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시민덕희’ 실제 주인공 김성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13 10:42:32
  • 호수 1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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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턴 세탁소 아줌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오죽했으면 영화로 나왔을까? 지난달 24일 개봉한 보이스피싱 범죄 추적극 <시민덕희>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덩달아 실화의 주인공 김성자씨도 재조명받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수사당국의 주요 검거 대상 중 하나다. 지난해 금융보안원은 보이스피싱 사기 정보를 총 1만4158건 탐지했다고 밝혔다.

<시민덕희>는 평범한 중년 여성 ‘덕희’(라미란)가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임자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2016년 김성자씨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던 김씨가 직접 범죄조직을 잡는 데 나서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김씨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그의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김씨의 4살배기 막내아들이 한 건물 주차장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 그는 떨어진 장난감을 주우려고 몸을 내민 아들이 추락하려던 순간 몸을 던졌다.

평범한 엄마
평생 모은 돈

그는 매체와 인터뷰서 “아들은 무사했지만, 이 사고로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3년간 병원을 다녔다”며 “당시 안전망을 임의로 치워둔 건물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건물주와 법적 공방을 벌이던 2016년 1월 ‘압류 비용을 내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법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었다. 김씨는 “소송 중 압류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단 말을 들었을 때였다”며 “마침 보이스피싱범도 법원이니 검찰이니 얘기를 해서, 말로만 듣던 압류 비용을 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들이 보내온 가상계좌에 아들 명의로 돈을 이틀에 나눠 이체했다”고 증언했다.


이튿날 김씨는 또 한 번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본인 명의로 돈을 다시 입금하면 일전의 돈을 바로 돌려주고, 대출도 받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인들에게 급히 돈을 빌려 그날 바로 이체했다. 물론, 끝내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씨는 수면제와 술로 나날을 보냈다. 세 아이를 키우던 김씨는 밤낮없이 미싱을 돌리면 번 돈을 날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술과 수면제를 잔뜩 먹고 기억이 끊어졌던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천장에 줄이 매달려 있었다. 김씨를 지켜보던 아들은 “엄마, 죽지 마”하며 울고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나 때문에 엄마가 죽는 거 아니냐며 ‘죽지 마, 잘못했어’ 하고 엉엉 울었다”며 “그날부로 수면제를 전부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고 토로했다. 정신을 차린 김씨는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돌아온 경찰의 대답은 허무했다.

경찰은 “아줌마, 중국서 걸려온 전화라 (범인은)못 잡아요”라며 무시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을 수 있었던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16년 김씨는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조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조직원은 “범죄조직서 벗어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김씨에게 요청해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김성자씨가 돈도 제일 빨리 보내고, 제일 끈질겨서 당신을 택했다”고 말했다.

박스오피스 1위···깜짝 흥행몰이
전화로 전 재산 잃은 여성 실화

당시 김씨는 “너네한테 더 뜯길 돈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조직원은 다시 전화해 “아줌마, 이번엔 진짜다. 총책이 설을 쇠러 중국서 한국으로 잠깐 들어가니 꼭 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범죄조직서 탈출하고 싶었던 조직원은 총책의 최근 사진, 중국 산둥성의 사무실 주소, 보이스피싱 피해자 개인 정보 등을 넘겼다.


정보를 입수한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화성동부경찰서(현재 오산경찰서)는 “아줌마, 또 돈 보냈어요? 그거 다 뻥이야”라며 제보를 무시했다고 한다. 화가 난 김씨는 경찰 대신 조직원을 설득했다. 김씨는 총책의 이름과 얼굴이 찍힌 사진, 주소 등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는 보이스피싱 총책이 중국인 지인에게 부탁해 2016년 2월8일 10시25분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러자 경찰도 “이제부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중국에 거주하던 총책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거주지를 찾아가 이틀간 잠복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2월8일이 지나도 총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로부터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가 제공한 단서로 경찰은 닷새 만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했다. 총책을 잡은 뒤에도 돈을 되찾기 위해 면회도 여러 번 갔다. 김씨는 “내 돈 내놓으라고 닦달했더니 씩 웃으면서 ‘당신이 멍청해서 당한 거지. 어차피 경제사범은 몇 년 살지도 않아’ 그 말 듣고 집에 오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재판마다 쫓아다니면서 판사에게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총책은 그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제안했으나 ‘총책이 하루라도 감형받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김씨는 “피해자들 중엔 1200만원을 사기당하고 목숨을 끊은 분도 있었다. 내가 그 돈을 받고 합의해주면 형량이 줄어들까 봐 차마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전화비만 
70만원

재판 이틀 전, 김씨는 판사에게 엄벌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결국 총책은 재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피해액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경찰로부터 보이스피싱 신고 포상금을 받고자 했다.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경찰은 총책을 붙잡은 이후로도 수개월째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경찰서에 확인해 보니 “깜빡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가 항의를 하고 나서야 경찰은 6개월 뒤 통장하고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선심 쓰듯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김씨에게 “우리 경찰서는 돈이 없어서 원래 이것보다 덜 주는데, 특별히 더 주는 것”이라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화가 난 김씨는 100만원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대 1억원의 신고보상금은 물론, 사기를 당한 3200만원도 받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100만원을 받지 않고 화성동부서에 업무태만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청, 법무부에 진정서를 내봤지만 ‘예산이 없다’ ’내부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거부당했다.

