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71)구중궁궐 백설공주처럼…(완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2.26 02:00:00
  • 호수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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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청와대 궁궐 속의 대통령은 별다른 통치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구중궁궐에 백설공주처럼 누워 백마 타고 올 어떤 초인을 꿈꾸는 걸까? 

국민들은 불평불만을 수군거렸다. 생활은 물론 아버지 박통 시절에 비해 물질적으로 상당히 좋아졌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끝없는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져 갔다.

영혼을 잃어버린 욕망 로봇처럼… 여대통령은 오불관언 자신만의 꿈속에 빠져 “통일 대박! 잡념을 버리고 정신통일하면 신비로운 우주의 에너지가 도와 만사혈통 성취된다!”라며 대국민 메시지를 뇌까리곤 했다. 

거짓말에 갇혀

어느 날, 나는 피에로씨와 함께 식당에서 수저를 집다가 텔레비전를 통해 그 뉴스를 들었다. 사실 처음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었다.


고등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해 가라앉는 중이라고 얘기하는 듯싶었다. 

티브이 화면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밥 먹으며 잡담하느라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짓푸른 바다에 커다란 배가 뜬 채 기울어진 모습이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닥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다가 해경 구조대와 하늘에 뜬 헬리콥터가 긴급 활동을 벌이는 성싶었으므로 모두들 큰 걱정은 제쳐둔 눈치였다. 

얼마 후엔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를 피에로 씨에게서 전해 들은 터라 안심하곤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건 가짜 뉴스였다. 약간 실없는 편인 피에로 씨의 거짓말이 아니라 국영 언론사의 오보였던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에 속고 있는 사이 갇힌 아이들은 발버둥치며 하나 둘 죽어가고 있었다니…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마치 엽기적인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현실이었다.

정녕 놀랍고 기이한 시간의 영원 같은 지속이었다.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도 아닌데, 갑판으로 뛰어나온 남녀 학생들이 구출해 달라며 하얀 손을 흔들어대는데, 무슨 무장 게릴라들이 총을 쏘아대는 것도 아니건만, 도대체 왜 그럴까?


왜 헬리콥터는 공중을 빙빙 떠돌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으며, 해경 구조대는 계속 허둥지둥거리기만 할 뿐 어린 생명들이 애타는 손을 붙잡아 주지 않는 것일까?

그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미스터리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엄마 아빠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애달피 절규했던가!

동서고금에 걸쳐 역사의 뒤안길엔 최고 권력층의 검은 마수들이 해괴한 사건을 조작한 경우가 많았다.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삼는 짓이 서슴없이 저질러졌던 것이다.

한국 역사,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현대사 속에서도 적잖게 일어나곤 했었다. 장막 뒤에 숨은 흑역사의 줄을 쭉 꿰어 보면 겉에 드러난 역사가 오히려 우스울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망한 소문이 떠돌았다. 모종의 목적을 위해 배를 일부러 침몰시켰다느니, 순수하고 뜨거운 피를 지닌 청소년 수백명의 목숨을 수장 공양해야 여대통령의 정치적 운세가 선덕여왕보다 더 찬란하게 꽃핀다는 무당말에 미혹된 결과라느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워낙 황당스하다 보니 유언비어라고 무시해 버리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수많은 청소년들이 계속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있는데도 한참 뒤늦게 나타난 여대통령의 모습은 어린아이들마저 이상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볼 만큼 가관이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금방 일어나 마지못해 나온 기색이 드러나 보였다. 백설공주처럼 건강하지 않고 부석부석한 얼굴에 애매모호한 눈이었다.

혹시 무슨 미약이 든 사과라도 먹지 않았을까 의혹 섞인 소문이 또 떠돌았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하기엔 좀 어쭙잖은 말은 의심을 사고 남을 만했다.

여기서 그 미스터리에 대해선 더 언급하지 않으련다. 아주 많이 알려졌기에 이만큼 서술한 것도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을지 염려스럽다.

대한민국 역사상 희대의 걸물 마수
드러난 국정 농단…국민의 믿음 배신


아무튼 그 무렵부터 국정 최고 운영자로서 여대통령의 정치 생명은 점점 가치를 상실해 갔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선 운동 당시의 나름 풋풋한 패기도, 당선된 후 취임식 석상에서 활짝 웃으며 맹세하던 건강성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얀 손을 든 채 고운 입술로 읊은 선서는 잃어버린 보석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보석이 아닌 온 국민의 보석…. 

과연 누가 훔쳐 간 것일까? 문고리 3인방이니 그녀를 처녀 적부터 지도했다는 사이비 교주의 이름 따위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흑막 뒤에서 서서히 악의 마각을 드러낸 건 최순실(얼마 후 둔갑하듯 최서원으로 개명)이란 여자였다.

최 여사는 하늘 아래 가장 결백하노라 주창했으나, 흑막 뒤에서 여대통령을 조종해 국정농단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증거를 통해 속속 밝혀졌다.

