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무당 조심하라는 무당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07 17:16:35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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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떼돈 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일요시사>는 경기도 모처에 신당을 차린 무당 이지선(가명, 40세) 보살을 만났다. 이 보살은 “무당은 넘어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찾아오는 신도 중에서 무당에게 사기당한 사람도 있고 나도 신내림 받기 전에 그랬다.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당이 100만명을 넘는 시대다. 무당이 아파트나 빌라에 신당을 차린 경우는 티가 나지 않지만 어떤 지역은 한 집 건너 한 집에 무당집 표식인 깃발이 걸려있다. 한국에 그만큼 무당이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당 본인은 무당이 되고 싶었을까? 대부분 무당은 본인이 선택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일, 공부는 물론, 심지어는 가족까지 버리면서 무당의 길을 택한다.

떡잎부터
다르다

그만큼 무당들은 험난한 길을 걷는다. 이들은 자신의 신당, 굿당 등에서 의례를 한다. 기운이 좋다고 알려진 유명한 산에 직접 찾아가 낮이나 밤이나 치성을 드리고 굿을 한다. 신도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산다. 

마음 놓고 연애나 결혼도 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한 인생 계획도 이들에겐 사치다. 모든 것은 무당이 모시는 신령에게 물어서 선택한다. 이 보살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이 보살은 “어릴 적부터 예지몽을 많이 꿨고 나도 모르게 점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어서 어릴 때 일요일이면 항상 성경책을 들고 성당에 가 세례도 받았다. 이런 상황이니 부모님께 많이 혼났다”고 말했다.

어린 이 보살의 말을 부모는 부담스럽게 여겼다. 엄마가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에도 특별한 꿈을 꿨다. 이 보살은 운전면허 시험을 치러 가는 엄마를 향해 “엄마, 꿈에서 엄마가 머리에 가위를 가져와서 자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르진 않았어. 엄마 운전면허 시험 붙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자신의 꿈에서 엄마가 머리를 잘랐으면 면허에 떨어지지만 머리를 자르지 않았으니 면허에 붙을 거라고 이해했다. 이 보살의 예상대로 엄마는 시험에 붙었다. 시험을 제대로 친 것은 아닌데 시험 감독관이 배려해줘서 붙은 것이다.

8세 때는 농악놀이, 풍물놀이 꿈을 자주 꿨다. 눈을 감으면 상모 돌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냥 꿈이라고 하기엔 싸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부모님에게 하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냥 넘기기엔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는 이 보살은 “지금도 어렸을 때 꿨던 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 매일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고 잊을만하면 꿨다. 그래도 어릴 때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가 많이 생기니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방과 후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놀란 친구가 뛰어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내 옆에 할머니가 도와주잖아”라고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이 보살은 “그때는 정확하게 할머니가 보인 것은 아니다. 화사한 빛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왕따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친구들은 ‘쟤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예수님, 부처님 모두 있다고 믿어”
무당 아닌데 사기 당해 무당 되기도

이때부터 이 보살은 정확하게 본인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이는 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한 것이다.

어쨌든 부모는 이 보살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모르는 척했다. 집안 가세가 기우는 것도 이쯤부터였다. 저렴한 콩나물을 잔뜩 사서 한 달을 버텼다. 집안 형편상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영험함을 알고 있던 주위의 지인들은 “무당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넌지시 제안했지만 이 보살은 무당이 싫었다. 가까운 지인 중 두 명의 무당이 있었는데 모두 다 너무 가난했던 탓이다. 신당은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신 선생은 “굿을 해야 입이 터진다” “특별 기도를 해야 한다”고 종용했으며, 실제로 그에게 쓴 돈만 1억원이 넘을 지경이었다. 

무당이 신당을 차린 후 문을 닫는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초창기엔 호기심에 신도들이 찾아와도 점이 틀리니 재방문은 있을 리가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 기도 다녔고, 우연히 만난 무당이 “점을 잘 보게 해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 보살은 “무당이라고 하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주위서 신 선생에게 사기당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나도 이상한 일을 많이 겪어서 죽어도 무당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0대 초반부터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가 돈다’는 의미는 일반적인 정신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보살은 평상시에 멀쩡히 생활했다. 그러다가 사람만 보면 뭐가 쓰인 것처럼 점을 보고 싶었고 입을 멈출 수 없었다.

이 보살은 “남들이 보면 그냥 정신병자다. 그때 나도 차라리 그냥 미쳤으면 했다. 그러면 정신병원 가서 고치면 되니까. 집에서는 나를 빙의 환자 취급했다”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회상했다.

내 옆에
누군가…

그만큼 웃을 수 없는 사연도 많았다. 친구들과 술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화도 털어놨다. 작은 술집이라 옆 테이블 간 거리가 가까웠는데 이 보살 옆에는 또래 남성 4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 보살이 갑자기 앉아있던 남성에게 울면서 “야, 내가 너 할머니야”라고 말을 걸었다. 당연히 모두 놀랐고 친구들은 그만 하라며 말렸다. 하지만, 이 보살 입에선 “너, 나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나 잘갔다. 그러니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남성도 눈물이 터졌다. 알고 보니 그는 부모가 아닌 할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간 사이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에 1년 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보살 몸에 할머니가 들어와서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남성 얼굴을 스치듯 보고는 순간 할머니가 그냥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점을 봤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만 보면 점을 보고 싶고 이상한 말이 나왔다. 전혀 통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정신병원에 가자는 말을 듣기 싫어 핸드폰에 만세력 앱도 설치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는 만세력으로 사주를 봐주는 척하며 점을 봐줬다. 사주를 볼 줄 모르지만 그래도 미친 사람 소리를 듣진 않았다.

