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화제의 당선인 황정아

5선 거물 잡은 무서운 새내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일방 삭감을 비판하며 정계 입문을 선언한 과학자가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전 유성을에 출마한 황정아 전 연구원의 이야기다. 누리호의 주역이던 그가 R&D 예산 삭감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이고 과학계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차기 국회의장이라고 불리던 이상민 의원을 이기고 당선돼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누리호 개발의 주역이 정치 신인으로 돌아왔다. 황정아 대전 유성을 국회의원 당선인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인재 영입으로 들어간 그는 국민의힘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을 이기고 당선됐다.

황 당선인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일방 삭감을 비판하며 정계 입문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인재 영입 6호로 그를 영입하면서 “우주항공 분야의 굵직한 순간마다 역량을 발휘해 대한민국 우주개발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전문성뿐 아니라 정책 역량까지 겸비해 우주과학을 토대로 미래산업을 개척해 나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연구개발특구
유성을 입성

황 당선인은 영입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관례대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출마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결국 대전 유성을에 공천됐다. 정치계에서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위치한 유성을 지역민심에 가장 최적화된 후보라고 봤다.

황 당선인은 전남 여수 출신으로 전남과학고를 나와 KAIST서 학부와 석·박사를 마쳤다. 1999년 방영됐던 인기드라마 <카이스트>의 모델이자 ‘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누리호 개발의 성공 주역으로, 누리호 3차 발사 당시 인공위성 기획부터 설계, 개발 등 전 과정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 정찰위성인 425 위성사업에도 참여했다.

한국을 빛낼 젊은 과학자 30인(포항공대, 2016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 감사장(2020년) 등 화려한 수상 경력도 자랑한다.

그는 이 같은 경력을 토대로 선거전 내내 R&D 예산 복원과 정부예산 총지출의 5%를 R&D 예산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면서 과학계를 중심으로 민심을 파고들었다.

특히 TV 토론회서 황 당선인이 “이 후보는 R&D 삭감에 ‘여야 모두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R&D 예산이 4.6조원이나 삭감되자 결국 남 탓하는 것”이라며 “1차적으로 정부여당에 책임이 있지만, 이를 최종적으로 합의·처리한 민주당도 책임서 자유롭지 못하고 수습하는 게 더 중요한 만큼 내년도 예산은 전부 복원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 것에 대해 인상깊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반영하듯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황 당선인은 이 의원을 오차범위를 넘어 압도했다. 지난달 발표된 여론조사 꽃의 총선 예측 결과에 따르면 황 당선인이 45.4%의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이 의원은 29.1%에 그쳤다.

인공위성 만드는 물리학자 출신
민주당 6호 인재 영입 전략공천

결국 황 당선인은 과학계를 등에 업고 6만1387표(59.76%)를 득표하며 3만8209표(37.19%)의 이 의원을 큰 차이로 이기고 당선됐다. 황 당선인의 당선은 5선 중진을 이겼다는 의미와 대덕구 국회의원 당선인인 박정현과 대전에서 첫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큰 의미를 가진다.


당초 대전 유성을은 선거 초기부터 금강벨트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전 유성서 20년간의 정치경력을 토대로 탄탄한 입지를 닦아 놓은 이 의원이 당적은 옮겼지만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과 유성을은 바로 옆 지역구인 유성갑에 비해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무리한 탈당으로 강행한 이 의원보다는 정치 신인인 황 당선인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대선서도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가 49.40%,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46.87% 지지를 얻어 대전서 유일하게 이재명 후보가 이겼던 선거구가 바로 유성을 지역구였다.

이 의원은 2004년 제17대 총선서 열린우리당을 시작으로 제18대 총선서 자유선진당으로, 제19대 총선서 민주통합당으로, 제20·21대서 민주당 후보로 모두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을 향해 “이재명 사당, 개딸당으로 변질됐다”며 결별을 선언했고, 한 달 뒤인 올해 1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를 두고 이 의원이 당적을 바꿨지만 지난 20년간 닦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유성을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과학의 요람으로 대전서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동시에 호남 출신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으며 KAIST와 충남대 등 대학가와 신도시를 중심으로 20~50대 등 타 선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정부가 R&D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하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려 이번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적’ 이상민
큰 차이 이겨

지난 2월16일 벌어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졸업생 강제 퇴장 사건서 졸업생이자 교직원으로서 분노하며 사람들을 모아 정부 규탄 시위를 전개하는 등 황 당선인이 가장 큰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지지율을 올렸다는 평가도 있다.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졸업생 강제 퇴장 사건은 대전 카이스트서 열린 학위수여식서 졸업생 한 명이 윤 대통령의 축사 도중 ‘부자 감세 중단하고 R&D 예산 복원하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윤석열 대통령은 R&D 예산 복원하라”고 외쳤다가 경호처 요원들에게 입이 막히고 사지를 들린 채 퇴장당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 당사자인 신민기씨는 지난 9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그는 “당일 나는 석사학위 졸업장을 받으러 갔지만 경호처의 연행과 감금 때문에 (졸업장을)받지 못했고 차가운 방에서 박수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며 “대한민국의 누구도 다시는 겪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신씨는 “대통령경호처가 나를 졸업식 업무방해로 신고해 경찰에 체포됐고 경찰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생각해 보라. 그렇게 받고 싶었던 졸업장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뭐 하러 졸업식을 방해했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당선인은 ‘과학강국 수도, 완전히 새로운 유성’이라는 비전 아래 ▲국가 예산 5%를 연구예산(R&D)에 투입 ▲5000억원 규모의 R&D 추가경정예산 반영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한국형 하르나크 원칙 제도 마련 ▲청년 연구자 지원 확대 ▲과학기술부총리제 신설 등을 공약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비전인 글로벌 유니콘 도시 완성을 기치로 내걸고 ▲혁신벤처투자은행 ▲대전 스타트업밸리 건설 ▲출연연 연계 벤처사관학교(가칭) 도입 등을 약속했다.

