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없다’ 현대차 중고차 청사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1.09 13:30:25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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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타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현대자동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에 나섰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가 자사 브랜드 중고차의 품질을 인증해 판매하는 것은 현대차가 최초다. 연간 30조원 규모의 국내 중고차 시장이 신뢰도 제고를 통해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달 1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현대 인증 중고차 양산센터서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미디어 데이를 개최했다. 인증 중고차 사업의 공식 출범을 알린 현대차는 이날 양산센터서 상품화 과정을 거쳐 품질 인증이 완료된 팰리세이드와 제네시스 G80 인증 중고차를 공개했다.

“끝까지 케어”

현대자동차 아시아대권역장 유원하 부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현대자동차는 ‘만든 사람이 끝까지 케어한다’는 철학 아래 인증 중고차 사업을 준비해왔다”며 “중고차 판매를 넘어서 고객이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해, 투명하고 공정한 중고차 거래문화를 안착시킴으로써 국내 중고차 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증 중고차 사업 방향성으로 ▲투명 ▲신뢰 ▲고객가치를 제시하고,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의 생태계 조성에 힘쓰겠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지난해 1월 중고차매매업 사업자등록을 시작으로 인증 중고차사업을 단계별로 준비해왔다. 그 결과로 1년10개월 만에 중고차 매입부터 상품화, 물류, 판매에 이르기까지 중고차 사업 전과정에 걸쳐 자체 인프라를 마련하고 사업 출범을 알렸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 대수는 238만대에 달하며, 신차 등록 대수의 약 1.4배에 이른다. 이 중 현대차와 제네시스 중고차는 90여만대로 전체 중고차 거래의 약 38%를 차지한다. 올해 두 달여가 남은 점을 감안해 올해 판매목표를 5000대로 설정했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를 공급하기 위해 인증 중고차 전용 상품화센터를 경남 양산과 경기도 용인 두 곳에 마련했다. 향후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해 주요 권역에 추가로 구축할 계획이다.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매입된 중고차는 이곳에서 정밀진단과 품질개선, 검사, 인증 등의 상품화 과정을 거친다.

양산 인증 중고차센터는 부지면적(3만1574㎡) 기준으로 단일 브랜드 상품화센터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연간 1만5000대의 중고차를 상품화할 수 있어 인증 중고차 허브 기지 역할을 할 예정이다.

소비자가 중고차 구입을 꺼리는 핵심 원인이었던 판매자와 소비자간 정보의 비대칭 해소에도 나설 전망이다. 제조사로서 보유한 자체 데이터를 통해 개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하이랩(Hi-LAB) 및 인공지능 가격 산정 엔진이 그 역할을 한다.

자체적인 상품화 과정
사고·팔기 모두 가능

고객은 모바일 앱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및 인증 중고차 전용 웹사이트서 상품 검색 및 비교는 물론 견적, 계약, 결제, 배송 등 ‘내 차 사기’ 전 과정을 온라인 원스톱 쇼핑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최종 구입한 차량은 집 앞 등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배송된다.

현대차는 하나의 모바일 앱 및 웹 안에 현대 브랜드관과 제네시스 브랜드관을 운영해 고객은 편리하게 두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다.


중고차 처리와 신차 구입도 동시에 가능해진다. 현대차는 고객이 타던 차량을 매입하는 ‘내 차 팔기’ 서비스를 선보인다. 신차 구입 고객은 타던 차량의 종류와 상관없이 매각할 수 있다. 차량 연식 8년 미만, 주행거리 12만km 미만 차량을 올릴 수 있다.

또 ‘내 차 팔기’ 서비스는 지난해 4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사업조정 권고안에 따라 현대차/제네시스 신차 구입 고객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다.

현대차는 자체 개발한 AI 가격 산정 엔진 등을 통해 차량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정한 가격으로 신차 구입 고객의 중고차를 매입한다. ‘내 차 팔기’ 역시 실제 차량 상태 확인을 위한 전문인력 방문을 제외하고 매각 전 과정을 온라인 채널서 진행할 수 있다.

