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5인의 고백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5.21 14:00:16
  • 호수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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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 가도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방 안에 틀어박힌 뒤 잠을 자고 나면 그런 느낌이었다. 여태까지 골치 아팠던 일이 끝난 느낌. 그래서 집 밖을 안 나갔고, 과하게 잠에 의존했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사람의 말이다. 이들은 부모에게 강압적인 양육을 받거나, 불합리한 직장생활을 했다. 이들은 모두 ‘집 밖을 안 나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청년들은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힘들었는데 경제적, 사회·제도적, 관계적 영역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입시경쟁이 극심해 청소년들에게 등교 거부, 은둔, 고립하는 경향이 드러나며 은둔형 외톨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4.5%가…
대부분 남성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2019년 처음 실시됐다. 광주광역시 내 아파트 거주 세대의 20%인 10만 가구를 대상으로 안내문을 발송해 수집된 1095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37명이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에는 서울특별시 내 19세부터 39세 사이의 청년이 포함된 5000가구를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자의 4.5%가 고립 혹은 은둔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즉, 서울에 거주 중인 청년 인구 중 약 12만9000명은 은둔형 외톨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평균연령이 29.55세였으며, 남성이 76.49%로 여성보다 많았다. 은둔 기간 평균은 80.66개월로 조사됐다.

은둔형 외톨이의 판단 기준은 ▲학교나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집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혼자 외출하는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날을 집에서 보내고 ▲집 밖을 전혀 나가지 않고 고립돼있거나 ▲은둔 기간이 6개월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를 말한다.


결국 국내서도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상당한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의 개인적 문제는 불규칙한 생활 습관 및 운동 부족, 고혈압과 비만을 포함한 만성질환 증가 시에도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은둔 생활은 학업 결손으로 이어져 실업과 빈곤 문제로도 이어진다. 은둔 중인 자녀나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원의 스트레스, 우울, 죄책감 수치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이 있다는 것으로 타인에게 낙인이 찍히거나 차별을 당해, 은둔형 외톨이와 가족이 외부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도 큰 문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보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을 먼저 겪었던 일본은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면서 ‘8050 문제’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80대 노부모가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연금 수입으로 먹여 살리다가 빈곤에 빠지고 노인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또 80대 노부모가 사망했는데도 50대 자녀가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집에서 시신과 함께 살거나, 부모 사망 뒤 50대 자녀가 집에서 고독사하는 경우도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바 있다. 심지어 부모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한국도 은둔형 외톨이가 늘면서 일본의 절차를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00년대 초반 시작, 일본은 ‘8050 문제’
부모 사망해도 사망신고 안 하는 이유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들이 왜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재진은 5명의 은둔형 외톨이를 분석한 책 <청년 은둔형 외톨이의 경험과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저자 노가빈·이소민·김제희) 사례를 참고했다.

이들은 20대 중반부터 가족 이외에 교류를 단절하고 한정된 공간서 최소 3개월 이상 칩거했다. 여성 1명, 남성 4명으로, 학력은 고교 중퇴부터 대학 재학까지 다양했다. 최초 은둔 시기는 주로 10대 후반서 20대 초반이었며, 총 은둔 기간은 6개월에서 4년까지였다.


5명 중 유일한 여성인 A(29)씨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살다가 아빠의 사업 실패로 다시 귀가하자, 엄마는 집을 나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환청·환각 증상이 발생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아빠, 여동생과 함께 반지하 방 한 칸에서 지냈던 B씨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아빠의 입학금 탕진으로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이후 A씨가 24세 때 아빠가 식물인간이 됐으며 치료비가 없어 사망했다.

이후 여동생이 동사무소를 통해 엄마를 찾았고,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 여동생과 넷이서 함께 살았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은둔 중이며 최장 4년을 은둔하기도 했다. 잠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B(25)씨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20세까지 엄마·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아빠와는 1년에 1~2번 정도 만났다. 21~23세까지 친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지금은 주변 원룸서 살고 있다. 할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과는 만나지 않았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불우한
가정환경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B씨는 중학교 때까지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활발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퇴했다. 당시 부모님도 B씨의 자퇴를 말리지 않았다. 자퇴 이후 바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던 그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고립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 사이버 경찰에 연락하기도 했다.

C씨도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C씨는 8세 때 엄마와 모자원(배우자가 없는 어머니와 그 자녀를 수용해 보호하는 미혼모 임시 거주시설) 입소 생활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새 환경에 잘 적응했지만,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고등학교 때 바로 교우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C씨가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진로를 찾으면서다. 친구들이 전공을 정하거나 취직하는 모습을 보며 심한 괴리감과 무기력감을 느꼈고 20세 이후부터 칩거에 들어갔다.

