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

아주 특별한 판다와 너무 아쉬운 작별식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37년 차 베테랑 사육사가 돌보던 판다 곰과 헤어졌다.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의 이야기다. 국내 최초 판다 자연분만 번식에 성공한 강철원 사육사는 1354일 동안 푸바오와 특별한 궁합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모친상을 당하고도 푸바오의 중국행에 동행하며 누리꾼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강철원 사육사가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보였다. 그는 모친상 중에도 푸바오의 중국행에 동행했다.

지난 2020년 7월20일 에버랜드서 태어난 첫 번째 자이언트 판다가 1354일 만에 중국으로 떠났다. 푸바오는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한국에 보내온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서 2020년 7월20일, 에버랜드서 태어났다. 푸바오는 국내 첫 자연번식 출생 판다로, ‘용인 푸씨’ ‘푸공주’ ‘푸뚠뚠’ 등으로 불리며 국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 태어난 
첫 번째 판다

에버랜드는 푸바오 팬들을 위해 지난 3일 오전 10시40분부터 20분간 판다월드서 장미원까지 푸바오 배웅 행사를 열었다. 푸바오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6000여명의 인파가 아침부터 몰렸다.

판다월드서부터 출발한 트럭이 에버랜드 장미원 분수대 앞에서 멈춰 섰다. 이날 강 사육사와 송영관 사육사가 판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강 사육사는 “새로운 판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푸바오를 지금까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푸바오를 영원히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송영관 사육사는 “팬들의 사랑 덕분에 푸바오가 잘 성장했다. 푸바오와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1354일간 함께해 주셔서 고맙다”고 소회를 전했다.

푸바오 팬들은 사육사에게 “그동안 잘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사육사들이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를 향해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강 사육사는 편지를 통해 “푸바오, 검역을 받는 중에 번식기까지 잘 견뎌낸 네가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이제 푸바오는 어른 판다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다 해냈구나. 떠나기 전 모든 과정을 이뤄낸 푸바오가 할부지는 대견스럽단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강 사육사는 푸바오와 함께 트럭에 탑승한 채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났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기 전날 갑작스레 모친상을 당했지만,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에버랜드 한 관계자는 “푸바오와 이별을 하루 앞두고 전해진 갑작스러운 소식에 강 사육사도 상심이 매우 큰 상태”라며 “강 사육사에게 모친의 장례를 치르라고 권고했으나 강 사육사가 ‘돌아가신 어머님도 푸바오를 잘 보내주길 원하실 것’이라는 가족들의 격려를 듣고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하기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한중국대사도 강 사육사의 모친상에 애도를 표하며 깊은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푸바오 환송행사에서 “강 사육사가 오랜 기간 한국에 온 판다 가족에 사랑과 세심한 배려로 한중 우의를 보여줬다”며 “이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한 날(모친상)임에도 사육사가 푸바오가 중국으로 동행하기로한 데 대해 깊이 감동했다”며 “주한중국대사관을 대표해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37년 차 베테랑 수의사
국내 첫 맹수 인공 포육

강 사육사는 1969년 7월18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강 사육사의 아버지가 토끼를 잡아 오자 몰래 풀어주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강 사육사는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를 졸업하고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재직 중이던 선배의 취업설명회를 들은 것을 계기로 1988년 1월 공채에 합격했다. 입사 초기엔 쥐, 고슴도치와 같은 소동물을 담당하며 사육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표범이 수많은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새끼를 낳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새끼를 포기했다. 강 사육사는 담당 동물도 아니었지만 살아 있는 동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인공 포육을 자원했다,

하지만 당시 맹수 인공 포육은 대부분 40일을 넘지 못하고 장염으로 폐사하는 등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강 사육사는 당시에는 인공 포육에 관한 자료가 없어 외국 원서를 찾아보고, 입대 이틀 전까지 밤낮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동물원을 오가며 하루 8번, 3시간 간격으로 수유시켜 국내 최초로 맹수 인공 포육을 성공시켰다.

