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시민덕희’ 실제 주인공 김성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13 10:42:32
  • 호수 1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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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턴 세탁소 아줌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오죽했으면 영화로 나왔을까? 지난달 24일 개봉한 보이스피싱 범죄 추적극 <시민덕희>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덩달아 실화의 주인공 김성자씨도 재조명받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수사당국의 주요 검거 대상 중 하나다. 지난해 금융보안원은 보이스피싱 사기 정보를 총 1만4158건 탐지했다고 밝혔다.

<시민덕희>는 평범한 중년 여성 ‘덕희’(라미란)가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임자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2016년 김성자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던 김씨가 직접 범죄조직을 잡는 데 나서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김씨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그의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김씨의 4살배기 막내아들이 한 건물 주차장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 그는 떨어진 장난감을 주우려고 몸을 내민 아들이 추락하려던 순간 몸을 던졌다.

평범한 엄마
평생 모은 돈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아들은 무사했지만, 이 사고로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3년간 병원을 다녔다”며 “당시 안전망을 임의로 치워둔 건물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건물주와 법적 공방을 벌이던 2016년 1월 ‘압류 비용을 내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법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었다. 김씨는 “소송 중 압류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단 말을 들었을 때였다”며 “마침 보이스피싱범도 법원이니 검찰이니 얘기를 해서, 말로만 듣던 압류 비용을 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들이 보내온 가상계좌에 아들 명의로 돈을 이틀에 나눠 이체했다”고 증언했다.


이튿날 김씨는 또 한 번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본인 명의로 돈을 다시 입금하면 일전의 돈을 바로 돌려주고, 대출도 받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인들에게 급히 돈을 빌려 그날 바로 이체했다. 물론, 끝내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씨는 수면제와 술로 나날을 보냈다. 세 아이를 키우던 김씨는 밤낮없이 미싱을 돌리면 번 돈을 날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술과 수면제를 잔뜩 먹고 기억이 끊어졌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천장에 줄이 매달려 있었다. 김씨를 지켜보던 아들은 “엄마, 죽지 마”하며 울고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나 때문에 엄마가 죽는 거 아니냐며 ‘죽지 마, 잘못했어’ 하고 엉엉 울었다”며 “그날부로 수면제를 전부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고 토로했다. 정신을 차린 김씨는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돌아온 경찰의 대답은 허무했다.

경찰은 “아줌마, 중국서 걸려온 전화라 (범인은)못 잡아요”라며 무시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을 수 있었던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16년 김씨는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조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조직원은 “범죄조직서 벗어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김씨에게 요청해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김성자씨가 돈도 제일 빨리 보내고, 제일 끈질겨서 당신을 택했다”고 말했다.

박스오피스 1위···깜짝 흥행몰이
전화로 전 재산 잃은 여성 실화

당시 김씨는 “너네한테 더 뜯길 돈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조직원은 다시 전화해 “아줌마, 이번엔 진짜다. 총책이 설을 쇠러 중국서 한국으로 잠깐 들어가니 꼭 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범죄조직서 탈출하고 싶었던 조직원은 총책의 최근 사진, 중국 산둥성의 사무실 주소, 보이스피싱 피해자 개인 정보 등을 넘겼다.


정보를 입수한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화성동부경찰서(현재 오산경찰서)는 “아줌마, 또 돈 보냈어요? 그거 다 뻥이야”라며 제보를 무시했다고 한다. 화가 난 김씨는 경찰 대신 조직원을 설득했다. 김씨는 총책의 이름과 얼굴이 찍힌 사진, 주소 등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는 보이스피싱 총책이 중국인 지인에게 부탁해 2016년 2월8일 10시25분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러자 경찰도 “이제부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중국에 거주하던 총책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거주지를 찾아가 이틀간 잠복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2월8일이 지나도 총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로부터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가 제공한 단서로 경찰은 닷새 만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했다. 총책을 잡은 뒤에도 돈을 되찾기 위해 면회도 여러 번 갔다. 김씨는 “내 돈 내놓으라고 닦달했더니 씩 웃으면서 ‘당신이 멍청해서 당한 거지. 어차피 경제사범은 몇 년 살지도 않아’ 그 말 듣고 집에 오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재판마다 쫓아다니면서 판사에게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총책은 그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제안했으나 ‘총책이 하루라도 감형받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김씨는 “피해자들 중엔 1200만원을 사기당하고 목숨을 끊은 분도 있었다. 내가 그 돈을 받고 합의해주면 형량이 줄어들까 봐 차마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전화비만 
70만원

재판 이틀 전, 김씨는 판사에게 엄벌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결국 총책은 재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피해액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경찰로부터 보이스피싱 신고 포상금을 받고자 했다.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경찰은 총책을 붙잡은 이후로도 수개월째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경찰서에 확인해 보니 “깜빡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가 항의를 하고 나서야 경찰은 6개월 뒤 통장하고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선심 쓰듯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김씨에게 “우리 경찰서는 돈이 없어서 원래 이것보다 덜 주는데, 특별히 더 주는 것”이라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화가 난 김씨는 100만원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대 1억원의 신고보상금은 물론, 사기를 당한 3200만원도 받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100만원을 받지 않고 화성동부서에 업무태만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청, 법무부에 진정서를 내봤지만 ‘예산이 없다’ ’내부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거부당했다.

