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택 ③인천시민애집

인천 근현대사 중심지 시민의 공간이 되다!

1883년 1월1일, 개항 직후 인천항 주변에는 외국인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일본과 청나라 사람은 물론,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양인도 인천항 인근에 조계지를 형성했다. 이들은 인천구조계조약(일본), 인천구화상지계장정(청나라),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그 외 나라) 등을 체결해 경계를 나누고 개발에 나섰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돼 외국인이 서울로 빠져나가기 전만 해도 이곳은 세계 각지서 온 이들로 북적거렸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천항 주변인 인천개항장문화지구와 차이나타운에 일본과 청나라 조계지 모습이 남아 있다. 조계지 구역은 그 흔적이 적지만, 서양인이 사교 모임을 하던 구 제물포구락부(인천유형문화재) 건물이 건재하다. 그 앞에 자리한 인천시민애(愛)집도 조계지의 역사를 품고 있다. 자유공원 정상부에 있던 독일계 상사 세창양행 부지를 일본인 사업가가 매입해 저택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조계지의 역사

인천시민애집 내력은 부침이 잦은 우리 근대사를 빼닮았다. 세창양행이 부지를 일본인에게 매각한 뒤, 광복 때까지 일본식 가옥이 있었다. 지금의 한옥은 인천시가 저택을 매입해 1966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인천시는 이 건물을 2001년까지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바로 앞에 있는 중구청 청사가 인천시 청사였던 시절이다. 인천시청이 이전하며 시장이 떠난 관사는 인천역사자료관으로 꾸몄다가, 2021년 7월에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에게 개방했다. 이때부터 인천시민애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천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관사동이던 한옥을 ‘1883모던하우스’, 앞마당과 정원을 아울러 ‘제물포정원’, 경비동 건물을 ‘역사전망대’로 재구성했다. 달라진 부분은 많지 않다. 일본식 가옥이었을 때나 시장 관사였을 때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역대 인천시장이 거주한 1883모던하우스는 일본식 저택을 철거한 자리에 근대식 한옥을 올려 완성했다. 건물의 기초가 되는 기단은 남기고 외관을 변형한 ‘ㄷ 자형’ 한옥이다. 양쪽 날개는 각각 사랑채와 안채, 가운데 튀어나온 부분이 대청마루 역할을 했다.

나무 창틀에 커다란 유리창을 달아 실내에서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시장 관사 시절에 사랑채는 집무실이었으며, 대청마루에서는 종종 행사나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내부는 전통적인 가옥 형태에 1960~ 1990년대 가정집이 절묘하게 섞인 모습이다. 사랑채 천장에는 서까래가 보이지만, 다른 방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건물을 확장하며 당시 유행에 따라 조명과 천장 마감재를 바꾼 것이다. 수십년이 흐르며 시대에 맞게 여러 차례 보수한 흔적이기도 하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랑채, 오른쪽으로 대청마루와 디지털갤러리, 랜디스다원 등이 이어진다. 사랑채쉼터는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에 적당하다. 창가에 의자와 쿠션 등을 비치했으며, 반대쪽 서가에는 책이 가득하다.

우리 근대사를 닮은 곳
다양한 전시 프로 있는 역사전망대도

지역 서점이 선정한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가 대부분이다. 공연과 전시, 소모임 등도 한다. 지난 8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별잡〉을 이곳서 촬영했다.

복도인 역사회랑에서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인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인천을 거쳐 간 여러 인물, 특히 선교사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부엌은 디지털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인천의 주요 관광자원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공과 사, 그 경계의 공간’에는 인천시민애집이 담긴 엽서, 1883모던하우스 밑그림에 나만의 감성으로 색을 채우는 컬러링 프로그램이 준비돼있다.

1883모던하우스의 가장 깊숙한 곳은 랜디스다원이다. 시장 관사 시절 안채로 쓰여서인지 사방이 탁 트인 쉼터와 달리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일행과 담소할 수 있도록 좌식 테이블과 방석 등을 갖췄다. 이곳서 향긋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멤버십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엘리 랜디스(Eli B. Landis)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지은 공간 이름이다.

제물포정원은 1883모던하우스를 감싸고 있다. 부지 용도가 여러 차례 바뀌었어도 정원에는 일본식 저택 모습이 남았다. 경사도를 고려해 수직적으로 설계했으며, 큼지막한 바위로 계단과 주변을 꾸몄다. 바위를 끌어안은 나무뿌리가 정원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넓은 마당서 야외 행사도 개최한다. 마당 뒤에 굳게 닫힌 철문은 과거 방공호로 사용한 곳이다.