이후 말, 낙타 등을 돌보다 1990년대 들어 맹수 사육을 맡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사파리서 곰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한중수교 2주년 기념으로 도입된 판다 밍밍과 리리를 맡으면서 판다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당시 사파리 근무 중이었는데 사파리 일이 너무 재미있고 본인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칼에 부서 이동을 고사했으나 다음 날 근무지가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중국과 한국이나 둘 다 동물 사육이나 판다 연구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어 문제가 많았다. 

당시 한국서 사육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물 밥 주고 똥 치워주는 사람’의 이미지가 강했고, 중국은 대약진운동 및 문화대혁명이 불러온 빈곤 때문에, 판다 자체는 보호받았으나 번식 및 습성 연구는 거의 되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으나, 중국서도 사육사는 밥 주고 똥 치우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1354일간
함께하다

그런 이유로 당시 중국이나 한국서 판다 사육사라고 해봐야 비슷한 종류의 동물(주로 곰)을 오래 다뤄본 이들을 차출해 급하게 판다의 습성, 생태계 같은 간단한 노하우를 연수시킨 후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판다들을 위해 열어준 파티의 상차림이 백설기, 생크림 케이크 같은 사람이 먹는 음식들이라 화난 판다가 밥상 뒤집기를 시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판다 종주국인 중국도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성별도 구분하지 못해 한국에는 암컷 판다로 한 쌍을, 소련에는 수컷 판다로 한 쌍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동물원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 자체가 벼랑 끝에 몰린 마당에 외국에 거액의 판다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냐는 범국민적 여론이 조성됐고, 설상가상으로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그룹도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1998년 판다 밍밍과 리리를 중국에 다시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도 강 사육사 본인이 직접 판다 밍밍과 리리를 김포공항으로 배웅했다.

이후 본래 담당 부서인 맹수 종류로 돌아가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백호 번식을 성공시켰고, 2005년 몽키밸리(현 알버트 스페이스 센터)로 이임해 1년10개월간 오픈 준비를 맡아 2007년 몽키밸리를 오픈시켰다. 2009년에는 오랑우탄을 번식시키는 등 국내 번식이 어려웠던 동물들을 연달아 번식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2017년에는 어미에게 버림받은 황금머리사자타마린 찬이의 인공 포육과 재활을 성공시키며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러던 중 강 사육사가 다시 판다를 담당하게 됐다. 지난 2014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회담서 판다 재도입이 논의되면서다.

강 사육사는 논의 당시 판다 사육 경험이 있는 본인이 담당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고 제의가 왔을 때 몽키밸리에서 함께 일했던 송 사육사, 이세현 사육사를 합류시키는 조건으로 판다월드를 맡기로 했다.

그는 판다 재도입 이전인 2016년 1월13일부터 3월3일까지 2개월간 중국 쓰촨성 두장옌 판다 기지에 머무르며 연수를 받았다. 연수 당시 자신이 담당했던 리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더니 늙은 판다 한 마리가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 찾아
매일 출장길

강 사육사가 자연농원 시절에 불렀던 것처럼 “리리~ 리리~” 하고 부르자 갑자기 돌아보며 뚜벅뚜벅 걸어와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해줬다고 한다. 이때 동행한 중국 당국 관계자들이 “리리가 평소에는 저렇지 않으며 당신은 판다 아버지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치켜세우며 ‘슝마오빠바(판다 아빠)’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판다 할아버지로 불린 시초인 셈이다.

강 사육사는 판다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판다 우리 옆에 야전침대를 놓고 자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지난 2019년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중국 연수 당시 두 달간 교감을 위한 시간을 가졌는데 러바오는 철이 없어 보이는 만큼 쉽게 친해졌지만 아이바오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해 친해지는 데 2~3주 걸렸다”고 말했다.

