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튄 흉악범 6인 추적> <단독> ‘필리핀 도박왕’ 부실 기소 미스터리

1조3000억 물렸는데 겨우 40억만?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이 수개월째 공전 중이다. 피고인 ‘조삼’ 김모씨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 대형 로펌이 또 사임신고서를 제출해 해당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검찰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공판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김씨의 혐의를 부실하게 들여다봤다는 지적이다. 

“계좌 내역이 있다면서요. 출력물이잖아요.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는 건데.” 지난 6일 진행된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 도중 판사가 검찰 측에 한 말이다.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적한 셈이다. 검찰의 부실한 대비가 피고인 ‘조삼’ 김모씨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혐의 적용도 논란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알려진 ‘민준파’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조삼은
누구냐?

김씨의 공판은 그가 지난해 9월20일 구속 기소된 이후 총 6번 진행됐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재판 진행이 더뎠던 건 김씨 변호인 측의 연이은 사임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가 선임했던 대형 로펌은 총 5곳이었다. 개인 변호사들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13명이 사임계를 제출해 왔다. 일부 로펌은 공판 직전 검찰 측 기록에 관한 복사 및 열람을 신청하고 나서 사임했다.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기도 했다. 김씨의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다. 김씨는 자신이 바지사장으로 내정된 이후 현금을 움직이는 자금책이었을 뿐 총책은 따로 있다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모르는 부분이 포함된 부분과 중복으로 산정된 부분이 있어서 실제와 다르다. 1조3000억원이라고 기소돼있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검찰 측에 문제가 되는 계좌에 관한 증거기록과 전산자료를 일괄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검찰 측은 “찾아 보고 있으면 제출하겠다. 관련자들이 다 재판 중이라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왜 시일이 걸리냐? 아니 계좌 내역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출력물을 말하는 거다. 그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측은 “증거기록을 샅샅이 뒤져 보지는 못했다. 확보해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계좌가 여러 개가 있고, 회원 입금한 돈이 계좌로 넘어가고 다시 일부는 반환되거나 순환이 이뤄졌다. 변호인 측이 주장한 건 순환되는 걸 걷어내면 1조3000억원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검찰도 수사할 때 순환되는 건 걷어내고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부분에 관한 입증은 검찰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공판 검사 수차례 지적
이러다…혐의 입증 물거품 우려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증거조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구속 만기가 다 되도록 진행된 게 없다. 이건 피고인에게도 유리한 게 아니다. 변호인들이 뒤늦게 선임된 건 이해하지만, 1차 기소된 사건 구속기한도 다 됐는데, 이 상태면 재판 진행 자체가 되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직접 재판 진행이 더딘 문제를 언급할 정도면 인내심에 한계치에 온 것”이라며 “검찰이 판사가 지적한 증거조차 제대로 보완하지 않은 부분은 아직 초임 검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현재 단계서 피고인이 노리는 건 불구속이다. 실형을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혐의를 빼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증거를 보완해야 하는데 어쩌면 입증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형 보이스피싱 범죄였던 민준파 사건은 김씨의 범죄와 유사했다. 이 사건도 김씨처럼 필리핀 마닐라서 시작됐다. 민준파 조직원들은 마닐라 콘도 등에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한 뒤, 개인적인 인적 관계를 이용하거나 필리핀 현지 사이트에 “상담원을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시하며 신규 조직원들을 모집했다.

이들이 범행 초기에 가장 신경 쓴 것은 보안 유지로 실제로 조직원들은 실명을 쓰지 않았다. ‘승이’ ‘맹구’ 등 가명 또는 별명을 써서 신분을 철저히 위장했다. 이 조직(민준파)의 총책이 되는 팀장 최민준이 ‘민준’이란 가명을 쓴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은 조직원들의 여권을 거둬 여행사에 맡겨 버리는 방식으로, 조직원의 이탈을 적극 방지했다. 한 번 가입한 조직원은 마음대로 탈퇴할 수 없었고, 내부 사정을 밖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수시로 교육받았다. 

피해액 200억 
‘민준파’ 유사

나중에 민준파 부총책이된 A씨가 보이스피싱에 발을 들인 것도 이 무렵이다. 2016년 1월 A씨는 큰 돈을 벌고자 필리핀으로 갔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최씨와 A씨는 팀장과 팀원으로 2017년 1월까지 58억원에 가까운 돈을 챙겼다.