다만 과학·연구 분야 공약은 탄탄하지만 타 분야 공약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교통 분야 공약은 국민의힘 공약을 베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성 과학자
과학계 지지

황 당선인은 지난 2일 CTX-A 노선 신설 추진을 비롯해 대전도시철도 2호선 지선 및 1호선 연장, 도시철도 3·4·5호선 조속 추진, 호남고속도로 지하화 등을 공약했다.

이에 국민의힘 김소연 대전시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본부장은 “CTX 추진, 대전 도시철도 3~5호선 조속 추진, 호남고속도로 지하화 등 모두 우리 윤석열정부와 이장우 대전시장의 약속”이라며 “인재 영입으로 전직 대전시장을 밀어내고 화려하게 등판한 후보치고는 옹색하기 그지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좋은 공약에 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전 도시철도 3~5호선 조속 추진은 지난 1일 이장우 시장이 직접 시민들께 약속한 내용”이라며 “도의적으로 이 시장의 이름만 지우고 성의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일이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의원도 당시 “이 시장이 발표한 정책을 이름만 바꿔 공약에 담은 것 뿐만 아니라 훔친 것 같다”며 직격했다.

이상민 후보는 “이번 교통 공약뿐 아니라 지족터널 건설 추진, 정년 65세 환원, 원자력안전교부세 신설, 과학기술부총리제 신설 등의 공약은 이미 진행되거나 입법된 자신의 공약과 대동소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전 스타트업 밸리 조성, 출연연 연계 벤처사관학교 도입 등 벤처 스타트업 관련 패키지 공약은 이미 국가 지자체서 진행되고 있는 정책도 있어 재탕이라는 의혹도 있다”며 “CTX-A 신설 역시 비용 추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공약 던지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황 당선인을 향해 “공약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베끼기, 해명 회피 등의 행태를 하는 것은 과학자답지 않다”며 해명을 촉구했다.

39년 만에 여성이 당선
“희망의 별 쏘아 올릴 것”

이에 황 당선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허태정 전 시장님도 추진하던 도시철도 신설과 유성구 주민들의 염원이자 민주당 후보들이 약속한 CTX-A 및 도시철도 2호선 지선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국민의힘 측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의 시정을 베낀 것이라며 ‘팬클럽’이라고 저를 맹비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이 의원은 민주당과 이재명 당 대표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과학기술부총리제 신설과 과기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정년 65세 환원까지 본인의 공약을 베낀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의 염원을 공약화하는 것이 정치인의 당연한 책무”라며 “좋은 정책에 여야가 어디있겠느냐, 황정아가 실제 성과를 낼까 두려운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대전과 유성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여당 시장이든, 정부 부처 장관이든 가리지 않고 만날 것”이라며 “과학강국 수도, 완전히 새로운 유성의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황 당선인은 “윤석열정권의 퇴행을 심판하고 선진국 대한민국을 복원하라는 국민의 간절함이 담긴 준엄한 명령”이라며 “절박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 당선인은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에 서 있어 한시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윤석열정권의 퇴행을 멈추고 무너뜨린 대한민국을 절박한 마음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와 함께 논란이 됐던 충청권 광역급행열차(CTX-A) 건설을 비롯한 지역 숙원 사업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CTX-A는 대전과 세종, 청주를 잇는 광역철도망으로, 철도교통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유성 입장에선 조속히 추진하길 바라는 대표 교통사업이다.

“참신하다”
공약 보니…

그는 “유능한 일꾼이 되어 민생경제, 민주주의, 저출생, 인구소멸, 지방소멸, 안보, 평화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한민국의 길을 열겠다”며 “우리별을 쏘아 올리는 마음으로 대한민국 희망의 별을 쏘아 올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해 온 과학강국 수도, 완전히 새로운 유성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정아 당선인 첫 행보는? 할아버지 묘역 참배

황정아 당선인은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지역 당선인들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홍범도 장군 묘역 참배를 마친 뒤 자신의 할아버지 묘역을 참배했다.

그의 할아버지인 고 황두옥 상병은 6·25전쟁 참전용사로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있다.

황 당선인은 당선증을 할아버지의 묘역에 놓으며 “손녀가 이제 국회의원이 됐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유능한 국회의원, 일 잘하는 일꾼이 되겠다. 앞으로도 쭉 지켜봐 주시고 잘 돌봐달라”고 인사했다.

황정아 당선인은 “할아버지는 무뚝뚝하시지만 정이 많은 분이셨다”며 “그래서인지 늘 세세하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많이 챙겨주시고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니고 표현은 안 하셨지만 정말 다정다감하신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살아 계셨다면 말은 많이 안 하셨겠지만 그래도 잘해보라고 응원해 주셨을 것”이라며 “늘 제가 하는 일을 묵묵하게 지원하셨기에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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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