역사전망대는 인천항과 주변 풍경을 조망하는 건물이다.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인천항의 역사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역사전망대 내부는 1883모던하우스와 인근 제물포구락부를 보조하는 전시관 역할을 한다.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이 있으니 잠시 들러보자.

조계지의 모습이 엿보이는 주변 관광지도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러시아 출신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Afanasii Ivan -ovych Seredin-Sabatin)이 설계해 1901년에 완공했다. 인천 조계지에 거주하던 외국인이 사교 모임 장소로 사용했다. 2층 양옥에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식당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광복 후 이곳에 인천시립박물관이 들어섰다가, 2020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각종 문화·예술·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시민을 위한 방송 송출 시스템을 갖췄다.

대불호텔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인천항으로 입국한 외국인이 서울로 향하기 전에 묵은 곳으로 알려졌다. 서양인을 상대로 영업한 만큼 영어 응대가 가능했고, 양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대불호텔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2018년 과거의 모습을 토대로 재건축해 전시관을 개관했다.

대불호텔전시관에는 호텔 터에서 발견한 유구와 투숙객이 남긴 기록이 있으며, 당시 객실도 재현했다.

한국근대문학관

한국 근대사의 중심지로 꼽히는 인천에는 개항기 역사를 다루는 전시관과 박물관이 많다. 한국근대문학관도 그중 하나다. 일제강점기 물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근대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조선왕조가 몰락하는 1894년부터 광복 직후인 1948년까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흐름을 시간에 따라 구성했다. 곳곳에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전시와 포토 존, 엽서 쓰기 등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인천시민애집→제물포구락부→대불호텔전시관→한국근대문학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인천시민애집→제물포구락부→대불호텔전시관→한국근대문학관
-둘째 날 인천개항박물관→짜장면박물관→자유공원→차이나타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인천시민애집, 제물포구락부 https://jemulpoclub.org
-인천중구문화재단(대불호텔전시관) https://ijcf.or.kr
-한국근대문학관 http ://lit.ifac.or.kr

문의 전화
-인천시민애집, 제물포구락부 032)765-0261
-대불호텔전시관(중구생활사전시관) 032)766-2202
-한국근대문학관 032)773-3800

대중교통
전철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역 1번 출구서 인천시민애집까지 도보 약 11분. 수인분당선 신포역 3번 출구서 인천시민애집까지 도보 약 17분. *문의: 철도고객센터 1544-7788

자가운전
제2경인고속도로 능해 IC에서 우회전→고속종점지하차도서 숭의역 방면 지하차도→능안삼거리서 중구청 방면 좌회전→1.9㎞ 이동, KT항동지사 앞 삼거리서 홍예문로 방면 우회전→300m 이동, 신포로39번길 방면 좌회전→인천시민애집(자유공원공영주차장이나 인천중구청주차장 이용)


숙박 정보
-호텔월미여관: 중구 월미로, 032)764-0720
-유앤아이호텔: 미추홀구 미추홀대로722번길, 032)433-2500
-하버파크호텔: 중구 제물량로, 032)770-9500, www.harborparkhotel.com

식당 정보
-개성집(칼국수·만두): 중구 신포로23번길, 032)763-7070
-체나콜로 트라토리아(파스타): 중구 신포로15번길, 032)773-8155
-신승반점(유니자장면):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032)762-9467, http://ss-chinese.com

주변 볼거리
자유공원, 신포국제시장, 월미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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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양 ’이재명-조국 미묘한 관계

