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자발적 안락사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9 11:23:26
  • 호수 1471호
  • 댓글 2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당신은 ○○씨가 맞나요? 이걸 마신다면 죽게 됩니다. 정말 당신의 뜻이 맞나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 질문은 모두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받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이 모두 “네”라고 대답하면 스스로 안락사 약을 복용하고, 곧 깊은 잠에 빠진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생물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안락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일 때가 있다.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동갑내기 부인과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현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모두 다
스위스로

그는 평소 아내를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는 등 아내 사랑으로 유명했는데, 이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의 관심이 일었다. 특히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내년부터는 한국인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다.

국내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다만 질병이 있는 환자에 관해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을 때 산소호흡기 등을 설치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가능하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 유지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진통, 영양, 물, 산소의 공급을 하지 않는다.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 곳은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는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현재까지 오리건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주서 합법화됐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자발적 안락사는 불가능한 일일까?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A씨는 선천적으로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온몸에 마비가 되는 병이었고 외모도 일그러졌다.

수술과 재활을 하던 중 다리에 후유증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고통으로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고 있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병으로 항상 고통받고 살았다. 이제는 고통받고 싶지 않고 자발적 안락사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것은 자발적 안락사를 도와주는 단체다. 스위스 바젤에 한 비영리단체는 자발적 안락사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의 사람이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할 때 절차를 도와준다. 이 단체는 2019년에 생겼으며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더라도 고령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을 지지한다.

초고령화 사회서 반드시 필요?
“스스로 선택한 후 평화로웠다”

이들은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단체의 사이트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의 사연들이 소개돼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B씨의 친구는 “난 스위스 바젤서 친구와 나흘 밤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죽기 12시간 전에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대 때부터 쌓아 올린 경력을 35살에 그만뒀다. 갑자기 생긴 근육통성 뇌척수염과 만성 피로 증후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B씨는 병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B씨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28세에는 갑상선을 제거했고, 50대에는 헤일리병이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제 B씨에게는 ‘또 어떤 병이 올지 모르는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길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B씨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서 해당 단체에 연락했다.

이민을 간 뒤 B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을 꾸민다는 생각이었고, 삶이 의미 있길 바랐다. 죽음을 선택하기 4~5년 전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 B씨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채우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B씨는 삶의 마지막 길을 해당 단체와 함께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마지막 길은 친구와 함께였고, 친구는 “그의 죽음은 평화로웠다”고 평했다.

해당 단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간 100유로(한화 약 14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국적, 여권 정보 등을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후에는 안락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서류가 있다.

죽음 후
절차는?

필요 서류는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하는 이유 ▲시민권과 현재 생활 상황 ▲간단한 자기소개 ▲가족 상황 ▲건강 진단서 ▲연락 담당자 지명 ▲출생증명서 ▲거주 증명서(요금 고지서, 공과금 고지서 등) ▲결혼·이혼 증명서(미혼은 법정선언문) ▲화장, 유골 등의 주의사항이다. 

이 서류를 제출하면 해당 업체는 신청서를 검토한다. 승인이 나면 업체는 신청자와 함께 자발적 안락사를 할 날짜를 정한다. 자발적 안락사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넴뷰탈(펜토바르바탈)을 정맥 주사로 투여받거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때 신청자가 직접 정맥 주사의 밸브를 열어야 하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안락사를 하는 경우 필요한 비용은 총 1만유로(한화 약 1435만원)다. 여기에는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지 서류 평가와 관리 비용, 예약, 의료상담, 장례서비스, 사후 관리 비용까지 포함된다. 나라나 지역이 다른 경우는 비행기 값이나 숙소 비용이 추가된다. 

이 단체의 특징은 ‘장기간의 우울증’ ‘극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신질환이 있다고 자발적 안락사가 거절당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해당 업체는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에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지” “한국인 회원은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업체는 “영어가 부족해도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한국인 회원이 있다”고 답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업체는 회원이 되면 ‘위험한 자살 예방’ ‘완화 치료에 대한 조언과 지원’ 등의 정보를 보내준다. 평생 회원 회비는 140만원 정도이고, 연간 회원은 7만원 정도다. 이곳은 회원에 한해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불치병에 걸렸거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장애가 있는 경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고 ▲가능한 치료와 대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
환자는?

또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오랫동안 죽음을 원했으며 ▲가족에게 죽음을 통보한 경우여야만 했다.

이곳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고 싶으면 두 번의 의사 상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의사는 회원을 진찰한다. 왜 죽고 싶은 건지, 온전한 정신에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안락사는 회원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를 열어야 한다. 이것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죽음을 원했다는 증거다. 해당 순간은 녹화된다.

해당 업체의 한 담당 의사는 고의적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심에는 징역 5년을 구형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의사가 정신질환자의 의견을 듣고 안락사를 허용한 것을 두고 고의적 살인을 한 간접 가해자라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안락사 회원이 상담 중에 “정신질환에 불만이 없다. 몸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힘들다. 치료할 수 없는 질환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봤다.

해당 업체의 경우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 회원이 많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업체는 창립자가 변호사이며, 의사들이 협력해 안락사 약물을 처방해 주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 다 비슷했지만, 이곳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 진행이 매우 까다로웠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말기 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기 위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준비할 서류도 많고, 업체 쪽에서 언어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한국 회원이 있었다.

합법적으로…금액은 1400만원 들어
본인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 열어야 

가장 최근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는 호주다. 호주서 인구가 가장 많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자발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이 발표됐다.

지난해 11월28일 호주 <A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NSW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면서 노던 준주(NT)와 수도 준주(ACT) 등 2개 준주를 제외한 호주의 모든 주에서 안락사가 가능해졌다. NSW주 의회는 2022년 5월 환자 자의에 따라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시행일은 1년6개월 뒤인 지난해 11월28일로 미뤄 놓은 상태였다.

이날 법이 시행되면서 기대 수명이 최대 6개월이라고 진단받은 불치병 환자나 기대수명이 최대 12개월이라고 진단받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자는 안락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안락사 신청은 NSW주에 최소 12개월 이상 거주한 자의식 있는 성인 환자가 직접 해야 한다.

안락사를 신청하면 보건부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위원 5명이 승인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독립된 의사 2명의 승인도 필요하다. 안락사 지지 단체인 NSW 존엄사 협회는 첫 12개월 동안 약 600~900명의 말기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NSW 존엄사 협회의 셰인 힉슨 대표는 “사람들이 이 법으로 여러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에 큰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독교 단체인 호주 크리스천 보이스는 안락사법이 ‘반 생명 로비스트’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며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안락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존엄사협회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력 존엄사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토론회는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존엄사협회가 함께 했다.

이날 화상회의 토론자로 척수염 환자 이명식(63)씨가 발표했다. 이씨는 3시간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탓에 화상회의를 통해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법은 위험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국내서 조력 존엄사를) 반대하고 싶다면 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반대해야 할 것이다. 통증 완화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반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내 몸이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그 날까지 튼튼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자신하느냐.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라면 그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도
공론화

반대 측에서는 자발적 안락사가 법제화된다면 취약 계층의 생명권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장애, 노령 등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에게는 (자발적 안락사가)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의사들에게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거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에게 의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조력사가 윤리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에 있는 만큼, 어떤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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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