영화는 주인공 덕희가 총책을 잡으며 통쾌하게 끝났지만, 실제 김씨의 삶은 회복되지 못했다. 김씨는 언론 매체와 인터뷰서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후로 눈만 뜨면 경찰서로 출근했다”며 “한참 앉아 있으면 경찰이 ‘아줌마, 애들 밥 주러 안 가?’냐고 물었다. 아직도 경찰차만 지나가면 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김씨에게 제시한 포상금은 고작 100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조직원과 소통하면서 전화비만 70만원을 썼다. ‘한국 오면 소주 한 잔 사겠다’며 조직원을 달래며 검거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받아냈던 그였다.


끈질긴
추적기

김씨는 여전히 피해액과 포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경찰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민원을 넣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고 답했다.

대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피해 사실이 알려진 후 ‘멍청해서 당한 거야’라는 비난이 정말 싫었다”며 “보이스피싱에 넘어간 건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부디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김씨의 말대로 보이스피싱은 멍청해서 당하는 범죄가 아니다.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는 그만큼 범죄 수법의 고도화를 나타내는 반증이다.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1조7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황운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23만7859건, 피해 금액은 1조7499억원, 피해자는 14만8760명으로 집계됐다.

보이스피싱 유형별 피해 현황을 살펴보면 대출을 빙자한 피해 건수가 13만2699건, 피해 금액 1조24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관 사칭 2만51건, 4090억원 ▲지인 사칭 8만5115건, 3169억원 등이다. 특히 메신저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8만5115건으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의 35.7%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도 포기한 총책 잡아
포상금은 고작 100만원뿐

메신저 종류별로는 ▲카카오톡 2만3680건, 755억원 ▲네이트온 713건, 53억원 ▲페이스북 474건, 6억5000만원 ▲지인 사칭 4만4241건, 3169억원 등이다. 다만, 인터넷은행을 포함한 시중 은행에 접수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보이스피싱 피해 환급금은 2018년 709억원서 2022년 256억원으로 63.8% 감소했다.

통상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신청이 있을 경우, 채권소멸 절차 등을 거쳐 지급정지된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환급해준다. 다만, 피해자가 사기를 인지하고 구제신청을 통해 계좌가 지급정지되기 전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현금을 인출하거나 타 계좌로 이체한다.

이에 따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피해 구제신청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오고 있다.

국감서 황 의원은 “은행서 적극적으로 이상거래를 발견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범죄에 이용되는 플랫폼 회사도 적극 관련 범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민덕희>를 본 김씨는 코미디 영화인데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봤을 땐 라미란 배우가 시원하게 욕을 해서 “속이 뻥 뚫렸다”고 했다. 그는 “영화화가 결정되고부터 주변서 라미란 배우가 하면 딱 맞겠다고 했다”며 “털털하고 욕 잘하는 것까지 저랑 똑같다. 같이 본 딸도 엄마 보는 줄 알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가 뽑은 명대사는 총책과 맞닥뜨린 덕희가 던진 한마디였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니네 눈엔 피눈물 나는 거야.’ 나도 총책한테 그 말을 똑같이 했다. 내가 멍청해서 당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서, 무너졌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워줘서 감사할 뿐”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절망적인 순간에 놓인 순간, 영화화 제안이 왔다. 김씨는 “(제작진이)계속 싸우면 더 아프지 않나. 영화로 잘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에 마음이 녹아 허락했다”고 말했다.

실적은
경찰이

앞서 김씨는 자신이 당한 일과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2016년 7월 한 언론에 출연한 이후 페이스북에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냈다. 곧 영화계의 관심도 이어졌다. 제작진 측은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이 흘러 영화 <시민덕희>가 만들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93만424명의 누적관객을 기록 중이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예인도 당하는 보이스피싱, 홍석천도 당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겪은 실제 연예인들의 경험담이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홍석천은 <홍석천의 보석함>에 게스트로 출연한 공명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이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음을 밝혔다.

그는 공명이 <시민덕희>서 보이스피싱 조직원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 XX 봐라. 나 5년 전에 보이스피싱 당했잖아. 580만원 뜯겼다”고 분노했다.

그는 앞서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서도 피해 사실을 언급했던 바 있다.

홍석천은 “방콕서 촬영 중이었는데, 친한 형한테 문자가 왔다. 돈이 필요하다해서 일주일 후에 갚는다고 했고, 580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불러서 계좌로 쐈다”며 “촬영 후 돌아와서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전화가 와서 물어봤더니 자기가 뭘 빌렸냐고 하더라. 아는 사람 이름을 털어서 피싱을 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행히 신고로 범인을 잡았지만,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앞서 방송인 박슬기도 방송에 출연해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1200만원을 잃었다며 “사기를 당한 후 일주일 동안 벽에 머리를 계속 박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내 통장이 불법 도박 자금에 연루됐다더라. 박정식이라는 사람이 도박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가해자로 몰았다고 했다”며 “그 사람들 말을 따라서 은행에 가서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슬기는 “경찰에 신고하고 조서를 썼지만, 이미 1200만원이 빠져나간 상황이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유명 연예인마저도 그 보이스피싱 표적이 되고, 나날이 진화하는 교묘한 수법에 넘어가 거액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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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