‘두 개의 태양 ’이재명-조국 미묘한 관계

[일요시사 정치팀] 조국혁신당이 22대 총선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컨벤션효과로 반짝 빛을 볼 것이란 해석이 무색할 정도다. 대권주자를 노리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셈법이 빨라졌다. 숨 돌릴 틈도 없이 2027년 치러질 21대 대선에 자연스레 이목이 쏠린다. 2019년 ‘조국 사태’가 터졌다. 당시 제66대 법무부 장관이던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 조국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관한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한 혐의도 받는다. 절벽 끝서 기사회생 지난해 12월 조 대표는 항소심서 최후진술을 통해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 대표는 “2018년 8월 장관 지명 이후 검찰과 언론 등으로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며 “70군데 이상이 압수수색당했고 가족과 나눈 소소한 문자 내용이 언론에 공개돼 조롱당하는 등 5년간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압도적인 검찰권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고 생지옥이었다”며 “분노와 절망 감정에 휩싸여 자제해야 함에도 항변했고 쓰린 자책의 과정에 들어갔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태로 조 대표의 온 가족이 법정으로 출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 대표의 딸 조민씨는 입시 비리 혐의에 대해 1심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검찰과 조민씨 양측 모두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조 대표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대표의 아들 조원씨는 대학원 입시 비리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직 처분 전이다. 공범으로 지목된 조 대표의 사건이 확정되지 않아 공소시효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조 대표는 자녀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항소심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 독재 조기종식’을 위해 지난 3월 조국당이 출범했지만 조 대표는 여전히 불구속 기소 상태다. 지금의 조 대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생명에 다시 날개를 다는 것이다. 과도한 수사로 인해 ‘정치적 죽임’을 당했으니 이번 총선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출범식서 “정치권과 보수 언론서 ‘조국의 강’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검찰 독재의 강’ ‘윤석열의 강’”이라며 “조국당은 오물로 뒤덮인 ‘윤석열 강’을 건너 검찰 독재를 조기에 종식하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와 다르게 조국당은 선거 전까지 지지율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했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달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느냐’는 물음에 ‘조국혁신당’을 선택한 응답자는 25%로 집계됐다. ‘복수의 날’ 손에 쥐고 돌아왔다 목표는 하나 “검찰 독재 조기종식” 이 외에 ▲국민의미래 24% ▲더불어민주연합 14% ▲개혁신당 4% ▲녹색정의당·새로운미래·자유통일당 1%로 집계됐다. ‘아직 결정하지 않음’은 24%, ‘지지하는 정당 없음’은 4%였다. 해당 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100% 무선전화 면접 방식에 응답률은 12.4%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높은 지지율을 견인해 왔지만 일각에서는 조 대표가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을 경우 지금과 같은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과연 ‘조국 없는 조국혁신당’이 주장하는 ‘정권 심판론’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에서다. 조 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는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서 ‘대법원서 실형이 확정되면 정치인 조국은 어떻게 되느냐’란 진행자의 질문에 “나는 사법부를 쥐락펴락 못한다. 국법과 절차를 지키겠다”고 답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감옥에 가야 한다. 그동안 재판받느라, 정치하느라 못 읽었던 책을 읽고 팔굽혀 펴기, 스쿼트, 플랭크를 하면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감옥서) 나오겠다”고도 했다. 이날 조 대표는 윤석열정부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조 대표는 “문제는 우리나라에 수사도 안 받고, 그래서 기소도 안되니 유죄판결도 받지 않는 특수집단이 있다는 것”이라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품백 수수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와 고발사주 의혹 등을 받는 한 비대위원장을 동시에 지적했다. 정치적 부활을 기대하는 조 대표가 자신의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는 제1야당과의 복잡함 셈법을 풀어야 한다. 민주당과의 관계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 이상 22대 국회가 야당의 ‘주도권 싸움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조국당과 민주당은 서로 협력 관계임을 강조해 왔다. 조국당은 선거 기간 내내 “3년은 너무 길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외치며 쇄빙선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선거 이후에도 서로를 우호적으로 대할지는 미지수다. 이제는 이재명·조국 모두 각자의 노선을 택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답 없는 방정식 조국당은 출범 초기부터 민주당과의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민주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역구 당선자가 많아야 우리도 잘된다”며 충돌 가능성을 축소했다. 조국당 신장식 대변인은 “(민주당과)함대를 구성하는 것은 맞지만 한 배를 타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 대변인은 “야권은 현재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 두 분이 든든하게 서로 공조하고 있다”며 “‘각자의 자리서 윤정부를 확실하게 견제하고 국정기조를 변화시키는 데 힘을 합치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 유권자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 역시 총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서울 동작구서 기자회견을 열고 같은 뜻을 밝혔다. 