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남은 재판 막전막후

벌써 12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대두된 지 12년이 지났다. 정부도 가해 기업도 피해구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제야 법원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참고해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 구제 범위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3단계 피해자에 관한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보고서가 사실상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차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모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서 “원고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997년 출시
2011년 중단

김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와 한빛화학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New) 가습기당번’을 사용하고 2013년 5월 분당서울대병원서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질환을 확진받았다.

질병관리청(당시 질병관리본부)은 당시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신고 및 조사 요청을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습기살균제와의 관련성이 드러났다. 질병관리청은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질병관리청은 2013년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영향 가능성을 4단계로 나눠 판정했다. 판정 결과는 ‘가능성 거의 확실함(1단계)’ ‘가능성 높음(2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3단계)’ ‘판단 불가능(4단계)’였다. 

질병관리청은 2014년 3월 김씨에 관해 “거주환경에 대한 환경노출평가와 김씨가 제출한 임상자료 판독에 따르면 김씨의 질병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3단계로 판정했다. 당시 3단계 피해자는 1, 2단계와 달리 정부 지원금 지급 대상서 제외됐다.  

김씨는 2015년 법원에 3000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1심서 패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의 도움을 받아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2019년 “옥시와 한빛화학이 김씨의 질병이 가습기살균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제품상 표시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옥시는 3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에 관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병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부정하고 상고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피해자의 증명 책임을 완화한 2심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의 3단계 판정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소송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구체적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옥시 500만원 배상 판결
제조사 책임 최초 인정

한국 기업의 발명품이었던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최초 출시된 이후 2011년 판매 중단되기 전까지 연간 60만개가 팔렸다. 시장 규모는 20억원에 달했다. 

가습기살균제에는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탈렌구아니딘(PHMG)와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CMIT·MIT) 성분이 포함됐다. 염화벤잘코늄(BKC), 에틸알코올, 이염화이소시아뉴산나트륨(NaDCC),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의 제품도 있었다.

이 중 화학물질 원료의 흡입독성을 확인하고 제품의 위해성 평가를 한 뒤 출시된 제품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은 제품에 원료와 성분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았으며 일부 제품에는 ‘인체에 무해’ 같은 문구를 표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화학물질과 공산품의 안전관리 체계에 있던 혼선과 허점을 인지하고도 개선하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 속에서 참사의 피해자들은 소외됐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업이 소비자에게 배상해야 하는 문제로 봤고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법적 책임 추궁 없이 자발적 책임을 끌어내지 못한 셈이다.

참사 초기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보건법상 환경성질환’으로 인정됐지만 피해자에 관한 지원은 축소되고 기업의 부담은 경감됐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기업들은 배·보상을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영향력이 높다고 판단된 1, 2단계 피해자들에 관한 기업의 배·보상은 이뤄졌지만 3, 4단계의 피해자에 관한 피해구제는 지지부진했다.

대법 첫 판단
국가 책임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176명이며 3, 4단계로 판정받아 큰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2020년 4월 기준 5083명에 달한다.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 소속인 이정일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 관해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가해 기업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번 대법 논리를 다른 피해자에도 적용하면 구제 범위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재판서 기업들의 유무죄는 성분에 따라 갈렸다. 가습기살균제에 PHMG를 담은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가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에 담긴 PHMG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제조사가 안전성 검토를 미흡하게 했거나 위험성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은 ‘주의의무 위반’ 또한 재판서 받아들여졌다.

일부 피고인들은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사용해 판매한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도 인정됐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징역 6년), 김원회 전 홈플러스 본부장(징역 4년), 노병용 전 롯데마트 본부장(금고 3년) 등은 2018년 1월 대법원서 형이 확정됐다.

반면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제작사인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전직 임원들은 1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흡입 독성물질과 이용자들의 건강상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업들이 안전성 검토를 충분히 했는지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했는지 등도 판단하지 않았다.

흡입 독성물질과 건강 피해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혐의 적용의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서 기업들의 주의의무 위반까지 따져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성분 따라
처벌 달라

법원의 판단에 학계 전문가들은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재판부가 지엽적인 연구 결과만 보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전형배 강원대 로스쿨 교수,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등 7명은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시한 주요 논거 3가지를 반증하는 논문을 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논문을 참고해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모 이마트 상품본부장에게 원심 구형과 마찬가지로 각각 금고 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모 SK케미칼 팀장 등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금고 3~5년 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수십건의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기준 옥시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340명이며 소송 건수로는 105건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각각 249명, 565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마트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인원도 305명에 달한다. 다만 핵심 관계자에 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 현재 소송이 일시 정지된 기일 추정 상태다.

이정일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소송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옥시 제품을 썼든 애경 제품을 썼든 제조사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는 흡연이든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옥시뿐만 아니라 다수의 가습기 피해자가 발생한 애경, SK케미칼 등에도 역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단계 피해자에 위자료
피해자 90% 3·4 단계

국가의 책임 여부도 여전히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세퓨’라는 업체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1~2세의 자녀들이 숨지거나 가족이 위중한 폐질환을 얻게 된 이들은 2014년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세퓨 가습기살균제 성분 PGH의 유해성 심사 과정서 환경부가 흡입독성 자료는 요구하지 않아 이 성분을 유해 물질로 지정하지 않은 점, 보존제로 허가를 받은 뒤 다른 용도로 판매됐음에도 규제가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국가가 손해배상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유해 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것에 관해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 유해성을 확인해야 할 의무나 이를 확인할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은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환경부는 당시 법령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사참위가 내놓은 바 있다”면서 “지난 9일 열린 변론서 재판부가 사참위 보고서를 인용하며 ‘환경부가 충분히 반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측에서도 공제 주장 금액을 특정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공제 금액 특정 역시 인용을 전제로 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세퓨 국가배상소송은 오는 12월21일 최종변론을 마치고 내년에 선고될 예정이다. 세퓨 외에 다른 업체의 피해자들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지만,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책임회피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참위가 권고한 내용 26건 중 9건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모킹건 된
사참위 보고서

구체적으로 대통령실은 참사 관련 공식 사과 권고안에 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8일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한 것을 언급하면서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개선을 권고한 내용에 관해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기업실사의무화법 제정 권고에 대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권고안 수용을 거부했다.

이밖에 중대시민재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기 위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에 관해서는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도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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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