그나마 C씨의 엄마가 다정하고 양육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특히 C씨를 데리고 상담센터를 방문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알아봐 주는 등 적극적이었다. 이 와중에도 무기력감을 호소하며, 평생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비관하고 있다.

D씨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 아빠가 돌아가셨다. 이후 엄마, 새아빠, 이복형제 2명과 함께 살았다. 새아빠는 충실했지만 D씨에게만 유독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자주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잤고, 이복형제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평소 아빠와의 자주 다퉜다. 

고등학교 자퇴 후 직업교육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일이 너무 힘들어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의 떡집 일을 도왔다. 이후 아빠와 잦은 갈등으로 다시 집을 나갔고 친구 집에서 장기간 고립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E씨는 중학교 때부터 뉴미디어 계통에 흥미를 보여 적극적으로 꿈을 키웠다. 그러나 부모님은 지지하지 않았고 공부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E씨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누구 하나
신경 안 써”

아빠는 매우 가부장적이었고, 엄마는 오랫동안 고부갈등을 겪었다. 아빠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48세에 의사가 돼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E씨와의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었다. “무조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3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나, 일상은 점점 힘들고 무기력해졌으며 방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화를 냈고, 엄마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속수무책인 가운데, E씨 스스로 인터넷 검색과 전화상담을 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은둔 생활이 직전 직장이나 아르바이트, 학교 등 교육서 노동으로 이행되는 과정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또 ▲직장이나 아르바이트 중 10시간 넘는 강도 높은 노동 ▲과도하고 불필요한 업무 ▲업무 실수 시 상사·동료의 폭언 경험 ▲부당해고 ▲저임금 일자리 고용의 반복을 겪었다.

B씨는 “사장님이 잘해줬는데 폭력까진 아니었지만 엄청 거칠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이제는 못 버틸 것 같아 그만두게 됐다. 거기서 더 일하면 정말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도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다. 야근수당은 하나도 못 받았다. 월급도 엄청 조금 줬고 ‘사회초년생인데 어떻게 일을 잘하냐’며 사장한테 말했더니 ‘네 몸값만 받고 일할래? 아니면 지금 받는 돈 그대로 받되 더 힘든 일을 버틸래?’라며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씨는 바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일이 꺾이면서 상실감도 컸다. E씨는 “학생 때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했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부모님한테는 얘기도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다. 특히 어른들은 이 일을 하는 걸 엄청 싫어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인 척 연기했다. 이게 내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돌아봤다.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
“기초생활수급자 유지 위해 병원 다녀”

이어 “학교도 늦게 온 만큼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는데, 사실은 너무 하기 싫었다. 이런 게 오히려 나를 옭아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A씨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집에서는 계속 나를 지적했다. 나도 지적받기 싫었지만 강요받는 느낌이었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엄마는 계속 지적만 했다”며 “‘넌 의지가 약해’ 이런 식으로. 나도 아는데 그런 말 계속 듣다 보면 정말 몸이 안 움직인다. 그래서 간판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너무너무 괴로웠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결국 이들은 사회활동을 시작하며 육체와 정신이 점차 피폐해져갔다. 학업, 직장생활, 가족과의 관계서 상당한 피로감이 축적되면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가족 간의 정서적 교류가 적기에 이들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돌보지 못하는 등 일상적 생활패턴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런 경험 직후 이들은 주거지 밖을 나서지 않았고,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관계서 고립됐다.

E씨는 “귀가하면 허물 벗듯이 옷을 벗어놓고 누워 버렸는데,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밥을 먹거나 씻는 등 가장 기본적인 것도 힘들어졌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자기학대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굶다가 폭식을 한다든지, 아예 안 씻고 며칠 동안 지내는 등의 생활이 잦아졌다”고 자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학교 및 양육자에게 통제적이며 억압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고, 양육자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 친구들과도 정서적 유대감이 낮았다. 결국 어디서든 소외감을 느꼈던 셈이다. 

끝없는
소외감

이들은 “집이 어려워서 대학 원서 쓸 돈도 없었다. 아빠는 며칠 전에 술 먹고 술집 여자를 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울었다” “엄마도 나를 방치했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병원을 다녀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병원을 다니지 않으면 기초수급마저 끊어져 계속 병원을 다니게 했다”고 털어놨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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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