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12번째 한국인 IOC 위원 김재열

장인 이어 올림픽 유치 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인으로서는 12번째다. ‘언론 재벌’이자 삼성가의 사위인 김 회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대를 잇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이 IOC 위원이 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다.

김재열 신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현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직과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직을 맡고 있다. 고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 위원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형은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회장 겸 채널A 대표이사 회장인 ‘언론 재벌’이다.

엘리트 가문
언론 재벌

김 위원은 1968년 10월14일 김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노스필드마운트허먼스쿨을 거쳐 웨슬리언대학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대학 대학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서 인터넷비즈니스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치고 미국 이베이서 일했다.

삼성가와 어렸을 적부터 인연을 쌓아왔다. 이재용 삼성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청운중학교 동창이다. 김 위원과 이서현 사장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도 이재용 회장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병문안을 갔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을 간병하던 이서현 사장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둘은 이 병문안을 계기로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혼했다. 이건희 회장은 김 위원을 무척 아꼈다고 알려진다. 김 위원과 이서현 사장이 결혼하자 “보면 볼수록 든든하다, 아들 하나를 더 얻은 기분”이라고 흡족해했다.


영어에 능통하고 사교성이 좋은 것도 이건희 회장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는 데 한몫했다. 이건희 회장은 국제스포츠계 인물을 만날 때 김 위원을 늘 대동했고 통역 역할을 맡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 때 이건희 회장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면서 언론을 통해 존재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과도 친분이 깊다. 정 부회장은 김 위원의 어머니가 별세하자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밤새 위로해줬다고 한다. 정 부회장의 전 부인인 고현정씨가 고려대 영문과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둘의 친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김 위원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그는 “전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절에 다닐 수 있는 아내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서현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장이 강하고 끈기 있는 성격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평가한다. 청운중 3학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이는 김 위원 본인의 강력한 뜻이었다. 1980년대라 조기유학이 쉽지 않자 김 위원은 유학 방법을 연구하다 <한국일보>서 주관하는 청소년 미술대회에 입상하면 부상으로 미국유학이라는 특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노력해 입상에 성공했고 마침내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김 위원은 IT산업 쪽으로 관심이 많다. 그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 위원은 “전부터 정치학이 재미있어서 다른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정치학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미국 웨슬리언대학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학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사주 집안 태어나 삼성가 사위로
이건희 회장 보좌하며 스포츠계 인맥 넓혀

제일기획에 상무보로 입사해 제일모직으로 옮긴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입사 9년 만인 43세에 사장이 됐다.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옮겨 경영수업을 더 받은 다음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으로 제일기획에 복귀했다.

김 위원은 2014년 12월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에 오르면서 삼성그룹의 스포츠를 포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 그가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에 오르기에 앞서 제일기획은 삼성그룹 스포츠단을 하나씩 인수했다.

2014년 삼성 프로축구단 수원삼성 블루윙스를 시작으로 배구단인 삼성화재 블루팡스, 삼성전자 남자농구단, 삼성생명 여자농구단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프로야구단인 삼성라이온스도 인수했다.

제일기획은 스포츠단 통합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자생력을 높이는 데 나서고 있다. 축구단의 경우 K리그 유료 관중비율 1위 달성, 유소년 클럽 등 선수 육성 시스템 강화, 통합패키지 스폰서십과 브랜드데이 도입 등 가시적 성과도 거뒀다.

제일모직서 근무할 당시 제일모직의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제일기획에 상무보로 입사해 제일모직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담당 상무와 제일모직 경영관리실 경영기획담당 상무를 역임했다. 이후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일모직 사장을 지냈다.

제일모직서 9년 동안 주력 사업인 케미칼 부문과 신규 사업인 전자재료사업 부문의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등 업무처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왔다. 특히 미래 첨단소재 사업을 개척해 제일모직 소재사업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동계올림픽 분야를 통해 스포츠계서 활동 폭을 넓혀왔다. 소치동계올림픽 대한민국선수단 단장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국제빙상경기연맹 집행위원, 대한체육회 부회장,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정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병문안 이후…
이서현과 결혼

김 위원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2014년 빙상계에 ‘성추문 논란’이 일면서 김 위원과 삼성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빙상연맹은 2014년 1월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던 지도자를 임시 직무 정지한 뒤 태릉선수촌서 퇴출 조치했다. 해당 지도자가 과거 지도하던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일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해당 지도자의 징계와 관련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퇴출 조치도 지나치게 늦게 결정됐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빅토르 안(안현수)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부친인 안기원씨는 한 라디오방송서 해당 지도자가 빙상연맹의 고위 임원과 관련돼 소치동계올림픽 코치로 발탁될 수 있었다는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2018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삼성이 빙상연맹을 후원하며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에 모든 권한과 힘을 실어줘 파벌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빙상연맹은 2012년에도 성추문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외국인 코치를 임명하려다 비판이 거세지자 철회한 적이 있다. 이후 미성년자 선수의 음주와 쇼트트랙 대표팀의 폭행사건 등도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빙상연맹이 선수 관리와 인재 영입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후 김 위원은 2016년에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직서 물러났다.

