아빠의 입학금 탕진으로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이후 A씨가 24세 때 아빠가 식물인간이 됐으며 치료비가 없어 사망했다.

이후 여동생이 동사무소를 통해 엄마를 찾았고,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 여동생과 넷이서 함께 살았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은둔 중이며 최장 4년을 은둔하기도 했다. 잠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B(25)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20세까지 엄마·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아빠와는 1년에 1~2번 정도 만났다. 21~23세까지 친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지금은 주변 원룸서 살고 있다. 할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과는 만나지 않았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불우한
가정환경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B씨는 중학교 때까지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활발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퇴했다. 당시 부모님도 B씨의 자퇴를 말리지 않았다. 자퇴 이후 바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던 그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고립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사이버 경찰에 연락하기도 했다.

C씨도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C씨는 8세 때 엄마와 모자원(배우자가 없는 어머니와 그 자녀를 수용해 보호하는 미혼모 임시 거주시설) 입소 생활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새 환경에 잘 적응했지만,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고등학교 때 바로 교우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C씨가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진로를 찾으면서다. 친구들이 전공을 정하거나 취직하는 모습을 보며 심한 괴리감과 무기력감을 느꼈고 20세 이후부터 칩거에 들어갔다.

그나마 C씨의 엄마가 다정하고 양육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특히 C씨를 데리고 상담센터를 방문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알아봐 주는 등 적극적이었다. 이 와중에도 무기력감을 호소하며, 평생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비관하고 있다.

D씨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이후 엄마, 새아빠, 이복형제 2명과 함께 살았다. 새아빠는 충실했지만 D씨에게만 유독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자주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잤고, 이복형제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평소 아빠와의 자주 다퉜다. 

고등학교 자퇴 후 직업교육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일이 너무 힘들어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떡집 일을 도왔다. 이후 아빠와 잦은 갈등으로 다시 집을 나갔고 친구 집에서 장기간 고립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E씨는 중학교 때부터 뉴미디어 계통에 흥미를 보여 적극적으로 꿈을 키웠다. 그러나 부모님은 지지하지 않았고 공부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E씨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누구 하나
신경 안 써”

아빠는 매우 가부장적이었고, 엄마는 오랫동안 고부갈등을 겪었다. 아빠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48세에 의사가 돼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E씨와의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었다. “무조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3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나, 일상은 점점 힘들고 무기력해졌으며 방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화를 냈고, 엄마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속수무책인 가운데, E씨 스스로 인터넷 검색과 전화상담을 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은둔 생활이 직전 직장이나 아르바이트, 학교 등 교육서 노동으로 이행되는 과정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또 ▲직장이나 아르바이트 중 10시간 넘는 강도 높은 노동 ▲과도하고 불필요한 업무 ▲업무 실수 시 상사·동료의 폭언 경험 ▲부당해고 ▲저임금 일자리 고용의 반복을 겪었다.

B씨는 “사장님이 잘해줬는데 폭력까진 아니었지만 엄청 거칠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이제는 못 버틸 것 같아 그만두게 됐다. 거기서 더 일하면 정말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도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다. 야근수당은 하나도 못 받았다. 월급도 엄청 조금 줬고 ‘사회초년생인데 어떻게 일을 잘하냐’며 사장한테 말했더니 ‘네 몸값만 받고 일할래? 아니면 지금 받는 돈 그대로 받되 더 힘든 일을 버틸래?’라며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바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일이 꺾이면서 상실감도 컸다. E씨는 “학생 때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했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부모님한테는 얘기도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다. 특히 어른들은 이 일을 하는 걸 엄청 싫어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인 척 연기했다. 이게 내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돌아봤다.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
“기초생활수급자 유지 위해 병원 다녀”

이어 “학교도 늦게 온 만큼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는데, 사실은 너무 하기 싫었다. 이런 게 오히려 나를 옭아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A씨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집에서는 계속 나를 지적했다. 나도 지적받기 싫었지만 강요받는 느낌이었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엄마는 계속 지적만 했다”며 “‘넌 의지가 약해’ 이런 식으로. 나도 아는데 그런 말 계속 듣다 보면 정말 몸이 안 움직인다. 그래서 간판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너무너무 괴로웠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결국 이들은 사회활동을 시작하며 육체와 정신이 점차 피폐해져갔다. 학업, 직장생활, 가족과의 관계서 상당한 피로감이 축적되면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가족 간의 정서적 교류가 적기에 이들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돌보지 못하는 등 일상적 생활패턴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런 경험 직후 이들은 주거지 밖을 나서지 않았고,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관계서 고립됐다.

E씨는 “귀가하면 허물 벗듯이 옷을 벗어놓고 누워 버렸는데,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밥을 먹거나 씻는 등 가장 기본적인 것도 힘들어졌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자기학대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굶다가 폭식을 한다든지, 아예 안 씻고 며칠 동안 지내는 등의 생활이 잦아졌다”고 자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학교 및 양육자에게 통제적이며 억압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고, 양육자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 친구들과도 정서적 유대감이 낮았다. 결국 어디서든 소외감을 느꼈던 셈이다. 

끝없는
소외감

이들은 “집이 어려워서 대학 원서 쓸 돈도 없었다. 아빠는 며칠 전에 술 먹고 술집 여자를 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울었다” “엄마도 나를 방치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병원을 다녀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병원을 다니지 않으면 기초수급마저 끊어져 계속 병원을 다니게 했다”고 털어놨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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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