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기획 부동산 대부 김현재 회장 실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13 16:47:32
  • 호수 1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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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땅 사기 ‘야누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거 기획부동산 사기와 횡령 혐의로 복역한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출소 이후 ‘폰지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1999년 삼흥그룹의 모체인 삼흥월드를 설립한 그는 5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김 회장이 돈 될 만한 땅을 찍으면 계열사 사장들이 그 땅을 한꺼번에 사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를 다시 쪼개 제3자에게 “주거·상업지역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임야를 용도변경이 가능하다”고 속여 팔다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토지를 싼 가격에 산 뒤 호재가 있다는 소문을 내고 쪼개 파는 이른바 ‘기획부동산’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거물이다. 2003년 기획부동산 사기로 210억원을 가로채고,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6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출소한 김 회장은 “나를 기소한 검사들이 사실은 무죄였다고 말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플랫폼

지난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케이삼흥 김현재 회장 등 경영진을 수사 중이다. 2021년 설립된 케이삼흥은 정부가 개발할 토지를 미리 매입한 뒤 개발이 확정되면 보상금을 받는 ‘토지 보상 투자’를 권유하며 급성장했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며 전국에 7개 지사를 세우고 투자자를 모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익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며 피해자들과 신뢰를 쌓았던 김 회장은 지난 3월부터 무더기 수익금 미반환 사태를 일으켰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1000명 이상이며 대부분은 50대 중장년층이었다. 이들 중에는 평생 모아온 자산 대부분을 투자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달에 2%(연 24%) 넘는 배당수익에 현혹된 투자자들은 지난달부터 배당금과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 회장이 일당이 최대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투자금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있다. 출소한 김 회장이 플랫폼을 활용한 진화된 수법과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케이삼흥 일부 피해자는 김 회장이 20여년 전 비슷한 사기를 벌였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김 회장의 행보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한 부동산 사무소의 사무장으로 재직한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삼흥그룹의 모체인 삼흥월드를 설립했다. 

삼흥월드 등 5개 계열사 왕회장 
텔레마케터 700여명 “땅 사세요”

삼흥인베스트, 삼흥에스아이, 삼흥피엠, 삼흥센추리, 삼흥에프엠 등 5개 계열사를 거느린 가운데 삼흥센추리는 2000년대 중반 부성윈플러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부성윈플러스(당시 삼흥센추리)는 2003년 충북 제천시와 협약을 맺고 330억원 규모의 펜션단지 개발을 추진했다. 

특이한 점은 부동산 회사인 부성윈플러스가 전화권유판매(텔레마케팅) 사업자로 등록돼있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등기상 대표는 박모씨였는데 부성윈플러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삼흥그룹으로 연결됐다. 삼흥그룹 본사 격인 삼흥건설과 그 계열사 사무실은 강남구 서초동에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개인 집무실은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다. 삼흥그룹은 이처럼 사실상 하나의 회사를 삼성동, 역삼동, 서초동으로 나눠 운영했다.

각 회사를 분할 관리한 이유는 혹시 있을 압수수색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김 회장은 부동산 판매에 텔레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혁신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부동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흥그룹 대부분의 직원이 텔레마케터였다. 600∼750명의 텔레마케터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땅을 사라고 부추겼다.


텔레마케터를 활용해 투자자를 모았던 삼흥그룹이 최근 부동산 투자플랫폼을 운영하는 케이삼흥으로 변신한 것이다.

삼흥그룹의 자금 동원력은 2003년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해 1687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흥그룹은 2004년에도 166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흥그룹이 전후 5년간 올린 매출은 5300여억원에 이르렀다. 삼흥그룹의 성공을 본 많은 부동산 업자들은 김 회장에게 몰려들었다.

“검사들이…
난 무죄였다”

업자들은 삼흥그룹을 ‘기획부동산 사관학교’라고 불렀다. 당시 김 회장은 충북 제천 외에도 경기 이천·용인, 전북 무주 등 4곳에서 212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특히 무주에선 평당 2만5000원에 구입한 땅을 37만원에 되팔아 15배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김현재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내사하기도 했으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사기 등 혐의로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사회적 신뢰를 쌓고 정치권으로 발을 넓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수형자를 위한 장학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소년 수형자 지원활동에 나섰다. 장학금도 수차례 쾌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영암향교는 지난해 11월 향교 내 교궁서 김 회장의 공적비를 세우기도 했다. 김 회장은 영암군 시종면 출신으로 지난 2004년 영암향교 경서학원 설립기금 6000만원 기탁을 계기로, 시종면민 장학금 46억원, 청소년 교도소 뮤지컬 공연 4억원, 천안 청소년 교도소 재소자 장학금 7억5000만원을 기탁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광주 지역신문인 <호남매일신문>을 사들여 지방 언론 사주가 됐다. 지방 언론 소유는 그의 정치권 인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달콤한 유혹
투자자 설득

김 회장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부 국정자문위원을 맡았던 그는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김 회장을 비호했다고 의심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2006년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김현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알고 있다. 지금 터뜨리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의논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과 선후배로 지냈던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현 전 의원은 검찰의 1호 타깃이 됐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김씨로부터 모두 22차례에 걸쳐 13억7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김 회장이 김 전 의원에게 건넨 정치자금 총액을 41억6000만원으로 파악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돈에 대해서는 공소를 포기했다.


2007년 대법원은 김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 판결했다.

해당 수사에 대해 ‘정치적 보복’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서 “평소 나를 도와주는 후배가 청소년문화를 연구하는 (내)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그것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거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제 버릇 남 못 주고···과거 재조명
언론과 정치권 아우른 ‘검은 손’

한편, 김 회장의 주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었다. 당시 법원은 210억원대 토지판매 사기를 저지르고, 법인세 88억원을 탈루했으며, 회삿돈 245억여원을 빼돌린 김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벌금 81억원을 선고했다.

출소 후 동종범죄를 저지르는 범죄 순환에 업계 전문가는 재범을 막을 장치가 미비한 탓에 끊임없는 대규모 사기 피해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출소 후 비슷한 방식의 사기 범죄를 기획했다는 점에 대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피해자의 심리를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 2016년부터 6년간 사기범 확정 판결문 2061건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재범인 경우가 65.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범 사기의 경우 약 40%가량이 동일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재차 벌인 사기인 점도 분석됐다. 


반복되는 사기를 막기 위해선 처벌 강화를 비롯해 사기범 출소 후 관리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사기 범죄는 총 34만7597건으로 5년 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올해 발간한 <치안전망 2024>에 따르면 올해는 투자리딩방, 보이스피싱 등 악성 사기 범죄가 5대 강력범죄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각에선 사기 범죄가 많이 늘어나 유죄 확정판결이 난 경우 신상 공개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언론사 대표
정치권 개입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사기 범죄가 형사 처벌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면 피고인이 재산을 이미 다 빼돌리거나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민사로 가도 구제가 쉽지 않다”며 “사기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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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