강 사육사는 식성이 예민한 판다들을 위해 매일 경상남도 하동군서 당일 채취한 대나무를 가지러 매일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그는 “동물원의 사육사로 있으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서 “판다를 번식시켜서 국내 최초로 아기 판다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꿈이다. 올해에는 아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판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판다의 임신과 출산은 1년에 약 3~4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가임기 탓에 시도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판다의 기질 탓에 번식기에 잠깐 만나 짝짓기에 성공할 확률 역시 매우 낮은 편이다. 강 사육사도 2018년부터 판다 번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번은 러바오가 갑자기 성호르몬이 급상승하면서 아이바오와 짝짓기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 아이바오가 외출한 사이에 러바오를 아이바오 사육장에 들여보냈고 러바오의 체취를 남겼다. 그러나 아이바오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인지 들어오자마자 다른 판다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마구 화를 내기도 했다.

중국서도 판다 아빠로 인정
모친상에도 귀환 동행 감동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관람객이 줄자 아이바오와 러바오 모두 스트레스가 해소됐는지 합사 후 임신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국내 최초로 판다의 자연분만 번식에 성공하며 푸바오를 얻었다. 당시 강 사육사는 “한국에서는 판다 번식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며 “처음 겪는 과정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통상 판다가 출산하면 중국서 판다 전문가를 파견한다. 그러나 당시엔 코로나로 국제이동이 막혀 중국 전문가 1명만 국내로 파견됐고, 나머지는 CCTV를 통해 아이바오의 출산을 지켜봤다. 

대중은 푸바오와 사육사들의 교감을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영상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를 각각 ‘강바오·할부지’ ‘송바오·작은 할부지’로 부르고 있다. 마치 사육사들이 ‘진짜’ 판다 가족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별명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난해 7월7일 암컷 판다 쌍둥이를 다시 자연분만 번식으로 얻으며 판다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더욱 견고히 했다.

판다 외교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깜짝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 정부가 미국에 판다 2마리를 선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판다는 ‘죽의 장막(Bamboo curtain)’으로 불리던 중국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은 판다를 자원확보와 무역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우라늄 공급계약체결 후 캐나다·프랑스·호주에 판다를 보냈고,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에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보답으로 판다를 선물했다.

해외로 임대된 판다들은 ‘어느 대사보다 유능한 외교관’으로 불리며 교류와 우호의 상징이 됐다. 문제는 각국서 사랑받던 판다들이 푸바오처럼 4세가 되기 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미국서 태어난 판다는 반환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을 정도로 비판 여론이 거셌다.

중국 정부는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판다를 다시 보내기로 결정하는 등 판다 외교 재개에 나섰지만, 세계 곳곳 동물원서 ‘눈물의 작별식’이 이어진다면 판다 외교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3일 늦은 오후 중국 청두국제공항에 도착한 푸바오는 케이지 가림막 없이 소음과 카메라 플래시에 노출돼 긴장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거기서도
행복하렴”