최순실 게이트에도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2016년 11월 검찰은 삼성서 최순실(최서연으로 개명)씨 측에 사업상 특혜를 제공하는 과정에 김 위원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김 위원을 상대로 삼성전자가 최순실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운영을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자금을 지원하게 된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삼성전자는 장씨가 운영을 주도한 비영리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빙상캠프 후원금 명목으로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16억원을 지급했다.

2016년 12월 김 위원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그룹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주도록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그룹이 결정했다면서도 누가 이 지원을 결정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는 2016년 12월 삼성 관계자 최초로 김 위원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이 국민연금공단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의 대가였던 것으로 보고 이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순탄치 않은
사건·사고

김 위원은 이재용 회장이 2016년 2월1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면담서 직접 전달받은 문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종합형 스포츠클럽 꿈나무 드림팀 육성계획안’을 제출했다. 이 문건은 이재용 회장의 구속에 물증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도 특검 조사에서 해당 문건을 두고 “대통령에게 받은 게 맞다”고 진술했다. 김 위원은 특검으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관련한 재판에 여러 번 중요 인물로 언급됐다.

2017년 3월13일 열린 재판서 김종 전 차관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으로부터도 ‘(최순실씨가 운영하는)동계스포츠센터영재센터에 지원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은 같은 해 4월7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15년 8월20일 김 전 차관을 만나 영재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BH(청와대)라는 말을 듣고 정확히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재센터의 이야기를 듣고 김 전 차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이규혁(당시 영재센터 전무)을 만나면 잘 알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가볍게 듣고 흘릴 얘기가 아니라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차관 변호인은 “증인(김재열)과 김 전 차관이 만난 시점에는 이미 이재용 회장이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이재용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지원 지시를 받고 당연히 증인을 만나 상의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해 7월11일 재판에서는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가 증인으로 나와 김 위원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BH 관심사항”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6년 2월22일 이 상무는 빙상 국가대표 출신 이규혁 전 영재센터 전무를 만나 ‘영재센터 빙상 영재선수 지원 계획안’을 전달받았다. 이 상무는 이를 장충기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차장과 김 위원에게 보고했다. 김 위원은 보고를 받은 뒤 이 상무에게 “BH 관심사항이니 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비유럽인 처음으로 ISU 회장 당선
최순실 게이트·빙상 성범죄 진땀

특검 공소 사실에 따르면 2015년 7월25일 이재용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2차 독대자리서 박 전 대통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유망주 양성과 은퇴한 메달리스트 지원 등을 도와달라고 이재용 회장에게 요청했고 이재용 회장은 이를 승낙했다.

김 위원은 노력 끝에 한국인으로 12번째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선대 회장님 덕분에 국제 스포츠계에 입문했다”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는 지난 2010년 1월에 시작해 1년 반 만인 2011년 7월,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당시 이건희 회장의 통역 겸 비서로 활동하면서 IOC 위원 등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인맥을 쌓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를 발판 삼아 김 위원은 지난해 6월 비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ISU 회장에 당선됐고, 이 여세를 몰아 1년여 만에 IOC 위원 자리까지 꿰차면서 당당히 국제스포츠계 중심 인물로 서게 됐다. ‘한국인 IOC 위원으로 한국 스포츠 외교력 제고라는 보이지 않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스포츠 발전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130년 ISU 역사에서 제가 비유럽인으로 처음 회장에 당선된 것은 우리나라 국격이 그만큼 높아진 데다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 놓았기에 가능했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이어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2년간 지내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다양한 분야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봤다”며 “어떤 젊은이들은 기업 스포츠 마케팅 분야서, 어떤 젊은이들은 IOC 등 국제스포츠 단체서 일하는데 그런 젊은이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대한빙상연맹 회장을 지내면서 빙상선수들을 많이 봤다. 국가대표 선수까지 오르기까지는 정말로 엄청난 훈련을 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부(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 밑에 있는 (많은 다른)선수들에게도 (성장할)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스포츠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은 “이를테면 올림픽이 열리면 전 국민이 모두 스포츠 팬들이 되는데 올림픽이 끝나면 스포츠에 관심이 많이 떨어진다”면서 “(국민들이)선수들에게 응원과 사랑, 관심을 많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은 스포츠계 관심사인 ISU 회장 재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난해 6월에 ISU 수장으로 당선된 김 위원은 ISU 회장 4년 임기 중 1년여를 이미 보낸 상태다.

스포츠 발전
중요한 역할

그는 이번에 국제경기연맹(IF) 대표 자격으로 IOC 위원에 뽑혀 IOC 규정상 ISU 회장 임기까지만 IOC 위원으로 활동하게 돼있다. 따라서 ISU 회장직에 재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서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지금 (그 부분에 대해)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각국 빙상연맹 회장이 모여 ISU 회장을 뽑는 자리서 ‘스포츠계도 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면서 “남은 임기 동안 공약을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제가 ISU 회장에 다시 나설지 여부는)투표권자들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