최씨와 A씨는 2017년 가을쯤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하는 보이스피싱 범행조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총책 최씨와 A씨는 ▲콜센터 직원 ▲출집(보이스피싱 인출책) ▲장집(대포 체크카드 모집책) ▲국내 인출책 ▲국내 환전책 등으로 구성된 조직을 꾸렸다. 콜센터 조직은 팀장급 별명이나 팀 구성원들의 특성에 따라 10여개 팀으로 구성됐다.

최씨는 2021년까지 약 4년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일삼으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20년 2월 ‘민준파’의 존재를 인지한 후 2017년도부터 2020년까지의 3년간 발생 사건을 분석했다. 경찰은 조직원들을 특정해 범죄단체조직죄, 사기 등의 혐의로 국내 조직원들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후 총책 최씨 등 조직 윗선까지 검거하기 위해 약 2년간 장기 추적을 거듭했다. 총책의 동선을 확보한 경찰은 현지 사법기관과 공조하며 1주일간 잠복한 끝에 지난해 9월 드디어 최씨를 검거했다. 나흘 뒤에는 총책의 검거 사실을 눈치채고 급하게 다른 곳으로 도피를 준비하던 A씨와 조직원 4명도 모두 검거했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수원지검으로 구속 송치됐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와 A씨는 2017년 12월쯤부터 약 4년간 피해자 560명으로부터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3억3000만원까지 뜯어 총 108억원을 가로챘다. ‘민준파’ 이전의 보이스피싱 조직서 얻은 범죄수익을 합하면 피해액은 총 160억~170억원으로 늘어난다.


대놓고
공판 지연

검찰은 당시 합수단은 법리 검토를 통해 단순 사기죄서 법정형이 높은 특경법 위반으로 혐의를 변경하며 법원에 중형 선고를 요청했고, 최씨에겐 동종범죄 역대 최장기형인 징역 35년과 추징금 20억원이 선고됐다. A씨에겐 징역 27년과 추징금 3억원이 선고됐다. 기존 보이스피싱 총책에 대한 최장기형은 징역 20년(안산지원·피해액 54억원)이었다.

사건 내용을 보면 민준파 사건과 김씨의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씨의 혐의를 두고 사기도박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내용에 밝은 한 수사관은 “수년간 이뤄진 조직적인 범죄고 수사 과정서 김씨가 보이스피싱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여럿 포착된 바 있다”며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수사관도 “1조3000억원대 부당이익은 역대급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형이 선고되기 어렵지 않나 우려가 된다. 타인을 기만한 증거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추가 기소가 이뤄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속인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승률을 조작했다거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상에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상대방과 도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수료 형식으로만 수익을 냈다면 사기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부지검의 한 검사도 “차후 공소장 변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찰서 신중하게 기소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전관을 썼다고 해도 재판부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례”라고 말했다.

계좌 증거도 준비 못해…느슨한 대응
6개월 시간 끌기…사임 변호사만 13명 

김씨의 부당이익 1조3000억원 중 검찰이 특정한 금액은 40억원에 불과하다.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사정당국 수사관들의 추가 조사 이후 금액이 늘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씨가 조직원들을 통해 현금을 은닉하거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필리핀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바꿔치기는 방법을 지속해온 만큼 추적에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도 “코인 거래소도 추적이 어려운데 수십서 수백만원을 환전소서 현금화한다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김씨가 은닉한 금액을 추적할 순 있어도 이미 현금화된 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당국은 김씨의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 B씨가 김씨의 수익 일부를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대포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가 아니었던 B씨는 김씨를 만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B씨는 현재 마닐라 지역 중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자식은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국제학교에 다니며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B씨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가 은닉한 추가 금액을 B씨가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해외 파트 담당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씨가 필리핀 현지서 잡혔을 당시 초호화 생활을 했던 건 차명으로 운영하는 계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 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와이프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난한 동네서 살던 B씨가 월세 1000만원이 넘는 곳에서 거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기 혐의
적용 안 해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김씨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김씨 측 변호인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필리핀서 검거된 뒤에도 허위 사건을 만들어 송환을 지연시키는 등 또다시 해외로 도피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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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