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남은 재판 막전막후

벌써 12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대두된 지 12년이 지났다. 정부도 가해 기업도 피해구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제야 법원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참고해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 구제 범위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3단계 피해자에 관한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보고서가 사실상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차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모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서 “원고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997년 출시
2011년 중단

김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와 한빛화학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New) 가습기당번’을 사용하고 2013년 5월 분당서울대병원서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질환을 확진받았다.

질병관리청(당시 질병관리본부)은 당시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신고 및 조사 요청을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습기살균제와의 관련성이 드러났다. 질병관리청은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질병관리청은 2013년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영향 가능성을 4단계로 나눠 판정했다. 판정 결과는 ‘가능성 거의 확실함(1단계)’ ‘가능성 높음(2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3단계)’ ‘판단 불가능(4단계)’였다. 

질병관리청은 2014년 3월 김씨에 관해 “거주환경에 대한 환경노출평가와 김씨가 제출한 임상자료 판독에 따르면 김씨의 질병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3단계로 판정했다. 당시 3단계 피해자는 1, 2단계와 달리 정부 지원금 지급 대상서 제외됐다.  

김씨는 2015년 법원에 3000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1심서 패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의 도움을 받아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2019년 “옥시와 한빛화학이 김씨의 질병이 가습기살균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제품상 표시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옥시는 3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에 관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병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부정하고 상고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피해자의 증명 책임을 완화한 2심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의 3단계 판정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소송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구체적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옥시 500만원 배상 판결
제조사 책임 최초 인정

한국 기업의 발명품이었던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최초 출시된 이후 2011년 판매 중단되기 전까지 연간 60만개가 팔렸다. 시장 규모는 20억원에 달했다. 

가습기살균제에는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탈렌구아니딘(PHMG)와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CMIT·MIT) 성분이 포함됐다. 염화벤잘코늄(BKC), 에틸알코올, 이염화이소시아뉴산나트륨(NaDCC),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의 제품도 있었다.

이 중 화학물질 원료의 흡입독성을 확인하고 제품의 위해성 평가를 한 뒤 출시된 제품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은 제품에 원료와 성분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았으며 일부 제품에는 ‘인체에 무해’ 같은 문구를 표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화학물질과 공산품의 안전관리 체계에 있던 혼선과 허점을 인지하고도 개선하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 속에서 참사의 피해자들은 소외됐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업이 소비자에게 배상해야 하는 문제로 봤고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법적 책임 추궁 없이 자발적 책임을 끌어내지 못한 셈이다.

참사 초기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보건법상 환경성질환’으로 인정됐지만 피해자에 관한 지원은 축소되고 기업의 부담은 경감됐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기업들은 배·보상을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영향력이 높다고 판단된 1, 2단계 피해자들에 관한 기업의 배·보상은 이뤄졌지만 3, 4단계의 피해자에 관한 피해구제는 지지부진했다.

대법 첫 판단
국가 책임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176명이며 3, 4단계로 판정받아 큰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2020년 4월 기준 5083명에 달한다.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 소속인 이정일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 관해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가해 기업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번 대법 논리를 다른 피해자에도 적용하면 구제 범위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재판서 기업들의 유무죄는 성분에 따라 갈렸다. 가습기살균제에 PHMG를 담은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가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에 담긴 PHMG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제조사가 안전성 검토를 미흡하게 했거나 위험성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은 ‘주의의무 위반’ 또한 재판서 받아들여졌다.

일부 피고인들은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사용해 판매한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도 인정됐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징역 6년), 김원회 전 홈플러스 본부장(징역 4년), 노병용 전 롯데마트 본부장(금고 3년) 등은 2018년 1월 대법원서 형이 확정됐다.

반면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제작사인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전직 임원들은 1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흡입 독성물질과 이용자들의 건강상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업들이 안전성 검토를 충분히 했는지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했는지 등도 판단하지 않았다.

흡입 독성물질과 건강 피해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혐의 적용의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서 기업들의 주의의무 위반까지 따져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성분 따라
처벌 달라

법원의 판단에 학계 전문가들은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재판부가 지엽적인 연구 결과만 보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전형배 강원대 로스쿨 교수,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등 7명은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시한 주요 논거 3가지를 반증하는 논문을 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논문을 참고해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모 이마트 상품본부장에게 원심 구형과 마찬가지로 각각 금고 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모 SK케미칼 팀장 등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금고 3~5년 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수십건의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기준 옥시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340명이며 소송 건수로는 105건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각각 249명, 565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마트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인원도 305명에 달한다. 다만 핵심 관계자에 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 현재 소송이 일시 정지된 기일 추정 상태다.

이정일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소송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옥시 제품을 썼든 애경 제품을 썼든 제조사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는 흡연이든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옥시뿐만 아니라 다수의 가습기 피해자가 발생한 애경, SK케미칼 등에도 역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단계 피해자에 위자료
피해자 90% 3·4 단계

국가의 책임 여부도 여전히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세퓨’라는 업체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1~2세의 자녀들이 숨지거나 가족이 위중한 폐질환을 얻게 된 이들은 2014년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세퓨 가습기살균제 성분 PGH의 유해성 심사 과정서 환경부가 흡입독성 자료는 요구하지 않아 이 성분을 유해 물질로 지정하지 않은 점, 보존제로 허가를 받은 뒤 다른 용도로 판매됐음에도 규제가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국가가 손해배상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유해 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것에 관해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 유해성을 확인해야 할 의무나 이를 확인할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은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환경부는 당시 법령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사참위가 내놓은 바 있다”면서 “지난 9일 열린 변론서 재판부가 사참위 보고서를 인용하며 ‘환경부가 충분히 반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측에서도 공제 주장 금액을 특정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공제 금액 특정 역시 인용을 전제로 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세퓨 국가배상소송은 오는 12월21일 최종변론을 마치고 내년에 선고될 예정이다. 세퓨 외에 다른 업체의 피해자들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지만,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책임회피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참위가 권고한 내용 26건 중 9건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모킹건 된
사참위 보고서

구체적으로 대통령실은 참사 관련 공식 사과 권고안에 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8일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한 것을 언급하면서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개선을 권고한 내용에 관해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기업실사의무화법 제정 권고에 대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권고안 수용을 거부했다.

이밖에 중대시민재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기 위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에 관해서는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도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