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 대응?’ 온라인 살인 예고 후일담

“걸리기만 해봐” 으름장 놓더니 솜방망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되는 설정의 영화 <더 퍼지>. 지난해 대한민국은 마치 <더 퍼지> 같았다. 연속된 ‘묻지마 범죄’와 난무한 ‘온라인 살인 예고’로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엄정 대응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 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난 만큼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살인사건과 서현역 흉기 난동 살인사건이 트리거가 돼 폭주했던 온라인 살인 예고 글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 검찰이 법정 최고형이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과 달리 법원은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검찰에 송치된 189명의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자 중 32명이 구속 기소됐다. 

대부분
무죄·집유

하지만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무죄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당초 서현역 흉기 살인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게시글이 각종 온라인서 쏟아지자 경찰과 검찰은 엄정 대응을 시사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당시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 엄중 처벌할 것이며 해당 장소에 경찰특공대를 배치해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두 차례 중대강력범죄 엄정대응 긴급회의를 열고 ▲강력범죄 전담부서 및 전담 검사 중심의 대응체계 정비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피해 확산 방지 및 신병‧증거 확보 철저 ▲증거관계를 면밀히 살펴, 처벌 규정 적극 적용 ▲원칙적 정식 재판 회부 및 소년범이라도 기소유예 지양을 지시했다.

검찰은 해당 지시에 따라 실제 살인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이 있고, 물리적 실행행위도 있는 경우에는 살인 예비, 경찰관 등이 동원돼 일반 치안활동에 지장을 초래했다면 위계공무집행방해, 생명·신체 등을 위협하는 내용이라면 협박, 반복적으로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이라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가능한 법령과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해 피의자들을 기소했다.

적용된 각각의 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살인 예비 징역 10년, 위계공무집행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000만원, 업무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500만원, 협박 징역 3년 또는 벌금 500만원이다. 

법무부에서는 경찰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실제로 공항 테러·살인 예고 사건과 프로배구 선수단 칼부림 예고 사건의 범인들은 법무부로부터 각각 3200만원과 12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당했다.

경찰청도 지난해 경찰 공권력이 낭비된 점에 대해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손해배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에 대한 엄정한 형사처벌과 함께 공권력 낭비로 인해 초래된 국가적 손해 등 상당액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이은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로 국민 일상에 미치는 피해는 물론 대규모 경찰력 동원 등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가 극심한 실정” 라며 “개별 사안마다 다를 수 있으나 실제 손해 산정액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 소송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89명 검찰 송치…32명 구속
처벌 규정 없어 가벼운 형량

검찰이 해당 범죄를 적용해 구형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5번에 불과하다. 가장 형량이 높게 나온 사례는 공항 폭탄테러 예고다. 지난해 8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공항 5곳을 대상으로 폭탄테러와 함께 살인하겠다고 글을 게시한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2심서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해 8월 6일 오후 9시7분부터 이튿날 0시42분까지 약 3시간35분간 6차례에 걸쳐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국제공항 등 5개 공항에 대한 폭탄테러와 살인 예고를 담은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첫 게시글서 ‘내일 2시에 제주공항 폭탄테러 하러 간다. 이미 제주공항에 폭탄을 설치했고, 공항서 나오는 사람들을 흉기로 찌르겠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 IP로 우회 접속해 게시물을 남겼으며 범행 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던 A씨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자 “경찰이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을 시작할 것 같아 여러 협박 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A씨의 글이 게시된 후 당시 해당 공항에는 8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장갑차와 순찰차, 폭발물 탐지 차량, 소방차, 구급차까지 일제히 배치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지애 판사는 지난해 11월23일 “피고인은 비상식적인 범행동기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데다 이 범행으로 인해 막대한 공권력이 낭비됐다. 또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다만 실제 테러를 실행하지 않고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반복적으로 다중의 안전을 위협하며 커다란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특히 이 사건 범행으로 국내 5개 공항에 경찰 등 대거 인력 투입으로 공권력이 낭비돼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늘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두 번째로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사례는 프로배구단 살인 예고다. 지난해 8월 스포츠 중계 앱을 통해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B씨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는 지난해 8월6일 “구미서 컵대회를 치르고 있는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합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경찰 조사 당시 “스포츠 베팅 사이트서 프로배구팀에 현금 5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걸었으나 해당 팀이 경기서 지자 홧김에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큰소리 
치더니…


