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레바뮌’ 첫 코리안리거 김민재

아시아 넘은 월클 센터백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한국 축구대표팀 간판 수비수 김민재가 한국 축구 역사에 새 이정표를 썼다. 김민재는 아시아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바이에른 뮌헨에 입성했다. 그는 중국 리그서 세계 최고 3대 클럽 중 한 곳에 입단하기까지 단 2년 걸렸다.

축구선수 김민재가 독일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과 2028년까지 5년간 계약했다. 뮌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 센터백 김민재와 2028년 6월30일까지 5년 계약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김민재는 전 소속팀 나폴리에서 사용하던 등번호 3번을 달고 뛴다.

장 크리스티안 드리센 뮌헨 CEO는 “김민재는 지난 시즌 나폴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을 세웠고, 시즌 베스트 수비수 상을 받을 정도로 큰 발전을 이뤄낸 선수”라며 “그의 개인적인 능력인 정신력, 스피드 모두 인상적이다. 김민재는 자신의 플레이로 팬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드디어 밟은
꿈의 무대

김민재는 뮌헨 공식 입단식서 포부를 드러냈다.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은 항상 모든 축구선수가 꿈꾸는 클럽이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이 기대된다”며 “구단과 대화하면서 나에 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목표는 많은 경기를 뛰는 것이고 가능한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뮌헨은 김민재와의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뮌헨은 김민재를 영입하기 위해 나폴리에 바이아웃(최소 이적료)으로 5000만유로(약 710억원)를 지불했다. 앞서 축구선수 손흥민이 기록한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인 3000만유로(약 410억원)를 뛰어넘으면서 기록을 경신했다. 


김민재는 뮌헨 구단 역사에도 새 이정표를 썼다. 김민재의 이적료는 뤼카 에르난데스(8000만유로), 마티아스 더 리흐트(6700만유로)에 이어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뮌헨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 세계 축구 클럽 주축인 유럽 축구를 꼽을 때 사용하는 단어인 이른바 ‘레바뮌’(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뮌헨)이라 불린다.

뮌헨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는 김민재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정우영(슈투트가르트)과 이현주(베헨 비스바덴)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뮌헨 자체 육성시스템으로 영입한 유망주다. 김민재는 구단 역사상 이적료 3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주전급으로 분류된다.

김민재는 지난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서 인정한 최고의 수비수다. 2019년 K리그1(1부리그) 전북 현대로 입단한 김민재는 전북서 두 시즌을 뛰는 동안 모두 우승을 경험했고, 리그 베스트11과 영플레이어상을 받는 등 뚜렷한 상승세를 그렸다.

그는 당시 유럽 무대 진출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중국 슈퍼리그의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을 택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민재를 향해 “커리어보다 돈이 우선이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김민재는 무대를 넓히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아가면서 논란을 불식시켰다. 그는 2021-2022시즌 페네르바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처음 입성했다. 튀르키예 리그에 합류함과 동시에 곧바로 뛰어난 존재감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민재는 입단 1년 만에 많은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고, 이후 나폴리로 이적하게 됐다. 

중국 리그서 세계 최고 명문 클럽으로
몸값 28억→857억 2년 만에 30배 상승

나폴리는 나폴리 수비진을 오랜 기간 책임진 칼리두 쿨리발리의 대체자로 김민재를 영입했다. 당시 시즌 시작 전 합류한 김민재를 향해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김민재는 빅리그 경험이 없는 유럽 2년 차인데다 쿨리발리의 자리를 메우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민재는 첫 시즌부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데뷔 전부터 헤딩으로 득점포를 쏴 올리는가 하면, 철벽수비도 선보였다. 이후 그는 매 경기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시즌이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이달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철벽수비를 펼치면서 세리에 A 이달의 선수상만 세 번 선정됐다. 

김민재는 나폴리가 33년 만에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나폴리는 2022-2023 시즌 세리에A 정규리그서 38경기 28승6무4패의 성적을 거두고 리그 최다 득점과 최소 실점을 동시에 기록했다. 

김민재는 지난 시즌 리그 35경기에 출전, 3054분 동안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태클 1.6회, 가로채기 1.2회, 클리어링 3.5회, 슈팅 블록 0.7회의 성적표를 일궈냈다. 나폴리 수비진을 이끌며 맹활약을 펼친 김민재는 시즌 종료 후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리에A 베스트 수비수 상을 받았다.