일견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최 여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희대의 걸물 마수였던 셈이다. 여대통령을 꼭두각시 인형으로 삼아 국민을 희롱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아버지의 장점만 이어받아 나라를 아름답게 발전시키길 바라던 국민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은 실망했고, 자신의 한 표를 아꼈으나 그래도 한 가닥 기대감이나마 품었던 국민은 절망을 넘어 분노한 나머지 스스로 암흑 천지를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켜 들었다.

백 송이의 꽃불은 천 송이에서 만 송이로 늘다가 점점 백만송이 천만송이의 거대한 소망으로 타올랐다.

낡은 태극기와 이상한 성조기를 치켜든 지지자들이 광화문 앞에 모여 검은 입김을 불었으나 꽃불은 더욱 환하게 활활 타오르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심판이 내려졌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여대통령은 자신의 능력 부족과 측근들의 국정농단, 부정부패로 인해 결국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고 말았다. 

오방색 주머니 속의 비현실적으로 화려하던 모조 다이아몬드 같던 ‘통일 대박론’도 당연히 사라져 버렸다. 언제 또 어느 누군가에 의해 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 국민들을 희롱할지 모르는 미지의 보석 구슬…. 

물거품된 희망

어느 날, 피에로 씨와 내가 옥상에서 ‘사이비 교주 영감을 면회하려 교도소엘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토론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래쪽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통일은 대박, 통일은 쪽박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너와 나의 사랑이 행복일지 
슬픔의 씨앗을 잉태할지~ 

분단은 대박, 분단은 쪽박
그 누가 손금 보듯 알 수 있을까요? 
애증의 쌍곡선이 어디로 흘러갈지 
무정한 세월만 흐르는데… <끝>


그동안 <대통령의 뒷모습>을 애독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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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잡는 이재명 더 유리한 이유