총선 후 민주당과의 관계를 묻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조 대표는 “창당 선언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변화 없이 조국당은 자당이 갖고 있는 정강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주당과 협력과 연대를 할 것이라는 말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며 “선거운동 과정서 괜한 말이 아니라 실제 조국당이 생각하는 정당을 실천하기 위해 22대 국회서도 민주당과 협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조국당은 독자적으로 법안을 제출할 수 있지만 이를 통과시키기는 어려운 만큼 성격이 유사한 민주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당과 합당이 아닌 협력 관계만 유지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역시 조국당은 ‘우군’이라면서도 “지역구도 비례도 모두 민주당을 찍어달라”며 견제에 나섰다. ‘몰빵론’을 강조하며 사실상 합당 가능성을 닫아둔 것이다. 조국당의 색채가 너무 강해 민주당과 섞이기 어렵다는 게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를 안은 조 대표가 부담스럽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기 하남갑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추미애 후보는 합당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추 후보는 지난 총선서 열린민주당(이하 열민당) 합당 과정을 지켜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조국당은)개혁 연대 세력으로서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개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나는 최강욱 전 대표가 이끌었던 열민당의 합당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또다시 열민당?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합당하면 그 당의 색깔과 주장을 희석해버리기 때문에 만류했다”며 “지금의 조국당도 개혁 우군으로서 연대할 수 있는 것이지, 합당하면 당내서 정무적인 판단을 내세우고 우아한 개혁이 등을 주저하는 세력에게 먹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그럼에도 합당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라 불렸던 신평 변호사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합당 가능성에 크게 힘을 실었다. 신 변호사는 “조 대표는 이번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바로 대권 행보에 들어간다”며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조 대표가 민주당에 들어가 (그곳에서)선출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보는 한 조 대표는 반드시 민주당에 들어가 이 대표와 경합해 대권후보 쪽으로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서 ‘민주당 180석’을 정확히 예측했던 엄경영 시대정연구소장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총선이 끝나면 이재명 대표가 가고 조국 대표가 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열민당 루트’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나온다. 서로를 견제하고 비판했던 민주당과 열민당이 결국 손을 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역시 선거를 치른 후 함께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열민당은 2020년 민주당의 중도지향을 비판하면서 창당한 민주당계 정당으로 선명성을 부각하는 전략을 택했다. 열민당은 민주당과 크고 작은 마찰을 겪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회의를 열고 열민당 비례대표 명단 선정과 관련해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서 공천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경선 탈락, 혹은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20명가량이 열민당 예비후보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열민당’ 데자뷔…떠오르는 기시감 “손잡을까? 말까?” 팽팽한 찬반론 쟁쟁한 기싸움이 벌어졌던 만큼 민주당은 열민당과의 합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열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에 대해 지도부는 “현재의 공천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며 말을 아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민주당은 위성정당으로 더불어시민당을 출범시켰다. 진보 진영의 파이를 나눠 먹는 상황이 되면서 열민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다. 22대 총선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에 비례표를 몰아주기 위해 조국당을 견제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절대 합당하지 않을 것 같던 민주당과 열민당은 결국 2022년 8월 손을 잡았다. 20대 대통령선거를 7개월 앞둔 시점에서다. 당시 대권주자였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열민당에게 합당을 제안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이는 범야권을 하나로 뭉쳐 지지자를 결속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촛불 개혁 세력’의 표를 한곳에 몰아줘야 대선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렬의 과정만 놓고 볼 때 조국당이 과거 열민당과 같은 과정을 밟을 것이란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하지만 합당 절차를 밟는다면 정권교체는 고사하고 이재명·조국의 파워 게임으로 인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두 사람은 합당 후 조금이라도 분쟁이 생긴다면 그대로 끝나는 관계”라며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대선이 한참 남았기 때문에 지난 총선처럼 쉽게 합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합당을 추진해야 한다면 둘 중 한 명이 대권주자로 활약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깔아야 한다. 조국당은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총선을 통해 검찰 독재 조기종식에만 집중하겠단 것이다. 선거를 완주한 조 대표의 첫 번째 선택지는 무엇일까? <일요시사> 취재진이 조 대표에게 물었고 그는 “한동훈 특검법 발의”라고 답했다. 한 비대위원장의 딸 논문 대필 의혹과 지난 대선 당시 불거진 고발사주 의혹 등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합치면 무적으로 조 대표는 “총선 이후 한동훈은 국회의원도, 비대위원장도 아닐 것”이라며 “법안 내용은 준비가 됐으며 이재명 대표도 당연히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열민당과 합당하면서 한차례 진통을 겪은 민주당이 조국당과 손을 잡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각자의 성적표를 받아든 두 사람의 관계도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심판론 VS 안정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띄우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이조 심판특별위원회(이하 이조특위)’를 구성했다. 이조특위는 “불공정을 상징하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를 방탄하기 위해 연대한 정치세력을 청산하고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국정 안정론을 주장해야 할 여당이 선거전략서 실책을 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오히려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