김민재는 뮌헨 공식 입단에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나폴리 팬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간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나폴리 팬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다. 고 디에고 마라도나 시대 이후 33년 만의 리그 우승을 만들어준 팬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며 “저의 열정적인 클럽 나폴리, 스팔레티 감독님, 팀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폴리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제가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나폴리를 기억하고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김민재는 올해 여름 이적시장서 대형 구단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뮌헨 이외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맨체스터 시티,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이 관심을 보였고 최근 이강인이 입단한 파리 생제르맹도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매 시즌 각 리그서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구단인 데다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구단이다.

수많은
러브콜

이적시장 초반 가장 적극적으로 김민재를 원하는 곳은 맨유였다. 구단 재건을 노리고 있는 에릭 텐 하흐 감독이 김민재 영입을 통해 수비를 탄탄히 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맨유 수비진에는 라파엘 바란,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빅토르 린델로프 등이 있지만 부상이 잦아 내구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맨유는 김민재 영입을 통해 수비진 경쟁을 견고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연봉과 계약기간까지 김민재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맨유는 김민재와 영입 협상을 한 달 넘게 끌면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맨유는 해리 매과이어와 빅토르 린델로프 등 백업 수비진을 이적 및 방출 시킨 이후 김민재를 영입해 수비진 개편에 나설 예정이었다. 맨유 측은 나폴리와 한 협상서 김민재의 이적료 중 일부에 린델로프를 포함시킬 계획까지 마련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맨유는 센터백 포지션의 백업 선수들을 처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과이어와 린델로프 등 백업 선수들은 기량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고액 연봉을 받고 있어 다른 구단에서도 영입을 제안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실력에 비해 고액 연봉을 받는 백업 선수들을 매각하지 못할 경우 이적료 및 주급 마련에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맨유가 주춤하자 타 구단들은 김민재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김민재와 나폴리 간 계약에는 지난 1일부터 해외 구단 한정으로 유효한 바이아웃이 존재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대형 구단 입장에서는 김민재의 이적료인 5000만유로는 충분히 투자할만한 금액이었다.


바이아웃 조항이 시작되자 김민재를 향한 빅클럽의 구애가 이어졌다. 바이아웃 조항은 특정 액수가 넘어가면 소속 구단과 상관없이 선수 개인과 협상이 가능한 제도다.

그러나 김민재 영입전에 후발주자로 나섰던 뮌헨이 최종 승자가 됐다. 뮌헨 구단은 김민재 영입에 큰 공을 들였다. 뮌헨은 주전 센터백이었던 뤼카 에르난데스가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면서 대체 선수로 김민재를 낙점했다.

근거 있는
다재다능

토마스 투헬 뮌헨 감독은 직접 김민재와 영상 통화를 할 정도로 진정성을 보였다. 김민재가 뮌헨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현지 매체는 “뮌헨 측이 김민재를 구단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투헬 감독은 김민재 영입 발표 이후 “김민재가 이곳에 있어 너무 기쁘다”며 “김민재와 몇 차례 영상 통화를 했다. 김민재는 진정한 남자이며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15일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던 김민재는 3주 훈련을 마치고 지난 6일 퇴소했다. 이에 뮌헨 구단은 퇴소일에 맞춰 독일서 의무팀을 한국으로 직접 파견해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했다. 


뮌헨은 김민재의 이적을 공식 발표하면서 메디컬 테스트 진행 모습을 담은 비디오 클립도 함께 공개했다. 영상에는 뮌헨 의무팀이 독일을 떠나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과 함께 국내 병원서 김민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서 대화를 나누며 메디컬 테스트를 실시하는 모습이 나왔다. 또 뮌헨서 준비한 선물을 받는 장면도 담겨있었다. 파격적인 대우에 독일 현지 매체도 놀랄 정도였다.

독일 현지 매체는 김민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독일 매체 <빌트>는 “바이아웃 조항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돌아왔다. 뮌헨은 그들의 입장을 고수했다”며 “이제 뤼카 에르난데스를 잊게 할 사람이 뮌헨에 있다”고 환영했다. 

같은 현지 매체인 <란>은 “김민재는 에르난데스와 벵자맹 파바르를 완벽하게 대체할 것”이라며 “통계에 따르면 김민재는 여러 방면서 뮌헨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뮌헨은 김민재 영입을 통해 마티어스 더 리흐트와 다요 우파메카노로 이어지는 센터백 라인을 구축한다.

