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 대응?’ 온라인 살인 예고 후일담

“걸리기만 해봐” 으름장 놓더니 솜방망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되는 설정의 영화 <더 퍼지>. 지난해 대한민국은 마치 <더 퍼지> 같았다. 연속된 ‘묻지마 범죄’와 난무한 ‘온라인 살인 예고’로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엄정 대응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 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난 만큼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살인사건과 서현역 흉기 난동 살인사건이 트리거가 돼 폭주했던 온라인 살인 예고 글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 검찰이 법정 최고형이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과 달리 법원은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검찰에 송치된 189명의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자 중 32명이 구속 기소됐다. 

대부분
무죄·집유

하지만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무죄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당초 서현역 흉기 살인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게시글이 각종 온라인서 쏟아지자 경찰과 검찰은 엄정 대응을 시사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당시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 엄중 처벌할 것이며 해당 장소에 경찰특공대를 배치해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두 차례 중대강력범죄 엄정대응 긴급회의를 열고 ▲강력범죄 전담부서 및 전담 검사 중심의 대응체계 정비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피해 확산 방지 및 신병‧증거 확보 철저 ▲증거관계를 면밀히 살펴, 처벌 규정 적극 적용 ▲원칙적 정식 재판 회부 및 소년범이라도 기소유예 지양을 지시했다.

검찰은 해당 지시에 따라 실제 살인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이 있고, 물리적 실행행위도 있는 경우에는 살인 예비, 경찰관 등이 동원돼 일반 치안활동에 지장을 초래했다면 위계공무집행방해, 생명·신체 등을 위협하는 내용이라면 협박, 반복적으로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이라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가능한 법령과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해 피의자들을 기소했다.

적용된 각각의 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살인 예비 징역 10년, 위계공무집행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000만원, 업무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500만원, 협박 징역 3년 또는 벌금 500만원이다. 

법무부에서는 경찰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실제로 공항 테러·살인 예고 사건과 프로배구 선수단 칼부림 예고 사건의 범인들은 법무부로부터 각각 3200만원과 12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당했다.

경찰청도 지난해 경찰 공권력이 낭비된 점에 대해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손해배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에 대한 엄정한 형사처벌과 함께 공권력 낭비로 인해 초래된 국가적 손해 등 상당액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이은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로 국민 일상에 미치는 피해는 물론 대규모 경찰력 동원 등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가 극심한 실정” 라며 “개별 사안마다 다를 수 있으나 실제 손해 산정액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 소송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89명 검찰 송치…32명 구속
처벌 규정 없어 가벼운 형량

검찰이 해당 범죄를 적용해 구형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5번에 불과하다. 가장 형량이 높게 나온 사례는 공항 폭탄테러 예고다. 지난해 8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공항 5곳을 대상으로 폭탄테러와 함께 살인하겠다고 글을 게시한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2심서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해 8월 6일 오후 9시7분부터 이튿날 0시42분까지 약 3시간35분간 6차례에 걸쳐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국제공항 등 5개 공항에 대한 폭탄테러와 살인 예고를 담은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첫 게시글서 ‘내일 2시에 제주공항 폭탄테러 하러 간다. 이미 제주공항에 폭탄을 설치했고, 공항서 나오는 사람들을 흉기로 찌르겠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 IP로 우회 접속해 게시물을 남겼으며 범행 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던 A씨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자 “경찰이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을 시작할 것 같아 여러 협박 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A씨의 글이 게시된 후 당시 해당 공항에는 8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장갑차와 순찰차, 폭발물 탐지 차량, 소방차, 구급차까지 일제히 배치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지애 판사는 지난해 11월23일 “피고인은 비상식적인 범행동기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데다 이 범행으로 인해 막대한 공권력이 낭비됐다. 또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다만 실제 테러를 실행하지 않고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반복적으로 다중의 안전을 위협하며 커다란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특히 이 사건 범행으로 국내 5개 공항에 경찰 등 대거 인력 투입으로 공권력이 낭비돼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늘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두 번째로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사례는 프로배구단 살인 예고다. 지난해 8월 스포츠 중계 앱을 통해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B씨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는 지난해 8월6일 “구미서 컵대회를 치르고 있는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합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경찰 조사 당시 “스포츠 베팅 사이트서 프로배구팀에 현금 5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걸었으나 해당 팀이 경기서 지자 홧김에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큰소리 
치더니…