판매 대상 차량은 5년 10만km 이내 무사고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으로 한정했다. 상용차는 제외이며,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는 추후 확대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품질 확보를 위해 자사가 보유한 제조 및 서비스 기술을 적극 활용해 인증 중고차센터 입고 점검-정밀진단(차량 선별)-품질개선(판금·도장 등)-최종 점검-품질 인증-배송 전 출고 점검-출고 세차 등 7단계에 걸친 ‘상품화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상품화센터 입고 점검 후 진행되는 정밀진단은 차량 외관과 실내, 주행 성능, 엔진룸, 타이어 등의 부분에 현대차 272개 항목, 제네시스 287개 항목에 걸쳐 진행된다. 정밀진단 결과에 따라 기능 정비와 판금·도장 등의 품질개선이 이뤄진다. 수리 과정서 사용되는 부품 역시 신차와 동일하게 현대차가 인증한 부품들만 투입된다.

이후 최종 점검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모든 검사 항목을 통과한 차량에 대해서만 공식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공식 품질인증이 끝난 차량에 대해서는 상세한 점검 보고가 발행되며, 이는 모바일 앱 및 웹을 통해 고객들에게 투명하게 제공된다.

공정·투명성 확보
270여개 검사·인증

이 같은 까다로운 상품화 과정이 수행되는 양산 인증 중고차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부지면적인 3만1574㎡(9551평)에 연면적 1만76㎡(3048평) 규모의 지상 2층, 2개동으로 구성돼있으며, 하루 60대의 상품화가 가능하다.

용인 인증 중고차센터는 중고차 복합단지 ‘오토허브’ 내 3개 동에 걸쳐 연면적 7273㎡(2200평) 규모로 하루 30대의 상품화가 가능하다. 인증 중고차센터에는 상품화시설 외에 치장장과 출고 작업장, 차량 보관 및 배송 등의 물류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대차가 중고차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동안 중고차 판매자가 차량 주행거리나 성능·상태 등의 정보를 독점하면서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브랜드에도 타격을 입혔다.

현대차는 정보의 비대칭 해소를 위해 공신력을 갖춘 중고차 정보 서비스가 활성화돼있는 해외시장을 참고했다. 중고차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후 종합해서 보여주는 ‘하이랩’과 내 차 팔기 이용 고객에게 객관적인 차량 가격을 산정해 제시하는 인공지능 가격 산정 엔진을 개발한 이유다.


‘하이랩’에서는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 이력(history)뿐 아니라 ▲국산/수입차 전 모델 현재 시세 및 추이 ▲실거래 대수 통계를 통해 브랜드별/성별/연령별/ 지역별/가격대별/연료 타입별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 인기 모델 순위도 제시해주기 때문에 최신 중고차시장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중고차 거래 가이드 등도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기본 정보는 물론 ▲전손, 도난, 침수 등의 특수사고 및 보험사고 이력 ▲중고차 성능점검 및 자동차검사 이력 ▲정비이력 ▲리콜 이력 등 차량의 현재 성능·상태와 이력을 한 눈에 조회할 수 있으며 ▲정상 매물 여부까지 확인이 가능해 허위·미끼 매물을 스크리닝할 수 있다.

현대차는 중고차를 매매하려는 고객에게 공정하고 신뢰성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 가격을 투명하게 산정하는 인공지능 가격 산정 엔진을 자체 개발했다. 인공지능 가격 산정 엔진에는 최신 머신러닝 및 빅데이터 기술이 사용된다.

가격 산정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3년간 국내 중고차 거래 약 80%의 실거래 가격을 확보해 데이터베이스화했다. 거래 데이터는 15일마다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까다로운 과정

현대차 국내CPO사업실장 홍정호 상무는 “국내 소비자들도 해외 소비자들과 마찬가지로 제조사가 품질을 인증한 고품질의 중고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현대차와 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출시의 의미는 상당하다”며 “제조사 인증 중고차 공급으로 중고차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가 높아지면 전체 시장규모가 커지고, 중고차 정비와 부품, 유통·관리, 시험·인증, 중고차 금융 등 다양한 전후방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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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