B씨의 글로 경찰은 18시간 동안 인력 230여명을 동원해 배구단 숙소 인근 지역 순찰 및 숙소 안전 점검에 나서는 등 치안 인력을 낭비했다. 배구단 역시 선수단 훈련 등 계획한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흉기 난동 관련 뉴스 동영상에 놀이동산서 일가족 대상으로 칼부림하겠다는 댓글을 여러 차례 작성한 C씨에게는 징역 6개월이 선고됐다. C씨의 글이 SNS에 올라온 당시 경찰관 수십 명이 현장에 출동해 대대적인 순찰과 수색을 벌이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서울숲역에서 기획사 임직원 9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D씨와 모바일 야구 게임 회사에 찾아가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E씨는 징역형 1년을 판결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차례 살인 예고를 하거나 최소 수십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해당 5개의 사건은 물론 나머지 온라인 살인 예고 사건 재판 과정서도 모방 범죄 확산의 위험성, 심각한 사회 불안 초래, 공권력 낭비 상황 등 부정적 양형사유를 적극 주장하며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모두 벌금형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틀 후 인터넷에 “대림역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려 재판에 넘겨진 F씨도 이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F씨의 글로 인해 당일 현장에는 경찰관 9명이 출동했고, 인근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재판부는 “F씨가 글을 올린 날은 조선(신림동 살인사건 범인)이 신림역서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지 이틀 뒤”라며 “성인으로서 자신의 글 내용과 파급력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질책하면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8일에는 “신림역서 한녀(한국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한 G씨가 서울중앙지법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인천 부평 로데오 거리서 여성만 10명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40대 남성이 인천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시기 용산역서 흉기 난동을 예고하는 온라인 방송을 진행한 20대에는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적극적으로 
항소해도…

검찰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적극적으로 항소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항소에도 실형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살인 예고라는 특이 상황에 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으며 법원이 혐의가 적용되지 않다고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현행법상 살인 예고 글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법 조항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며 “협박만 해도 대상자가 특정이 안 되는 문제가 있고, 공무집행방해의 경우도 119에 전화한 것이 아닌 단순 장난 글을 올린 거라 애매하다”고 내다봤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항소 기각으로 집행유예가 확정될 확률이 99%”라며 “국민들이 겁을 먹고 잠재적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6개월형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이지만 법원의 전반적인 선고 분위기를 봤을 때 실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공중협박죄 처벌 규정이 없어 장난인지, 실제 가해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증거 유무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결이 갈리면서 온라인 살인 예고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앞서 검찰서도 법원의 판결과 구형이 계속해서 갈리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살인 등 범죄를 예고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살인 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협박,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으나, 구체적 사안에서는 현행법만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대검찰청은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처벌 공백이 발생하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공중협박행위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법무부에 건의했다.

‘장난삼아’ 정상 참작?
단 5명만 실형 선고받아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도 지난해 공중협박법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8월 묻지마 흉악범죄에 입법적으로 대응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 개정안은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서 논의됐던 ▲범죄자 처벌 강화 ▲범죄 발생 억제 ▲피해자 보호 등의 3가지 방안 중 범죄자 처벌 강화 차원서의 1차적인 후속 입법 성격이나,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에는 형법 제118 조의 2를 신설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위협하거나 이를 가장해 공중을 협박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공중협박죄’ 규정을 마련했다.

또 정당한 이유 없이 범죄 우려가 있는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경우,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서 벌금형 부분을 3000만원으로 상향하고, 범행 장소가 대중교통이나 공연장 등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7일이 돼서야 전체회의를 열고 공중협박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과 공공장소 등에서 흉기 노출 및 휴대행위 등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마련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에 대한 토론 등을 거쳐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로 회부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 외에도 국민의힘 김영식·김용판·홍석준 의원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온라인 공간서 흉악범죄를 예고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 처벌 규정을 명시하며 각각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임위서 단 한 차례도 다뤄지지 않았으며 결국 총선이 다음 달에 예정돼있어 제21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림동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온라인 살인 예고가 난무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만 갔는데 여‧야는 급한 민생 관련된 법안을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정쟁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했을 때에도 정치권 인사를 겨냥한 살인 예고도 4건이나 있었다. 하지만 총선 전에 개정될 가능성이 적이 해당 글 게시자들도 결국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

공중협박죄
신설하나?

국회에 법안이 계류돼있는 동안 이미 대부분 살인 예고 글 게시자들은 무죄나 집행유예로 사회에 나왔다. ‘장난삼아’라는 이유로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한 만큼 언제든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면서 “처벌받은 사람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추적관찰을 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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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