칼 잡는 이재명 더 유리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정치권의 분위기는 조기 대선으로 넘어갔다. 아직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독무대인 가운데 야권 잠룡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록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지만 그럼에도 이 대표가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기한 구속 취소 청구를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 52일 만에 석방됐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야당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비명(비 이재명)계 잠룡들은 잠시 총구를 거두고 하나의 목소리로 탄핵을 촉구했다. 풀려난 윤 뭉치는 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 9일,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김 전 지사는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모든 것을 걸고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탄핵 찬성 여론이다.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김 지사는 “정치 불확실성이 더 길어진다면 심각한 경제 쇼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즉각 탄핵만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수원역 로데오거리서 시위를 하던 중 한 남성이 맥주캔을 던지는 등 한때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지사는 지난 12일, 단식농성 중인 김 전 지사를 만나 “힘을 합쳐 조기 탄핵, 100% 탄핵을 이루자”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조기 탄핵과 탄핵 100%를 주장하는 분들과 뜻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지금의 이 정치적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서는 빠르게 탄핵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같이 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야5당 합동 집회가 열린 광화문을 찾아 목소리를 높였다. 김두관 전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내란 수괴가 활보하는 대한민국이라니 생각도 못했다. 이제 내란 세력을 응징하는 것은 파면 후 조기 대선서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하는 길밖에 없다”고 탄핵 여론에 군불을 땠다. 박용진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검찰총장 출신 내란 수괴와 한통속으로 대놓고 봐주기 하는 것 아니냐”며 “9시간 45분이 문제가 아니라 94년 5개월을 감옥에 있어도 모자랄 내란 수괴의 석방은 국민의 불안을 가중하는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임 전 실장은 지난 4일, 공개 특강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문재인정부 초기를 준비했던 분들의 경험을 경청해주길 바란다”며 “제가 주선해서라도 그때 준비한 내용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속 취소에 커지는 광장 목소리 정권교체론 발판 삼아 “윤 파면” 합심해 이 대표를 압박했던 비명계가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계기로 다시 뭉치는 분위기다. 이 대표 역시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를 겨냥해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통합 기조를 내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오후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민주당 천막 농성장을 찾아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박용진 전 의원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만나 시국 간담회를 가졌다. 김동연 지사도 이 대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기존 일정으로 불참했다. 이 대표는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을 군인으로 통치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같은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불안과 공포감을 준다”며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우리 경제도 추락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일부 국민의힘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탄핵이 기각돼 대통령이 다시 직무에 복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공식적으로 헌재의 이름으로 앞으로 대통령은 아무 이유도 없이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아무 때나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취미활동 삼아서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것인데 가당키나 한가”라고 지적했다. 정권교체론과 비상계엄의 위법성이 두드러질수록 차기 대선은 계엄 해제의 공을 다투는 선거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관점서 봤을 때 이 대표는 ‘계엄 해제’와 ‘탄핵 찬성’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유산을 모두 갖고 있다. 야권 잠룡들이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데 그쳤다면 이 대표에게는 계엄을 해제한 1등 공신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야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탄핵 목소리를 키우는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 정국에 얼마나 많이 기여했는지가 추후 열릴 수 있는 경선, 또는 조기 대선에 가산점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은 50.4%,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은 44.0%로 집계됐다. 2주째 오차범위인 ±2.5%p 밖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앞선 것이다. 정권교체 신경전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이 각각 정권 연장론과 교체론에 힘을 실었다. 무당층에서는 정권 연장이 31.6%, 정권교체가 45.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을 통해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5%p, 응답률은 6.4%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비상계엄 심판론’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파면 사유가 될 이번 계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동조한 이들을 반헌법 수호 세력으로 규정해 정권교체 프레임을 굳히겠단 것이다.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계엄 해제에 앞장선 이 대표를 내세울 수 있다. 이 대표는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난해 12월4일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셔도 된다” “끝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겠다” “우리 민주당은 대통령의 계엄해제 선언 전까지 국회서 자리를 지키겠다” 등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고, 탄핵 정국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비상계엄이 ‘불법 내란’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통해 헌재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11일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 소속인 민주당 박수현·민형배·김준혁, 진보당 윤종오 의원 등은 이날 서울 광화문 농성장서 “윤 대통령 파면 시까지 단식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한 심우정 검찰총장이 즉각 사퇴할 것과 법원의 윤 대통령 직권 재구속 및 국민의힘 정당 해산 등 요구안도 발표했다. 이들은 연대 이름으로 낸 성명서를 통해 “오늘로 12·3 내란이 98일째를 맞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며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는 헌재의 신속하고 단호한 윤석열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에는 민주당 초선 박홍배·김문수·전진숙 의원이 국회 본청 앞 계단서 윤 대통령 조기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 500여명이 국회의사당서 광화문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는 대신 조용한 행보를 택했다. 너도나도 때리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국회의 본령인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장외 정치 투쟁에 몰두하는 데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며 “지도부는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의원님들께서 양해해주셨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개인적으로 탄핵 각하 릴레이 집회를 이어가는 등 엇박자를 보이면서 여당은 여당대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급해진 여권 잠룡들은 일제히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집중 공격에 나섰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당선무효형을 선고했고 오는 26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만일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 결과가 비록 유죄일지라도 조기 대선에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 대표의 판결이 6월26일까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2심 선고서 유죄가 나오면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심과 3심 대법원 판결 사이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도 모르는 상태서 유권자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맞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최근 민주당이 심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 가능성을 언급하자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검찰을 희생양 삼아 ‘사법 리스크 물타기’를 하면서 이 대표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것 아닌가”라고도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대표를 콕 집어 “위험하고 불안한 후보”라며 “유리한 위치가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12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M+에서 열린 ‘제1회 서울 바이오 혁신 포럼’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리 당도 혹시 열릴지도 모르는 조기 대선에 여러 가지 사전적인 준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라고 밝혔다. 때릴수록 커지는 이…보이지 않는 대항마 정책 과제 발표에 시동 걸리는 조기 대선 최근 정치 활동을 재개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대표를 겨냥해 “위험한 사람이 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겠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뭉친다면 이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저마다 ‘이재명 때리기’ 전략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려 하지만 그럴수록 이 대표의 주목도만 높아지는 꼴이다. 게다가 대권주자들의 차별화가 눈에 띄지 않아 결국 이 대표 대세론만 인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는 노동, 경제, 민생 등에 관해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락가락 행보’ ‘우클릭 좌회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야당 대표’를 벗어나 ‘집권여당’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과정이라는 게 야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서 민주당은 당 대표를 공동의장으로 한 민생연석회의를 출범시키고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민생연석회의는 “국민과 함께 민생에서 미래를 찾겠습니다”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중소상공인·자영업위원회 ▲노동사회위원회 ▲금융·주거위원회 등 3개 분과위원회가 선정한 20개 민생의제와 60개의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이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정치를 하려면)왼쪽도 보다가 오른쪽도 봐야 한다. 시각이 한쪽에 쏠려 흑백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검은색 아니면 흰색(과 같은 식의) 바보 같은 생각이 어디 있나. 회색도 있고 빨강·노랑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라는 것은 편 나눠서 싸우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조기 대선 시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공약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안 생기면 좋겠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 논의해야 할 의제”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대표의 질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야 잠룡 모두 고심이 깊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으로 인해 보수 결집을 이뤄냈지만 중도층을 잃는 딜레마에 빠졌다. 야권 잠룡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총구를 밖으로 꺼냈지만 한편으로는 이 대표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 로드맵은커녕 개헌을 주장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차별점이 없는 것 역시 여야 잠룡들의 고민 중 하나다. 이대로 어대명?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 대표 경쟁 주자들은 계엄 해제가 아닌 개헌, 또는 윤석열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제기하는 등 조기 대선 주자 선택의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결국 차기 대선의 프레임을 계엄 해제와 내란 저지 구도로 유지해야 이 대표의 완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시 꺼낸 기본사회 카드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핵심 정책인 기본사회를 논의하는 기본사회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했다. 지난 12일 출범한 위원회 위원장은 이 대표가, 수석 부위원장은 박주민 의원이 맡았다. 이날 이 대표는 축사를 통해 “공정한 기회와 결과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회복과 성장을 바탕으로 국민 기본권을 든든히 해서 보장한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위원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정책을 구체화하고 입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민주당은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등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경제기본위원회도 함께 출범했다. 민주당은 대선 공약과는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가시권에 접어든 조기 대선을 대비한 로드맵과 연결 짓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