한 관계자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푸바오를 찌르는 모습과 푸바오가 낯선 손길에 움츠러드는 모습도 고스란히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면서 누리꾼들은 ‘저럴 줄 알았다’ ‘다시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구센터 측은 “이들은 센터의 전문 수의사들로 손가락 터치는 푸바오의 컨디션 확인을 위해 필수적인 검사였다”면서 “푸바오는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라고 밝혔다. 함께 중국에 간 강사육사도 “푸바오가 조금 긴장해서 예민했지만 이건 정상”이라면서 “중국 사육사들이 사육 방법을 잘 알고 높은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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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체 구성원이 200명도 안 되는 학교서 한 교수를 둘러싼 논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교수의 학사학위가 논란의 시발점이다. 임용 당시 서류에 기재한 내용을 두고 사실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등교육법 제30조(대학원대학)에 따르면, 특정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원만 두는 대학, 이른바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 일반적인 종합대학과 달리 학사과정을 운영하지 않고 석·박사 과정만 두는 교육기관이다. 작은 학교 오랜 잡음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이하 서불대)도 그중 한 곳이다. 재단법인 불교안양원의 이사장인 덕해큰스님이 설립했다. 2002년 9월1일 개교한 서불대는 불교학과, 상담심리학과, 심신통합치유학과 등 3개 학과로 구성돼있으며 현재 석‧박사 학위과정 입학정원은 81명이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서 운영을 총괄한다. 최근 서불대가 소속 교수의 학사학위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부교수인 정모씨의 학사학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두고 경찰 고발까지 진행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됐다. 문제는 정 교수의 학위 논란이 불거진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를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정 교수가 지원 당시 제출한 서류에 학력 부분을 허위로 기재하고 임용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발인은 “학사학위도 없는 교수가 석‧박사를 지도하는 엉터리 같은 상황이 우리 대학원서 자행되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정확히 가려 일벌백계해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5년 9월1일 서불대 전임강사로 신규 임용됐다. 2007년 9월1일 조교수로 승진, 2015년 3월1일 부교수가 된 이후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쟁점이 된 부분은 정 교수가 2005년 7월 서불대 전임강사 임용 과정서 제출한 ‘신원진술서’와 ‘교수초빙 지원서’의 학력란이다. 정 교수는 학사 부분에 학교명 ‘Buddhist and Pali University’(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 학과명 ‘Buddhist Social Philosophy’, 전공 ‘Buddhist Social Philosophy’라고 기재했다. 수학 기간은 1992년 3월부터 1997년 2월로 1997년 1월1일에 문학학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 교수가 함께 제출한 ‘신원진술서’에 1994년 6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군대에 다녀왔다고 적은 부분이다.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서 공부한 기간과 군 복무 기간이 겹치는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1997년 1월에 스리랑카로 출국, 같은 해 3월에 입국했다. 2015년 첫 문제 제기 2021, 2022년, 올해도 기록의 모순점이 알려지면서 정 교수의 학사 학위를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서불대 학위검증위원회는 2014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정 교수의 학사학위를 검토했다. 그리고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는 당시 소명서에 학사과정을 적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아닌 한국분교서 군 복무 기간에 진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심지어 한국분교인 ‘한국불교대학’은 당시 교육부 미인가 대학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보문학원 이사회의 처분이다. 보문학원은 2015년 9월2일 개최한 이사회서 정 교수의 임용 과정 중 면접위원이었던 이모 교수와 김모 교수를 중징계 조치했다. 정 교수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의 한국분교서 학사과정을 한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아 보문학원과 서불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퇴직 상태였기 때문에 ‘퇴직 불문’ 처리됐다. 근무 중 문제가 발생했지만 징계 절차 전에 퇴직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서불대에는 기관경고 처분을 하면서도 정 교수에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 교수의 학위 논란에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학위 논란은 지난 2021년 재차 불거졌다. 이번에 문제된 부분은 성적증명서였다. 한국불교대학서 정 교수가 학부 과정을 진행했다는 시기와 인접한 때에 발부한 성적증명서와 그가 제출한 문서가 다르다는 새로운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정 교수가 제출한 서류는 성적증명서가 아닌 졸업시험성적표로 확인됐다. 서불대는 ‘계약제 교수 업적평가 규정’에 따라 계약제로 임용된 교수의 계약기간을 1~3년으로 정하고 있다. 정년보장 교수(정교수) 승진 전까지 1~3년 단위로 재계약을 진행하는 것이다. 교원인사위원회가 영역별로 평가한 뒤 임용 혹은 면직을 제청하면 법인서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당시 일정 기간 단위로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하는 부교수 신분이었다. 6년 만에 바뀐 결론 서불대는 2021년 6월21일 열린 교원인사위원회서 정 교수의 부교수 임용 심의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정 교수가 임용 서류에 학사학위 관련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면직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결과를 들어 면직을 제청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립학교법 제58조(면직의 사유)는 ▲인사기록에 있어 부정한 채점‧기재를 하거나 거짓 증명 또는 진술을 했을 때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됐을 때 등의 이유로 해당 교원의 임용권자는 그 교원을 면직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변호사는 정 교수가 교원으로 임용될 당시 제출한 지원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면직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문했다. 