이 보살은 “계속 이런 식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하다가 목이 너무 뜨거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었다. 계속 말을 토해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신내림을 받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증상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부모와 함께 무당을 찾았는데, 이 보살이 빙의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무당이 빙의됐다고 굿하는 데 끌려가서 눕혀놓고 무구(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로 때렸다. 그래도 소용없었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니 신내림은 이젠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 선생을 선택하느냐였다. 당시 무당 지인들은 모두 망해 그만둔 상태였다. 지인들이 만난 신 선생은 모두 사기만 쳤지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었다.

신 선생에 
빚진 제자

그때 방송에 출연했던 한 무당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신내림을 받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이 보살은 고통을 받았다.

유명하니까 믿었다고 해야 할까? 해당 무당은 스스로 신내림, 퇴송 전문이라고 광고했다. 워낙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무당이라 사기를 당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이 보살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 보살 외에 다른 제자도 있었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제자를 모았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은 뒤에도 이 보살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신 선생을 만나러 가는데 왜 안 오느냐”며 무당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정도로 연락이 없었던 만큼 그는 열흘에 한 번씩 연락했다. 원래는 무당에게 점치는 법이나 굿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이 보살에게 굿을 하고 싶어하는 신도가 있어 도와달라고 무당에게 연락했지만, 그를 쏙 빼고 신도와 굿을 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제자 중 한 명이 알려주기 전까진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났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분히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무당은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는 20대 초반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제자들에게 “너는 부모와 연이 좋지 않다” “부모와 계속 연락하면 점을 잘 볼 수 없다”면서 부모와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였다. 어린 제자들은 그에게 내쳐질까 무서워서 반발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2~3년 동안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제자의 신용카드로 마음대로 쇼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돈이 많았던 제자도 아니었다. 그는 백화점 명품관서 물건을 샀는데, 카드값만 3000만원이 나왔다. 결국 이 결제 금액은 제자의 부친이 대신 갚았다.

2000만원 정도 돈을 빌리는 건 예사였고 한 제자에겐 1억5000만원의 빚까지 졌다. 이런 상황에도 제자들은 오랜 시간 무당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반발하지 못했다. 1억5000만원 빚이 생긴 제자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말도 안 될 정도 비싼 점사비 요구
갑자기 굿 하자고 하면 믿지 마라
유튜브 광고해도 안 믿는 게 좋다”

결국 제자들은 그의 곁을 모두 떠났다. 20대 초반에 신내림을 받은 이들은 빚쟁이가 돼 흩어졌다. 결국 무당은 제자들의 돈을 마음대로 쓰기 위해 부모와의 연까지 끊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나도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신내림을 받을 때 이상하게 신 선생의 무구가 계속 망가졌다. 방울을 들고 흔들면 방울이 떨어졌고 칼을 들고 뛰면 부러졌다. 그때 이상한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첫 번째 신 선생은 제대로 된 무당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를 만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이 보살이 신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제자들이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살은 무당이 일반인들에게 사기 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보살의 신도도 한 무당에게 사기를 당했다. 해당 신도가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갔는데 “당장 굿을 해야 한다”고 재촉하는가 하면 “바로 굿을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신도는 돈을 끌어모아서 급하게 굿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당은 “내가 굿을 해서 네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사 예정인 두 집을 두고 고민하다가 무당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신도 중 한 명은 두 집 모두 마음에 들어 어디를 선택해야 좋은지 물었다. 신도는 무당이 선택해준 집으로 이사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했다. 무당의 공수가 잘못된 것인데 결국 신도는 전 재산을 다 잃고 말았다.

무당에게 사기당하는 모습을 경험했던 이 보살은 자신은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그래서 ‘인건비만 받는 무당’으로 소개받기도 한다. 큰돈을 들여서 차리는 제사상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이 보살은 108배를 한다. 이것이 신 선생에게 사기당했을 때 잘 이겨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이 보살은 “나는 우리 종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예수님도 계실 거다. 결국 부처님, 예수님처럼 신 선생이 자신을 신격화해서 제자를 가스라이팅하고 돈을 착취한 것이다. 나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있으면 나보다 더한 사람이 많이 온다”고 허탈해했다. 

스스로 신격화
가스라이팅도

이어 “내 지인도 무당에게 사기당해서 쓴 돈만 1억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상한 무당을 피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힘들다. 무당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점사비를 요구하거나 갑자기 굿을 보자고 하면 믿지 마라. 특히 유튜브서 광고하는 무당도 안 믿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지인 무당은 점 보는 걸 그만뒀는데 같은 제자였던 무당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 선생을 찾는다면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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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