B씨의 글로 경찰은 18시간 동안 인력 230여명을 동원해 배구단 숙소 인근 지역 순찰 및 숙소 안전 점검에 나서는 등 치안 인력을 낭비했다. 배구단 역시 선수단 훈련 등 계획한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흉기 난동 관련 뉴스 동영상에 놀이동산서 일가족 대상으로 칼부림하겠다는 댓글을 여러 차례 작성한 C씨에게는 징역 6개월이 선고됐다. C씨의 글이 SNS에 올라온 당시 경찰관 수십 명이 현장에 출동해 대대적인 순찰과 수색을 벌이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서울숲역에서 기획사 임직원 9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D씨와 모바일 야구 게임 회사에 찾아가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E씨는 징역형 1년을 판결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차례 살인 예고를 하거나 최소 수십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해당 5개의 사건은 물론 나머지 온라인 살인 예고 사건 재판 과정서도 모방 범죄 확산의 위험성, 심각한 사회 불안 초래, 공권력 낭비 상황 등 부정적 양형사유를 적극 주장하며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모두 벌금형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틀 후 인터넷에 “대림역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려 재판에 넘겨진 F씨도 이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F씨의 글로 인해 당일 현장에는 경찰관 9명이 출동했고, 인근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재판부는 “F씨가 글을 올린 날은 조선(신림동 살인사건 범인)이 신림역서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지 이틀 뒤”라며 “성인으로서 자신의 글 내용과 파급력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질책하면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8일에는 “신림역서 한녀(한국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한 G씨가 서울중앙지법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인천 부평 로데오 거리서 여성만 10명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40대 남성이 인천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시기 용산역서 흉기 난동을 예고하는 온라인 방송을 진행한 20대에는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적극적으로 
항소해도…

검찰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적극적으로 항소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항소에도 실형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살인 예고라는 특이 상황에 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으며 법원이 혐의가 적용되지 않다고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현행법상 살인 예고 글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법 조항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며 “협박만 해도 대상자가 특정이 안 되는 문제가 있고, 공무집행방해의 경우도 119에 전화한 것이 아닌 단순 장난 글을 올린 거라 애매하다”고 내다봤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항소 기각으로 집행유예가 확정될 확률이 99%”라며 “국민들이 겁을 먹고 잠재적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6개월형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이지만 법원의 전반적인 선고 분위기를 봤을 때 실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공중협박죄 처벌 규정이 없어 장난인지, 실제 가해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증거 유무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결이 갈리면서 온라인 살인 예고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앞서 검찰서도 법원의 판결과 구형이 계속해서 갈리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살인 등 범죄를 예고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살인 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협박,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으나, 구체적 사안에서는 현행법만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대검찰청은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처벌 공백이 발생하면 안된다며 이를 위해 공중협박행위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법무부에 건의했다.

‘장난삼아’ 정상 참작?
단 5명만 실형 선고받아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도 지난해 공중협박법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8월 묻지마 흉악범죄에 입법적으로 대응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 개정안은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서 논의됐던 ▲범죄자 처벌 강화 ▲범죄 발생 억제 ▲피해자 보호 등의 3가지 방안 중 범죄자 처벌 강화 차원서의 1차적인 후속 입법 성격이나,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에는 형법 제118 조의 2를 신설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위협하거나 이를 가장해 공중을 협박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공중협박죄’ 규정을 마련했다.

또 정당한 이유 없이 범죄 우려가 있는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경우,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서 벌금형 부분을 3000만원으로 상향하고, 범행 장소가 대중교통이나 공연장 등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7일이 돼서야 전체회의를 열고 공중협박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과 공공장소 등에서 흉기 노출 및 휴대행위 등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마련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에 대한 토론 등을 거쳐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로 회부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 외에도 국민의힘 김영식·김용판·홍석준 의원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온라인 공간서 흉악범죄를 예고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 처벌 규정을 명시하며 각각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임위서 단 한 차례도 다뤄지지 않았으며 결국 총선이 다음 달에 예정돼있어 제21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림동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온라인 살인 예고가 난무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만 갔는데 여‧야는 급한 민생 관련된 법안을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정쟁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했을 때에도 정치권 인사를 겨냥한 살인 예고도 4건이나 있었다. 하지만 총선 전에 개정될 가능성이 적이 해당 글 게시자들도 결국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

공중협박죄
신설하나?

국회에 법안이 계류돼있는 동안 이미 대부분 살인 예고 글 게시자들은 무죄나 집행유예로 사회에 나왔다. ‘장난삼아’라는 이유로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한 만큼 언제든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면서 “처벌받은 사람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추적관찰을 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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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