그러면서 교원인사위원회서 심의하고 교원징계위원회의 동의가 이뤄지면 정 교수를 면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을 보문학원에 제청했다. 이후 보문학원은 서불대 교원징계위원회에 정 교수에 대한 면직 동의를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보문학원이 기재한 징계 사유는 “(정 교수가) 임용 지원 당시 교원임용지원서에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으로 표기했어야 하는 것을 당시 면접위원들과 논의해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을 제외하고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만으로 표기했다”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서 ‘문제 없음’, 이사회서 ‘불문 처리’됐다며 항변했지만 결국 면직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 걸친 검증 과정서 서불대와 보문학원 이사회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서불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2015년에 진행된 학위 검증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또 달랐다. 보복이냐 허위냐 정 교수는 면직된 이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면직 처분 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 처분이 위법하다며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정 교수는 ▲2014~2015년 학위 검증 ▲사학비리 신고에 대한 보복성 조치 ▲면직 사유 부존재 등의 주장을 내세웠다. 2021년 1월경 서불대 전 총장 황모씨 등 일부 인사의 입시 및 학위 수여 부정, 다국어교육원 운영과 관련한 횡령 혐의 등을 교육부에 감사 요청한 것을 두고 그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면직 처분을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또 학사학위를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서 받은 사실과 수학한 곳이 해당 학교의 한국분교라는 사실은 서로 다른 범주라고 강조했다. 공부한 곳을 지원서에 적지 않았다고 해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체가 허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2014~2015년에 이뤄진 학위 검증에 대해 언급했다. 서불대가 요청한 학부‧석사 성적, 재학증명서에 대해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서류를 보낸 점, 당시 면접위원이었던 김모 교수의 확인서 등을 근거로 삼았다. 김 교수는 “학사 및 석사학위에 하자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또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판단 자체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쪽은 정 교수가 신규 임용 재계약 과정서 제출해야 할 서류를 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서불대 규정에 따라 진행하는 재임용 과정서 정 교수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사립대학 교원의 임용권은 학교법인이나 학교의 장에게 있다는 교육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불대 교원의 신규 임용 후보자는 규정에 따라 14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학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성적증명서 및 학위기 사본 ▲경력증명서 등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는 학사(대학)학위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200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사 성적증명서를 누락했다”고 주장했다. 학내 결정, 외부 기관 뒤집혀 면직→복직, 재임용 1년→3년 2022년 또다시 학위검증위원회와 교원인사위원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정 교수를 포함한 교수 3명의 재임용을 논의하는 과정서 학위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학위검증위원회는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가 잘못 심의한 부분과 2015년 이후 추가로 밝혀진 부분을 참고해 재검증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 교수에 ‘재임용 불가’를 의결했다. 보문학원은 단서 조항을 달아 ‘조건부 1년 재임용’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가 법인의 결정에 반발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1년 조건부 재임용 계약을 취소하고 3년 재임용 계약을 체결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서불대의 교직원 부당 채용 의혹 등을 신고한 뒤 재임용 계약기간 단축 등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며 ‘신분보장등조치’를 신청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정 교수의 신고가 없었더라도 동일한 내용의 불이익 조치를 받았을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 교수가 2021년 2~3월에 신고한 교직원 채용 관련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징계 조치 등을 요구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문학원은 정 교수와 3년 재임용 계약을 맺었다. 강의 배정, 논문지도 교수 위촉 등 국민권익위원회의 주문 사항도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에 이뤄진 경찰 고발사건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 불송치됐다. 경찰은 정 교수의 업무방해 혐의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업무방해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서류 누락 진실은? 서불대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 교수는 ‘교원의 자격’ ‘신규 임용자의 제출서류’ 등 학교 규정을 무시한 채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학사학위와 관련한 서류를 내면 모든 게 마무리되는데 2005년 신규 임용 때부터 1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걸 못 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학교나 법인 차원서 처리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정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다. 정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에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