김민재의 시즌 초반 목표는 전 주전 센터백인 에르난데스의 존재감을 잊게 하는 것이다. 

독일 <스포르트1>은 파리 생제르맹으로 떠난 에르난데스를 대신할 김민재에 관한 강점을 분석했다. 매체는 통계 정보를 두고 에르난데스보다 김민재가 훨씬 좋은 수비수라고 평가했다.

“야프 스탐과 같은 선수”
뮌헨 가자마자 주전 예약

이 매체는 “김민재는 지난 시즌 세리에A서 3050분을 뛴 반면에 에르난데스는 가장 많이 뛴 2021-2022년 시즌 조차 2030분을 뛰었다”며 김민재가 내구성 면에서 우위라고 전했다. 이어 “김민재는 막강한 신체 스펙을 이용해 공중볼 경합을 따낸다. 공중볼 경합서 김민재는 90분당 2.69번을 승리했고, 에르난데스는 1.77번”이라고 분석했다.

뮌헨은 공식 홈페이지에 ‘김민재에 대한 7가지 사실’이라는 글을 올려 대대적인 김민재 홍보에 나섰다. 뮌헨은 김민재가 자라온 일대기를 소개했다. 구단 측은 김민재에 대해 “1996년 11월15일 한국의 항구도시 경남 통영서 태어나 과거 인터뷰를 통해 횟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전했다. 이어 연령별 대표팀 시절에는 아버지가 트럭으로 밤새 이동해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로 데려다 줬다는 사실까지 언급했다.

뮌헨은 김민재의 통계자료를 통해 스피드, 패스, 제공권, 빌드업 능력, 태클을 두루 갖춘 수비수라는 평가를 내렸다. 뮌헨은 “190㎝의 신장을 갖춘 김민재는 지난 시즌 두 번째로 많은 92번의 공중볼 경합 승리를 기록했다”며 “63%의 태클 성공률은 시즌 1위였고, 상대가 그를 제친 횟수는 5차례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뮌헨은 김민재의 빌드업 능력도 치켜세웠다. 뮌헨은 “김민재는 빌드업 과정서 91%의 패스 성공률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였다”며 “지난 시즌 유럽 5대 리그서 가장 많은 전진 패스를 기록했고 3번째로 많은 패스 시도를 했다”고 덧붙였다.

김민재는 유럽 빅리그서 빠른 스피드로 인정받았다. 현지에서는 김민재가 수비라인에 있으면 상대팀이 역습을 할 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김민재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서 최고 속도 34.2km/h를 기록했다. 같은 소속팀 수비수인 우파메카노(34km/h), 파바르(32.9km/h)를 모두 능가하는 수치다.

김민재가 달고 뛸 등번호 3번에 관한 역사도 재조명했다. 현지에서는 김민재가 레전드들이 거쳐간 등번호를 이어간다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독일 매체 <키커>는 “등번호 3번은 파울 브라이트너, 빅상트 라자라쥐, 루시우 등 뮌헨의 전설들이 사용해왔다”며 “김민재가 등번호 3번을 달고 바이에른 뮌헨서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전했다.

김민재의 달라진 위상은 최근 2년 새 수직 상승한 몸값서 알 수 있다. 이적시장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2021년 650만유로(약 92억원)서 현재 6000만유로(약 860억원)로 이적료가 10배가량 상승했다.

김민재의 시장가치는 <트랜스퍼마크트> 기준으로 전 세계 축구선수 중 61번째로 높다. 소속팀 뮌헨이 속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전체 10위고 포지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전체 8위다. 뮌헨은 이적료 지출에 있어 매우 소극적인 구단이다. 그만큼 뮌헨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유례없는
파격 대우

실제로 뮌헨은 현재까지 선수를 영입할 때 1억유로 이상을 넘겨본 적이 없다. 최근 이적시장서 선수 몸값이 치솟는 가운데 뮌헨이 5000만유로 이상을 이적료로 지출한 사례는 김민재가 3번째다.

김민재는 이제 뮌헨 선수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다. 뮌헨은 독일 테게른제에 훈련캠프를 차려 프리시즌 일정을 소화 중이다. 그는 2023-2024시즌 준비를 알리는 팀 프레젠테이션 행사를 시작으로 새롭게 팬들과 인사를 건낼 것으로 보인다. 이후 뮌헨의 프리시즌 아시아 투어에 동행해 데뷔전을 치를 전망이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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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