영화는 주인공 덕희가 총책을 잡으며 통쾌하게 끝났지만, 실제 김씨의 삶은 회복되지 못했다. 김씨는 언론 매체와 인터뷰서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후로 눈만 뜨면 경찰서로 출근했다”며 “한참 앉아 있으면 경찰이 ‘아줌마, 애들 밥 주러 안 가?’냐고 물었다. 아직도 경찰차만 지나가면 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김씨에게 제시한 포상금은 고작 100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조직원과 소통하면서 전화비만 70만원을 썼다. ‘한국 오면 소주 한 잔 사겠다’며 조직원을 달래며 검거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받아냈던 그였다.


끈질긴
추적기

김씨는 여전히 피해액과 포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경찰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민원을 넣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고 답했다.

대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피해 사실이 알려진 후 ‘멍청해서 당한 거야’라는 비난이 정말 싫었다”며 “보이스피싱에 넘어간 건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부디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김씨의 말대로 보이스피싱은 멍청해서 당하는 범죄가 아니다.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는 그만큼 범죄 수법의 고도화를 나타내는 반증이다.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1조7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황운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23만7859건, 피해 금액은 1조7499억원, 피해자는 14만8760명으로 집계됐다.

보이스피싱 유형별 피해 현황을 살펴보면 대출을 빙자한 피해 건수가 13만2699건, 피해 금액 1조24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관 사칭 2만51건, 4090억원 ▲지인 사칭 8만5115건, 3169억원 등이다. 특히 메신저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8만5115건으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의 35.7%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도 포기한 총책 잡아
포상금은 고작 100만원뿐

메신저 종류별로는 ▲카카오톡 2만3680건, 755억원 ▲네이트온 713건, 53억원 ▲페이스북 474건, 6억5000만원 ▲지인 사칭 4만4241건, 3169억원 등이다. 다만, 인터넷은행을 포함한 시중 은행에 접수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보이스피싱 피해 환급금은 2018년 709억원서 2022년 256억원으로 63.8% 감소했다.

통상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구제신청이 있을 경우, 채권소멸 절차 등을 거쳐 지급정지된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환급해준다. 다만, 피해자가 사기를 인지하고 구제신청을 통해 계좌가 지급정지되기 전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현금을 인출하거나 타 계좌로 이체한다.

이에 따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피해 구제신청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오고 있다.

국감서 황 의원은 “은행서 적극적으로 이상거래를 발견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범죄에 이용되는 플랫폼 회사도 적극 관련 범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민덕희>를 본 김씨는 코미디 영화인데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봤을 땐 라미란 배우가 시원하게 욕을 해서 “속이 뻥 뚫렸다”고 했다. 그는 “영화화가 결정되고부터 주변서 라미란 배우가 하면 딱 맞겠다고 했다”며 “털털하고 욕 잘하는 것까지 저랑 똑같다. 같이 본 딸도 엄마 보는 줄 알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가 뽑은 명대사는 총책과 맞닥뜨린 덕희가 던진 한마디였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니네 눈엔 피눈물 나는 거야.’ 나도 총책한테 그 말을 똑같이 했다. 내가 멍청해서 당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서, 무너졌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워줘서 감사할 뿐”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절망적인 순간에 놓인 순간, 영화화 제안이 왔다. 김씨는 “(제작진이)계속 싸우면 더 아프지 않나. 영화로 잘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에 마음이 녹아 허락했다”고 말했다.

실적은
경찰이

앞서 김씨는 자신이 당한 일과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2016년 7월 한 언론에 출연한 이후 페이스북에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냈다. 곧 영화계의 관심도 이어졌다. 제작진 측은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이 흘러 영화 <시민덕희>가 만들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93만424명의 누적관객을 기록 중이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예인도 당하는 보이스피싱, 홍석천도 당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겪은 실제 연예인들의 경험담이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홍석천은 <홍석천의 보석함>에 게스트로 출연한 공명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이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음을 밝혔다.

그는 공명이 <시민덕희>서 보이스피싱 조직원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 XX 봐라. 나 5년 전에 보이스피싱 당했잖아. 580만원 뜯겼다”고 분노했다.

그는 앞서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서도 피해 사실을 언급했던 바 있다.

홍석천은 “방콕서 촬영 중이었는데, 친한 형한테 문자가 왔다. 돈이 필요하다해서 일주일 후에 갚는다고 했고, 580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불러서 계좌로 쐈다”며 “촬영 후 돌아와서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전화가 와서 물어봤더니 자기가 뭘 빌렸냐고 하더라. 아는 사람 이름을 털어서 피싱을 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다행히 신고로 범인을 잡았지만,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앞서 방송인 박슬기도 방송에 출연해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1200만원을 잃었다며 “사기를 당한 후 일주일 동안 벽에 머리를 계속 박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내 통장이 불법 도박 자금에 연루됐다더라. 박정식이라는 사람이 도박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가해자로 몰았다고 했다”며 “그 사람들 말을 따라서 은행에 가서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슬기는 “경찰에 신고하고 조서를 썼지만, 이미 1200만원이 빠져나간 상황이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처럼 유명 연예인마저도 그 보이스피싱 표적이 되고, 나날이 진화하는 교묘한 수법에 넘어가 거액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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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